외전 1. Who is the top dog?
때는 바야흐로 여름, 사건의 발단은 야근을 하던 벳시가 별 의미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보통 싸우면 누가 이겨요?”
요한은 얼음이 녹아 맹탕이 된 커피를 홀짝거리며 샐쭉하게 쏘아붙였다.
“누가 이기기는 뭘 누가 이겨. 배트맨 VS 슈퍼맨도 아니고. 내가 연애하려고 만나지, 싸우려고 만나?”
벳시는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와, 조금 전까지 전화로 엄청 싸우셨잖아요. 제가 세어 보니까, 대충 하루에 다섯 번쯤 싸우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자주 싸웠던가? 요한은 괜히 머쓱해져 목덜미를 긁적였다. 셰어와의 관계를 오랫동안 숨기는 건 무리였다. 특히 회사에서 거의 종일 붙어 있는 벳시에게 숨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사업상 우호적인 관계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연인 관계로 알려졌다.
셰어와 함께한 지 6개월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흔히 하는 말로 연애는 3개월을 넘어가면 안정기에 들어선다고들 하던데, 그 말은 두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일로 싸워 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셰어와 귀가 시간 문제로 한바탕 다퉜던 요한은 괜히 입맛이 씁쓸했다.
벳시는 요한이 사무실에 숨겨 두었던 초콜릿 상자를 자연스럽게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요한은 스스럼없이 초콜릿을 집어 먹으며 한탄했다.
“아니,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걔는 엊그제 12시에 퇴근했거든? 근데 오늘 나한테 퇴근이 너무 늦는 거 아니냐는 거야. 아직 10시도 안 됐다고.”
“그건 좀 너무하네요. 일 때문에 늦는 건데.”
“걱정하는 거지. 뭐, 안 그래도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려고 생각하긴 했는데.”
요한은 요즘 10대만도 못한 통금 시간을 한탄하더니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다. 그를 묘하게 히죽거리며 바라보던 벳시가 농담을 던졌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대표님이 맨날 지죠?”
눈치도 빠르다. 요한은 슬그머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셰어와 함께한 지 어언 6개월, 그동안 거쳐 온 수많은 다툼에서의 승자는 대부분 셰어였다. 누가 이기든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굳이 나서서 자랑하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요한은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야. 나 맨날 이겨. 너무 자주 이기니까 지겨워서 가끔 져 줘.”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승률이 얼마나 돼요? 한 40%?”
따져 보면 30%도 안 될 것 같다. 7:3이라는 숫자를 떠올리자 요한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애인을 굳이 이겨 먹을 필요는 없다. 최소한 요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거창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요한은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고 싶었다. 화를 내면 달래 주고 싶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풀어 주고 싶다.
비록 셰어와 같이 있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요한은 대부분 셰어에게 져 주었다. 승패가 중요한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 애인과 싸울 때도 이겨 먹으려 날을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셰어는 달랐다. 그는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렸고, 상벌이 명확했으며, 웬만해서는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요한은 셰어의 명확한 성격이 좋았지만 7:3이라는 숫자를 떠올리자 조금 억울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애인인데, 7:3?
7과 3이라는 숫자가 요한의 머릿속을 빙빙 떠돈다. 침묵이 이어지자 벳시가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어…… 음, 그러면, 다시 일이나 할까요? 이러다 새벽까지 일하겠어요.”
초콜릿을 입에 넣으려던 요한의 손이 멈칫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상상하기도 싫다.”
“그럼 빨리 진도부터 빼셔야죠. 이러다 정말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수가 있다고요.”
벳시가 흉흉한 기세로 어지러운 글자가 휘갈겨진 화이트보드를 탁탁 쳤다. 요한은 피로에 전 얼굴을 문지르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글자들을 노려보았다.
“차라리 야근해서 해결될 문제면 좋겠다.”
영화 Ruler로 큰 성공을 거둔 후, V Pictures의 주가는 반짝 급등했으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다소 정체되고 있었다. 그동안 몇 편의 영화를 개봉했고,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큰 성공 뒤에 따르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슬슬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작을 연달아 터트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대표직을 맡은 요한으로서는 다음 영화를 꼭 제대로 터트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고 있었다.
검토할 대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대본을 훑어보아도 더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요한은 이미 몇 차의 검증을 거쳐서 걸러진 대본들을 전부 드롭했다. 무조건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고르고 골랐기 때문일까. 검증 기준은 대중성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각기 다른 작가가 특별한 소재를 녹여서 썼다는 대본들은 이상하게 어디서 조금씩 본 듯한 클리셰였다.
클리셰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클리셰가 될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건 안전한 흥행을 보장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 V Pictures에서 내놓은 영화가 대부분 그런 영화였다는 것이다. 안전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일정 수준의 흥행을 거두었으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지는 못했다. 계속 안정적인 노선을 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대로라면 V Pictures의 이미지는 한 가지로만 굳어지게 될 것이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V Pictures를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요한은 뭔가를 빚진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거 없을까? 진짜 특이하고, 재미있고, 보면 와!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그런…….”
골머리를 싸맨 요한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벳시가 제안했다.
“대표님, 내일 오전에 다시 회의하시죠.”
때마침 셰어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이 만든 몇 가지 규칙에 따르면,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전화는 꼭 받아야 한다.
전화는 받기 직전에 뚝 끊어졌다. 지금 바로 다시 전화를 걸지 않으면 셰어는 엄청나게 화를 낼 것이다. 요한은 어쩔 수 없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너저분한 책상 위에 쌓여 있던 대본과 서류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그 꼴을 보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요한은 널브러진 대본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리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 아침에 마저 하고…….”
요한은 말을 맺지 못했다. 반투명한 회의실 벽 너머로 기이한 형체가 일렁거리는 것이 보인 것이다. 불이 꺼진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어야 했는데, 꼭 사람처럼 생긴 형체가 사무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그는 하얀빛을 한 손에서 쏘며 인사라도 하듯 손을 느리게 흔들었다.
요한을 따라 시선을 돌린 벳시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저게 뭐예요?”
“나도 몰라.”
검은 형체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등대처럼 하얀빛을 이리저리 비추며 회의실로 다가왔다. 어쩐지 그 키며 체격이 눈에 익었다.
요한은 회의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조금 전까지 피로에 절어 있던 눈이 반짝이고 웃음을 참는 입술이 실룩거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훤칠한 체격에 잘 어울리는 어두운색의 트랙 슈트다. 조깅이라도 하러 나온 것처럼 보이는 옷차림과 달리 남자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 없었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하게 떠오른 미끈한 이목구비가 바닥을 향해 쏘아진 폰 라이트의 창백한 불빛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짜증스레 눈썹을 찡그리며 요한을 쏘아보았다.
요한은 애인을 보고도 인사 한마디 없는 무례한 남자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해. 따라 해 볼래? 안녕.”
요한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셰어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전화는 왜 안 받아?”
