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차선우의 그날 밤 (11/13)

외전 1. 차선우의 그날 밤

해영의 부친이 그를 찾아갔던 날, 해영이 부은 볼을 하곤 선우를 찾아왔던 그날 밤. 차선우는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도어 록을 누르기 직전 힐긋 뒤를 돌아보니, 딴청을 피우듯 시선을 돌리고 있는 해영이 눈에 들어왔다. 도어 록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 문득 그를 처음 집에 데려오던 날이 떠올랐다.

비밀번호가 뭔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 며칠 전에도 자고 가 놓고 괜스레 내외하는 모습을 보니 입 안에 웃음이 고였다.

“비밀번호 안 바꿨어. 그대로야.”

“…….”

비밀번호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0, 8, 2, 9. 네 자리 비밀번호는 해영이의 생일이었다.

띠리릭. 도어 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넓은 복도에 울렸다. 차선우는 문고리를 잡으며 뒤에 선 이를 눈짓했다. 어깨 너머로 눈이 마주친 해영이 의아한 듯 슬쩍 눈썹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자신이 들어찬 것을 보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웃는 낯으로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들어와, 해영아.”

차선우는 문을 열며 안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먼저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짧은 눈짓을 이해한 해영은 신발을 벗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익숙한 몸짓이었다. 몇 년을 이곳에서 함께 지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익숙해 보이는 그 모습에 멈칫하게 되는 건 오히려 차선우 자신이었다. 현관에 놓인 흰 운동화를 보니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문고리를 쥔 손에 잠깐 힘을 주었던 선우가 그를 따라 구두를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해영이에게 가까이 다가설 때면 아까부터 맡아졌던 체향이 도드라지게 훅 풍겨 왔다. 품에 안고 코를 묻고 싶은 기분을 숨기며 아래로 내린 손을 쥐었다, 폈다 할 때였다.

“형, 이거 옷장에 걸어 두면 되지?”

해영이 겉옷을 벗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뒤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슬쩍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가만히 서서 뭐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어쩐지 목뒤가 뻐근해졌다. 차선우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쥐고 있던 주먹을 풀어, 저를 돌아본 해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손은 이윽고 아래로 내려가 그의 목덜미를 가볍게 쥐었다.

“아….”

놀랐는지 해영의 입에서 무의식적인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차선우는 움찔하는 해영을 보며 옅게 웃었다.

갈수록 아닌 척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해영이를 처음 집에 데려왔던 날도 이렇게 참는 게 고역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때로는 욕구에 휩쓸려 눈앞의 상대를 내내 품에서 놓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욕구 따위는 언제나 해영의 안위 앞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응, 겉옷 벗고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차선우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해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특히 붉어진 볼에서 쉬이 눈을 뗄 수 없었다. 살짝 부어오른 뺨을 보니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해영이 제 입으로 아버지에게 맞았다고 말한 건 아니지만,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이미 그가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도 알았다. 고작 그걸 유추해 내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이스 팩 가져다줄게.”

가까스로 말을 뱉곤 발길을 돌렸다. 해영이 어색하게 제 목을 쓸어내리는 게 보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부엌으로 들어간 선우는 냉장고를 열어 얼음을 꺼냈다. 기계적인 몸짓으로 아이스 팩에 얼음을 집어넣던 것도 잠시였다. 와르르 얼음을 쏟아 넣던 그가 곧 거칠게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물었다.

아… 시발.

나고 자라면서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저속한 단어가 목구멍에 턱 걸렸다 사라졌다. 손으로 입가를 쓸면서 차선우는 비스듬히 허공을 응시했다.

이걸 어떻게 할까…. 머리로는 참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해영이에게 손만 올리지 않았더라도 모르는 척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삼킨 채 몸을 일으켰다. 부엌에서 빠져나오자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있는 해영이 보였다. 겉옷을 걸어 두고 나왔는지 가벼워진 옷차림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앞으로 향하는 선우의 걸음이 한층 빨라졌다.

“해영아.”

“아, 고맙….”

두 사람의 손이 엇갈렸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해영이 제 볼에서 느껴지는 찬기에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저도 모르게 그의 뺨에 아이스 팩을 대 주었던 선우가 뒤늦게 짧은 탄식을 흘렸다. 황당해하는 눈빛을 마주하고 난 뒤에야 직접 댈 것 없이 그에게 건네줘도 됐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할게. 나도 손 있어.”

뭘 이런 것까지 해 주려고 하냐는 듯 해영이 헛웃음을 뱉었다. 들고 있던 얼음 팩을 가져가는 손길에 차선우는 맥없이 웃으며 손에서 힘을 뺐다.

그에게로 기울였던 몸을 일으키자 시선이 따라왔다. 볼에 아이스 팩을 댄 채 저를 올려다보는 해영과 눈을 맞추며 선우도 와이셔츠의 손목 단추를 풀었다.

“저녁은 먹었어?”

“어, 일하는 데서 유영이랑. 형은?”

“나도 먹었어.”

선선히 대답하자 해영이는 곧장 눈매를 가늘게 늘렸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삐딱했으나, 그 장난스러운 시선까지도 간질거릴 만큼 좋았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정말이야. 회사 사람들이랑 먹었어.”

회사 사람들과 먹었다는 말에 윤해영은 아아, 하고 수긍하더니 곧바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 맞다. 오늘 세희 누나도 봤어.”

…세희?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잠시 멈칫할 수밖에는 없었다. 왜 그 이름이 또 네 입에서 나와. 순간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며 차선우는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순식간에 시야가 낮아졌다. 좁아진 시야로 보이는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해영이었다.

“응, 그랬어?”

조용히 꺼낸 되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볼에 얼음 팩을 대고 있는 팔이 슬슬 뻐근한지, 해영이 소파에 팔꿈치를 대며 몸을 뒤로 느슨하게 젖혔다.

“뭐 했어?”

“딱히 한 건 없어. 진짜 잠깐 얼굴만 보고 간 거라서… 아, 형. 누나랑 재휘 형이랑 만나는 거 알지?”

