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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관련으로 잠시 잠수타버렸던 사이토 다시 돌아오다. -_-
데이모스에서 남쪽으로 2일을 죽어라 걸어가면 나타나는 곳이 바로 용의 계곡이었다. 물론 유저들 중 진짜로 걸어가려는 약간 미치거나 걷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유저들은 없었기에 도보로 2일이라는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지글지글하며 신기루가 올라오는 듯 보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흐를 사막 속, 용의 계곡 입구로 들어가는 인간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바로 레드쉴드 기사단 이였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타오르는 듯한 태양과 지글지글 익을 듯한 사막의 풍경을 증오스럽게 바라보며 기사단 선두에서 걷고 있던 카이엔은 지금의 이 습격 계획을 세운 누군가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며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물론 그 옆 평소와 같은 간단한 경장갑을 입고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주위 풍경을 구경하듯 사뿐사뿐 걷고 있는 이 계획의 초안자인 마사무네가 있었지만, 그는 그의 주인이자 대장인 카이엔의 저주가 두렵지도 않은 마냥 전혀 반응이 없었다.
“네 녀석! 나한테 무슨 원한이 들렸기에 이런 웃기지도 않는 계획을 짠 거냐!”
카이엔이 이를 갈면서 마사무네에게 말했지만 마사무네는 메시지를 듣느라 정신이 없는지 아니면 일부러 무시하는지 요지부동이었다.
“끙...”
마사무네의 기발한 계획에 말까지 데이모스에 맡기고 온 카이엔이었다.
“너무 보채지 마십시오. 대장! 어차피 진짜로 더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대 원들도 잘 참고 있으니 좀 다른 대원들의 모범이 돼주십시오.”
“뭐야! 쉐꺄!”
끝내 카이엔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며 등에 메 놓은 바스타드소드를 뽑아 들었지만 다른 대원들의 만류로 끝내 씩씩대면서 열을 삭히는 카이엔이었다.
“휴...”
열 받아 버린 카이엔을 피해서 행렬 뒤쪽으로 빠진 마사무네는 한숨을 내쉬면서 현재 머릿속에 돌아가고 있는 계획들을 속속들이 들어오는 메시지를 조합하며 다시 한번 일깨웠다. 만약 다른 길드에 대한 일이었다면 이런 대규모의 소풍계획도 없었으리라. 물론 황량하기로 소문난 용의 계곡으로 소풍 오는 얼빠진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테시미어 길드의 이페라면 이야기가 틀려졌다. 잔머리의 대가인 이페가 이런 곳에 혼자 왔을 리가 없었다. 분명 뭔가 다른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고서 행동하는 것이리라. 만약 소수의 인원으로 그녀들을 처치하려 한다면 역으로 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대규모 습격을 생각해 낸 것이다. 물론 근 100여명에 달하는 전 인원을 데려올 수는 없었지만 40명이라는 지금의 인원도 절대 눈에 안 띨 수 없는 인원이었기에 그녀들이 눈치 못 채게 하기 위해서 10명씩 조각내어 포탈을 이용했고 기민한 메시지를 통해서 최대한 비밀스럽게 계곡에서 모일 수 있었다. 물론 모인 장소도 용의 계곡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잡아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걷고 있지만 테시미어 길드의 진정한 머리라고 할 수 있는 그녀들을 게임오버 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들을 사사건건 괴롭히는 테시미어 길드를 접수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잔머리도 압도적인 힘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이치이지.”
두 주먹을 꽉 쥔 마사무네는 행렬의 앞쪽에서 발광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는지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카이엔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다시금 머리를 붙잡았다.
“대장! 남이 볼까 무섭소이다.”
[마사무네님 몬스터 무리입니다!]
한참을 머리를 붙잡고서 카이엔을 원망스레 쳐다보던 마사무네는 척후로 나가있던 레인저와 어쌔신들이 몬스터의 출연을 알리자 궁상타임을 멈추고서 선두에 걸어가는 카이엔이라는 바보대장에게 소리쳤다.
“대장! 몬스터랍니다!”
“크아앙!”