그때 셰어를 알아본 벳시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기묘한 조우였다. V Pictures의 최대 투자자이자 고용주의 남자 애인, 그 BNB 그룹의 차기 후계자. 이 중 한 가지만 해당해도 충분히 불편한데, 그 셋이 전부 한 사람이 지닌 속성이었다. 벳시는 등 뒤로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요한과 전화로 유치하게 싸우던 사람이 이 완벽해 보이는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셰어는 낯선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었는지 요한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친절한 말투로 물었다.
“늦게까지 고생이 많네요. 회의 중입니까?”
“아니요, 전혀요. 이제 다 끝났어요.”
“그거 다행이군요. 이제 대표님은 귀가해도 되겠죠?”
“네, 네. 물론이죠. 얼른 들어가세요.”
벳시는 묻는 말에는 재깍 대꾸하면서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셰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쩜 이렇게 친절하고 어른스러운지, 볼 때마다 왠지 불안하기만 한 요한과는 영 딴판이었다.
셰어는 바라던 대로 요한을 낚아챈 게 굉장히 흡족했는지 평소보다 더 예쁘게 웃어 주기까지 했다. 반대로 요한은 기분이 안 좋아졌다. 셰어는 참 경우가 없었다. 애인은 본 척도 안 하면서 엄한 사람한테는 잘도 웃어 준다. 게다가 저 상냥한 말투란. 언제 자신에게 저렇게 부드럽게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요한이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찰나, 셰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조금도 웃지 않는 눈으로 요한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좀 전까지 이어진 다툼에 대한 앙금이 아직 남아 있는 게 틀림없다. 요한은 불만스레 턱을 치켜들었다.
왜, 뭐, 요한이 입술만 움직여 쏘아붙였다. 따지고 보면 이쪽도 할 말은 많았다.
셰어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요한은 셰어에게 붙들린 채 거의 연행되듯 주차장으로 끌려갔다. 티격태격하며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목소리를 낮춘 살벌한 으르렁거림이 이어졌다.
“야, 너 지금 나한테 화내? 네가 왜 나한테 화를 내. 화는 내가 내야지.”
“조용히 해. 여기 밖이야.”
“밖인 게 중요하냐? 그런 놈이 여긴 왜 왔어? 여기 내 회사거든.”
“너…… 집에 가서 얘기해.”
“그렇게 말하면 누가 겁먹을 줄 알고. 어어, 얘기해. 가서 누가 잘났나 어디 가려 보자니까.”
요한은 자연스럽게 제 차가 주차된 곳으로 몸을 틀었다가, 순식간에 셰어의 SUV 뒷좌석으로 끌려갔다. 괴팍하게 몸을 욱여넣는 바람에 여기저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요한은 겨우 뒷좌석에 웅크려 앉은 채 씩씩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 미친 새끼야! 아프잖아.”
“아파?”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요한은 괜히 심장이 덜컹거리는 듯해 반대편 문 쪽을 향해 슬그머니 몸을 기울였다. 밀폐된 공간에 셰어와 단둘이 갇히자 그의 바디 워시 냄새가 갓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처럼 짙게 풍겼다. 셰어가 한껏 몸을 뒤로 뺀 요한을 향해 몸을 붙여 왔다.
“어디 봐.”
“보긴, 뭘, 봐. 너 저리 떨어져.”
긴장한 탓에 목이 자꾸 멘다. 하필이면 창피하게 이런 타이밍에 우스꽝스러운 목소리가 나올 게 뭐란 말인가. 요한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차라리 비웃었으면 덜 민망했을 텐데, 셰어는 웃지도 않고 요한의 머리를 매만졌다. 혹이라도 났나 확인하려는 것처럼 머리를 더듬는 손길이 답지 않게 세심했다. 머리칼이 사락거리며 흐트러진다. 머리카락이 닿는 귀나 이마뿐만 아니라 몸속이 다 간질거리는 듯해 요한은 끙끙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자 셰어의 손길이 한결 더 나긋해진다.
“어디가 아픈 건데?”
묻는 말은 까칠했지만 조금 전처럼 살벌한 기색은 없었다.
우리는 왜 맨날 이런 식이지. 사사건건 부딪치다가도 매번 이런 식으로 묘한 분위기에 휩쓸리고 만다.
요한은 야릇한 기분을 참으며 눈만 굴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싸우고 있었건만, 어어 하는 사이에 이상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오늘은 정말 제대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입이 아교라도 칠한 것처럼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운동하고 왔어? 넌 왜 운동할 때도 이렇게 예쁘게 하고 다녀? 한창 싸우던 중인데 자꾸 쓸데없는 걸 묻고 싶어진다. 요한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셰어가 짬이 날 때마다 운동하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심장에 안 좋았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트랙 슈트가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훤칠한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다. 진짜 샤워를 하고 나온 거였는지 셰어의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 있었다.
간질거리는 손길과 함께 닿는 체온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요한은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자꾸 그런 쪽으로만 신경이 쏠렸다.
머리를 더듬던 손이 요한의 뺨을 지나 턱 아래로 미끄러진다. 요한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그 잘난 얼굴을 미끼로 사람을 녹여 버리려고 작정한 게 아니면 꼭 싸울 때마다 이렇게 굴 리가 없다. 셰어는 요한의 얼굴을 제 쪽으로 감싸 쥔 채 가만히 시선을 맞추었다.
“왜 대답이 없어.”
질책하는 말과 달리 그의 눈은 다정하다. 눈이 마주치자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생각보다 앞서 몸이 움직였다. 쪽!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컸다. 요한은 달아오른 얼굴을 어둠이 감추어 주기를 바라며 눈만 굴렸다.
셰어의 입술이 살짝 벌어진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요한을 노려본 것도 잠시,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요한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넌 귀엽게 굴면 다 되는 줄 알지.”
“내가 언제 귀엽게 굴었어? 네가 방심하지 말든가.”
귀엽기도 참 쉽다. 입술만 냉큼 갖다 붙이면 귀엽다고도 해 주고. 요한은 속으로 삐딱하게 투덜거렸다.
“몸으로 때울 작정이면 좀 더 노력해 봐. 이걸로는 어림도 없어.”
셰어가 요한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빈정거렸다. 그러나 요한도 물러서지 않았다. 요한이 셰어의 허리를 불한당처럼 움켜쥐자 가뜩이나 사납던 셰어의 눈매가 더 뾰족해진다.
“어, 잘해 보려고. 기대해.”
매끈한 트랙 슈트가 손바닥에 착 달라붙는 것이 묘해 손이 절로 움직였다. 등허리를 주무르며 내려간 손이 허리춤을 비집고 트랙 슈트와 티셔츠를 걷어 올린다. 어두운 가운데 시리도록 허연 허리가 드러나자 바디 워시 냄새가 짙게 풍겼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삼켰다. 다리 사이로 열이 빠르게 몰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부드러운 피부를 탐하듯 어루만지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적당히 근육이 붙은 가슴은 손바닥 전체로 문지르면 근육 특유의 단단한 탄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좀처럼 쉽게 뾰족해지지 않는 유두도.
“아…….”
자그마한 돌기를 꽉 꼬집자 셰어가 움찔했다. 불만스러운 눈이 요한을 향했다.
