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6)

* * *

“그 개자식은 진짜 왜 그러는 걸까요?”

혀가 반쯤 풀어진 발음으로 요한이 토로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바닥을 보이는 보드카 병과 레몬 껍질들이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그와 마주 앉은 제이는 수십 번은 반복된 똑같은 물음에 한결같이 예의 바르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게요.”

똑같은 말을 수십 번쯤 되돌려 주는 것이 성가실 텐데도 제이는 제법 프로다웠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접대와 질리도록 같은 말을 반복하는 클라이언트에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물론 그가 미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는 요한이 습관적으로 찔러주는 지폐의 힘도 있었다.

“그치? 나만 빡치는 거 아니지? 아, 진짜 그 개자식은…….”

요한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구시렁거리며 테이블 위에 얌전히 올려 둔 제이의 손 밑에 잡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 찔러 넣었다. 처음 지갑을 꺼내며 요한은 그것을 카운슬링 비용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제이가 ‘그러게요.’, ‘그렇군요.’ 따위의 대답을 할 때마다 카운슬링 비용을 지불했다. 그럭저럭 견딜 만한 주정이었다.

그다지 두툼해 보이지 않았던 지갑에 든 지폐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는지, 요한이 아쉬운 표정으로 지갑을 도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제 돈이 없어요. 끝…… 돌아가요.”

“네, 이사님. 그럼 방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요한을 제이가 부축하자 그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냐. 괜찮아. 나 안 취했어.”

반쯤 감긴 눈을 휘며 실없이 웃는 얼굴은 번듯했으나 요한의 걸음은 형편없이 비틀거렸다. 제이는 잠시 망설였으나 곧 마음을 정했다. 일어나자마자 휘청거리며 옆 테이블에 드러눕는 요한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이사님, 방에 가셔야죠.”

“아니야. 나 술 한잔만 더 하고 갈게.”

“곧 자정입니다. 내일 공항 가시려면 8시에 나오셔야 해요.”

“으응, 그러니까 딱 한 잔만.”

인내심을 발휘해 정중한 말투로 달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요한은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키도 덩치도 컸다. 제 발로 제대로 걸을 생각이 없는 요한을 부축하기는 쉽지 않았다.

제이는 부축을 거절하는 요한을 끈질기게 챙겨 엘리베이터에 태우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가 멋대로 다른 층을 누르는 것은 막지 못했다. 요한은 제이가 제대로 된 층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버튼을 다시 눌러 꺼뜨렸다.

“이사님 방은 다른 층입니다. 기억 안 나세요? 호텔에서 새로 배정해 줬잖아요.”

슬슬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제이가 전보다 한결 날카로워진 말투로 말했다. 요한은 그 차이를 느낄 만한 티끌만큼의 이성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자신을 부축한 제이의 목에 팔을 감아 내리누르며 퍽 비장하게 말했다.

“나 오늘 그 새끼랑 담판을 지어야겠어.”

“예?”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요한은 제이가 말릴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튀어 나갔다. 여태 휘청거리며 바닥에 늘어지려고만 하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날렵한 동작이었다. 술기운에 둔해진 방향 감각 때문에 요한은 이리저리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룸 넘버를 하나하나 살폈다.

방문이란 방문에는 죄다 들러붙으며 어깨를 쾅쾅 부딪치는 바람에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요한을 노려보기도 했다. 뒤늦게 다가온 제이가 요한을 부축하며 그를 대신해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분이 많이 취해서……. 이사님, 방으로 가시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아, 말꼬리를 질질 끌며 요한이 제이의 말을 따라 했다. 제이는 맞은편 방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려다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삐딱하게 선 남자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던 중이었는지 문 너머의 방 안은 어둡고, 단단히 여민 배스로브를 입은 채 팔짱을 끼고 선 셰어의 머리칼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셰어는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제이와 요한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시선은 요한에게서 유독 길게 머물렀다.

“자정도 지난 시각인데 너무 소란스럽네요.”

탁하게 잠긴 목소리가 질책했다. 귀가 근질거릴 정도로 근사한 저음이었다. 묘하게 고압적인 그의 태도에 조금 움츠러든 제이가 요한의 팔을 재차 붙잡아 당기며 관성적인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금방 모시고 가겠습니다.”

“어디로?”

“예?”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제이가 잠시 당황한 사이, 셰어가 요한의 팔을 제이에게서 빼앗듯 쥐어 당겼다. 휘청거리던 요한이 셰어의 어깨를 붙잡으며 중심을 바로잡았다.

“이거 놔. 나 너한테 할 말 많아.”

축축한 손, 뭉그러진 발음, 지독한 술 냄새와 멍청하게 풀어진 눈. 기분 나쁠 만한 구석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셰어가 한숨을 쉬며 요한의 팔을 고쳐 쥐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셰어는 적당히 예의를 갖춘 말투로 명령하며 제이를 바라보았다. 어떤 물음이나 반박도 허락하지 않는 완고한 눈을 본 제이가 곤란한 웃음을 흘렸다. 고용주인 요한을 낯선 남자에게 맡겨도 될지 고민하는 듯했다. 셰어는 한결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퇴근하세요.”

오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제이는 나름대로 직업의식이 있는 가이드였으나 현실과도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의례적인 투로 인사했다.

“그럼 이사님, 내일 오전 8시에 로비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으응.”

셰어에게 반쯤 기댄 채 요한이 실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요한의 허리를 부축하던 셰어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사람 하나쯤은 너끈히 회 쳐 버릴 수 있을 듯 살벌한 얼굴이었다.