해영은 혹여나 오해할 생각 말라는 듯 미간을 모았다. 반듯하던 이목구비가 꾸깃꾸깃하게 일그러졌다. 빠르게 덧붙인 부언은 조금의 불안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노력임을 알았다. 불안한 건 아니었다.

그저 속이 탔다.

“그래도 질투 나는데….”

그가 오로지 자신만 봐 줬으면 했다. 차선우는 힘없는 미소를 걸친 채 해영의 반대쪽 뺨을 간지럽히듯 쓸었다.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해영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었으면 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대신 그를 상처 입힐 만한 것들은 직접 걷어 내 주고 싶었다.

음울하고 불순한 욕망은 입 밖으로 나갈 때면 부드러운 포장지를 두르곤 했다. 그래서인지 해영이는 부담스러워하거나 질린단 내색을 하는 대신, 칭얼거리는 아이라도 보듯이 웃으며 자신의 애정을 선뜻 받아 내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형인데.”

“…….”

“뭘 몰랐다는 듯한 얼굴을 해. 이미 알면서….”

해영이 비스듬히 고개를 꺾은 채로 웃었다. 한쪽 입꼬리만 비틀듯 올라가는 미소는 이상하게 그가 걸치면 산뜻한 느낌을 내곤 했다.

“해영아.”

생글 마주 웃은 선우가 그를 불렀다. 해영이 말하라는 듯 까딱 턱짓했다. 수많은 바람을 뒤로한 채 건네진 말은 짧았다.

“자고 갈래?”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해영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점차 눈매를 가늘게 늘렸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또 저러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빤히 읽혔다.

기묘하게 감돌던 침묵은 길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툭 기울인 해영이 뜸 들이지 않고 되물어 온 것이다.

“자고 가도 돼?”

멈칫한 선우가 해영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건 처음부터 허락을 구할 필요 없는 물음이었다. 그를 보내 주고 싶지 않은 건 오히려 자신이었으니까.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면 어떻게든 말랑하게 녹여 침실로 데려가 재울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순순히 긍정할 줄은 몰랐지만. 잠시 눈을 크게 뜬 선우가 해영의 얼굴을 훑어 내렸다.

어딘가 삐딱한 미소…. 해영이는 뭔가 못마땅한 것이 있을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짓곤 했다. 얼음 팩을 들고 있던 손도 내린 채 해영은 사뭇 짓궂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잠만 자고 가진 않을 건데.”

표정과는 다르게 장난기 없는 음성이 떨어졌다. 툭, 셔츠 단추를 풀던 손이 미끄러진 것도 동시였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 윤해영은 재촉하듯 고개를 들었다.

“싫어?”

의사를 묻는 것치곤 조심스럽지 않은 어조였다. 목소리는 상대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주친 눈빛에 떠오른 감정이 선명했다. 해영의 눈동자에 스민 욕구는 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싫으면 지금 말해. 가진 않고, 손만 잡고 잘게.”

싫을 리가….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고였다. 고개를 내저은 차선우는 말없이 해영의 앞으로 향했다.

코앞까지 다가가 그에게로 몸을 숙이자, 기다렸다는 듯 목에 팔을 걸어 온 해영이 턱을 비스듬히 들었다. 아, 윤해영…. 꺼내지 못한 침음이 입 안에서 짓이겨졌다. 그는 다정한 낯을 가장한 채 억누르던 욕구를 더는 참지 않았다. 아니, 참을 수 없었다.

그대로 입술이 맞닿았다. 해영의 입술을 깨물듯 빠는 몸짓이 퍽 다급했다. 평소라면 이를 세우지 않고 입술을 빨았을 그가 이번에는 잘근잘근 여린 살을 씹듯이 굴었다. 집요하게 입술을 물고 있던 차선우는 이윽고 축축하게 젖은 입술 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여유? 이성이 날아갈 것 같은 걸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건 사치였다. 차선우는 입 안을 침범한 자신을 환대하듯 얽혀 오는 혀를 빨아 당기면서, 더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미 반쯤 기울어져 있던 해영의 몸이 완전히 뒤로 넘어갔다.

“…아.”

입술이 잠시 떨어진 찰나 해영이 낮은 탄성을 흘렸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건 가죽 소파의 차가운 감촉이 아닌 단단하게 붙든 손의 온기였다. 넘어져 봤자 다칠 리 없는데도 그 짧은 사이에 차선우는 팔을 뻗어 손을 밀어 넣은 것이다. 순간 해영의 눈가에 확 열이 올랐다.

“형.”

“응.”

“선우 형.”

“응….”

쪽, 고개를 숙여 제 이름을 부르는 입술에 선우가 짧게 입을 맞췄다. 곧 가벼운 입맞춤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한 번 더 입술이 닿았다. 춥, 입을 맞춘다기보다는 녹여 먹는다는 말이 적절한 키스가 눅진하게 이어졌다.

안으로 파고들지 않고 겉만 깔짝이는 키스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입술은 금세 축축해졌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해영은 망설이던 입을 뗐다.

“헤어졌던 동안에, 한 적 있어?”

…다른 사람이랑.

나직하게 떨어진 물음에 몸이 굳었다. 선우는 그에게 기댔던 몸을 조금 일으키며 해영과 눈을 맞췄다. 이런 타이밍에 돌아오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물음이었다. 질문의 의도가 뭔지 파악하기도 전에 다시금 말이 이어졌다.

“나는 없어.”

“…….”

알고 있다는 말은 삼켰다. 차선우는 설핏 인상을 찌푸린 채 입술을 짓씹는 해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던진 물음에서 시작한 의문들이 순식간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데도 쉬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 해영아.

내가 그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어….

지금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뭐야.

꺼내지 못한 물음들이 입 안에서 어지럽게 떠다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불온한 감정은 덮어 둔 채로 선우는 가장 부드러운 마음만을 꺼내 보였다.