“뭐야, 너.”
“네가 좋아하는 거.”
“네가 좋아하는 곳이겠지.”
셰어가 요한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얼결에 그와 몸을 겹친 채 반쯤 눕게 된 요한이 비틀거렸다. 차 문에 등을 기댄 셰어가 요한의 허리를 붙잡으며 고개를 들어 입술을 부딪친다.
쪽, 쪽. 좁은 공간에 젖은 소리가 울리는 게 자극적이었다. 쪼는 듯한 입맞춤을 퍼붓는 내내 그는 요한의 목덜미와 귀,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감각이 예민해진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쓰라렸다. 짧게 바짝 깎은 손톱이 뭉툭한 손끝과 함께 피부를 긁어내린다. 그가 긁어내린 곳을 따라 솜털이 반대 방향으로 곤두섰다.
“야, 좀…… 나, 이거 이상해.”
“아니. 안 이상해.”
“으읏…… 진짜, 좀 이상한데.
그가 하도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니 요한도 좀 헷갈리기 시작했다. 피부가 한 겹 벗겨진 것처럼 따끔거리고, 자꾸만 소름이 돋는데 이게 정말 정상일까?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셰어가 이렇게 유순하게 군 적이 드물어서 몸이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요한이 끙끙 앓는 소리만 흘리자, 그저 간지럽기만 하던 입맞춤이 농밀한 결합으로 바뀐다. 혀가 입술 사이로 파고드는 감각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미끈거리는 점막이 쓸려 간질거리는 쾌감이 번진다.
입을 맞추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셰어의 입맞춤은 요한과 거의 비슷해졌다. 그렇기에 요한은 때때로 눈을 감으면 꼭 자기 자신과 입 맞추는 것처럼 느껴져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나 혀가 녹아내릴 듯 부드러운 키스를 할 수 있게 된 후에도 셰어는 흥분하면 종종 거칠게 굴곤 했다.
요한은 또 아프게 이를 세우려는 셰어의 턱을 움켜쥐며 입술을 뗐다. 그러자 흉흉한 눈이 곧장 요한을 노려본다. 젖은 입술이 금방이라도 다시 달려들 것처럼 뜨거운 숨을 흘렸다.
“이번에는 진짜로 네가 좋아하는 거 해 줄게.”
요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셰어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진다. 긴 속눈썹 아래 잠겨 드는 어두운 눈동자가 뭔가를 기대하는 양 반짝인다. 요한은 그에게 키스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듯 느리게 입술을 겹쳤다.
요철이 맞물리듯 입술이 닿는다. 오직 입술끼리만 교접을 하는 것처럼 완급을 주어 비비자 깊게 겹쳐진 입술이 벌어지며 젖은 안쪽의 점막이 닿았다. 그것이 감질났는지 성급하게 입 안을 헤집으려는 혀가 밀려들었다. 요한은 입술을 벌려 그에 화답하며 융기한 가슴을 더듬었다. 그의 심장 또한 요한의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직 말랑한 유두가 손끝에 스친다. 부드러운 감촉에 이끌린 것처럼 자그마한 돌기를 비비적거리자 셰어가 고개를 비틀며 가쁜 숨을 흘렸다.
셰어는 요한을 만나기 전에는 키스를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조금만 야릇하게 만져도 금세 숨 쉬는 법을 잊는다.
셰어가 고개를 모로 틀었다. 이번에는 요한의 입술이 그의 뺨에 달라붙었다. 쪼옥. 젖은 입술이 찰싹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뺨이 달아올라 있는지, 입술이 닿은 피부가 뜨거웠다. 셰어는 요한의 어깨를 부스러뜨릴 듯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 마.”
셰어가 사납게 내뱉었다. 요한은 대꾸도 없이 가슴이 훤히 드러나게 걷어 올려진 셰어의 티셔츠 아래로 코를 들이밀었다. 따뜻한 체온과 함께 한결 포근하게 느껴지는 바디 워시 냄새가 난다. 두 사람의 호흡이 동시에 흐트러진다.
반듯한 콧날이 배를 기어 올라와 긴장한 가슴을 스쳤다. 뾰족하게 내민 혀로 자그마한 유두를 핥자, 셰어가 요한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하지 말라고 했어.”
그 손에 붙들려 요한이 고개를 들자 셰어와 눈이 마주쳤다. 젖은 눈이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요한은 보란 듯이 머리를 숙였다. 두피가 세게 당겨지는 것에 저항하며 유두를 입에 물자, 우악스레 머리칼을 쥐어뜯던 손이 느슨해진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이 요한의 이마 위에 흐트러졌다.
작기만 한 돌기는 그다지 빨 것도 없지만, 혀로 이리저리 어르듯 핥아 대다 보면 점차 뾰족하게 심지를 세운다. 작게 알이 맺힌 듯한 유두에 아프지 않게 이를 세우며 요한이 눈을 들어 셰어를 살폈다.
셰어는 그곳에서 느껴지는 자극보다 가슴에 달라붙어 있는 요한의 얼굴에 더 흥분한 것 같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얼핏 비칠 때마다 숨죽인 신음이 새어 나온다. 그는 요한의 이마를 덮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반듯한 이목구비가 버젓이 드러나자 셰어가 괴롭게 미간을 찌푸렸다.
“너 후회할 거야.”
“으응?”
요한이 유두를 입에 문 채 되물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등이 시트에 세게 부딪히고, 이번에는 반대로 길게 누운 요한의 위로 셰어가 올라왔다. 방심한 사이 다리 사이로 파고든 손이 반쯤 발기한 요한의 성기를 옷 위로 움켜쥐었다.
“아, 흣…….”
요한이 허리를 들썩이며 더듬더듬 셰어의 손목을 붙들었다. 옷 위로 성기를 쥔 채 가차 없이 문질러 대는 통에 참을 새도 없이 빠르게 성감이 치솟았다. 셰어는 연신 할딱거리는 요한의 입술을 내키는 대로 깨물며 속삭였다.
“조용히 좀 해. 여기 네 회사라며.”
“그걸, 아는 사람이…… 흡, 으읏…….”
요한이 제 다리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셰어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옷이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몸에 붙는 트랙 슈트 위로 두드러진 성기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것만큼이나 흥분한 성기가 빠르게 부푸는 것이 한 겹의 천 너머로 느껴진다. 두껍고 길쭉한 성기는 손바닥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크기를 키우더니, 금세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하아…….”
셰어가 요한의 위로 몸을 기울이며 달아오른 숨을 뱉었다. 움직이기도 불편할 만큼 맞붙은 몸이 뜨겁다. 서로의 성기를 비비적거리며 허리를 들썩일 때마다 딱딱한 차 안에 몸이 부딪혔다. 가뜩이나 체격도 큰 두 남자가 엉켜 있기에는 SUV도 좁았다.
좁고, 불편하고, 덥다. 그러나 처음 수음을 배우는 것처럼 서로의 성기를 쥔 채 손장난만 치고 있을 뿐인데도, 무서울 만큼 흥분하고 말았다. 옷도 벗을 새 없이 만져 대는 바람에 푹 젖은 속옷이 피부에 달라붙는다.