사랑싸움 한번 요란하게 하네. 요한을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가는 셰어를 흘낏 돌아보며 제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셰어는 요한을 바닥에 패대기치듯 내던졌다. 가뜩이나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취해 있었던 요한은 몇 번이고 몸을 일으키려다 도로 사지를 쭉 뻗은 채 드러누워 버렸다. 후우우, 한숨까지 길게 쉬며 늘어지는 것이 영락없는 주정뱅이 꼴이었다.

셰어가 그의 발을 툭 걷어찼다.

“뭘 잘했다고 꼬장이야. 너 지금이 몇 시인지는 알아?”

“이, 나쁜 새끼. 복수할 거야.”

“하아…….”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셰어는 방 안의 조명을 모두 켰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주정뱅이 하나 때문에 뭐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셰어는 플레이를 할 때의 습관대로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요한의 모습을 꼼꼼하게 살폈다. 요한의 두 눈은 취기에 몽롱하고 낯빛은 오히려 창백하다. 목 아래가 발긋한 것을 보면 술을 마시면 얼굴만 희게 질리는 모양이었다. 요란하게 여기저기 부딪친 몸은 옷을 입은 터라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셰어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를 꺼냈다.

미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은 요한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셰어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마른 입술을 핥는 얼굴이 어딘지 멍한 것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게 분명했다. 셰어는 생수를 그 멍청한 얼굴에 확 부어 버릴까 하다가, 곧 마음을 바꿔 얌전히 뚜껑을 딴 생수를 요한에게 건넸다. 목이 마른 게 분명한데도 요한은 코앞에 들이밀어진 생수를 보기만 할 뿐 손을 뻗지 않았다.

“뭐 해? 마셔.”

가볍게 생수병을 좌우로 흔들자 요한의 눈이 느리게 깜빡이며 생수병을 따라 움직인다. 이대로 생수병을 멀리 던지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물어 올 듯이.

“꼭 매번 성가시게 굴지.”

짜증 어린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지 요한이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억울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 것처럼 굴면서도 이럴 때는 입을 꾹 다무는 게 좀 우스웠다.

셰어는 요한의 입가에 생수병을 가져다 댄 채 살짝 기울였다. 갈증이 나긴 했는지 요한은 몸을 불편하게 웅크린 자세로도 셰어가 주는 물을 곧잘 받아 마셨다. 고요한 가운데 게걸스럽게 물을 들이켜는 소리만 들렸다. 물에 젖은 입술이 자꾸 엇갈리는 바람에 요한의 턱 밑으로 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요한이 셰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생수병을 쥔 손의 각도가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괜히 심술이 나 셰어는 손에 쥐고 있던 생수병을 급하게 기울였다. 병 속의 물이 왈칵 넘쳐흘렀다.

요한이 생수병을 밀쳐 내며 마구 기침했다. 셰어는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엉망으로 흐트러진 요한의 몰골을 냉소적인 눈으로 관찰했다.

구겨진 슈트, 넥타이 매듭은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고 셔츠 단추까지 두어 개 풀어져 있다. 첫째 단추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벌어진 셔츠 깃 사이로 술기운에 울긋불긋하게 물든 목덜미가 보인다.

“죽는 줄 알았네.”

요한은 한바탕 기침을 한 끝에 눈물이 배어난 눈가를 훔쳤다. 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입만 열면 사람 심란하게 하는 알맹이와 달리 흑백 영화에나 어울리는 고전적인 인상이다. 수심이 어린 짙은 이목구비로 신파적인 감상에 젖는 주인공처럼.

한결 명징해진 요한의 두 눈이 셰어를 째려본다. 한참 기침을 하며 술이 좀 깨었는지 몽롱하던 눈에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너 일부러 그런 거지?”

“그 입 좀 다물어.”

그 입만 다물면 참 좋을 텐데, 요한 바네스는 입만 열면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

“입 못 다물어. 나 너한테 할 말 있다고.”

제법 진지하게 할 말을 고르는 요한을 보며 셰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다른 것을 시켜 보고 싶어졌다. 셰어는 들으면 화가 치밀 것이 분명한 요한의 말보다 취기에 둔해진 혀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더 궁금했다.

한참 말을 고르던 요한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너도 네가 헷갈리게 굴고 있는 건 알지? 매번 좆같이 굴면서, 네가 나한테 자꾸 여지를 주잖아.”

“그래서?”

셰어는 성의 없이 반문했다. 그는 본래 섹스가 목적인 상대와 긴 대화를 나누는 취미가 없었다. 셰어의 머릿속에서 요한은 퇴치해야 할 대상에서 일회성의 섹스 파트너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었다. 몸을 맞댈 상대를 위해 셰어는 적당히 얘기를 들어 주는 척은 할 수 있었으나 슬슬 대화보다 다른 것을 더 하고 싶었다.

그의 냉담한 반응을 마주한 요한은 열을 내며 큰소리를 냈다.

“노선을 확실히 해! 내가 몇 번 얘기했지. 난 약혼 앞둔 사람이랑은 뭘 할 생각이 없다고.”

셰어는 심술궂게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분위기를 번번이 조져 놓는 저놈의 약혼 타령이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대략 알 것도 같았다.

요한 바네스는 결혼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치는 부류인 것 같았다. 셰어 역시 종종 그런 부류를 본 적이 있었다. 주로 대외적인 자리에서 그런 이들을 만날 경우, 그들은 높은 확률로 셰어에게 우호적이다. 사생활 면에서 추문이 없는 셰어에게 동질감을 품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정에 유독 충실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일부일처제의 신화에 결벽적으로 몰입하곤 했다.

요한에게서도 그들과 비슷한 경향이 보였다. 가정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믿는 순진함, 좋게 보면 충직함 같은 것이. 겉보기에는 한없이 가벼워서 조금만 꼬드기면 홀랑 넘어올 것처럼 굴더니, 요한은 좀 까다로운 구석이 있었다. 셰어는 그런 이들을 구슬리는 법을 잘 알았다.