“나한테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 순간 자신을 시험해 보려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았다. 마음을 시험당하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늘 너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건 해영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떨어져 있던 동안에도 그에게서 시선을 뗀 적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건 이미 알았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해영이가 웃기지도 않는 프로그램에 나간다고 하기 전에 진작 그를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랬겠지…. 그저 상상일 뿐인데도 폐부가 우그러질 정도의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쪽.

목을 죄어 오는 불안을 지우고자 고개를 내렸다. 이번에 입술이 닿은 곳은 목이었다. 턱의 바로 아래 얼굴을 파묻듯 입술을 찍어 누르자 해영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형.”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고백했다.

“나 그래서 사실 좀 긴장되거든. 자연스럽게 굴고 싶었는데….”

해영의 목에 입술을 찍던 선우가 움찔, 고개를 들었다. 먼저 도발한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이었다. 말하면서도 멋쩍은지 어색한 웃음기가 스민 음성이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숨도 이상하게 쉬는 거 같고, 아, 나 지금 너무 별로인가.”

해영이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양손으로 눈앞을 가린 탓에 보이는 건 살짝 부어오른 붉은 입술이었다.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하얀 이에 걸려 짓씹어졌다가, 이내 울적하게 늘어졌다.

“우리 해영이가… 이상한 걱정을 하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제가 별로인가 하는 걱정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무엇에도 크게 감흥을 느껴 본 적 없던 제게, 존재만으로 자극이 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문득 가려진 눈이 어떤 빛을 띠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선우는 손을 올려 해영의 양 손목을 그러쥐었다. 가까스로 이성을 잡고 있는 몸은 경직되어 있었으나 해영의 손목을 쥔 손은 억세지 않았다. 가벼운 힘으로 양손을 끌어 내린 그가 해영과 눈을 맞췄다.

해영은 발개진 눈가에 힘을 주고 선우를 주시했다. 숨도 멈춘 채 짧게 이어진 대치였다. 웃음기가 없는 시선이 느릿하게 울긋불긋 달아오른 얼굴을 훑었다.

“그리고?”

“침도 어떻게 삼켜야 할지 모르겠어.”

해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넓은 공간에 울렸다. 크지 않은 소리였으나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진 때였다. 선우의 목울대가 일렁이는 것을 고스란히 발견한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조용한 공간 속 기묘한 열기를 띤 숨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이전과 묘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의식한 해영이 천천히 눈을 굴렸다.

“혀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하.”

선우의 입에서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차선우는 굳은 입매를 비틀듯 웃었다.

“혀, 내밀어 봐.”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목을 긁으며 튀어나왔다. 나직하게 떨어진 가라앉은 음성에 해영이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순순히 혀를 내민다.

젖은 입술 사이로 선명한 다홍빛의 혀를 내민 채, 해영은 이제 어쩔 거냐는 눈빛으로 선우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말없이 고개를 숙인 차선우는 그대로 그의 혀를 물었다. 읍,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던 짧은 신음은 혀와 함께 입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쭙, 혀를 길게 빨아들이는 순간 민망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움찔한 해영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뺀 순간이었다. 물러날 틈을 주지 않은 선우가 한층 더 깊숙이 입술을 물었다. 파고드는 입술의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혀뿌리가 뽑히는 것만 같아 눈앞이 아찔해졌다.

“으, 읍, 하….”

처음 하는 키스도 아닌데 평소보다 호흡을 가다듬기가 어려웠다. 헉헉거리며 가까스로 숨을 고르는 해영을 알면서도 차선우는 쉬이 몸을 물리지 못했다. 그럴 이성은 진작에 놓친 지 오래였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건 해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우의 목에 걸려 있던 팔에 꽉, 힘이 들어갔다. 키스인지 잡아먹히는 건지 모를 접합에 정신이 없는 와중 매달릴 곳은 오직 차선우뿐이었다.

차츰 페이스를 되찾은 해영이 숨을 고르며 천천히 선우의 뒤로 뻗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와이셔츠 목깃 아래로 슬쩍 파고든 손끝이 어깻죽지를 긁듯이 간지럽혔다. 멈칫한 선우가 스륵 고개를 들었다. 겹쳐 있던 몸이 떨어지면서 두 사람은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눈을 마주했다.

“이제 조금 긴장이 풀렸나 보네.”

그의 입가에 씩 유쾌한 미소가 걸렸다. 드물게도 장난스레 올라간 입꼬리를 보니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해영의 미간이 설핏 구겨진 순간이었다.

길쭉한 손이 검은 니트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맨살을 쓸며 더 안쪽으로, 위로 파고드는 손길은 강압적이진 않았지만, 마냥 다정하지만도 않았다. 평소의 나긋한 성정과 어긋나는 손끝은 그 또한 여유를 잃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도리어 흥분이 됐다.

해영의 가슴팍을 둥글게 쓸던 손끝이 이미 꼿꼿하게 선 젖꼭지를 쥐었다.

“…아!”

해영이 거친 숨을 뱉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젖꼭지에 가해지는 압박에 반사적으로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선우는 엄지손가락으로 잡힌 유두 윗부분을 문질렀다. 이미 알고 있는 쾌락인데도 금세 숨이 가빠졌다.

“해영아, 여기 만졌다고 바로 서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

“형이…!”

금방 억울하단 시선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흥분해서인지 붉어진 얼굴이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뻔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거겠지.

누구에게나 턱턱 어깨에 팔을 걸친 채 친근하게 웃는 윤해영. 선뜻 몸을 기대고 거리를 좁히는 윤해영…. 자신과는 다르게 그는 다른 이들과 살을 맞대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덥석덥석 타인을 껴안을 만큼 무신경하던 그가 이만큼 예민해지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잘 느꼈나….”

손가락으로 유두 위를 문지르듯 굴리는 몸짓에 해영이 입술을 물었다. 바짝 선 젖꼭지가 장난감이라도 된 것만 같아 미묘한 수치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형, 때문, 이잖아.”

악문 잇새로 나온 짓씹듯 뱉은 말에 차선우는 도리어 기쁜 낯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영이 제 손을 탔다는 증거였으니까.