“왜 이렇게 젖었어? 아무 데서나 흘려 대는 버릇 못 고치지.”
셰어가 끈적거리는 체액이 배어 나오는 선단을 손바닥으로 지근지근 누르며 힐난했다. 예민한 곳을 압박하자 뭐가 마려운 것처럼 배 안이 욱신거렸다. 요한은 그를 피해 허리를 비틀며 손에 쥔 셰어의 성기를 꽉 그러쥐었다. 그러자 사나운 숨결이 열 오른 목덜미에 쏟아진다.
“자기야, 지랄하지 말고 빨리…… 흑!”
빨리, 좋은 거 하자.
뒷말을 뱉을 새도 없이 요한의 몸이 위로 쑥 밀려 올라갔다. 차 문에 반쯤 기대 누운 채 요한은 셰어에게 짓눌렸다. 셰어는 삽입이라도 하는 것처럼 요한의 다리에 제 성기를 밀어붙였다. 시동도 켜지 않은 차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흣, 아, 어떡, 해…….”
누가 보면. 요한이 속삭이자 셰어가 그 입을 틀어막았다. 손으로도 막아 내지 못한 신음이 낮게 깔렸다. 셰어는 거칠게 손을 놀렸다. 그가 성기를 터트릴 듯 쥐어짜는 바람에 요한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등골이 저릿하도록 아픈데, 고통에 흥분한 몸은 또 질금거리며 선액을 흘려 댔다. 축축하게 젖은 속옷이 마찰할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게. 큰일이다. 이렇게 젖었는데, 누가 보면.”
셰어는 협박처럼 들리는 말을 지껄이며 더 거칠게 몸을 부딪쳐 왔다. 가쁜 호흡이 차 안에 울리고 차가 크게 덜컹거린다. 밑이 쓸려 화끈거리도록 문질러 대는 것을 더 견디기가 어려웠다.
요한은 셰어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젖은 입술이 벌어지며 드러난 이가 맥박이 느껴지는 따뜻한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단순히 소리를 죽이려는 의도였으나, 이번에는 셰어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윽, 하아…… 너…….”
셰어가 등을 둥글게 만 채 몸을 떨었다. 움찔거리는 그의 등을 무심코 쓸어내리던 요한이 고개를 들었다. 비릿한 풋내가 차 안에 진동했다.
이건, 설마.
“자기야.”
요한은 셰어의 바지 속으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셰어는 허리를 들어 그를 피하려 했으나 그보다 요한이 훨씬 빨랐다. 정액에 젖어 질척거리는 속옷이 요한의 손등에 달라붙는다. 요한은 한 차례 사정을 한 뒤라 크기가 조금 줄어든 셰어의 성기를 놀리듯 훑어 내렸다.
“너 쌌네.”
두 사람이 만든 규칙은 여러 가지지만 섹스할 때의 규칙은 하나뿐이다.
둘 중 먼저 사정하는 사람이 상대의 말에 무조건 복종한다.
사정 직후의 탈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셰어가 무게를 실어 요한을 짓누르며 꽉 끌어안았다.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지 작게 욕설을 뱉는 게 귀여웠다. 요한은 셰어를 마주 안으며 속삭였다.
“뭐 해. 얼른 벗어.”
셰어의 등이 굳어진다. 맞닿은 가슴을 통해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셰어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다 들리는지도 모르고 태연한 척 토를 달았다.
“여기 네 회사라며.”
“그러니까 네가 잘해야지. 자기야, 차는 방음이 안 돼. 알지?”
“넌 진짜 개새끼야.”
“내가 개 새끼라 좋겠다. 차에서 수간하는 기분 내면 즐거워?”
요한이 너른 등을 쓰다듬자 슬쩍 몸을 일으킨 셰어가 속 모를 눈으로 요한을 빤히 쳐다본다. 그의 입술이 삐딱하게 비틀어졌다.
“글쎄, 뭐 특별할 것도 없는데.”
꼭 이렇게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사람 성질을 건드린다.
요한은 셰어의 등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그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럼 내가 잘 해 봐야겠네, 특별하게.”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는지 셰어는 얌전히 몸을 일으켜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크게 티 내지 않아도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은 옷도 몇 장 되지 않는데 셰어의 손이 평소보다 굼떴다.
트랙 슈트와 티셔츠, 브리프, 운동화를 벗고 양말은 벗지 않는다. 화상의 흔적이 남은 발을 볼 때마다 요한이 안타까워하며 물고 빨아 대는 통에 그는 좀처럼 맨발을 보여 주지 않았다.
셰어는 양말만 신은 채 나신으로 요한의 위로 올라왔다. 그는 눈도 맞추기 싫은지 부풀어 오른 요한의 바지 앞섶만 노려보며 손을 뻗었다. 요한은 여태 꼿꼿하게 서 있는 성기를 옷 위로 더듬는 셰어의 손을 잡아 떼어 냈다. 셰어가 겨우 눈을 맞췄다.
“저쪽 보고 엎드려야지. 자기야, 교미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잖아.”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던 셰어의 미간에 깊은 금이 새겨졌다. 그의 눈에 신랄한 기색이 어린다. 눈으로 욕이라도 하는 듯했다. 셰어는 퍽 까칠하게 쏘아붙였다.
“이런 걸 잘도 아네.”
“몰랐구나. 원래 개 새끼들은 다 알아요.”
셰어는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한숨을 쉬며 차 문 쪽을 향해 시트 위에 엎드렸다. 차에서 불편하게 몸을 구부려야 하는데도 그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쉽게 감을 잡았다. 이런 짓을 잘 시키는 사람은 하기도 잘하는가 보다. 요한은 괜히 심술이 났다.
요한은 작고 동그란 엉덩이를 화풀이라도 하듯 거칠게 주물럭거렸다. 셰어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몸을 지탱한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잘 참을 수 있으니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뜻이리라.
요한이 삐딱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조용히 해야 해. 알지?”
셰어는 대답도 없었다.
얼마나 잘 참나 보자. 요한은 엇나간 의욕을 불태우며 양손에 움켜쥔 볼기를 쫙 벌렸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얼굴을 처박았다.
“흐읏!”
깜짝 놀란 셰어가 앞으로 기었다. 무릎이 가죽 시트에 쓸려 찌익 소리가 난다. 요한은 힘이 들어간 셰어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어 당기며 실실 웃었다.
“뭐야. 잘할 수 있다며.”
“너, 지금 어디다 입을…….”
“빨리 엎드려.”
“싫어. 이거 놔.”
요한의 손을 떨쳐 낸 셰어가 몸을 틀어 피했다. 요한은 모로 누운 셰어의 한쪽 다리를 붙잡아 활짝 벌렸다. 셰어가 헛숨을 들이켰다. 한쪽 오금이 위로 붙들린 탓에 아까보다 더 젖은 성기와 음낭, 그 아래의 비부까지 전부 드러났다. 요한은 빼꼼히 드러난 비부에 입술을 묻었다.