“난 약혼한다는 말 한 적 없어. 너 혼자 착각한 거지.”

뉘앙스라는 것은 참 미묘한 것이었다. 명확하게 답하지 않고 의미를 뭉그러뜨리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모호하게 흩어진 어감의 스펙트럼에서 제 마음에 꼭 드는 것을 찾는다. 요한의 눈 속에서 부피를 키우는 기대감이 그러했다. 셰어는 굳이 그의 착각을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약혼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왜 분위기를 깨느냐고 핀잔을 주었을 뿐. 언젠가 약혼이나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당장 상대도 정해지지 않은 일이었다. 셰어는 거짓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착각하는 걸 알면서 그냥 둔 건 뭐였는데?”

“글쎄. 네가 귀찮아서?”

셰어는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내심 당황하며 요한의 낯빛을 관찰했다. 그런 말쯤은 한두 번 들어 보는 게 아니었던 터라 요한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역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조금 우스웠다.

“그럼 지금은?”

요한이 물었다. 긴장이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로 퍽 간절하게 바라보는 것이 약간은 귀엽기도 했다.

“옷 벗어.”

셰어는 짐짓 상냥하게 제안했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잠시 얼어붙어 있던 요한이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함부로 문질렀다. 크고 단단해 보이는 손이 지나간 자리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깊은숨을 뱉는 것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물기에 젖은 푸른 눈이 셰어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내가, 취해서,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사방을 구르던 몸으로 내 방에서 굴러다니는 꼴 보기 싫으니까 옷 벗으라고.”

그 말에 요한의 눈매가 단번에 뾰족해진다. 조금 비틀거리면서도 그럭저럭 자리를 털고 일어난 요한이 구겨진 옷을 대충 털며 중얼거렸다.

“말 참 예쁘게 한다. 할 말 다 했으니 꺼져 줄게. 더러워도 조금만 참든가.”

“누구 마음대로?”

이 밤중에, 좆까지 한 번 빨아 준 남자의 방에 쳐들어와 고백 같은 물음을 던진 주제에 아무 일도 없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니. 어이가 없다.

셰어는 요한의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던 매듭이 지이익 소리와 함께 위로 끌려가, 요한의 목을 조르며 납작하게 비틀어진다. 순간 숨이 턱 막힌 요한이 셰어의 손목을 붙잡았다. 비틀거리며 맞부딪친 몸이 급히 거리를 벌렸다. 요한의 목을 죄는 넥타이가 세게 당겨지고 작게 쪼그라든 매듭이 꽉 조여든다.

“너 오늘 못 가.”

힘겨루기를 하듯 팽팽하게 당겨졌던 넥타이를 셰어가 먼저 놓자, 비틀거리며 선 요한이 셰어를 노려본다.

“너…….”

깔끄럽게 갈라진 목소리에서 해갈되지 못한 갈증이 느껴진다. 셰어는 그가 오래 참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팽팽한 공기가 흐트러지는 것은 찰나였다. 요한이 달려들었다. 입술이 맞닿는 것은 제법 부드러웠으나, 셰어의 입술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던 입술이 벌어지고 혀가 입 안을 핥기 시작하면서부터 접촉은 점차 끈질기고 농밀해졌다.

그에 응하듯 셰어의 혀가 입 안의 점막을 탐색하듯 훑었다. 으음, 기분 좋은 듯 목을 울리는 소리가 요한의 입 속을 맴돈다. 요한의 머리칼을 감아쥐며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셰어의 손길이 거칠어졌다. 억세게 머리칼을 쥐어 대는 손길에 고개를 젖힌 요한이 떨어진 입술 사이로 얕은 숨을 흘렸다. 그는 어쩐지 웃음기가 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너, 매번 너무 급해.”

셰어는 허락 없이 입술이 떨어지는 찰나의 시간도 용납할 수 없었다. 갈급하게 잡아끄는 힘에 따라 고개를 숙여 주며 요한이 입술을 벌렸다. 성급하게 달려드는 입술과 이가 부딪치고 긁혔다.

요한은 혀뿌리가 아리도록 세게 혀를 빨아 대는 셰어를 달래듯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았다. 간지럽게 뺨이며 귀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다정했다. 셰어는 눈도 감지 않고 요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긴 속눈썹이 떨고 있는 모양을 보자 그를 눕혀 놓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와작와작 씹어 대고 싶어진다. 셰어는 욕심껏 이를 세워 요한의 입술을 깨물었다. 통증에 주춤하며 물러난 요한의 입술이 이내 셰어의 입술을 찾아 다시 느릿하게 부딪쳤다.

젖은 소리가 나는 입술이 거듭 겹쳐진다. 셰어가 입술을 떼자 요한의 입술이 그를 따라가 연신 비비적거리며 잘게 입을 맞춰 댄다. 셰어는 그것이 꼭 요한답다고 생각했다.

요한이 살짝 부풀어 오른 셰어의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입술로 물었다. 어느새 셰어의 등을 덮은 요한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겁도 없이.

그의 손이 엉덩이를 움켜쥔 순간, 셰어가 입술을 떼고 속삭였다.

“욕실로 가.”

육욕에 잠식된 음성에 요한이 옅은 한숨을 흘리며 입술을 다시 꾹 눌러 왔다. 욕실로 가라는 말을 거절로 받아들인 게 틀림없다. 요한이 셰어를 구슬리려는 듯 은근하게 물었다.

“싫어?”

싫다고 우는 건 네가 될 것 같은데.

속내를 감추며 셰어는 웃었다. 처음 보는 그의 부드러운 미소에 반쯤 넋이 빠진 요한이 그 궤적을 그리듯 가만히 셰어의 입술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참아 주기에는 지나치게 간지러운 짓이었다. 셰어는 요한의 손가락을 잇자국이 남도록 세게 깨물며 말했다.

