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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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약간 초췌해보이는 루이네는 모든 조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일리시드라는 예상외의 적에 의해 2조의 멤버들이 전멸한 것은 상당히 뼈아픈 손실이지만, 아직 내겐 너희들이 남아있다. 이번 기회를 삼아 나 또한 자기 수련에 박차를 가하려 하고 수련 시간을 대폭 늘리기로 하였으니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알겠나?"

"예!"

일리시드가 숨겨둔 마법 아이템을 통해 부하들을 강화시킨 루이네는 지금 남아있는 이들을 소수 정예화 시키는 것만이 앞으로 있을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부하들의 여전히 기운찬 목소리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의 적성 조직, '서클' 에서 협조 공문이 도착하였다."

"예?"

웅성웅성-

조직원들은 '적성 조직의 협조 공문' 이라는데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만나기만 하면 일단 칼부림치는 적들이 갑자기 손을 내미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손을 흔들어 조직원들을 조용히 시키고 공문의 내용을 말하자마자 부하들이 당황하기도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인지 안다. 함정, 혹은 계략.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여 다른 조직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였고, 서클과 동맹, 친분을 맺고 있는 다른 조직에서도 이러한 공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우리에게까지 협조 공문이 왔다는 것은…다른 조직들이 보낸 '협조인' 이 모두 사망하였다는 겁니까?"

"그렇다. 이 문제로 서클의 동맹 조직까지 등을 돌리기 일보 직전이라는군. 계략이나 함정이 아닐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

한 조직원이 손을 들어 물어오자 루이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기에 대답해주며 함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물론, 강제성은 없다. 오로지 순수한 지원자만 뽑을 생각이다. 생각이 있다면 손을 들도록."

어떠한 경우에도 겁에 질리거나 두려워한 적이 거의 없는 블러디 바이퍼의 용맹한 조직원들이라 해도 이번 일은 조금 꺼려졌다.

그도 그럴것이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모르고 만족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죽이겠다는데 누가 자원을 하려…….

"제가 해보겠습니다."

…고 했다.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에 모든 조직원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지인 뒤쪽으로 몰렸다.

"디엔? 네가 나가겠다고?"

루이네는 긴장감없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있는 디엔의 모습에 약간 놀란듯한 눈초리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본 디엔은 이런 불확실한 일에 가벼이 목숨을 던지는 녀석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엔은 디엔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독특한 마인드의 소유자라고 하잖아? 나는 현대인이니까 마인드가 중세 시대라는 틀에 박혀있는 다른 녀석들과 질적으로 틀리단 말씀. 이건 플레이어를 위한 이벤트가 틀림없어!'

단순히 적대 조직의 조직원 하나를 줄이려는 하찮은 계략 따위일 확률이 더 낮아 보인 디엔은 자신의 특이한 마인드라면 식은죽 먹듯이 간단히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두둑한 보상을 챙길 수 있다고 여겼다.

"다시 한번 묻겠다. 정정할 수 있는 지금 당장 뿐이다. 정말로 자원하겠는가?"

"예. 지금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는 겁니까?"

"지금 당장이다. 네가 죽으면 장례식은 후하게 해주마."

"지금 당장 가겠는건 알고 있으니……."

슈우웅!

루이네가 재차 확인하자, 그녀의 손에 들린 공문 뒤쪽이 번쩍이더니 디엔과 함께 사라졌다.

공문 뒤쪽은 마법 스크롤 형식으로 주문이 담겨져 있어 자신이 가겠다는 대답을 두 번 하면 그와 함께 텔레포트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급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란 조직원들과 달리 약간 아쉽다는 듯한 표정의 루이네와 이빨 안쪽에 박힌 가시를 빼낸것처럼 시원한 표정을 지어보인 로로나의 시선이 디엔이 있었던 자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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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친구 녀석들이 무슨 의도로 시대를 잘 못 태어났냐는 말은 상당히 오래전 얘기지만 그 이후에 이런저런일이 생겨서 물어보는걸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옛날 얘기좀 하다가 은근슬쩍 물어봤는데...

