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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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힘 900대는 헐크와 같다고 했는데 '헐크는 행성도 파괴해요' 라는 리플을 받았습니다.

저는 히어로물에 별 관심이 없어서(제가 좋아하는건 마이너하거나 음울한 세계관이라서...) 수박 겉핡기 수준에 불과하였는데, 영화판 인크레더블 헐크를 보고 '아, 헐크 능력치가 저 정도구나' 라고 생각한게 제가 아는 헐크의 전부였습니다.

리플을 받고 알아보니 지구 2배 크기의 행성을 파괴할 수 있다고 나와있고, 1500억톤의 산을 든적이 있답니다.

...야 이...

힘 900대는 그냥 영화 헐크 수준이라 생각해주세요. 애초에 이렇게 강한줄 알았다면 예시를 다른걸로 들었을텐데 말이죠 -_-;;셜리의 목소이에 각 참모들은 살짝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시선이 집중되었다.

영웅의 후계자라곤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린것은 오우거의 돌격을 막은것 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쿨락이 참모들의 생각을 알게 되었다면 지랄발광 하였겠지만, 너무나 다행히도 이 자리에는 인간들 뿐이였기에 분노에 이성이 잠식당한 짐승이 날뛰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그대가 영웅 바크오의 후계자임은 알겠으나, 전략을 짜는건 영웅의 활약과 다른 차원의 문제요."

파괴냐, 탈취냐 갑론을박을 펼치던 참모들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힘만 강한 무식한 칼잡이를 타이르듯이 얘기하였으나, 이미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오리아 백작은 참모들에게 손을 내저어 입을 막은 후, 셜리에게도 발언권을 주었다.

"한번 말해보게. 군사학을 잘 모르는 이들도 이따금씩 허를 찌르는 말을 하지 않은가?"

참모들을 설득하듯이 말한 그녀의 말이 끝나자 셜리는 요새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의 지형지물을 간략하게 그려넣은 전략지도의 한 쪽을 가리켰다.

"반드시 파괴하느냐, 탈취하느냐 하나를 정하는것보단 두 가지의 가능성을 염두해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곰곰히 생각해봤고, 그 답은 여기인것 같습니다."

"음? 거긴…아……."

요새와 산맥의 길에는 두 개의 숲이 있는데, 하나는 협곡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숲이 하나, 요새에서 30분정도 거리에서 샛길로 빠지면 나오는 중간 크기의 숲이 하나 있다.

그녀가 가리킨 지역은 샛길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는 숲이였다.

일반인이였다면 적이 지나가지도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 지역에 병력을 배치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겠지만, 전술적으로 따져보면 큰 의미가 있었다.

"협공…끄응……."

기간틱 레피드 파이어의 탈취라는 비보에 그것에만 촛점을 맞추느라 바보처럼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참모들은 한 숨을 내쉬며 자책하였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해도, 앞뒤로 공격당한다는 압박감을 받게 되면 생각보다 손쉽게 적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 협공의 묘미.

셜리는 그 숲에 병력을 매복시키고, 신호를 보내 몬스터 부대를 앞뒤로 협공하자는 체스처를 보인 것이다.

덕분에 생각의 폭이 넓어진 참모들은 협공을 통해 상황에 따라 신무기의 파괴, 혹은 탈취한다는 선택의 자유가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협공의 신호, 협공을 위한 부대 편성을 시작하였고, 그동안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지금의 타이밍에선 잘난척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야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셜리는 입을 다물며 참모들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스스로 자중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에 흡족하면서도 그만큼 고생하였다는 반증이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 오리아 백작은 기쁨과 씁쓸함이 반쯤 섞인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양동에 쓰일 병력인데……. 대다수의 정예들은 숲에서 몬스터들의 진군을 막고 있으니 그게 문제입니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몬스터들의 감각에 걸리면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으니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아야 하는데……."

협공을 위한 전술을 짜던 참모들은 이내 한가지 문제에 도착하고 말았다.

현재 요새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병사들이고, 혹시나 모를 기습을 대비하여 본진만 수비할 수 있는 규모의 기사들만 존재한다.

일반병들을 보내자니 협공을 위해선 그만큼 숫자를 많이 보내야만 하고, 기사들로 꾸미자니 본진이 불안 불안하다.

"그 문제는 제가 함께 간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군요."

그 때, 지금껏 조용히 있던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재질로 이루어진, 뛰거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차이나 드레스처럼 옆트임되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하얗고 깨끗한 수녀복을 입은 여성이었다.

단지 신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고 살아가는 수녀들중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참모들은 말을 더듬어가며 그녀의 결정에 반대하였다.

"서…성녀님. 이 작전은 매우 위험합니다. 고귀하신 성녀님께서 상처라도 입으신다면……."

"사악한 몬스터들을 이 땅에서 밀어내고자 용기를 내는 용사들의 목숨을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데 고귀함을 따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윳빛깔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하얀 피부와 왕족이라 해도 믿을 수 있는 기품. 초록색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신의 손이 거쳐졌다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얼굴 라인을 가진 수녀복의 여성은 길게 늘어뜨려진 백금발을 베일이 모두 가리지 못하고 어깨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광명과 새벽의 빛을 관장하며, 어둠을 불태우는 신이자 로카스트에서 가장 성세가 강한 교단중 하나인 리모라의 신도인 그녀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신에게 인정받은 성녀로서, 이야기 책에 나올법한 성녀의 이미지를 모두 간직한 여성이였다.