단순히 가슴만이 아니었다. 맨살이 아닌 옷 위로라도 손이 닿을 때면 해영은 반사적으로 움찔 떨었다.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신체적 접촉을 의식하게 된 그를 보고 있자면 불안했고, 쉬이 참을 수 없어졌다. 순식간에 자제력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응…, 알아. 나 때문인 거.”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오싹한 전율을 무시한 채 차선우는 눈을 휘며 웃었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해영이 확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물었다.

“그렇게 웃지 마.”

“…왜? 싫어?”

선우가 웃는 낯 그대로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제 눈을 피하는 해영의 시선을 좇아가며, 선우는 그의 턱끝에 연신 입을 맞췄다. 피하려고 해 봐도 집요할 정도로 시선을 맞춰 오는 끈질김에 해영은 참지 못하고 울컥 입을 열었다.

“바로 쌀 거 같아.”

“…….”

“형 얼굴만 봐도 쌀 거 같다고….”

그가 언뜻 억울한 기색까지 내비치며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배뇨감과는 달랐다. 사정감은 참는다고 해서 쉬이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자극하는 게 차선우라면 더더욱 그랬다.

“…해영아.”

차선우가 앓는 듯한 목소리로 해영을 불러 왔다. 이윽고 그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해영의 위로 올라탔다. 선을 지키려고 하던 자신의 등을 떠민 것은 해영이었다.

얽힌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뚜렷한 부피감에 해영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렇게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선우 또한 제가 발기한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괜스레 몸을 뒤로 빼는 해영을 쫓아 선우가 그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넣었다. 맞닿은 배 아래로 다리가 엉켜 들었다.

도망가지도 못하게 다리 사이에 갇힌 채 바지 위로 발기한 성기가 비벼졌다. 그러다 꾹, 힘을 줘 누르는 압박감에 해영이 곧장 숨을 들이켰다.

“헉….”

“아, 미안.”

차선우는 순간 실수였다는 듯 탄식과 같은 사과를 뱉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아래를 꾹 누르는 다리의 압박은 여전했다. 안타깝다는 탄성을 흘리긴 했으나 미안하단 기색은 전혀 없었다.

“미안은, 무슨.”

상기된 낯으로 노려보자 그가 달뜬 낯으로 눈웃음을 흘렸다.

“허.”

그 미소를 발견한 해영이 잊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상기했다. 기가 찬다는 듯한 실소에 선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형, 원래 이랬지.”

처음 할 때도 그랬다.

해영은 늘 나긋하고 청순한 낯으로 방긋거리는 그가 침대 위에서도 소극적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착각이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먼저 달려든 건 자신이었으나, 그렇게 되도록 불을 붙이는 것은 차선우였다.

해영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잠시 고민하던 선우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누워 있는 해영을 내려다보는 채로 설핏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뭐기는.”

지익, 해영이 손을 내려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손끝으로 바지를 끌어 내리자, 허리춤에 걸린 드로어즈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부푼 성기는 위로 단단하게 선 채 달라붙어 있었다. 제 바지를 끌어 내리는 해영에도 차선우는 그저 소리 없이 웃는 낯으로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칠 것 같은 쪽은 오히려 해영이었다.

드로어즈 윗단에 얼룩을 그릴 만큼 젖은 꼴에 그가 입술을 짓씹었다. 해영이 짓씹는 입술을 툭툭, 건드려 물지 말라는 듯한 신호를 준 선우는 벌어진 입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혀를 꾹 누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응, 그렇게, 빨아 봐.”

입술 안쪽, 이미 한참을 물어뜯어 예민해진 내벽을 누르며 선우가 다정하게 웃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눈매에 해영은 멍해진 낯으로 입 안을 헤젓는 손가락을 물었다.

손가락이 들어찬 입 안에는 금세 타액이 고였다. 침을 삼키지도 못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쭙, 쭙,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차선우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야해.”

“…….”

누가 할 소리를.

천사같이 웃으면서 민망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흥분됐다. 차선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드로어즈 안에 갇혀 천을 적시던 성기를 밖으로 꺼냈다.

이미 단단하게 서 있는 성기는 터질 듯 붉었다. 굵은 기둥을 한 손으로 쥔 그가 천천히 표피를 쓸어내렸다.

“하아….”

호선을 그리던 입매가 드디어 야트막하게 벌어졌다. 그 사이로 나온 묵직한 숨에는 열기가 어려 있었다. 쥔 성기를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차선우는 손에 가볍게 힘을 줘 해영의 입을 벌렸다.

턱을 벌린 채 해영은 제 입 안을 바라보는 선우를 정신없이 훑었다. 몇 년을 사귀었어도 자신을 보며 자위하는 차선우의 모습에는 여전히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똑같이 생겼는데, 왜 너만 이렇게 야해 빠졌어.”

해영의 입 안을 바라보던 선우가 곤란하다는 낯으로 웃었다. 동시에 아래를 쓸어 올리는 손짓은 멈추지 않았다. 귀두를 적시며 비집고 나온 투명한 선액이 손가락과 엉켜 들며 끈적이는 소리를 냈다.

탁, 탁, 젖은 기둥을 쥐고 흔들 때마다 귓가를 때리는 마찰음이 뚜렷했다. 눈앞에서 펼쳐진 어지러운 광경에 넋을 잃었던 해영이 이내 제 바지 지퍼를 내렸다. 갑갑하게 조여 오는 하반신에 바지와 속옷을 단번에 끌어 내렸다.

그러나 옷가지는 완전히 벗겨지지 않고 해영의 허벅지 부근에서 멈춘 채였다. 그의 다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차선우 때문이었다. 해영은 나직한 신음을 참으며 성기를 빠르게 쓸어 올리는 선우를 눈에 담았다.

