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JaVu 리얼판타지아 [223 회] 2003-08-25 조회/추천 : 1444 / 25 글자 크기 8 9 10 11 12
과거 와 현재의 만남
“이놈들!”
“사이토 할아버지! 죄..죄송!”
쫄망쫄망 작은 하플링이 연신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투덜거리며 뒤에서 뻘줌하게 서 있는 힐끗 힐끗 노려보는 사이토... 한숨만 나오는 일이었다. 승급을 위해 노인정 길드의 동료들과 데이모스로 온지 몇 칠, 한 동안 바쁘게 지내던 사이토 할아버지가 데이모스 거리에서 발광하고 있는 아누비스에게 동정을 보낸 것이 실수였다. 여행의 부산물로 딸려 들어온 세 마리의 세기말적 생각을 가진 꼬맹이들... 그나마 한 녀석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듯해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정말 사이토 할아버지의 인내심을 줄기차게 시험해 주고 있었다. 욕이 입에 붙은 괄괄한 성격의 엘프여성,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폭주를 일삼는 아누비스라는 반항 꼬마... 그에게는 저주였다.
“허허, 사이토 뭘 그리 궁시렁대나...”
제이드가 넌지시 다가왔다. 돌발 퀘스트를 얻은 장본인 치고는 꽤 담담해 보인다. 어쩌면 가장 속이 쓰릴 이건만, 세 꼬맹이를 데려온 장본인으로써 미안함이 더해지는 사이토이다.
“자네는 지금 저 것을 보고 열 안받게 생겼나?!”
그의 뒤로 우뚝 서 있는 웅장한 저택... 주위 풍경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그런 건물이었다. 그 밑에서 키들거리고 있는 다른 노인정 길드원들... 그리고 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떨거지 꼬마 삼인방...
“보기 좋구만.”
“뭐가 보기 좋나! 그런 아이템은 이제 나오지도 않는다고! 서버 초기라서 그렇게 아
이템이 무작위로 떨어졌을 뿐! 그런 비싼 아이템을 으윽!”
심장이 떨려오는지 사이토는 꼬맹이들에게 살인적인 눈빛을 마구 보내주는 사이토씨였다.
“아! 씨X! 물어 주면 될 텁!”
입 더러운 저스틴을 손으로 간신히 막아낸 발데아라는 사이토에게 미안함의 감정을 담아 다시 한번 보냈다.
“죄송합니다. 정말...”
“크흐...”
일의 전모는 이러했다. 승급여행을 위해 데이모스로 온 사이토와 노인정 길드원들이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불쌍한 꼬맹이 세 마리, 사이토는 불쌍한 마음에 주워 다가 데이모스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게 된다. 그러다 제이드는 상당한 질의 초고급 퀘스트를 얻게 되고 사이토는 그들을 그곳까지 데리고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부터 였다. 전 언어의 70프로가 욕을 차지하는 저스틴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가지각색의 발작을 일으키는 아누비스는 계속해서 사이토의 신경을 긁어댄 것이다. 그리고 데미를 장식하는 그 터무니없는 사건, 보스 몬스터를 힘들여 잡고서 나온 아이템의 대한 것이었다. 아직 게임 초반이라 아이템은 거의 무작위로 떨어지는 추세였다. 나온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길드타워를 지을 수 있는 집문서. 당시에는 거의 30만 골드를 육박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다행히 노인정 길드는 타 길드를 불허할 정도의 게임 실력과 노하우를 지닌 집단이었다. 제정도 튼튼하고 또 모두 여가를 즐기는 노인들이기에 돈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그러나 미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제이드... 내 탓일세.”
화근은 여기서부터 였다. 궁금해 하는 그 꼬마 삼인방에게 구경시켜 준다고 넘겨 준 것이 화근이었다. 조심스럽게 그 문서를 구경하는 발데아라와 다르게 저스틴은 그것을 함부로 다루었고, 끝내 퀘스트 필드에 길드타워를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나?”
사이토가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고 있는 제이드에게 물었다. 일단 건물이 서버렸으니 다시 물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퀘스트를 완수하게 되면 이 필드에는 다시 들어올 수 없게 된다. 고로 길드타워도 사라진다는 것...