평민들조차 꺼려하는 하층민들을 돌보고, 가난한 자들에게 무상으로 치료해주며, 신의 의지를 행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떤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곳을 찾아가는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교단에서는 성녀에게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옷을 주거나 어떤식으로든 특별 대우를 해주지만, 그녀는 신의 사랑 앞에서 화려한 옷 따윈 아무런 가치도 없다며 스스로 타 교단의 성녀들처럼 차려입지 않고 수수한 수녀복만을 선호하는 검소한 성격이었다.

프로렌스 알타디움.

사악한 몬스터들을 처단하여 이 땅에 신의 기적을 행하려는 자.

아무리 인간들이 제대로 준비를 했다 해도, 어느정도 부상자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팔다리가 잘려도 일단 가져오기만 하면 다시 되붙일 수 있기에 즉사만 피하면 다시 전선에 복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성녀의 힘이였다.

그렇게 요새에서 안전하게 지내며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던 프로렌스가 요새 밖의 위험천만한 전장으로 나서겠다고 자진한 것이다.

성녀가 가진 신성 주문의 파괴력도 뛰어나기에 전략적으로 보자면 그녀의 힘은 이번 작전에 매우 큰 도움이 될것이 분명하나, 프로렌스는 리모라 교단의 차기 교황 0순위 계승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로카스트 왕국은 리모라 교단의 비난을 감당해야만 했다.

물론, 성녀의 성격상 자신이 상처 입었다고 누구를 비하하거나 따질 일은 없으나, 그건 성녀의 생각일뿐, 교단의 다른 성직자들에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참모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의 참전을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게다가 이번 양동 작전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신무기에 의해 성벽이 초토화될 겁니다. 여러분은 저를 파괴된 성벽으로 물밀듯이 들어올 몬스터들과 대면시킬 생각이신가요?"

자신이 여기서 나서지 않으면 나중엔 더 큰 재앙이 닥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밀자, 참모들은 본능적으로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성은 그녀가 가진 힘이라면 이번 양동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못해 탈환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하지만……."

"만약,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저의 출전을 막겠다면 저는 이대로 왕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이 기름진 땅을 미래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신의 힘으로 사악한 몬스터들을 퇴치하고자 온 것이지 보물처럼 애지중지되기 위해 온게 아니예요."

결국, 초강수를 둔 프로렌스의 주장에 참모들은 그녀를 매복조로 편입시켜야 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셜리도 매복조로 들어가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시 성녀를 보호하라는 부가 임무를 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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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쿨락이 당했는가……."

베쿨락이 당했다는 소식에 잠시 충격을 받은 제카쿰은 자신의 천막에서 가부좌 자세로 앉으며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인간들을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다른 클랜들이 입는 피해가 가중될수록 그들이 인간을 향해 가질 원한은 도가 지나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피와 증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전쟁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다른 몬스터들은 제카쿰이 평화주의자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싸움이 가져오는 파괴와, 그로인해 태어날 새로운 창조적 재생을 통해서 기술이 발전하고 아픈 기억을 가져 과오를 반성하여 '사람' 이라는 존재가 인격적으로 완성되어 갈 수 있다면 더욱 발전된 미래와 평화로 누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질서적 전쟁 신봉자.

그것이 바로 제카쿰이라는 오크의 본질이다.

인격적 발전을 위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전쟁이라면 제카쿰은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무기를 들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이 전쟁은 증오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연쇄적 전쟁에 불과하였다.

'몬스터이기에 죽이고, 죽임 당하니까 증오하여 죽이고, 그 증오로 또다시 죽임을 반복하는 이런 전쟁에 무슨 미래가 있고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어째서 한번만이라도 서로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인간들은 몬스터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과 대화를 거부하고, 몬스터들은 인간들을 비열한 종족이라 매도하며 대화를 거부한다.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서로를 알아가고 싶다는 의지보단, 어떻게 해야 적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만을 거듭하는 이들의 모습에 제카쿰은 자신의 계획을 크게 수정해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어찌됐든간에 그것은 미래의 이야기. 지금은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에 대해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베쿨락이 당할 정도로 인간의 저력은 만만치 않다. 이대로 전쟁이 장기화되면 양쪽의 피해도 급증할테고, 그렇게 된다면 또다시 새로운 세대들도 이종족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물려받게 되겠지. 결국 내가 나서야 할 수 밖에 없는가…….'

어차피 결과가 똑같은 전쟁이라면 조금이라도 땅에 흐르는 피의 양을 줄여야만 한다.

지금껏 이상을 위해 살아왔고, 이상을 위해 십수년간, 단 한번도 싸움을 하지 않았던 제카쿰은 증오와 죽음만을 양산하는 이 전쟁을 끝장내기 위해 그동안 꾸준히 관리만 하고 십수년동안 무언가를 벤적이 없었던 자신의 배틀 액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의 천막밖으로 나섰다.

"대…대족장님!?"

제카쿰이 누군가의 경호를 받아야 할 존재는 아니지만, 다른 클랜들에게 보여주기 형식으로 네이드가 일부러 두 명의 오크 전사를 제카쿰의 천막 앞에 경비를 세워두었는데, 그 경비들은 제카쿰이 도끼를 들고 나오자 경악어린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도끼를 내려놓은지 십수년동안, 손질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자루를 잡지 않았던 그가 전의어린 얼굴로 도끼를 짊어진채 나왔으니 당연히 경악성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예?"

"각 대전사에게 전달해라. 하루동안 요새를 점령하지 못한다면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

"예, 옛!"

자신의 도끼를 가져오면서 전의를 보이자 경비를 서고 있던 오크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전력으로 달려나갔고, 제카쿰은 황량한 바람을 맞이하며 침울함과 회한이 섞인 표정으로 깨끗한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아아……. 행운의 여신이란게 있다면 부디 내가 나서지 않도록 해주시오. 난 학살을 즐기는 취미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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