선우의 기다란 손가락은 유독 하얘서, 발기해 붉어진 성기와는 눈에 띄게 대조되었다. 물기가 어려 한층 더 반들거리는 성기를 쳐올리는 손이 갈수록 빨라졌다. 절정의 순간, 단정하던 선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탁한 정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하…. 묵직한 숨을 내쉰 그가 손가락을 적신 정액을 기둥에 펴 발랐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해영을 주시한 채였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채로, 발기해서, 아랫배에 바짝 올려 붙은 성기를 내보인 채 프리컴을 흘리는 윤해영.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양 차선우가 말없이 몸을 숙이며 그의 다리를 잡았다.

“넣어도 돼?”

“……”

“넣으면 뒤에는 멈출 자신이 없는데….”

상냥한 웃음의 한편에는 자신 없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더 짙은 것은 눈가에 혼탁하게 떠오른 욕망이었다. 평소의 단정하던 모습이 흐트러진 채 자신을 갈구하는 모습에 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선우는 금세 해영의 허벅지에 걸려 있던 옷가지를 벗겨 냈다. 맨살을 쓸며 올라가 허벅지를 쥔 그가 양옆으로 다리를 벌렸다. 적응되지 않는 자세에 해영이 휙 고개를 돌렸다.

“읏.”

민망해할 새도 없이 젖은 손가락이 뒤를 뚫고 들어왔다. 마른 구멍은 뻑뻑했으나, 해영의 입 안에서 묻어온 타액이 윤활제 역할을 했다.

그 순간 그나마 가늘었던 손끝을 지나, 툭 불거진 손가락의 중간 마디가 입구에 걸렸다 안으로 비집고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뒤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생경해 속이 울렁거렸다. 헉, 해영은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해영은 선우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내 허공을 향해 뻗어진 팔이 무엇을 찾는지 선우는 알았다. 그건 눈치라기보단 학습된 경험의 결과였다. 상체를 숙인 선우가 자신을 찾는 해영에게 입을 맞췄다. 해영이 그의 목에 팔을 거는 것과 동시에 키스는 허겁지겁 이어졌다.

이미 충분히 젖은 성기는 그대로 넣어도 될 것 같았다. 깊게 혀를 섞으며 차선우는 그대로 구멍을 쑤시던 손가락을 빼냈다. 성기를 쥐고는 입구에 끄트머리를 맞춘 그가 그대로 해영의 몸을 가르고 들어갔다.

“해영아….”

힘 좀 빼 줘,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그 대신 차선우는 고개를 숙여 해영의 입술을 물었다. 해영은 위에서 입술을 맞대는 그를 따라가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능숙한 키스가 이어지는 동안 선우는 천천히 성기를 박아 넣었다.

중요한 건 축축해진 구멍이 아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성기의 크기였다. 해영의 어깨를 끌어안은 선우가 조심스럽게 아래로 허리를 내렸다. 최대한 부드럽게 움직인다고는 해도 완전히 발기해 부푼 성기를 삽입하는 건 욱여넣는 것에 가까웠다.

“윽….”

눈살을 찌푸린 채 받아 내던 해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잇새로 신음을 흘렸다. 그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선우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안에 전부 들어가지 못한 채로 멈춘 선우가 고개를 들어 해영과 시선을 맞추었다.

허공에서 마주친 시선은 선명한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 스친 고통의 기색 또한 분명했다.

“해영아.”

“…어.”

잠긴 목소리가 목을 긁으며 튀어나왔다. 공들여 풀어 줬다고 해도 오랜만의 삽입이었다. 아직 반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마저 벅차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뺄까?”

선우가 상체를 조금 일으키며 물었다. 빼라고 말하면 당장 몸을 물릴 것 같은 단정한 목소리였다. 해영은 입을 열어 그러라고 말할 수도,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입으로는 전혀 아쉽지 않다는 듯 말하면서 정작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신뢰가 가나…. 순간 입가에 실소가 고였다. 이 와중에 그게 좋았다. 참기 힘들다는 얼굴을 한 차선우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낯의 차선우가.

“아니.”

…싫어. 해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확고했다. 그는 힘들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있던 채로 흐릿하게 웃으며, 선우의 목에 건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곤란할 정도로 아래에 열기가 쏠린 상태였다. 금세 배 속이 뜨겁게 울렁거렸지만, 차선우는 티를 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는 고갯짓에 해영이 나직한 한숨을 토했다.

그러나 그러고도 선우는 곧장 안으로 다시 파고들지 않았다. 끈질기게 제 얼굴을 살피는 눈길에 오히려 답답해진 쪽은 해영이었다.

“형.”

“응, 해영아.”

“들어와. 좀, 더.”

“…….”

알고 있었다. 한번 불안이 도진 차선우는 다른 무엇보다 저를 우선시하리라는 걸. 멈출 자신이 없다더니, 빼지도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참을성이 지독하게 느껴졌다.

“아, 차선우, 진짜.”

한숨을 삼킨 해영이 그를 거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건진 모르겠으나, 선우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반쯤 들어왔으므로 조금만 더 해 보면 될 것 같았다. 허리를 슬쩍 들어 올린 해영이 천천히 엉덩이를 아래로 내렸다.

이미 빠듯하던 입구가 기둥을 삼킬 듯 죄어 왔다. 차선우는 입 밖으로 탄식을 흘리는 대신 입술을 물었다. 제 나름대로 힘을 풀어 받아 내겠다고, 해영은 느릿한 몸짓으로 뒤척였다.

문제는 허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이미 입구를 뚫고 들어가 있던 성기의 젖은 선단이 내벽을 긁어내렸다는 것이다. 순간 허리가 들릴 정도로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뿌예진 시야는 눈을 느릿하게 껌벅여도 여전히 흐릿했다.

“하… 으….”

낮은 숨을 토한 해영이 힘이 들어간 몸에서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빳빳하게 선 기둥을 꽉 쥐듯 빠듯하게 조여 오던 힘이 차츰 약해졌다가 다시 바짝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뻑뻑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몸짓에 차선우는 해영의 머리 옆을 짚고 있던 손을 꽉 그러쥐었다. 안 그래도 이미 터질 지경이던 성기는 쥐어짜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좆 뿌리까지 시큰거리는 것만 같았다.

“형, 선우 형. 빨리.”