어디까지 꼼꼼하게 씻은 건지 말랑한 엉덩이 사이에서도 부드러운 바디 워시 냄새가 난다. 바짝 오므라든 입구를 핥자 활짝 벌어진 셰어의 허벅지 안쪽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는 패닉에 빠져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싫어. 안 돼. 더러워. 그만해.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간절해 요한은 잠시 흔들릴 뻔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로잡았다.
같은 말을 자신이 했더라면 셰어는 그만뒀을까?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개가 물을 마실 때처럼 찰박거리는 젖은 소리가 차 안에 울린다. 그 소리가 못내 수치스러운지 배배 꼬이던, 양말을 신은 발끝이 천장을 퉁 걷어찼다. 차체가 울리는 소리가 제법 컸다. 당황한 셰어가 황급히 다리를 구부리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 바람에 다리가 깊게 벌어져 혀가 닿는 부위가 늘어난다. 뾰족한 혀끝만 겨우 닿던 것이 넓적한 혀 전체가 닿았다.
셰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숨죽여 신음을 삼켰다. 다급한 속삭임이 띄엄띄엄 새어 나왔다.
“안, 돼…… 요한, 이런, 건…….”
더러워. 싫어.
요한은 버둥거리는 그의 두 다리를 붙잡았다. 무릎이 상체에 닿을 만큼 깊게 누르자 셰어의 등이 불안하게 허공에 떠올랐다. 요한은 그의 등 아래에 제 무릎을 괴어 받치며, 활짝 벌어진 볼기 사이를 혀로 싹싹 핥았다.
부드러운 피부에 혀가 감기듯 달라붙는다. 혀가 스칠 때마다 예민한 주름이 움찔거리며 오므라들었다. 그 틈새를 비집어 열고 깊은 곳까지 혀를 처박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른다. 요한은 게걸스럽게 그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뜻한 숨이 닿을 때마다 파들거리던 셰어의 허리가 점점 둥글게 말리고, 혀의 돌기가 예민한 곳을 비집을 때마다 셰어의 속삭임에 희미한 물기가 배어난다.
“으…… 안, 돼…… 윽, 흐으…….”
끊어질 듯 가느다랗게 우는 소리가 예뻤다. 좆이 너무 서서 터질 것 같다. 하지만 당장은 구멍에 쑤셔 박는 것보다 셰어가 완전히 녹아내릴 때까지 거기를 핥고 싶었다. 요한의 콧날이 음낭을 밀어 올리며 혀가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셰어는 다리를 바르작거리며 저항했으나, 그럴 때마다 허벅지 안쪽과 볼기를 깨물린 탓에 반항은 시도에서 그쳤다. 그나마도 오래 저항하지는 못했다. 셰어는 소리를 참느라, 온몸으로 용을 쓰느라 금세 지쳐 버렸다.
요한은 벌리는 대로 순순히 벌어지는 다리를 주물럭거리며 질척하게 젖은 곳을 혀로 쿡쿡 쑤셨다.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타액이 엉덩이 골을 타고 등허리로 줄줄 흐르도록 핥아 대는 데는 당해 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말캉한 혀로는 어림도 없을 것처럼 오므라들어 있던 곳이 지금은 혀가 쑥 파고들 만큼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셰어는 손가락보다 훨씬 말랑한 혀가 뒤를 들쑤시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지, 혀가 밀려들 때마다 허리를 꼬았다. 그것이 꼭 다른 것을 박아 주길 바라는 것 같아 요한은 자꾸 혀 밑에 침이 고였다.
혀가 흠뻑 젖어 풀어진 곳을 쑤시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난다. 안쪽까지 스며든 타액이 흘러넘쳤다. 요한은 입을 뗀 채 잠시 벌름거리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곳이 움찔거리는 것을 또렷하게 포착했다. 투명한 타액을 구멍에서 흘려 대는 게 꼭 셰어가 뒤로 느껴서 젖은 것 같았다.
“흐읏…… 뭘, 보고만 있어.”
그새 정신을 차렸는지 푹 잠긴 목소리로 셰어가 중얼거렸다. 그는 몸을 거의 반으로 접은 자세가 슬슬 힘든지 얕은 숨만 쌕쌕 쉬었다. 요한은 셰어의 무릎 안쪽에 젖은 입술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너 젖은 거 예뻐서.”
“진짜…… 죽여 버리고 싶다.”
“좋아했으면서 아닌 척하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요한은 속으로 그의 말을 곱씹으며 억세게 움켜쥐고 있던 다리를 조금 내려 주었다. 한결 편해진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찌푸려져 있던 셰어의 미간이 조금 펴졌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닐 텐데, 조금 풀어진 그의 얼굴을 보자 괜히 속이 비틀린다. 요한은 두 손으로 셰어의 엉덩이를 함부로 주물럭거리며 축축한 비부를 더듬었다. 말랑해진 입구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쉽게 벌어졌다. 그러나 그 안은 그다지 풀어져 있지 않아 손가락 한두 마디를 넣는 게 고작이었다.
“으읏…….”
셰어는 조금 전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신음을 삼켰다. 겨우 손가락 하나였지만 엉덩이를 마구 주물러 대니 안쪽이 좁아져서 버거웠다. 어찌나 빠듯한지, 안에 밀어 넣은 손가락이 절로 구부러졌다.
“내가 다 허락받아야 해? 손가락을 하나 더 넣어도 될까요, 뭐 이렇게?”
“아! 그, 렇게…… 하으, 윽, 하지, 마.”
“불공평해, 자기야.”
요한은 그를 놀리듯 손가락에 달라붙는 내벽을 비비적거렸다. 그의 몸속이 젖은 진흙처럼 살갗에 감겨든다. 손가락이 아니라 다른 걸 쑤셔 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거친 욕망에 흔들려 장난 같던 손장난이 점점 거칠어진다. 손등이 잠길 정도로 안을 깊게 푹푹 쑤셔 댔다.
“흐윽…… 그, 으, 그만.”
“아, 그으만.”
요한은 말꼬리를 늘이며 끝까지 장난만 칠 것처럼 굴더니, 손가락을 쑥 뺐다. 셰어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호흡을 미처 가다듬지 못한 채 늘어졌다.
요한은 흉흉하게 발기한 채 이미 흠뻑 젖어 있는 제 성기를 쥐고 봉긋하게 솟은 그의 엉덩이 사이에 슬슬 비벼 댔다. 오랫동안 혀로 괴롭힌 탓에 풀어질 대로 풀어진 곳이 젖은 입술처럼 표피에 달라붙는다.
요한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셰어가 손이 닿는 곳을 더듬어 붙잡는다. 몸이 밀려 올라가지 않게 지탱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차 문과 시트를 붙든 손에 힘을 실었다.
그때 요한이 잊은 것이라도 떠올린 양 고개를 들더니 심술궂게 물었다.
“이제 박아도 돼? 젖어서 말랑말랑한데.”
셰어의 눈매가 일그러진다. 발갛게 젖은 눈가에 물든 흥분과 대조적으로 뾰족하게 뜬 눈이 요한을 노려보았다.