“아니. 급하니까 빨리 욕실로 가.”

욕실로 들어선 요한은 꽉 매듭지어진 넥타이를 풀었다. 억세게 졸라맨 매듭을 푸는 손에 힘이 들어가 뚜렷한 선이 두드러진다. 단정하게 다듬어진 손가락이 신중하게 움직인다. 요한은 주의 깊게 풀어낸 넥타이를 세면대 옆에 내려놓고는 재킷을 벗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손놀림이 제법 섬세했다.

셰어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요한이 내려놓은 넥타이를 쥐고 손에 몇 번 감아 당겨 보았다. 신축성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소재, 약간 까끌까끌한 패턴이 피부에 감긴다. 나쁘지 않았다.

“뭐 해?”

요한은 제가 벗어 놓은 넥타이를 셰어가 만지작거리는 것을 퍽 귀여워하는 얼굴로 바라보며 웃었다. 셰어는 잠시 그의 벗은 상체를 살폈다. 취해서 이리저리 처박고 다닌 탓에 어깨에 희미한 멍이 남았다. 셰어는 무엇이든 흠집 난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멍 자국이 남은 어깨를 매만졌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닿자 요한이 어깨를 움츠리며 웃는다.

“간지러워.”

요한은 간지럽다고 말하며 소년처럼 웃는 자기 자신이 더 간지럽게 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 아래에서 비산하는 반짝이는 감정이 시선을 빼앗는다. 그 낯설고 불유쾌한 것을 노려보며 셰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얼른 마저 벗기나 해.”

“너 은근히 귀엽다.”

셰어는 말없이 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귀엽다고.

생소한 말이었다.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다만 셰어는 그 말을 하며 웃는 요한을 보자 새삼 위험한 욕망이 뻐근하게 치미는 것을 느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는 요한이 울며불며 비는 꼴을 보고 싶었다.

나신이 된 요한이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적당히 온도를 맞춘 물에 몸을 적시며 그가 셰어를 돌아보았다.

“들어올래?”

“그래.”

셰어는 요한의 넥타이를 손에 쥔 채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요한은 곤란한 듯 웃는 얼굴로 셰어가 배스로브도 벗지 않고 물이 쏟아지는 샤워 부스에 들어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 번듯한 이목구비를 드러낸 채였다. 살짝 찌푸린 눈이 금세 젖어 든 배스로브를 응시했다.

“음…… 그거 입고 샤워할 거야?”

요한이 푹 젖은 배스로브의 허리끈을 움켜쥐며 은근슬쩍 몸을 붙여 왔다. 벗겠다고 하면 손수 벗겨 주겠다는 듯이. 셰어는 그의 두 손을 떼어 내 쥐며 요한의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따끔하게 번지는 통증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요한이 입술을 뗐다. 불규칙해진 호흡이 습기가 차오른 샤워 부스 안에 고인다.

“내 넥타이는 왜 들고 와. 그게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어.”

손을 잡는 것을 다른 신호로 이해한 것인지 요한이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셰어의 손에 깍지를 낀다.

간지러워 죽겠네. 셰어는 요한의 손가락 사이에 얽힌 손을 빼내며 입술을 비죽 올려 웃었다.

“아마 너도 마음에 들 거야.”

“사실은 그거 내가 좋아하는 넥타이 중 하나이긴 한데…….”

넥타이가 요한의 손목을 감았다. 요한은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셰어의 손놀림을 보느라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바보같이 살짝 벌어져 있던 입술을 다물며 요한이 침묵했다. 그사이 매듭을 마무리 지은 셰어가 손목을 묶고도 두 뼘가량 길게 남은 넥타이를 쥐어 팽팽하게 당기며 요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래서?”

그가 겁을 먹고 달아나기라도 할세라 셰어는 제법 친절하게 물었다. 나름대로 나긋한 물음에도 요한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셰어는 그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요한을 욕실 벽에 밀어붙였다. 맥없이 셰어에게 떠밀려 벽에 등을 기댄 요한이 심각한 얼굴로 완벽한 매듭이 지어진 제 손목을 내려다본다.

“음…… 그러니까, 너 취향이 이런 쪽이야?”

“싫어?”

싫다고 해도 좀 늦었는데.

셰어는 요한의 팔을 위로 들어 올려 샤워기 헤드가 달린 파이프에 길게 늘어진 넥타이를 묶었다. 요한은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다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꼭 그런 건 아닌데…… 나도 널 만지고 싶으면?”

“글쎄. 그러면…….”

물을 끄자 욕실을 채우던 백색 소음이 사라지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불규칙한 호흡 소리만이 남는다. 셰어는 고민하는 척하며 손에 바디 워시를 듬뿍 짰다. 손목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투명한 액체를 응시하는 요한의 눈 속에 욕망이 뚜렷하게 응어리지는 것이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셰어는 투명한 젤 형태의 바디 워시를 듬뿍 덜어 낸 손으로 요한의 가슴 위를 문질렀다. 미끈거리는 샤워 젤이 글레이즈를 뿌린 것처럼 가슴 위를 투명하게 덮으며 뚝뚝 흘러내렸다. 갑자기 온기가 사라진 공기 탓에 보기 좋게 융기한 가슴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이 보인다. 빳빳하게 선 유두를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요한이 몸을 움츠렸다.

“우선 나한테 부탁을 해야겠지. 만지게 해 달라고.”

“아, 아, 잠깐만.”

“그것도 나한테 부탁해야지. 건방지게 굴지 말고. 알아들어?”

뾰족하게 곤두선 유두를 세게 비틀자 거품이 엉켜 미끈거리는 유두가 손가락 사이에서 모양을 바꾸며 미끄러진다. 아프게 꼬집힌 탓에 이를 악문 요한의 입술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금세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요한이 눈썹을 찌푸렸다.