해영이 조금씩 가쁜 숨을 고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찌푸리던 얼굴을 펴면서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

그 미소를 발견한 선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어쩐지 눈시울이 달아오르는 기분에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허리를 치켜올렸다. 핏줄이 돋은 성기가 달라붙는 것만 같은 내벽을 열고 안으로 밀려들었다.

해영이 참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비튼 채 가쁜 숨을 흘렸다. 끝까지 삽입된 성기가 깊은 곳을 꾹 찔렀다. 후우, 낮게 숨을 고른 선우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허리를 뒤로 뺄 때마다 뜨거운 내벽이 몸을 쭉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성기를 빈틈없이 집어삼킨 구멍은 여전히 좁았다. 그러나 한번 길을 낸 이상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이전보다 쉬운 일이었다.

퍽! 끄트머리까지 빼냈던 성기를 한 번에 쳐올렸다. 그러지 않아도 고개를 비틀고 있던 해영의 어깨가 움찔했다. 퍽, 퍽…! 선우는 빠르게 박아 넣으면서도 해영의 턱을 가볍게 쥔 채 집요하게 그의 시선을 좇았다.

“해영아…, 해영아.”

“왜, 부르, 앗, 아!”

“나 봐 줘. 나 좀, 봐 줘. 응?”

“…으, 형….”

“네가 눈을 피하면, 나는 자꾸만 애가 타.”

숨결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절박했다.

선우의 말에 대답하려다가도, 멈추지 않고 아래를 찔러 오는 감각에 입술을 물어야만 했다. 얼굴 가득 차오르는 열기에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눈앞이 흐릿해졌다.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흔들리는 시야 사이,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유독 짙은 눈동자뿐이었다.

끈질기게 자신을 좇는 시선에 울컥 눈물이 고일 것만 같았다. 그가 바라는 대로 눈을 맞춰 준 해영이 정신없이 입을 열었다.

“좋….”

“응, 좋아?”

“…….”

“해영아.”

“으, 응, 좋아, 좋… 아.”

“내가 좋아? 응? 아니면, 이러고 있는 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제 눈을 피하려는 해영을 좇으며 선우가 쥐고 있던 그의 허벅지를 더 양옆으로 벌렸다. 자세가 민망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벽을 깊숙이 쑤시고 들어오는 성기에 해영이 발끝을 오므렸다.

다급하게 제 성기를 그러쥔 해영이 여유 없는 동작으로 기둥을 흔들었다. 그에 따라 선우의 삽입도 한층 더 빨라졌다.

“아, 쌀…!”

쌀 것 같다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도 못한 채 해영이 허리를 꺾었다.

귀두를 쥔 손에 후두둑, 정액이 떨어졌다. 선우의 손아귀 안에서 떨리는 허벅지는 짙은 쾌감의 증거였다. 끝까지 참아 낸 건지 배 속에 퍼지는 이물감은 없었다. 사정의 여운에 젖어 있던 해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익숙한 침실 천장이었다.

언제 침대로 이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허공에 떠 있나 싶더니, 정신을 차려 보니 선우의 체취가 묻은 흰 침구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침대에 눕혀 놓자마자 선우는 쉴 틈도 주지 않고 해영의 다리를 들어 올려 제 어깨에 걸쳤다. 누워 있는 채로 침구에서 허리가 붕 뜨자, 한 번 사정한 뒤 반쯤 서 있던 성기가 덜렁 흔들렸다. 아래로 뒤집힌 성기가 적나라하게 시야에 박혀 들었다.

해영이 얼굴을 붉히며 이를 악물기도 전, 차선우는 다시금 허리를 쳐올렸다. 퍽! 살갗이 맞부딪히며 성기가 단숨에 엉덩이 사이를 뚫었다. 자세 때문인지 더 깊숙이 내벽을 찌르고 들어와서는 한 지점을 강하게 자극했다.

“아!”

눈앞이 순간적으로 점멸했다.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감각은 쾌락인지 고통인지도 불분명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선우에게 기댄 채 해영은 치켜든 허리를 버티고자 허벅지에 힘을 줬다. 동시에 성기를 문 입구에 조이는 힘이 강해졌다.

“하, 아…, 해영아.”

어느새 단정하던 낯을 치워 버린 채 이를 악문 선우가 해영을 불러 왔다.

선이 섬세한 선우의 얼굴이 사정감에 젖어 경직되어 있었다. 고지식하게 굴어 며칠을 애태우게 만들던 사람이 맞나. 며칠 내내 분위기가 잡혔다 하면 별별 이유를 들어 빼던 이의 얼굴치곤 과하게 흥분한 내색에 찰나 전율이 흘렀다.

…미치겠네. 온몸에 흐르는 열기가 식질 않았다. 이미 한 번 사정한 후였는데도 다시금 밀려오는 사정감에 해영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해영아.”

“왜.”

해영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다, 제 갈라진 목소리를 듣곤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닫았다. 목울대가 몇 번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목을 가다듬은 해영이 왜 불렀냐는 듯한 시선으로 제 위에 올라탄 선우를 바라보았다.

“좋다고….”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눈동자가 짙은 애정을 띤 채 해영을 주시했다.

“내가 좋다고 말해 줘.”

“…….”

“응?”

떨리는 목소리는 해영이 건네줄 확신에 목말라 있었다. 맨살갗 위로 떨어지는 숨결에 발끝이 안으로 굽어 들 정도로 오싹해졌다.

고집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시선이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어려운 건 아니었으나 이런 순간 좋다고 말해 달라는 요구는 치사했다. 해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잠긴 목으로 말을 꺼냈다.

“형은, 가끔 나를 바보로 만들어.”

툭 내뱉은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멈칫한 선우가 입을 열기 전, 해영이 한발 먼저 재차 입을 열었다.

“사랑해.”

낮게 갈라진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사랑한다고, 차선우.”