“지루하게 굴지 마. 잠들겠어.”
입으로는 곧 죽어도 허세지. 요한은 조금 웃고 말았다. 이미 목이 잠기도록 울었으면서 이렇게 멀쩡한 척하는 걸 보니, 그를 한계까지 몰아세워 울리고 싶어진다.
요한은 셰어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단번에 좆을 끝까지 쑤셔 박았다. 반사적으로 굳어진 몸이 바들거린다. 요한은 그가 달아나지 못하게 허리를 바투 잡아당겼다. 꾹 다물려 있던 셰어의 입매가 일그러지며 슬며시 벌어진다. 탁하게 갈라진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 으읏…… 흐, 아…….”
삽입은 느릿했지만 과격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혀로 풀어 줬다고 해도 커다란 성기를 한 번에 박는 것은 무리였다. 흐물거리던 입구는 선단의 가장 두꺼운 부분을 삼킬 때부터 한계까지 벌어져 아프도록 조여들었고, 두꺼운 기둥을 밀어 넣기 시작하자 경련하는 것처럼 좆을 씹어 댔다.
요한은 저항을 무시하고 무식하게 성기를 퍽퍽 쳐 올려 끝까지 쑤셔 박았다. 셰어가 정신없이 흔들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흐느꼈다.
“아, 아, 흐읏, 으……아, 잠…….”
잠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울음에 젖은 셰어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요한은 뿌리까지 성기를 다 밀어 넣은 후에야 뒤늦게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후…… 읏, 뭐라고 했어?”
셰어는 숨이 깔딱 넘어갈 것처럼 끅끅거리며 발로 요한의 허벅지를 밀어냈다. 그러자 그의 허리가 들떠 위로 밀려 올라가며 깊게 박혀 있던 성기가 도로 물러난다. 타액으로 적셨다고는 하나 맞물린 곳은 좁고 뻑뻑했다. 넣는 것만큼이나 빼기도 쉽지 않았다. 굴곡진 성기가 내벽을 긁는 바람에 안쪽이 아프도록 좁아졌다.
요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셰어의 허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대뜸 움켜쥐고 쑤셔 박을 기세였다. 셰어가 몸을 비틀었다.
“잠깐만.”
쉬고 갈라진 목소리가 야릇하게 들린다. 요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몸속은 좁고, 뜨겁고, 가만히 넣고만 있어도 꽉꽉 조여 무는 탓에 잠깐만 기다리기도 힘들었다. 멋대로 셰어를 붙잡고 휘두르고 싶어 갈증이 인다.
하지만 셰어가 울고 있었다. 꼭 이렇게 울려 봐야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 숨 쉬기도 버거운 것처럼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아, 흐으, 아파서…… 다 넣지, 마. 조금만, 흑, 천천히.”
“으응, 아팠어. 다 안 넣으면 좋겠어.”
요한은 셰어를 통째로 씹어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며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게 싫었는지, 아니면 다른 뭐가 마음에 안 든 건지 셰어가 요한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쳤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조금 놀라긴 했다. 셰어가 이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을 때릴 때는 힘 조절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넌 날 정말 사랑하나 봐.”
요한이 속삭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이럴 리가 없다.
더는 참기 어려울 만큼 갈증이 심해진다. 요한은 슬그머니 허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빡빡하게 맞물린 곳을 잘게 비벼 올리며 성기가 몸속을 쿡쿡 쑤셔 대자 셰어가 흐느끼듯 숨을 집어삼켰다.
힘이 들어가 날씬한 복근이 두드러진 배가 경련한다. 조금만 세게 박아도 배가 심하게 떨리는 게 위험해 보였다. 요한은 그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의 내벽이 꽉 조여들며 좆을 물어 댔다.
“하, 아읏, 안 돼. 거기…….”
“으음…… 그렇게 조이면 아파, 셰어. 너, 아읏…… 너무 좁아.”
요한은 고통인지 쾌락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강렬한 감각에 신음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느릿하게 박아 올릴 때마다 손 아래 배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몸속이 느리게 밀려 올라갔다가 되돌아오는 느낌이 생경한지 가뜩이나 좁은 기관은 계속 수축하기만 했다.
셰어의 성기가 요한의 손등에 부딪친다. 커다란 성기가 손등을 연신 두들기자 투명한 선액이 손등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아프다고 울더니, 좆을 이렇게 세우고 엄살을 떤 거였다.
퍽퍽 쳐 올리는 행위가 점차 격렬해진다. 밖에서 보면 차가 덜컹거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겨우 몇 초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갑자기 험악해진 추삽질에 적응하지 못한 셰어가 정신없이 흔들리며 요한의 손등에 선액을 흘렸다. 열에 취해 풀어진 두 눈이 요한을 갈구하듯 바라본다. 실상은 조금만 천천히 하자는 애원에 가까웠으나, 요한에게는 달리 보였다.
“아, 예쁘다.”
요한이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리며 셰어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이미 손자국이 얼룩덜룩하게 남은 허리에 붉은 흔적이 더해진다. 셰어가 울고 있다는 것도 더는 요한을 막을 수 없었다.
요한의 이성이 날아갔다는 걸 눈치챈 셰어가 요한의 허리를 무릎으로 밀며 몸을 비틀었다. 빡빡하게 박혀 있던 좆이 밀려 나가며 몸속의 어딘가를 자극하는지 셰어의 성기가 투명한 체액을 투욱, 툭 떨어뜨린다. 젖은 입술을 벌린 채 소리 없이 신음하며 바르르 떨었다.
아, 정말 예쁘다.
요한이 셰어를 끌어당겼다. 꽉 움켜쥔 손가락이 셰어의 허리에 우묵한 그림자를 남긴다. 셰어의 다리가 미끄러지며 쭉 끌려 내려간 몸이 한계까지 벌어졌다.
“하…… 으흐…….”
셰어가 흐느꼈다. 타액과 요한의 성기에서 흐른 체액으로 질척하게 젖은 비부에서 야한 소리가 난다. 더 깊게, 더 거칠게 박을 때마다 힘이 들어간 셰어의 배에 불룩한 형상이 드러나는 듯했다. 정염에 가라앉은 요한의 눈이 셰어가 발버둥을 치며 우는 내내 그곳을 유심히 노려보았다.
설마 저거 그건가? 미친 새끼, 설마 저게 진짜 좆이라고.
아마 그는 이런 몸을 아무한테도 안 들킨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를 것이다. 누구든 이런 모습을 본다면 절대로 그를 놓아줄 리가 없으니까.
“너는 진짜, 뱃가죽이 닳을 때까지 박혀도 할 말이 없다.”
흥분에 들떠 의식을 떠다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실수했다는 자각에 이어, 미처 각오를 다지기도 전에 셰어가 요한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힘이 완전히 빠진 탓에 걷어찬다기보다는 살짝 부딪친 것 같았다. 당황한 요한이 잠깐 멈춘 틈을 타 셰어가 가쁜 숨을 고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개새끼, 못 하는 말이 없어.”