“하아…… 싫다는 게 아니라. 내 세이프 워드 가르쳐 줄까?”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세이프 워드 운운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런 경험도 없는 남자와 세이프 워드가 필요할 만큼 과격한 플레이를 즐길 생각이 없었던 셰어는 그저 웃고 말았다. 애태우듯 곤두선 돌기를 손톱으로 짓누르며 꼬집어 대자 소리 죽여 앓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요한은 욕실에 제가 내는 소리가 울리는 것이 창피한지 귀 끝까지 다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깐, 만. 그런, 아,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이런…….”

“글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너랑 무슨 얘기를 할까?”

셰어는 가슴의 자극만으로 발기하기 시작한 요한의 성기를 세게 움켜쥐었다. 뿌리 쪽을 억세게 붙잡히자 그저 잡힌 것만으로도 금세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성기가 발긋하게 물든다.

제법 소질이 있었다. 셰어는 움찔거리는 요한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며 물었다. 중심을 잡힌 탓에 예민해진 요한은 셰어의 숨이 닿을 때마다 몸을 떨었다.

“몇 ㏄나 넣을 수 있는지 얘기할까? 어디를, 무얼로, 몇 대나 맞을 수 있는지? 선호하는 플레이가 뭔지, 싫은 건 뭔지. 네가 그런 걸 다 알아?”

“흐으…… 모르, 겠, 아윽! 이거 좀 놔, 봐.”

“이것 봐. 아직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데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더 해.”

셰어는 요한에게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비틀거리던 요한이 숨을 고르며 몸을 바로 세웠다.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운 듯 요한이 몸을 틀어 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목에 묶인 매듭이 한 바퀴 꼬이며 손목을 더욱 세게 조인다.

셰어는 매듭의 상태를 눈으로 어림짐작하며 푹 젖은 배스로브를 샤워 부스 밖에 벗어 던졌다. 세면대 위에 준비되어 있던, 손을 닦는 용도로 쓰이는 작은 수건을 들고 오자 요한이 불안한 눈으로 셰어를 바라보았다. 그는 차분함을 가장하며 셰어를 달래듯 말했다.

“셰어, 이거 풀어 봐.”

셰어는 벽을 향해 어정쩡하게 몸을 돌리고 서 있던 요한을 바로 세웠다. 완전히 발기한 성기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완벽한, 그의 미끈한 얼굴만큼이나 잘생긴 성기였다. 셰어는 그것을 한 손에 쥐고 느릿하게 문질렀다. 요한이 탁한 한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싫으면 풀어 줄게. 대답해, 요한. 싫어?”

“하아…….”

눈을 질끈 감은 채 요한이 입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셰어는 그가 할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싫을 리가 없다. 손안에서 움찔거리며 크기를 키우는 좆은 솔직했다. 셰어는 손을 대지 않아도 끄덕거리며 선 성기를 놓아주고는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요한의 가슴을 더듬었다. 여태 꼿꼿하게 서 있는 돌기가 조금만 손이 닿아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손 아래에서 뭉그러진다.

“읏, 싫어. 가슴, 그렇게 하는 거 싫어.”

“요한.”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요한이 겨우 눈을 떠 셰어를 바라본다. 살짝 벌어진 그의 입술이 꼭 뭔가를 바라는 것 같다.

셰어는 수건을 뭉쳐 그의 입에 쑤셔 박았다. 요한은 당황해 고개를 뒤로 빼려 했으나, 혀를 꾹꾹 누르며 입 안 깊숙이 파고든 수건 탓에 제대로 된 말도 못 하고 욱욱거리기만 했다.

“넌 입만 열면 헛소리지. 역시 입을 막는 게 낫겠다.”

반항하는 몸을 벽을 향하도록 찍어 누르자 묶인 손을 풀려 꿈틀거리는 팔이 더욱 격렬하게 움직인다. 파이프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날 만큼 세게 팔을 비틀어 대는 것이 제법 기세가 좋았다. 셰어는 바짝 힘이 들어간 요한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짜악. 매서운 소리가 짜랑짜랑 울리며 긴장으로 단단하게 올라붙은 엉덩이에 새빨간 손자국이 남는다. 셰어는 손자국이 남은 곳을 주물렀다. 마디가 두드러진 크고 단단한 손이 맞은 곳을 세게 주무르자 얼얼하게 통증이 번지는지 요한이 목을 울리며 몸을 비틀었다.

버릇이 없는 것은 처음부터 제대로 잡아야 했다. 셰어는 같은 곳을 몇 번이고 더 때렸다. 물기에 젖은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린다.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펄떡이던 몸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맞을 때 힘을 주면 더 아프다는 것을 학습한 모양이었다.

셰어는 빨갛게 달아오른 오른쪽 볼깃살을 살살 어루만지며 핏대가 선 벌벌 떨리는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긴장한 승모근이 이 사이에서 씹히며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착하게 있어야지. 그 넥타이, 실밥 하나라도 터지면 너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요한의 허리를 뒤에서 감싸 안은 셰어의 손이 가슴과 복부를 쓸어내리다 미끈거리는 액체가 묻어난 아랫배를 더듬었다. 요한의 배에 닿게 발기한 좆에서 끈적거리는 선액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셰어의 손가락 사이에 투명한 액체가 늘어진다. 음탕하게 젖어 든 손을 요한의 코앞에 들이밀며 셰어가 속삭였다.

“가슴은 싫다더니 맞는 건 싫지 않았나 본데.”

“욱…… 으으.”

요한이 고개를 비틀어 셰어를 노려본다.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셰어는 그의 얼굴에 엉망으로 젖은 손을 문질렀다. 요한에게서 흐른 풋내 나는 액체가 그의 얼굴에 덧발렸다.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껏 눈썹을 찌푸린 얼굴이 셰어의 욕정을 자극했다.

