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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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화하하하핫! 인간 고기다아아아!"

단단한 구리빛 피부의 오우거는 다른 오우거보다 발이 빨랐기에 돌격 신호가 울려퍼지자마자 그 누구보다 선두로 나서서 요새를 향해 돌격해나갔고, 다른 몬스터들은 혹여나 깔려버릴수도 있었기에 의식적으로 피해 오우거는 선두로 나설 수 있었다.

'인간 고기! 배터지게 먹을거야!'

예전에 멋모르고 제로 랜드를 탐험하려던 모험가들을 잡아먹은적이 있었던 오우거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질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별미를 다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돌았는지 거대한 이빨 사이로 점성높은 타액이 질질 흘려졌다.

쿠구구구구---!

"쿠우?"

그 때, 오우거는 자신의 발밑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진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뒤에서 따라오는 녀석들에 의해 만들어진 진동이라 생각했는데 그 정도가 매우 크고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도 지식을 쌓는다던가 교육용으로 쓸때나 효율이 나쁠 뿐이지, 야성적 감각을 더한 본능적인 판단력과 이해력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오우거는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땅밑에서 뭔가가…날뛰고 있다!'

그렇게 뒤늦게나마 멈추려고 몸을 멈추려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땅밑에서 폭약이 터지듯이 폭발하였다!

콰아아앙! 쾅쾅!

마치 다이너마이트처럼 사방팔방에서 폭발음이 퍼져나가자 땅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거대한 구멍이 생기거나 땅이 서로 밀려 엉망진창으로 엇갈리는데다 그 위에 있던 몬스터들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폭발의 영향으로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머리부터 떨어져 죽거나 땅밑에서 터진 폭발에 의해 몸도 함께 터져나가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혀나갔다.

오오오오---!

게다가 터져나간 땅속에서 흑갈색의 흙이나 돌맹이같은 것들이 하나로 뭉쳐져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바위들이 튀어나오더니 살아남은 몬스터들을 공격하는게 아닌가?

"크와아악!? 이건 뭐냐!"

"내 다리…다리가아아!"

사방에서 신체의 일부분이 터져나가 울부짖는 비명 소리와 바위 인간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생겨나는 고함 소리가 그야말로 혼란속의 난장판과 같았다.

"과연. 첼카루의 말대로군."

일부러 트와일라잇 엑스 클랜의 병력을 출동시키지 않은 네이드는 첼카루가 알린 그대로 인간들이 '재미난' 수를 사용하자 입가에 미소를 드리며 느긋하게 팔짱을 끼었다.

-인간들은 전장이 될 땅에 땅의 정령들을 가둬뒀다. 억눌려진 자연의 존재는 억제가 풀려나면 당연히 모든 존재들을 향해 분노할것이고 그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분노를 토해내겠지. 난 알려줬으니 이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든지 그건 네 마음이다.-

자연의 정령들은 모두 자연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존재.

정령들마다 성향이 있어 건들지만 않으면 호의를 보이거나 무관심으로 지나치지만, 누군가가 억압하려 한다면 자유를 사랑하는 자연의 정령들은 그 순간부터 분노를 토해내는 파괴자로 돌변하게 된다.

'쿡쿡쿡. 어차피 인간이건 다른 클랜 놈들이건 족장님의 이상에 저항하는 어리석은 자들 뿐. 자아, 모두 서로 물어뜯고 죽어라.'

몬스터들은 인간들과 손을 잡으려는 제카쿰의 이상을 겁쟁이, 혹은 비겁자의 논리로 폄하하고 인간들은 호의어린 제카쿰의 손을 거부하였다.

네이드로선 감히 자신이 존경하는 제카쿰의 이상에 반발하는 놈들이 서로를 죽여대는 모습이 너무나도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네이드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는 전사들을 정돈시켰고, 다른 오크 클랜과 달리 엄격한 군법과 체계적인 훈련으로 단련된 트와일라잇 엑스 클랜의 오크들은 빠르게 마음을 정리하며 네이드의 수족처럼 빠르게 진정되어갔다.

"카하하하핫! 이거 최고군! 멍청한 머저리들은 다 뒈져버려라!"

한편, 후방에서 조용히 인간들이 날려버릴 기회를 기다리던 디엔은 앞으로 자신의 적이 될 놈들이 알아서 뒈져나가는 꼬라지를 너무나도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간들이 어떤 계책을 사용할 것이라 생각한 머리좋은 클랜들 몇몇과 미리 땅속에 정령들이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해낸 클랜들도 씨익 웃으며 알아서 죽어나가는 미래의 라이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들도 대부분이 디엔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인간들의 책략을 다른 클랜들에게 알리기 보단 이기주의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세력만을 보존한 것이다.

이대로 폭발 범위에 뒤섞인 몬스터들이 다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디엔이였지만, 제로 랜드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들의 저력은 생각보다 강력하였다.

"죽여버려어어어!"

"인간 놈들을 족쳐라!"

"쿠아아아아!"

폭발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들의 숫자는 의외로 많았고,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땅의 정령들의 공격에 당혹해 하였으나 이내 혼란을 잠재우고 땅의 정령들을 하나둘씩 부숴나갔다.

머리는 나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클랜들은 각자 엄청난 전투를 겪으며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이니 접근전이라면 오히려 좋아하는 족속들인 만큼, 전장을 혼란대신 전투의 광기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전의가 들끓을 무렵, 성벽 위에서 수백발의 화살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더니, 깨끗한 포물선을 그리고 몬스터들과 땅의 정령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전장 한 가운대로 정확하게 내리꽂혔다.

슈슈슉---!

푹! 푸푹! 땡!