생사대적을 만나면 저런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 흡사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듯 포효한 카이엔이 전방으로 달려가자 마사무네는 자꾸만 위로 치켜 올라가려는 입술을 애써 감추며 작게 읊조렸다.
“끙... 그래도 정이 가는 인간이란 말야.”
사방 주위를 살펴봐도 밋밋한 색의 모래들로 이루어진 계곡들뿐이었다. 군데군데 작은 풀포기들이 이 황량한 용의 계곡에서는 그나마 특별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모래사구들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계곡들과 바위들, 그리고 아련하게 울려오는 몬스터의 울부짖음은 용의 계곡을 철저하게 죽음의 계곡 또는 저주 받은 계곡이라 부르게 만드는 지대한 요인이었다. 항간의 혹자들은 용의 계곡을 두고 이렇게들 이야기 한다. ‘1주일 이상 야영하면 꿈자리가 사나워 지는 곳’ ‘비 추천 사냥터 베스트 10’ 등등...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이곳의 발길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들자면 바로 고급몬스터들의 출연이 빈번한 장소라는 것, 렌덤 형식으로 계곡 깊숙한 곳에 있는 레드 드래곤의 레어가 개방된다는 것, 원체 퀘스트 위주로 진행 되는 전투인 이유이므로 퀘스트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사이토와 가이아 그리고 이페들이 수행하고 있는 부활 퀘스트 중 꼭 필요한 아이템인 ‘드래곤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돌아오지 않는 던젼’이 이곳에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도시들과 또 일부 지역들에도 부활 퀘스트들은 존재하지만 이페들이 이 험하기로 소문난 용의 계곡으로 오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부활 퀘스트의 제한 조건 때문이었다. 일단은 퀘스트를 수행함에 있어 퀘스트 자체의 조건이 그 지역 내에 있는 ‘드래곤 아이’를 필요조건으로 하고 만약 외부에서 그 드래곤 아이를 가져올 경우에는 부활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일부 항간에서는 ‘부활 퀘스트가 너무 힘들다. 친구 없으면 되살아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냐!’ 등등 말이 많았지만 리얼 판타지아사에서는 최대의 현실성의 구현이라는 모토를 꿋꿋이 지키면서 지금의 리얼판타지아를 만들었고, 이제 리얼판타지아를 하는 유저들이라면 이런 리얼 판타지아사의 고집을 인정하는 편이었다.
“레인씨! 같이 가요!”
“...”
자신을 부르는 유르의 목소리에 잠시 뒤쪽을 힐끔 쳐다본 사이토는 유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자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금 나침판으로 눈을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무뚝뚝해요?”
“무슨 소리십니까?!”
유르는 이 목석같은 남자를 노려보며 가슴속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한숨을 애써 참으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사이토에게 넌지시 말했다.
“레인 씨가 원래 차갑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서로간의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요?”
어떻게 보면 유르가 사이토에게 충분히 따질 수 있다고 할만한 문제였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사이토도 상당히 할말이 많았기에 지금 자신의 눈을 거슬리고 있는 어떤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유르에게 소리쳤다.
"먼저 대화를 단절시킨 건 그 쪽으로 보이는데요. 지금 저 두 마리의 캐러밴에 실린 거나 가르쳐 주신다면 대화를 좀 더 유화적으로 해 볼 의향이 있습니다만!“
처음 출발할 당시 두 마리의 캐러밴을 끌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페에게 캐러밴에 실린 것이 뭔지 물었던 사이토였지만 이페는 별로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눈치를 주며 피했고 다른 여자들도 뭔가 숨기는 듯한 어정쩡한 자세로 일관했기에 사이토는 슬슬 자신의 신경을 긁어 오는 이 네 자매들에 행태에 대해서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 그건 퀘스트에 쓰이는 물건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궁금한 것 정도는 물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유르는 도리어 사이토에게 반격의 빌미를 준 자신의 성급함을 반성하며 말을 줄였다. 어떻게 보면 사이토의 궁금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에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저 캐러밴에 실린 것들의 정체를 밝힌다면 자신들의 계획 또한 사이토가 알아챌 수 있었기에 유르는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