“흠... 이건 어떨까?”
사이토에게 넌지시 귀엣말을 던지는 제이드였다. 잠시 수군거리던 두 늙은이는 곧 이어 그 문제 삼인방을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서로 낮은 한숨을 내쉬며 서로의 의견 교환을 끝냈다.
[이걸로 저 녀석들도 떼어낼 수 있겠지?!]
제이드의 메시지
[그래! 자네만 잘하면 돼!]
사이토는 헛기침을 하며 삼인방에게 다가갔다. 이미 다른 노인네들은 메시지를 주워들었기에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었다. 모여 앉아 키들거리는 노인들... 사이토는 짐짓 모른 채 하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깝기는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 알겠나? 이제 이 곳은 자네들 셋이 새로히 시작하는 곳일세!”
“하..하지만, 저희는 아직 계급이...”
사이토의 난감한 제안에 당황하는 발데아라, 그들 셋이 새로이 시작하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일단 그들이 겨우 2계급이라 길드 마스터 조건인 5계급은 아직 너무나 먼 일이었다. 또한 그것을 제쳐 두고서라도 이곳은 퀘스트 필드... 이 곳의 주인은 계속 바뀐다.
“그건 걱정 말게. 이건 예상인데 말일세. 아마도 우리가 퀘스트를 완료하지만 않는다면 이곳은 영구적으로 자네들의 것일세. 뭐 나중에 운영자가 물러달라고 해도 게임 시스템의 결점으로 일어난 일이니 버티면 그만이구. 지키는 것이야 자네들도 알다시피 퀘스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와 자네들만이 통행할 수 있지 않나. 아마 나라도 섣불리 저 초막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을 걸세. 허허.”
사이토가 줄줄이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하자 삼인방의 얼굴을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곧 이어 그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감탄과 감격의 표정들... 그 비싸다는 길드타워를 무상으로 그들에게 준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사이토는 성자로만 보였다.
“그... 그럼 사이토 할아버지와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눈물이 맺힌 발데아라,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에게 정이 많이들은 그였다. 조금 미안해지는 사이토,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혹은 혹... 떼버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저희들의 길드 마스터가 되어 주세요. 이대로 은혜 입은 채로 사이토할아버지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올망쫄망해서 반짝 반짝 눈빛의 꼬마들이다. 한순간 갈등이 교차하는 사이토, 솔직히 앞서 말한 해결책들은 모두 가능성뿐이었다. 운영자가 그리 쉽게 그들을 인정해 줄지도 미지수이다. 그리고 이곳은 방어의 이점을 빼면 무엇 하나 좋은 것이 없다. 비록 제한적으로 초대의 형식을 빌려 사람을 들일 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의 통행은 상당히 불편하다. 길드원도 받기 힘들다는 것... 마지막으로 지금 그를 쳐다보는 이 올망쫄망한 녀석들은 사고뭉치들이었다. 한 녀석은 반정신병자에 한 년은 욕이 입에 붙은... 마지막 하나는 정신은 똑바로 챙기지만 나머지 둘을 챙기는 보모 같은 녀석이었다. 결론적으로 한시 바삐 떨어 뜨려 버리고 싶은 사이토였다.
“난 그런 것 따위 적성에 안 맞는단다... 발데아라... 인연이란 돌고 도는 것,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나처럼 늙어빠진 늙은이... 언제 죽어 자빠질지 모르는 사람과의 인연은 무시하란 말이다.”
한 동안 발데아라는 말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는 가슴속이 따스해 진다. 물론 그는 그 내부 사정에 대해 잘 모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겠지만... 모르는 게 약이었다.
“그런 인연이었습니다.”
아직도 감격이 사라지지 않은 듯 발데아라는 그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사이토에게 희열에 찬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물론 그가 알고 있는 부분만을...
“예에...”
“그 후로 저희들은 할아버지의 뜻을 가슴속에 새기며 필사적으로 길드를 세워나갔습니다.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희들은 꿋꿋이 이겨 나갔습니다. 뭐... 길드의 위치적 특성과 저 아누비스녀석의 개 같은 발작으로 인해 살인자 길드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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