셰어는 팔등으로 요한의 등을 눌러 벽으로 바짝 밀어붙이며 그의 배에 남은 거품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피부 아래로 뚜렷하게 새겨진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리 아픈 게 좋아도 이번에는 힘을 빼는 게 좋을걸.”

미끈거리는 거품이 묻은 손이 허리 뒤로 돌아가 요한의 엉덩이 골 아래로 미끄러진다. 놀라 펄쩍 튀려는 몸을 팔꿈치로 세게 찍어 누르자 요한은 찍힌 곳이 아팠는지 몸을 웅크리며 끙끙 앓았다. 그사이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갈 틈 하나 없이 다물린 입구에 거품을 덧발랐다.

요한이 사나운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입을 막은 수건이 아니었더라면 당장 욕설을 줄줄 뱉었을 터였다. 그가 도리질을 치며 무슨 말을 하려 웅얼거렸다.

“으응! 으, 흐으…….”

“이건 싫다고.”

셰어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뻔히 알 것 같았다. 시그널은 분명했다. 본인이 아래쪽의 포지션일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듯한 말과 태도. 두 손을 묶이고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으로 짐작건대, 이쪽의 경험은 전무한 게 틀림없었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호소하듯 간절한 눈으로 셰어를 바라본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동정심보다는 다른 부분을 자극했다. 셰어는 짐짓 유감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처음이라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편이 아니거든.”

거품에 젖어 매끄러운 손가락이 굳게 다물린 곳을 억지로 비집고 파고들었다. 요한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벽에 이마를 문지르며 떨었다. 겨우 손가락 하나를 집어삼키는 것마저도 힘든지 뻣뻣해진 몸이 온통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셰어는 달콤한 숨을 내뱉었다. 요한의 몸속은 좁고, 부드럽고, 뜨거웠다. 손가락을 부러뜨릴 듯 조여드는 곳을 달래듯 손가락을 쑤석이자 유독 좁은 입구가 더욱 빡빡해진다. 셰어는 긴 손가락을 안쪽에 깊이 처박은 채 요령 없이 조이는 내벽을 긁어내리듯 문질렀다. 거품이 셰어의 손등을 타고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이렇게 문다고 내 손가락이 부러지겠어?”

계속 몸에 힘을 주고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안을 슬슬 긁어 대자 줄곧 뻣뻣하기만 하던 근육이 조금씩 힘이 빠져 풀어지며 찔꺽대는 소리가 난다. 요한은 제 뒤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이 수치스러운지 소리 죽여 앓았다.

셰어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좁은 곳에 좆을 처박고 싶었으나, 손가락 하나도 버거워하는 곳을 찢어 놓을 수는 없었다. 처음이라는 게 아주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거품을 도로 뱉어 내는 구멍에 손가락을 하나 더 가져다 댔다. 찢어질 듯 빠듯한 곳에 손가락을 밀어 넣자 여태 그럭저럭 잘 버티던 요한이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셰어는 요한의 등에 가슴을 맞댄 채 벽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는 요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애써 얼굴을 감추려 들었으나 빨갛게 물든 눈과 코가 훤히 보였다.

가엽게도.

그 얼굴을 보자 배 아래에 뭉친 열기가 거칠게 요동치는 듯했다. 셰어는 요한의 입에 쑤셔 박았던 수건을 빼 주었다. 타액으로 축축해진 수건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셰어는 타액에 젖은 요한의 입가를 손으로 문질러 닦아 주며 완전히 삽입된 두 개의 손가락을 벌려 구멍을 늘였다. 셰어의 손바닥에 덮인 요한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며 여과 없이 울먹이는 소리를 쏟아 냈다.

“미친, 이 미친 새끼야. 너는, 흐…… 자비도, 없이. 아으, 윽…….”

“힘들어?”

“그, 걸 말이라고.”

겨우 손가락 두 개로 힘들다고 훌쩍이는 주제에 아직 기가 꺾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셰어는 그의 등을 누르던 몸을 바로 세워 부스 안 선반 위에 올려 두었던 바디 워시를 집었다.

“엄살이 너무 심하네.”

셰어는 여상하게 중얼거렸다. 불안하게 뒤를 힐끔거리던 요한은 차가운 젤이 엉덩이 위로 뿌려지자 뭔가를 예감한 것인지 손목을 마구 비틀어 댔다. 그의 손목에 뚜렷한 구속흔이 남는 것을 본 셰어가 요한의 등 뒤에 달라붙으며 살짝 수그러든 그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얌전히 있어야지.”

엉덩이를 타고 흘러내린 젤이 손가락을 물고 있는 곳까지 느리게 미끄러졌다. 손가락을 느릿하게 넣었다 뺄 때마다 안까지 젤이 밀려들어 거품이 덩어리진다. 동시에 한결 수그러든 요한의 성기를 쥐고 흔들어 대자, 엄살을 떤 것이 무색하게도 금세 선액을 흘리며 발기하기 시작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움찔거리며 떨렸다.

“윽, 으, 흐으…… 그, 만…….”

“그만하고 싶으면 빌어 봐.”

엉덩이가 앞으로 쭉 밀릴 만큼 세게 안을 들쑤셔 대자 요한의 눈에 고여 있던 물기가 방울져 아래로 떨어진다. 젖은 벽에다 이마를 비비며 연신 거친 숨을 뱉던 요한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만, 제발.”

어설픈 부탁 조의 말에 셰어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오인한 요한의 몸에서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셰어의 손가락이 빠져나오며 안에서 밀도 높게 뭉쳐진 거품이 흘러나왔다. 셰어가 완전히 손을 떼자 요한이 느른한 한숨을 뱉으며 벽에 몸을 기댔다. 숨을 고르는 그의 등이 가파르게 오르내린다.

