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169/173)

------

저번편의 반응을 보고 여러분들께 실망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실망했어요.

저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겉치레용 수박 겉핡기 식의 대화가 너무나 싫습니다. 뭐, 자리가 어색하거나 친하지 않다거나, 분위기가 다운되어있다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죠.

하지만! 제 소설의 리플만큼은 그런 가식들 다 집어치운 솔직담백한 진실의 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번편에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반응들은 뭡니까!

주로 '작가가 변태다' '예상을 뛰어넘었다' '충격적이다' '점점 다크해진다' 기타 등등, 주로 어느정도 충격을 받았다는 식의 댓글이였는데, 여기서 여러분들께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성직자에게 절망감을 안겨다주려면 당연히 좀비같은 언데드 몬스터로 능욕하는건 기본 상식이잖습니까! 1+1=2 2+2=4! 이런 간단한 산수 문제랑 똑같다구요!

그것도 아니면 성물(십자가라던가 손바닥 크기의 성모 마리아, 혹은 예수님 상이라던가)를 딜도로 사용해서 절정에 보내버리거나! 우와...내가 썼지만 참 교과서적이네...

이런 기본적 상식이 있는데도 놀랍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주는 여러분들의 수박겉핡기식 칭찬에 실망했습니다! 흥쳇퉷!디엔과 모렌카린이 프로렌스의 정신을 붕괴시킬 정도로 조교할 무렵, 훈련을 평소보다 일찍 마친 진칼리는 영웅 바크오의 후계자, 셜리가 감금된 감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 곳은 네게 관심을 끌만한 존재가 이 암컷밖에 없는데?-

"아니, 아무것도."

셜리의 머리위에 앉아 푸른 스파크를 파직파직 뿜어대는 브레인 마우스들 중, 원의 입이 되어준 브레인 마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방해만 하지만 않으면 상관은 없다만.-

데드 스컬 클랜의 간부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다.

딱히 적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룰루랄라 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도 아닌, 무미건조한 관계랄까. 애초에 본인들도 딱히 타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성격들이고.

하지만, 최소한 힘을 합쳐야 할때는 디엔을 중심으로 모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한 관계로 특별히 문제가 생긴적은 없었다.

"……."

진칼리는 동료들을 학살하고 자신들과 함께 싸웠던 트와일라잇 엑스의 오크 전사들을 전멸시킨 셜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듣자하니 아티팩트 등급의 무구로 모든 능력이 증폭되어, 자신들을 공격하던 기이한 기술의 파괴력도 그만큼 비례하여 강해졌겠지만, 중요한것은 검술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봐도 뛰어난 절기라는 것이다.

"까득-"

이건 불공평하다. 누구는 미치도록 수련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강해져가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마나라는 것을 수련하여 신체를 강화시킨다거나 말도 안되는 기술, 마법을 사용하며 이런식의 대량 학살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불공평하다.

차라리 재능이 없어서 배울 수 없다면 부럽고 질투가 생길지언정, 힘의 강약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인간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자신들에겐 단 한번도 주어지지 않는다는것 자체가 불공평하다.

그가 가진 이러한 질투심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부분이지만, 그 질투심도 이제 얼마 안가 곧 사라질 것이다.

'이 암컷도 이제 주군의 노예가 되서 자신의 비기를 스스로 내뱉을테니까.'

진칼리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이 세계를 지배할 정복자이자 영웅이였다.

인간이지만 인간이길 포기하고 모든 종족을 '남성' 과 '암컷' 으로 이등분하며, 남자가 암컷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직접 몸으로 실천해보인 그의 모습은 진칼리에게 신세계이자 이상향,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술의 비전을 누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고 한다. 듣기로는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하지만, 눈 앞의 여기사도 다른 암컷들과 똑같은 결망을 맞이하리라.

아무리 강해봤자 암컷은 암컷. 결국 주군의 허리 아래에 깔려 허덕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기술들을 내뱉겠지.

-음?-

그 때, 원의 입에서 의문성이 흘러나왔다.

-뭐지? 갑자기 의식이 복구되어가고 있잖아?-

"무슨 일이 생긴건가?"

-큭! 이 숫자로는 더이상 버틸수 가……!-

지금까지 순조로웠지만, 갑자기 자신의 힘을 밀어내는 셜리의 의지에게 밀려버린 브레인 마우스들은 힘겨루기를 버티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원의 능력은 브레인 마우스의 숫자에 강해지거나 약해지기 때문에 3~4마리의 브레인 마우스로는 마이스터급 검사의 의지력에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키싯, 여긴 내가 막을테니까 빨리 주군을 불러!"

-미안하다! 조금만 버텨라!-

원은 디엔이 성녀를 조교중인 조교실로 브레인 마우스를 보내는 한편, 현재 각지에서 시각적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분신들을 통해 각 지구의 몬스터들에게 경고를 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던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보, 경계 관련 마법은 원의 존재 하나만으로 필요성이 급감하고 만다.