"그거? 넌 중세 시대 암흑기에 태어났으면 고문관이거나 변명도 못할 악마의 자식으로서 역사에 이름이 남겨진다는 말이였..."

간만에 뒷산에 올라가니 힘들군요. 배낭 여행을 해도 왠만하면 산은 올라가지 맙시다. 그거 꽤 힘든 일이더라구요."야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이런거였다면 진작에 설명을 했어야 할거 아냐! 나 심장 안좋은거 시험하냐! 나처럼 여린 사람이 놀라면 심장에 무리 온다고!"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 할지 모를 디엔의 욕설은 뒤로하고 상황을 설명하자면 협조 공문 뒤면에 쓰여있던 텔레포트 마법으로 인해 단번에 서클의 본거지에 도착한 디엔은 상황 설명을 듣지 못하여 당황하며 보이는대로 주변을 공격하였고, 검은 갑옷을 입은 이들이 덮쳐 손이 구속되고 눈가리개 같은것으로 인해 두 눈이 완전히 가려지고 말았다.

뒤늦게서야 그 곳을 관리하던 흑마법사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하였으나, 디엔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것이다.

"어이, 짜증나게 굴지마. 시체 해부해서 개새끼들에게 뿌려주기 전에."

상황을 설명한 흑마법사(당연히 얼굴이 가려져 얼굴은 모른다)가 아직 방어구를 지급받지 못해 평상복 차림인 디엔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협박하였으나, 그는 히죽 웃으며 그녀를 비웃었다.

"니 따위가? 난 너희들이 원하던 '지원자' 라고? 니가 내 시체를 개새끼에게 뿌려주면 그 옆자리는 네 고정석일텐데?"

"이 자식이……!"

흑마법사는 이를 바득 바득 갈았지만, 디엔이 말한대로였다.

협조 공문 뒤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린 사람은 지원자를 요청한 '그녀' 였기에 익숙한 마력의 파동을 느끼고 자신을 찾아왔는데 '짜증나게 굴어서 개먹이로 줬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자신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몸이 되어 고통을 느끼며 개먹이가 될테니 말이다.

'크크큭! 뭔지 몰라도 상당히 급한 일인가 보군.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대꾸를 못하는걸 보니.'

어느정도 진정되면서 머리가 굴려지게 된 디엔은 대체 무슨 일로 적성 조직에게 협조를 요청했는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거만 말해주쇼. 대체 무슨 일을 도우라고 부른거요?"

"그건 '그 분' 께 직접 들으면 된다."

"흐음…상당한 기밀인듯 하구만. 혹시 그 일을 도와줘서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는데 기밀 유지랍시고 날 죽이고 조직에게 도움이 안되서 죽였다고 구라 치는건 아니겠지?"

"우리를 그딴 자존심도 없는 3류로 보는거냐!?"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느정도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뽑아낸 디엔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을때, 흑마법사는 경박함과 냉정, 침착함을 겸비한 그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 눈치였다.

말투는 3류 건달배인데 손이 결박당하고 서클 내부의 기밀 유지를 위해 두 눈을 가렸음에도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정보를 모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평소 사용하던 오감중 하나가 사라지기만 해도 극도의 공포를 겪게 된다.

상식적으로 제압당한 상태에서 두 눈을 완벽하게 가려져 상대방의 의도로 끌려다니는데 일말의 불안감조차 느끼지 않을리가 없기에 흑마법사는 이번엔 정말 제대로 지원자가 온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디엔의 행동이 밉살스럽긴 해도 '그녀' 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데,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준다면 자신같은 중하급 마법사들도 숨 소리를 낼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녀' 는 계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으라고 밑의 마법사들을 갈구는데 다행히도 다른 조직원들처럼 죽이지는 않지만, '그녀' 가 분노할때 자신들을 압박하는 기세가 엄청나기에 몇 달간 그 기세에 시달리다보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디엔도 그녀의 답변에 나름 안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소설에 나오는 흑마법사들은 잔인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배반은 식후운동, 토사구팽 자격증을 기본으로 취득한 종자들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만한 조직이 거짓말과 배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보기엔 불가능하리라. 아무리 힘이 있다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어느정도 걸어나가자, 그를 안내했던 흑마법사는 디엔의 눈가리개와 구속을 풀어주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제와서 이런말하기 좀 뭐하지만, 부디 살아오길 기원하지."