쐐기를 박듯 이어진 목소리는 이전보다는 한결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부스스하게 흩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선우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가 확인받고 싶다면 몇 번이고 말해 줄 수 있었다. 몸을 섞으면서 듣기에는 한참이나 늦은 말이 아닌가 싶긴 했지만. 손을 들어 올린 해영이 제게로 상체를 숙인 선우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이내 그가 톡톡, 두드리는 뺨을 가로지르며 가느다란 줄기가 그어졌다.

“울어? 우는 거야? 나 참….”

놀리듯 해영이 실소를 뱉었다. 동시에 선우의 귓바퀴를 만지작거리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길만큼은 퍽 다정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말도 없이 다시 시작된 허리 짓에 해영이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꺾었다.

사정감이 걷잡을 수 없어지는 순간을 차선우도 알고 있는지, 조임이 거세질수록 허리를 치켜올리는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가슴팍 위로 뚝뚝 떨어지는 물기에 신경이 쓰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흐으, 아…!”

선우가 사정함과 동시에 거꾸로 뒤집힌 채 아랫배에 붙어 있던 해영의 성기에서도 희뿌연 정액이 쏟아졌다. 해영의 가슴 아래까지 튄 정액을 내려다보던 차선우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땀인지 타액인지 모를 물기로 이미 젖어 있는 몸에 정액이 펴 발라졌다.

꾹, 미끄러운 손끝이 흰 가슴팍 위로 솟아 있는 돌기를 눌렀다. 곧 돌기 안을 파고들듯 찌르는 손톱에 해영은 반사적으로 움찔 허리를 들었다. 사정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자극이 쏟아졌다.

“형, 거기, 좀… 그만….”

안 그래도 얼얼할 정도로 예민해진 부위였다. 고통에 가까운 찌릿함에 해영이 피하려는 듯 팔을 뻗었으나, 허공을 휘젓던 손은 선우에게 붙잡혀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해영의 위로 쏟아지듯 상체를 숙였다.

선우의 어깨에 걸려 있던 다리가 얼굴 옆으로 떨어졌다. 안 그래도 들려 있던 허리가 완전히 접히면서 좆을 문 구멍이 이전보다 벌어졌다. 그 순간, 사정을 마친 후에도 빼지 않고 있던 탓에 여전히 단단하게 서 있는 성기가 내벽의 더 깊숙한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헉, 읍….”

반사적으로 흘린 신음은 곧 입을 맞춰 오는 선우에게 먹혔다. 접합부 사이로 흰 정액이 울컥 비집고 나왔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선우는 느릿하게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사정 이후로도 삽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헤어졌던 기간의 공백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더한 자극을 갈구했다.

***

다음 날 눈을 뜬 건 주변이 밝아서가 아니었다. 더 자라는 배려인지 커튼을 빈틈없이 쳐 놓은 선우에 의해 방 안은 해가 떠도 여전히 어두웠다. 해영은 아득히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이윽고 찾아온 근육통에 다시 눈을 질끈 감아야 했지만.

“윽….”

악 소리가 날 뻔한 것을 이를 물어 참았다. 온몸이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차선우도 차선우였지만, 저 또한 황당할 정도로 어리숙했다. 원래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데에만 급급해 정신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오랜만이어서인지 쉬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조급하게 선우에게만 매달리던 어젯밤의 기억을 덮어 둔 해영은 뻐근한 몸을 느릿느릿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흰 침구 위로 고스란히 드러난 상체의 이곳저곳이 붉은 울혈로 얼룩져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잠시 얼었던 해영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정사의 흔적이 지나치게 적나라했던 것이다.

아직 겨울이라 다행이었다. 눈에 띄는 자국들은 긴 옷을 입으면 충분히 가려질 테니까.

“아, 씨. 차선우….”

투덜거리듯 내뱉은 음성이 평소보다 잠겨 있었다.

해영은 괜스레 목을 긁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찌뿌둥한 와중에 어디다 던져 놨는지 모를 제 옷을 찾으러 갈 여력은 없었다. 고민 없이 선우의 옷장을 연 그가 대충 타이트해 보이는 검은 드로어즈와 흰 반팔 티를 찾아 입었다.

침실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단숨에 시선이 날아들었다. 눈길이 느껴진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일랜드 식탁 앞에서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차선우가 보였다. 멀쩡한 것을 넘어 평소보다 공을 들여 단장한 모습에 순간 얼이 빠졌다.

‘잠은 잔 거야?’

어제, 대체 몇 번이나 했더라? 거실에서 침실로 들어가고 나서도 몇 번 더 했었을 것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몸에 찝찝한 느낌은 남지 않은 것을 보면 뒤처리는 그가 해 준 듯했다.

원체 세심한 차선우는 몸을 섞던 도중 지쳐 씻지 못하고 잠들 때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잠든 사이 그가 씻겨 준다는 걸 처음 알아차렸을 때는 충격 받아 마시던 물컵까지 놓쳤으나. 뭐, 이제는 그런 거 하나하나에 민망해할 군번이 아니었다.

“형.”

휘적휘적 걸어갈 때마다 흰 티셔츠 아래로 검은 드로어즈만 입은 맨다리가 두드러졌다. 제게 다가오는 해영을 눈에 담던 선우가 느릿하게 물어 왔다.

“벌써 일어났어?”

“어….”

작게 하품한 해영이 눈을 비비적거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척비척 걸어가다 시계가 걸린 벽으로 잠깐 시선을 줬다. 7시가 넘은 시각은 차선우의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했다.

툭, 마시고 있던 커피 잔을 식탁 위에 내려 둔 선우가 해영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손을 들어 해영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어제보다 부기가 빠진 볼은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을 텐데도, 차선우는 속상하단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이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형은….”

해영이 설핏 고개를 비스듬히 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삼킨 말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선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사라졌다. 꼼꼼히 뺨을 훑던 눈이 이윽고 위를 향했다. 다정한 시선에 해영이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 몸은 괜찮아?”

“장난해?”

“음….”

죽을 것 같다는 해영의 말에 선우가 곤란하다는 낯으로 웃었다.

“조금 더 자.”

“그럴 거야. 형 가는 거 보고 다시 잘래.”