스릉-

시미터를 뽑아든 진칼리는 다른 동료들이 도달할때까지 셜리를 1분 1초라도 더 오랫동안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지만, 그녀의 압도적인 힘을 겪었기에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아윽……!"

이윽고, 뇌에서 느껴지는 진통에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킨 셜리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이런곳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이런곳에…나는…….'

어째서 이런곳에 있는지 답을 유추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존경하던 선조, 바크오조차 도달하지 못한 심검의 경지에 다다른 오크에게 무참히 패배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윽고, 기척을 느끼고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리자드맨의 모습을 확인하였으나 셜리는 검을 찾으려는 의지조차 갖지 못하였다.

"하…하하……."

이제와서 그런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가문으로부터 영웅 바크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기재라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바깥에선 하급 몬스터에 지나지 않은 오크에게 아티팩트 무구까지 무장했음에도 압도적으로 패배당하고 말았다.

오크 따위에게 패배한 영웅의 후계자.

그 자괴감과 상실감, 그리고 수십년을 수련해도 이길 수 없다는 압도적인 절망감에 셜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의를 모조리 잃어버리고, 간단히 제압한 후에 탈출할 수 있음에도 멍하니 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할 뿐이였다.

최고를 꿈꾸며 앞만보고 달려왔는데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벽을 마주한데다, 어릴때부터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제 2의 바크오가 되야 한다는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아왔기에 그녀가 받은 충격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예정된 미래가 파괴된것만 같은 충격이였다.

"??"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의아한것은 당연히 진칼리였다. 그녀가 가진 신묘한 검술로 공격한다면 한 수도 버틸수 있을까 말까인데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그 모습은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고개를 갸웃거리리라.

"뭐하는거지? 어째서 가만히 있는거냐? 얼마 안있으면 내 동료 수백이 몰려들어 너를 제압할거다. 그 전에 도망쳐야 하지 않나?"

"……."

어째서인지 적의…아니, 뭔가 중요한 부분이 결여된것처럼 멍하니 있는 셜리의 모습에 진칼리는 눈쌀을 찌푸렸다.

자기보다 강한 주제에, 말도 안되는 무지막지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그런 강함을 가진 주제에 저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철컹!

감옥의 철창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들어온 진칼리는 셜리의 멱살을 잡으며 으르릉거렸다.

"지금 그 표정은 뭐냐. 그 눈은 뭐냐고!"

"…죽일려면 죽여……. 귀찮게 굴지 말고……."

이미 죽은 눈동자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진칼리는 거칠게 그녀를 벽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젠장!"

자신은 단 한번의 휘두름으로 패배시키고 방어력이 취약한 동료들을 학살한 암컷이다. 차라리 격렬하게 저항하고 그 결과가 자신의 목숨이라면 그만한 강자니까 당연하다 생각했겠지만, 마치 자신은 약자라는 듯한 저 눈동자는 그런 그녀에게 패배하고 죽은 자들을 무시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르르르--

그 때, 원의 경보를 듣고 무장한 몬스터 경비대와 디엔이 감옥쪽으로 달려왔다.

"진칼리! 그 녀석은 어디에 있나!"

디엔은 상처 하나 없는 진칼리의 모습에 의아함을 품으면서도 셜리의 행방을 물어왔고, 그는 묵묵히 손가락으로 감옥을 가리켰다.

"뭐? 의식이 깨어난지 시간이 꽤 지났을텐데……? 의식이 덜 돌아왔나?"

아직 제정신이 아닐때 진칼리가 기습 공격으로 제압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디엔은 감옥 안을 확인하였고, 그곳에서 죽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셜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진칼리의 몸에는 상처가 없다. 게다가 의식을 차린 여기사 또한 타박상이라던가 상처는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싸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인데?

'뭐지? 어째서 탈출하려 하지 않은거지? 게다가 저 눈빛은 또 뭐야? 저건…….'

모든것을 잃어버린 자의 눈.

현실에서도 저런 눈을 한 사람들을 몇몇 봐왔고, 게임에서는 자신의 군세에 절망한 적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쯧. 완전 폐인이 되어버렸구만."

이렇게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인간은 조교하는 맛도 느낄 수 없다. 아무리 고통을 가해도, 정신적 충격을 가해도, 의지가 없는 인형을 괴롭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반항적인 암컷들을 조교해야만 본인도 머리가 최대로 활성화되어, 여러가지 시츄를 불태우고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조교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인형이나 마찬가지인 암컷은 조교하는 맛이 없다. 물리적인 고통으로 비명을 듣게끔 만들어도 저항력을 가지지 못하였으니 너무나 손쉽게 굴복하고 마니까.

'나참, 하는 수 없지. 일단 비전만 빼낸 다음에 임신 공장으로 보내는 수 밖에.'

원래라면 자신의 노예 콜렉션에 등록될만한 미모와 강함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이 망가졌으니 자신의 콜렉션에 넣기엔 질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도 재능은 있을테니 차기 간부용으로 생산시킬 S등급 공장용 노예임은 분명하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