“요한, 그게 비는 거야?”

셰어는 두 손으로 요한의 볼기를 세게 움켜쥐어 벌렸다. 엄지가 거품을 뱉어 내는 입구에 닿자 요한의 등이 굳어지며 섬세한 근육이 꿈틀거린다. 그가 몸을 비틀자 힘껏 당겨진 젖은 넥타이가 파이프를 문지르며 빠드득 소리가 났다.

“너…….”

“제발, 한 마디만 붙이면 그게 비는 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뜬 눈으로 셰어를 노려보는 요한의 눈매가 날이 서 있었다. 싸늘한 눈빛은 매서웠으나 눈가의 불긋한 기가 가라앉지 않은 탓에 오히려 정욕만 부추길 뿐이었다.

셰어의 손에 붙잡힌 엉덩이는 한쪽은 한참 얻어맞은 터라 여태 빨간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틈 사이로는 허연 거품이 짙게 엉켜 있었다. 볼만한 광경이었다. 셰어는 이미 단단하게 발기한 제 성기를 거품 위에 문질렀다. 굵고 단단한 좆이 당장 틈을 비집고 들어올 듯 문질러지자 요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 미친 새끼야. 그거 치워, 당장.”

“내가 건방지게 굴지 말랬지.”

셰어는 엉덩이를 감싸 쥔 손에 힘을 주어 벌리며 딱딱하게 선 좆을 입구에 대고 짓눌렀다. 입구를 벌리는 손가락에 눌려 벌어진 채 빠끔거리던 구멍을 비집고 귀두가 느릿하게 밀려들어 간다. 매끄럽게 젖은 곳이 오므라들며 귀두를 반쯤 밀어 넣은 좆을 도로 뱉어 냈다.

“하아, 이건 입도 짧고.”

지랄 맞게, 곱게 먹여 주려고 해도 뱉어 내네.

셰어는 울컥 튀어나오려는 거친 말을 삼켰다. 나름대로 처음이라니 배려해 주려는 것이었다. 엉덩이를 쥐었던 한 손을 떼고 미끈거리는 입구에 좆을 제대로 맞추자 요한이 악을 쓰며 으르렁거렸다.

“치워! 이 개새, 아, 악!”

넥타이에 묶인 요한의 손이 희게 질리도록 힘이 들어갔다. 그는 숨을 쉬는 것도 버거운 듯 벽에 이마를 찧으며 헐떡였다. 셰어는 긴장한 근육의 선이 두드러진 엉덩이를 억세게 감아쥐며 귀두만 겨우 삼킨 빡빡한 곳에 못을 때려 박듯 좆을 쑤셔 박았다. 거칠게 허리 짓을 할 때마다 요한이 벽에 짓눌리며 헐떡이는 소리를 삼켰다.

셰어는 요한의 목덜미를 잡아 누르며 버겁게 벌어진 구멍에 거의 다 들어간 좆을 아래에서 위로 쿡 찔러 올렸다. 끝내 뿌리까지 좆을 삼킨 뒤가 주름 하나 없이 벌어진 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예쁘네.”

셰어가 손자국이 남도록 세게 쥐고 있던 엉덩이를 놓아주고는 빨갛게 벌어진 입구를 쓰다듬었다. 안이 움찔거리며 조여드는 것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 열이 끓었다. 셰어는 연신 떨고 있는 요한의 목덜미에 입술을 문질러 댔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할딱거리던 요한이 그래도 살 만한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흐으…… 아파. 진짜 아파, 이 개, 새끼야. 찢어진 것 같, 아윽!”

허리를 뒤로 조금 물리자 꽉 맞물린 안쪽의 살이 비벼지며 요한이 비명을 지른다. 그가 힘주어 팔을 비트는 바람에 넥타이가 매인 파이프가 위태롭게 삐걱거렸다. 셰어는 손자국이 남은 요한의 엉덩이를 갈겼다. 순간 아프도록 조여들던 뒤가 앞서 얻어맞을 때의 교훈을 다시 상기하는지 의식적으로 힘을 푸는 것이 느껴진다.

귀엽기는. 셰어는 픽 웃고 말았다.

“처음인데 찢어지지도 않고 잘도 받아먹네. 이렇게 잘 삼킬 거면서, 엄살은 왜 떨었어?”

찰싹, 연달아 떨어지는 매서운 손찌검에 훌쩍이는 소리가 커진다. 고개를 푹 숙인 요한의 목덜미가 열꽃이 핀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셰어는 뜨끈하게 열이 오른 피부를 아프게 깨물어 댔다.

야물게 오물거리는 뒤에 얌전히 넣고만 있으려니 슬슬 몸이 달았다.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자 거품으로 미끈거리는 내벽에 비벼진 좆이 더 깊은 곳으로 미끄러졌다. 거의 빠져나갈 듯 끝까지 물러났다가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성기에 잔뜩 겁먹은 요한이 고개를 저어 댔다.

“하아, 하…… 으, 깊, 어. 셰어, 너무 깊다니, 까…… 아, 미친, 아!”

안 돼. 계속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는 요한의 골반을 쥐어 당기며 세게 허리를 치대자 그가 끅끅거리며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요한의 숨이 떨릴 때마다 배 안이 조여드는 바람에 셰어는 치미는 사정감을 참아야만 했다.

요한이 지쳐서 목이 다 쉴 때까지 울며 비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의 몸속은 예상대로 길이 들지 않았고, 요령 따위도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자극적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 했다. 여태 참은 것이 아까웠다.