해영은 부스스하게 떠올라 있을 제 윗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현관을 턱짓했다. 슬슬 출근하라는 신호였다.

차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해영과 보폭을 맞추며 따라 걸었다. 현관 앞에 도착하자 어제와 그대로인 신발 두 켤레가 보였다. 선우는 제 신발 옆에 놓인 해영의 운동화를 바라보면서 구두에 발을 집어넣었다.

신발을 신고도 그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차선우는 집을 나서지 않고 저만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건 아쉬움과 걱정이었다.

“미안.”

결국 선우의 입에서 나직한 사과가 나왔다. 삐걱거리는 몸으로 그를 배웅하던 해영이 비딱하게 고개를 든 것도 그때였다.

차선우는 뭐가 이렇게 미안한 게 많을까. 도중에 지쳐서 먼저 잠들기는 했지만, 그라고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평소보다 예쁘게 단장한 것도,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의 흔적을 가리기 위한 게 뻔했다. 젖은 몸을 닦아 주다가도 제가 몸에 남긴 자국들을 보며 자책했으리라.

자신이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서러운 것도, 외로운 것도 조금도 두고 보지 못하는 그가 어쩐지 애틋해졌다.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자신이 차선우를 안쓰러워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별수 없었다. 추는 늘 무거운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니까.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음.”

선우의 얼굴을 가까이서 뜯어보던 해영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신음을 흘렸다.

“아 씨, 눈가가 너무 빨간데… 사람들이 형 운 거 다 눈치채겠다.”

해영이 엄지손가락으로 선우의 눈가를 문지르듯 쓸었다. 멀리서 보면 몰라도, 발갛게 짓무른 눈가는 가까이서 보면 티가 날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었을 법한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이목이 끌리는 얼굴인데, 이렇게 사연이 있는 것 같은 꼴로 나타나면 신경 쓰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차선우 울보인 거 나만 알아야 되는데.”

“…너만 알걸.”

선우가 바람 빠지듯 웃었다. 태평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보니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그니까, 왜 형이 울어? 힘든 건 나였는데.”

똑바로 서 있을 때조차 몸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해영이 현관 옆 기둥에 몸을 기대며 투덜거렸다.

“누가 보면 내가 박은 줄 알겠어.”

노골적인 단어 선택에 선우가 설핏 눈썹을 들었다. 이내 그가 못 말리겠다는 듯 소리 없이 입가를 허물었다. 차선우는 이내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해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 싶어?”

“뭐?”

“네가 하고 싶다면 그래도 돼.”

입가를 만지작거리던 해영의 손을 잡아 끌어 내린 선우가 눈을 휘며 웃었다. 그러더니 길쭉한 손가락으로 손목을 타고 올라와 안쪽 살을 꾹 누른다. 놀란 해영이 반사적으로 팔을 빼려고 했으나, 선우가 그의 손목을 쥐고 놔주지 않았다.

“근데… 나랑만 해.”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는 듯, 그거면 된다는 듯 차선우는 웃는 낯으로 채근했다.

“뭐든 나랑만 하는 거야, 해영아.”

응? 알았지? 말끝을 늘어뜨리는 목소리가 나긋했다. 황당해하던 해영도 결국은 실실 웃음을 흘릴 수밖에는 없었다.

차선우를 처음 만났던 스무 살부터 그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함께해 왔다.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돌아보면 전부 함께했던 추억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모든 일상마저 독점하겠다는 선언이 이상하리만큼 당연하게 다가왔다.

“출근이나 해.”

해영이 삐딱한 미소를 건 채 발로 툭툭, 선우의 다리를 건드렸다. 주름 잡히지 않은 회색 바지가 해영의 가벼운 발길질에 밀려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아프기는커녕 간지럽기만 한 장난에 차선우는 다리를 뒤로 뺄 생각도 하지 않고 웃었다. 그는 저를 노려보듯 올려다보는 해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느릿느릿 손에서 힘을 풀었다.

스륵, 손목에서부터 흘러내린 손이 해영의 손끝을 장난치듯 잡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 동작 하나하나에서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왔다. 차선우는 어지간히도 출근하기 싫다는 얼굴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녀올게.”

“어, 다녀와.”

“아침 차려 뒀으니까 일어나면 먹고….”

“어.”

“혼자라고 식사 거르면 안 돼, 알았지?”

“형, 안 가?”

해영이 잡혔던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문 앞에서 미적거린 지 벌써 몇 분째였다. 이러다 지각하는 건 아닌가 싶어 해영은 얼른 가라는 듯 선우의 등을 떠밀었다. 물론 좀 지각한다 해서 그를 혼낼 사람은 없겠지만.

“…….”

나가려다 말고 문고리를 쥔 채 멈췄던 선우가 다시 휙 몸을 돌렸다. 그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의 문턱을 밟으며 팔을 뻗었다. 윽, 해영은 몸을 쓰러뜨리듯 자신을 안아 오는 선우를 다급하게 받으며 신음을 삼켰다.

“사랑해….”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 그가 속삭였다. 동시에 끌어안은 팔에 꾹 힘이 들어갔다. 귓가를 간지럽히듯 떨어지는 음성은 어딘가 벅찬 숨을 품고 있었다. 심장 가장 아래서부터 차오른 애정이 가슴께가 뻐근해질 정도로 가득 찼다.

해영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응.”

아, 이래서.

“나도.”

이래서 끝내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노선을 뚫고 들어오는 그에게 번번이 무너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참해질 때도…. 차선우가 계속해서 제 모든 마음을 꺼내어 보여 주니까.

어젯밤 선을 넘기로 결심한 건 그래서였다. 윤해영은 미련을 놓지 못해 끌어왔던 궂은 인연을 정리하고, 자신만을 바라봐 온 그의 손을 잡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맞은 얼굴도, 불편한 속도 모두 아프지 않았다.

해영이 팔을 뻗어 제 품으로 파고들듯 안기는 선우를 마주 안았다. 맞닿은 이가 건네는 온기는 속에 남은 서러움을 덮어 두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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