“으응, 잘못했어요.”
요한은 셰어가 더 화를 내기 전에 그의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춰 댔다. 다행히 셰어는 수십 번의 입맞춤 끝에 관대하게 요한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 주었다. 혼날 만한 말을 뱉은 죄로 요한은 끝없이 거칠어지기만 하던 행위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셰어는 그것마저도 힘겨운지 흐느적거리듯 고개를 저었다.
“흑, 그만…… 아, 아, 흣, 그냥, 빨리 해.”
“왜, 싫어?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언제까지…… 흐, 하려고 이렇게, 으읏…….”
물기 어린 셰어의 눈에 날이 서 있다. 요한은 그가 또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선액을 질금거리는 셰어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흐윽, 셰어가 새된 숨을 흘리며 허리를 들썩였다. 그와 동시에 질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뿌리까지 파고든 좆을 삼킨 그의 배가 불룩 솟았다. 이번에는 그 두드러진 형태가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아, 미친…….”
시각적인 자극이 지나쳐서 온 얼굴이 다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요한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찌푸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질척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허리가 난잡하게 움직였다.
“아아! 아, 아, 으읍…… 응, 으응…….”
그에게서 미처 삼키지 못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제가 낸 소리에 지레 놀란 셰어가 어떻게든 소리를 죽이려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사정이 가까워져 예민해진 성기를 함께 만져 대는 것에는 당해 낼 수 없었다.
셰어의 허리가 들뜨며 등이 둥글게 젖혀진다. 요한은 손바닥으로 선단을 덮듯 감싸 쥔 채 미끈거리는 선단 끝을 비볐다. 가뜩이나 질게 묻어나던 선액이 넘쳐흐른다. 앞뒤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그가 허리를 들었다. 떨어지는 것도 아깝다는 듯이 바삐 부딪치는 교접 부위가 쩍쩍 들러붙었다.
뒤가 좆을 도로 뱉어 내려는 것처럼 꽉꽉 물어 대는 통에 목덜미가 저릿하도록 열이 차올랐다. 온 얼굴을 잠식한 열기가 눈에 고여 요한은 화끈거리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셰어는 발갛게 달아오른 요한이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지 젖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물기가 번진 눈가가 이지러진다.
너무 좋아서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좋아. 흐읏, 좋아해.”
요한이 가쁜 숨을 흘리며 속삭였다. 셰어의 눈가에 어룽거리던 물기가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괴로운 듯 눈썹을 찌푸리며 흐느꼈다.
“아…… 하아, 읏…… 아, 아읏!”
요한의 손바닥을 질척하게 적시며 셰어가 먼저 사정했다. 성기가 철벅거리며 드나든다. 자극이 극에 달해 고통스러운지 셰어가 요한을 마구 밀어내며 울었다.
“흐읏, 그만, 이, 흐윽, 흐…….”
“으응, 자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요한은 자신을 밀어내려는 그의 손목을 앞으로 모아 쥐어 당기며 허리를 쳐 올렸다. 수갑처럼 손목을 단단히 움켜쥔 탓에 그의 손목에 금세 빨간 손자국이 남는다. 힘겹게 좆을 받아 내는 뒤로 스멀스멀 새어 나온 거품 어린 체액이 희게 엉겨 붙었다. 열락에 들떠 풀어진 눈이 허공을 바라보고, 젖은 입술이 다물어지지 못하고 헤프게 신음했다.
사랑해.
셰어가 허물어진 발음으로 앓듯이 내뱉었다.
이 더럽게 똑똑한 새끼.
요한이 악문 이 사이로 욕설을 씹으며 파정했다. 그 말만 아니었으면 더 참을 수도 있었는데, 안타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조만간 사랑한다는 말을 세이프 워드 삼아 쓰는 그의 못된 버릇을 꼭 단단히 고쳐 놓고 말 것이다. 요한은 허탈한 마음을 달래려 셰어를 무겁게 짓누르며 꽉 끌어안았다. 품 안에 안긴 땀에 젖은 피부가 매끄럽게 달라붙는다. 요한은 그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시며 끙끙 앓았다.
“치사해.”
셰어는 평소에는 그 말을 자주 해 주지도 않으면서, 지금처럼 꼭 필요할 때만 써서 사람을 내키는 대로 휘두른다. 큼직한 손이 요한의 뒤통수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머리칼을 다정하게 헝클이다 그 손으로 목덜미를 긁듯이 쓸어내리는 게 너무 좋아서 오싹하다.
“대답은?”
꺼질 듯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요한은 고개를 들어 졸린 것처럼 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셰어를 바라보았다. 팔딱거리며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사랑해.”
기력 한 줌 없어 보이던 눈 속에서 깜빡거리는 빛이 흔들린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세상 모든 일이 다 사소한 일처럼 여겨진다. 요한은 충동적으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살짝 닿았다 떨어질 뿐인 입맞춤도 버거운지 셰어가 탁한 신음을 흘렸다.
늘 완벽하던 남자가 체액으로 범벅이 된 채 늘어져 있는 것이 지독히도 자극적이었다. 미처 꺼지지 않은 정염이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몸을 다시 빠르게 데운다. 요한은 그의 입술을 퍽 다정하게 물고 빨며 속삭였다.
“힘들어?”
셰어는 대답이 없었다. 힘들다는 뜻일 터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늘 밤 셰어는 자신에게 복종해야 하니까.
기묘한 만족감이 뻐근하게 차오른다. 7:3이든 뭐든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절대 져 주지 않는 남자가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줄 만큼 사랑하는 것은 자신뿐이다.
요한은 그를 제 위로 안아 올리며 그새 소름이 돋아난 등을 쓰다듬었다. 여태 맞물려 있던 몸을 일으켜 앉히자 결합이 더 깊어진다. 셰어는 요한의 목을 끌어안으며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무릎을 세운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아, 그만. 셰어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앓듯이 말했다.
요한은 그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로 앉혔다. 젖은 살끼리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단단해지기 시작한 성기가 전부 밀려들어 갔다.
“흐으읏…….”
셰어가 끝이 갈라진 신음을 흘리며 요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요한은 연신 움찔거리는 셰어의 엉덩이를 쥐어 벌렸다. 그러자 그의 몸속에 쏟아진 정액이 꿀럭거리며 흘러나와 요한의 성기와 그 아래까지 적신다. 어깨에 쏟아지는 숨이 뜨거웠다.
셰어의 안에서 성기가 서서히 부풀었다. 느리게 뒤를 넓히는 압박감이 괴로운지 셰어가 할딱거리며 요한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집에 가서, 흑…… 할 생각은.”
“너나 나나 이 상태로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아…….”
셰어는 체념한 듯 요한의 어깨에 기댔다. 빨리, 안에 싸 줘. 나직한 속삭임과 함께 그가 요한의 귀를 깨물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집에 가려는 목적이 분명한 말이었으나, 요한은 빠르게 달아올랐다. 불가항력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열 어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약아 빠진 새끼.”