요한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치받아 대는 셰어에게 밀려 욕실 벽에 무릎을 찧어 댔다. 무릎이 몇 번이나 부딪혔을까. 셰어가 거칠게 박아 대던 것을 멈추고 요한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긴장이 풀린 요한의 뒤를 미끈거리는 좆이 깊숙이 헤집었다. 신음을 참느라 붉어진, 뒤로 젖혀진 목에 핏대가 선다. 요한이 반쯤 울먹이듯 헐떡거리며 물었다.

“왜…….”

고작 한 단어를 뱉는 것마저도 버거운 듯했다. 오금을 붙들고 다리를 가슴께까지 추어올리자 요한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셰어는 그의 등 뒤에 바짝 달라붙으며 허리를 붙잡았다. 녹지근한 숨이 요한의 귀에 훅 끼쳤다. 소름이 돋아난 목덜미를 깨물며 셰어가 다시 느릿하게 추삽질을 이어 갔다.

“조금만 더.”

정욕에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자 그를 피해 고개를 모로 꺾은 요한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입을 오래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탓에 삽입은 유독 깊었다. 몇 번인가 소리를 죽이던 요한은 끝내 반쯤 넋이 나간 채 훌쩍거리며 호소했다.

아파. 배 안에 팔뚝이 든 것 같아. 차라리 빨아 줄게. 그만해. 넌 양심도 없어. 내가 박으면, 이거보다 더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는데.

“귀엽다고 봐주니까 이게 끝도 모르고 기어오르지.”

셰어가 서늘하게 중얼거리며 요한의 허리를 쥔 손에 힘을 주어 당겼다. 부풀어 오른 내벽을 퍽퍽 쳐 올리자 고개를 숙인 채 끙끙 앓는 요한의 귀가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아, 아, 안 그럴, 흐읏…… 그만.”

불현듯 내벽이 경련하며 오므라들었다. 좆을 으스러뜨릴 듯 죄는 것에 저항하듯 안을 거칠게 긁어 대자 요한이 몸을 웅크리며 가늘게 흐느꼈다.

제발, 요한이 무딘 혀로 웅얼거린 말에 자극받은 것처럼 셰어가 요한의 몸속 깊은 곳에 사정했다. 뒤가 젖어 드는 생소한 느낌에 저항하듯 요한이 허리를 뒤틀었다.

때마침 요한의 성기 끝에서도 사정액이 뿌려졌다. 셰어는 요한의 몸속에 정액을 도로 밀어 넣듯 사정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안쪽을 쿡쿡 찔러 댔다. 그 바람에 요한의 성기가 끄덕거리며 하얀 욕실 벽에 질척한 정액이 몇 번에 걸쳐 쏘아진다. 사정액은 양이 많고 농도도 짙은 탓에 물기 어린 욕실 벽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사정 직후의 탈력감에 젖은 요한이 자신의 정액이 뿌려진 벽에 아무렇게나 몸을 기대며 긴 숨을 뱉었다. 셰어는 그와 여전히 몸을 겹친 채 단단히 붙잡고 있던 요한의 다리를 내려놓았다. 요한은 두 다리로 겨우 바닥을 딛고 선 채 눈을 감았다.

“다시는 너랑 안 해.”

엉망으로 갈라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요한은 제 목소리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셰어가 요한에게서 떨어지며 몸을 바로 세우자 뒤를 버겁게 채우고 있던 것이 빠져나갔다. 요한은 몸을 떨며 그 감각을 견뎠다.

셰어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난장을 퍽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빨갛게 부어오른 엉덩이 사이며 허벅지에 덕지덕지 발린 정액이 선정적이었다. 완전히 다물리지 못하고 살짝 벌어져 있는 곳을 더듬자 요한이 긴장하며 그의 몸속에 쏟아진 정액이 흘러나왔다.

“유감이네. 난 좋았는데.”

셰어는 그것을 도로 쑤셔 넣어 주며 중얼거렸다. 안쪽 깊숙이 손가락을 쑤셔 박아 열을 품은 채 부어오른 내벽을 더듬기까지 하자 요한이 거칠게 날뛰며 몸을 뒤챘다.

“이, 미친 새끼야. 다시는 안 한다니까.”

“알았다니까. 풀어 줄 테니 얌전히 있어.”

더 놀렸다가는 넥타이를 매어 둔 욕실 파이프가 부서질지도 모른다. 셰어는 푹 젖고 늘어져서 완전히 못 쓰게 된 넥타이를 풀어 주었다. 부드러운 소재의 넥타이는 젖고 구겨지는 바람에 폭이 가늘어져 요한의 손목에 밧줄을 감은 것처럼 깊게 쓸린 자국을 뚜렷하게 남겼다. 자국은 보기에는 심각해 보였으나 며칠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다.

셰어가 요한의 팔을 내려 주자 요한은 오래 묶여 있었던 팔이 저린지 제 팔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보자 조금쯤 다정하게 대해 주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셰어는 그의 허리를 받쳐 안으며 부축했다.

요한이 고개를 들자 눈높이가 비슷한 탓에 숨이 바로 입술에 닿았다.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셰어를 노려보았다. 뾰족한 눈매를 가만히 보던 셰어가 발갛게 부은 눈가를 핥았다. 혀끝에서 찝찔한 맛이 도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역시 한 번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한번 손을 대자 더는 멈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셰어는 거품과 체액이 뒤섞여 물고기의 배처럼 미끈거리는 요한의 배를 쓰다듬었다. 점차 가라앉던 요한의 숨결에 날카로운 숨소리가 뒤엉켰다. 유독 색이 짙은 푸른 눈에 의심이 고인다. 단단하게 고이는 의심을 흩어 내듯 부드럽게 입술을 휘며 셰어가 물었다.

“뒤처리, 도와줄까?”

“꺼져. 넌 내가 그런 거짓말 안 해 본 줄 아냐?”

단순해서 쉽게 믿을 줄 알았더니, 뜻밖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