"끄아아아!"

"꺼헉!"

현재 몬스터들이 전투를 벌이는 지역과 요새의 거리는 약 500m.

일반적인 화살로는 닿지 않는 거리인 만큼 특수 제작한 활과 화살이 사용됐음은 분명하지만 디엔의 눈을 끄는 것은 활의 사정거리였다.

'마법 활인가? 현대식 돌격 소총에 버금가는 사정거린데?'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땅의 정령들에겐 그다지 바위 일부분이 뚫려지지만 돌로 이루어진 정령들이였기에 큰 피해는 존재하지 않았고, 단단하긴 해도 일단 살과 피부로 이루어진 생명체인 몬스터들은 상공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화살에 꿰뚫리며 허망하게 죽어나갔다.

참고로 롱보우로 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떨어진다면 풀 플레이트도 뚫을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땅의 정령들이 몬스터들의 진입을 막고 요새에서 특수 제작한 활로 사격을 가하니 몬스터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나가면서 요새에 있던 인간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였으나, 그들은 아직 전쟁은 시작조차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현재 땅의 정령들과 싸우고 있는 몬스터 클랜들은 모두 중소 클랜이나 생각없이 행동하는 소수의 대형 클랜이 전부였을 뿐, 진정한 실력파 클랜들은 단 한 곳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후. 인간들의 실력은 대충 확인했군. 머저리들도 알아서 나가 죽어주고 말이야.'

'이번 인간 군대는 준비를 확실히 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좀 걸리겠는걸.'

머리가 있는 클랜장들은 뒤에서 냉정하게 계산하며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질것 같다는 것을 깨닫았다.

결국, 몬스터들은 화살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싸워대는 땅의 정령들과 요새 위쪽에서 계속해서 쏘아대는 궁병들의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분노를 모조리 토해낸 땅의 정령들은 뒤따라 추격하려다가 대기하고 있던 정령사들과 마법사들에 의해 몸을 유지하던 마나가 끊겨 정령들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바위나 돌맹이들이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전쟁의 첫 날이 시작되고 빠르게 져물어갔다.쾅!

인간들이 요새 안쪽에서 환호를 하며 승전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때, 소위 말하는 '닥돌' 하다가 큰 코 다친 족장들은 족장 회의가 일어나자마자 의자를 걷어차며 언성을 높여나갔다.

"이 비겁한 새끼들!"

"분명히 다 함께 돌격하기로 결정했잖아!"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한 족장들은 돌격하지 않은 족장들을 향해 언성을 높였지만, 그들은 뉘집 개가 짓냐는 듯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무식한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전략이란건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하는거지."

"애초에 그런 머리가 있는지도 모르겠구만. 크하하하하핫!"

우직하게 족장 회의를 믿고 나섰던 클랜장들은 뒤로 빠져버린 클랜장들에게 분노를 터트리면서 감정 싸움이 시작되려 하였으나, 제카쿰은 누구의 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분명 족장 회의의 내용대로 돌격하지 않은 클랜들의 행태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제카쿰도 그들의 행동에 눈쌀이 찌푸려졌으나, 이렇게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클랜도 족장 회의대로 돌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돌격하다 피해본 클랜장들이 뒤에서 머리 쓴 클랜들을 향해 비난하였지만, 4대 클랜 만큼은 힘의 차이가 너무 나다보니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하였으나 속으론 이상론을 펼치는 제카쿰도 결국 자신들과 똑같은 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섰다간 약속된 학살극이 펼쳐질것이 분명하기에 자신들에게 검을 겨눈 적이라 할지언정 전사로서의 자긍심만은 지켜주고 싶었던 그는 네이드에게 병력의 통제권을 넘겨준 것을 후회하였다.

'네이드…어째서냐……. 어째서 이제와 이런 짓을 하는거지……?'

아직 자식이 없는 제카쿰은 네이드를 양자로 받아들였으나 종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차별없이 친아들처럼 대해주었고, 네이드도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며 뛰어난 전사이자 지도자로서 성장해나갔다.

그런데 자신에게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병력을 뒤로 물린 네이드의 모습에 자식의 뒤늦은 반항기를 겪은 부모처럼 충격을 받은 그는 다른 클랜장들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오해할지 예상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문제로 머리속이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네이드는 존경하는 아버지이자 클랜장님에게 모욕을 준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의 이상을 비웃는 자들 모두 벌을 내리고자 벌인 짓이였지만, 제카쿰이 그런 일까지 눈치채기엔 무리가 있었다.

"빌어먹을! 우린 이딴 전쟁 집어치우겠어!"

"크크크. 인간들이 눈 앞에 있는데 자신의 세력으로 돌아가겠다는 클랜장이라…이거 비겁하게 우리들의 뒤를 치겠다는 속셈이라고 보기엔 너무 노골적인데?"

"우린 너희들처럼 비겁한 짓거린 하지 않아! 대신! 인간들이 돌아간 후에 이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제카쿰이 아들의 뒤늦은 반항기에 고민할때, 피해를 받은 클랜장들은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음을 깨닫았고, 클랜장들의 이탈을 눈 뜨고 지켜봐야했다.

종족간의 화합을 중요시 여기는 그는 작금의 사태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답답해졌지만,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 입도 열지 못한 제카쿰은 이탈을 요청한 클랜장들이 모두 사라지자 남은 이들도 하나둘씩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홀로 천막에 남은 제카쿰은 네이드에게 호되게 야단을 쳐야 할지, 아니면 사정을 물어보고 이유라도 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호되게 야단치면 너무 폭력적으로 보이고, 사정의 설명을 듣기엔 너무나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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