두 번 다시 이런 수작질 할 생각도 못 하게 배가 부풀도록 안에다 흠뻑 싸 주고 말 것이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몸속을 짓이기자 셰어가 숨죽여 신음했다. 아읏, 흐읍, 윽. 악문 잇새로 새는 소리가 야해 그 턱을 쥐어 벌리자 어둡고 축축한 입 안에 늘어진 빨간 혀가 보인다.
요한은 그의 혀를 뽑아 먹을 듯 거칠게 입술을 겹치고 혀를 섞었다. 요한의 체온과 다른 온도를 품은 혀가 흐물거리며 키스에 응했다. 간지러운 숨과 함께 탁한 신음이 맞닿은 입술을 타고 입 안을 울렸다. 끝까지 떨어질 것 같지 않던 입술은 요한의 허리 짓이 조금씩 빨라질수록 엇갈리더니, 끝내 결별했다.
셰어는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정사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듯했다. 물기를 매단 채 내리깐 눈이 어지러움에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젖은 입술이 달싹였다.
“흐읏, 흑…… 아, 조금, 만 천천히, 읏…… 아! 아!”
“빨리, 싸 달라며. 어? 빨리 박아야, 빨리 싸지.”
허리를 퍽퍽 쳐 올릴 때마다 요한의 팔에 안긴 허리가 자꾸만 달아나려는 것처럼 뒤로 젖혀진다. 셰어는 조금이라도 삽입의 충격을 줄이려 허리를 움직였지만, 그때마다 요한이 더 거세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질퍽거리는 마찰음은 더 격렬해지기만 했다.
젤도 없이 타액과 정액만으로 연이어 관계를 가진 탓에 부어오른 구멍이 열을 품고 있었다. 그 열이 옮은 것처럼 달아오른 내벽이 틈 없이 달라붙는다. 제발 빼지 말라고 사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감겨 오는 몸속이 그답지 않게 뜨겁고 부드러웠다. 작정한 것처럼 조여드는 내벽을 벌하듯 박아 대며 요한이 이를 갈았다.
“하아……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 돌게 만들려고.”
여기다 빨리 싸고 나가라고, 일부러.
욕처럼 거친 말에 셰어의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가 흐릿한 눈을 들어 요한을 바라본다. 흑심을 품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흐트러진 눈이었다. 무슨 생각 같은 건 할 줄도 모를 것 같은 눈. 요한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서늘한 셰어의 팔이 요한의 목을 감았다. 셰어는 요한을 제 쪽으로 끌어당겨 안으며 머리칼을 함부로 쥐었다. 요한의 턱이 홱 치켜들리고, 모양 좋게 드러난 턱을 셰어가 욕심껏 깨물었다. 축축한 입술과 이가 번갈아 닿고 타액이 목덜미까지 타고 늘어졌다. 이미 이지를 상실한 셰어가 요한의 턱을 잘근거리며 앓듯이 중얼거렸다. 사랑해.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다.
요한은 왠지 모르게 치미는 격렬한 감정을 삼키며 셰어의 등을 쓸어내렸다. 얌전한 손길과 달리 셰어의 몸속을 짓이기는 성기는 그를 두 갈래로 가르고 싶은 것처럼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기만 했다.
흐욱, 윽. 좆을 처박을 때마다 셰어가 토기를 억누르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 파르르 떨리는 날씬한 배에 불룩한 형태가 두드러지는 것이 앉은 채로도 또렷하게 보였다. 이리저리 각도를 조금씩 바꿔 가며 박아 대다 보니 어떻게 해야 더 잘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셰어의 배꼽 아래를 긁는 느낌으로 그가 자지러지는 지점을 깊게 박으면 된다. 그러자 여태까지 왜 보지 못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셰어 역시 같은 것을 보고 있었는지 배가 눈에 띄게 불룩해질 때마다 허리가 떨리고 땀에 젖은 등줄기가 움찔거렸다. 하아, 잔뜩 흐트러진 한숨과 함께 그가 수치에 젖은 눈을 감았다.
내 것, 요한이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그를 이렇게 만들 수 없다. 내 것, 요한이 반복해서 속삭였다. 완벽하게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관계였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그 거친 행위와 어울리지 않게 애상적인 목소리로 요한이 고백했다.
“사랑해.”
내벽을 거칠게 긁어 대던 두꺼운 선단 끝에서 묽은 체액이 넘쳐흘렀다. 요한의 성기에서 흐른 선액이 마찰로 희게 거품 진 정액의 농도를 묽어지게 했다. 선액과 뒤섞여 묽어진 정액이 밑으로 줄줄 흐르는 것을 사정한 것으로 착각했는지, 셰어가 요한을 꽉 끌어안은 채 움찔거렸다.
어느새 완전히 발기한 셰어의 성기가 요한의 배에 비벼지고 있었다. 요한은 버릇없이 배를 쿡쿡 쑤셔 대는 셰어의 성기를 쥐고 부드럽게 흔들었다.
큼직한 손이 성기를 쥐고 흔들 때마다 묽은 선액이 흘러 손이 축축하게 젖었다. 흠뻑 젖은 내벽이 요망하게 좆을 물어 댄다. 요한은 셰어의 성기 끝을 손바닥으로 감싸 문지르며 허리를 쳐 올렸다. 예민한 곳을 집요하게 자극당한 탓에 가뜩이나 절정에 가까웠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셰어가 할딱거리는 숨을 뱉으며 신음했다.
“아, 흣, 너, 몇 번이나, 하는…… 으읏!”
“아직이야, 아직, 한 번밖에.”
“개수작 부리지, 흐으…… 힘, 들어.”
셰어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요한의 어깨에 비비며 울었다. 그는 앞을 만져 주는 것도 괴로운지 요한의 어깨를 깨물며 뒤를 조였고, 그것에 흥분한 요한이 거칠게 박아 대면 희끄무레한 정액을 픽픽 흘려 댔다. 요한은 그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면 밤새도록 사정을 참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셰어가 요한의 귀에 달라붙어 울음에 젖은 목소리로 온갖 음란한 말들을 속삭였다. 신음과 엉망으로 뒤섞인 난잡한 말들이 축축한 혀와 함께 밀려들어 요한의 귀를 더럽힌다.
요한은 셰어가 구멍과 좆물을 발음한 순간 참을 새도 없이 파정했다.
“하아……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
요한은 사정 직후의 탈력감에 지쳐 헐떡이면서도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분에 차 셰어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셰어는 완전히 지쳐 그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는 제 구멍마다 정액이 흐르는 것을 아무렇게나 드러낸 채 지친 듯 눈만 깜빡였다. 그의 멍한 얼굴 위로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홀린 것처럼 요한이 그에게 입술을 가져다 댔다. 짭조름한 눈가에 입을 맞추고 젖은 속눈썹을 핥자 간지러운 듯 셰어가 눈을 감았다. 그가 거의 숨소리처럼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집에 가서 하면 좋겠다. 그가 마저 하려던 말은 요한의 입술에 묻혀 사라졌다. 요한을 밀어내려던 셰어가 다시 요한의 목에 팔을 감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이 V Pictures의 주차장을 떠난 것은 자정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