그가 살아돌아온다면 자신들도 더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흑마법사는 진심을 담아 기도해주며 검은 갑옷의 기사들을 이끌며 퇴장하였다.

자신이 왔던 길로 생각되는 길을 보니 T 자 형의 갈래길 끝부분에 자신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성질이 고약한지 몰라도 상당히 긴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앞의 존재하는 것 외의 다른 연구실로 생각되는 문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디엔은 왠만한 가구도 널널하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힘껏 열어 안으로 들어가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시체가 보이지 않지만, 벽에 남아있는 살점 파편이 군대군대 남아있고 피 얼룩이 사방에 묻어져 나와 있는걸로 보아 청소를 한지 얼마 안 된듯 싶었다.

"여기선 블랙 로즈 진액과 오우거의 힘줄을 넣어 파괴력을 강화시킬까? 아냐아냐, 트롤의 심장을 넣어 재생력을 강화시키는게 난전에 강할것 같아."

형체를 알 수 없는 '살덩어리' 를 곁에 두고 실험용 비커에 이것저것 넣고 있는 검은 로브의 여성은 디엔의 존재를 느끼지 않았는지 일반인의 두배 되는 빠른 속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재생력을 강화시키고 마법 저항력을 올리는게 좋겠어. 잠깐, 재생력 때문에 흥분제가 빠르게 분해되면 어쩌지? 이건 조금 조율해야겠는데?"

"어…저기요?"

"시끄러워!"

콰아앙!

디엔이 옆에서 뭐라 한마디를 조용히 말하자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두르자 검은 구체가 디엔의 얼굴 옆을 빠르게 지나치며 그가 등지고 있던 벽을 파괴하였다.

"흥분제를 포기해야 하나? 어차피 심령으로 이어져 있으니…젠장! 이 부분만 해결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완성할 수 있는데!"

여성은 분에 못 이기듯이 책상을 쿵쿵 때리며 히스테릭한 신경질을 부렸고, 이내 크게 한 숨을 쉬더니 뒤늦게 디엔을 발견하였다.

"넌 뭐지? 언제 들어온거야?"

"…좀 됐는뎁쇼."

아무래도 방금전에 날린 마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인지 아예 기억을 못하는 듯한 말투였기에 디엔은 괜한 부분에서 딴지를 걸어 허무하게 게임 오버 되느니 조용히 넘어가기로 하였다.

"남자? 내 실험용으로 보낸건가? 아냐, 그렇것 치곤 차림이 괜찮은데. 너 혹시 블러디 바이퍼에서 온 놈이냐?"

"예. 블러디 바이퍼의 바이퍼 팽, 디엔입니다."

공손하게 말하지 않으면 왠지 게임 오버 화면을 볼 것같았기에 되도록 공손하게 대답한 디엔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그래? 그럼 대략적인건 알고 있겠지?"

"자세한건 여기서 들으면 된다고 했습니다만?"

"그래그래, 그렇지.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들어. 내가 원하는 답변을 준다면 네가 원하는건 뭐든지 주겠어. 자세하게 설명할테니 귀 파고 똑똑히 들으란 말이야!"

스스로 흥분하는 타입인지 말하다가 버럭 소리를 지른 여성이였지만, 디엔은 내심 깜짝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실험을 한 이유는 어떤 책에서 시작되었어. 그냥 3류 영웅 소설물이였지. 제목을 기억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검은 로브를 푹 둘러쓰고 있는 여성은 가만히 생각하는 타입이 아닌지 계속해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입을 열었다.

"그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영웅과 마왕이 싸우다가 영웅이 사랑하는 사람이 쓰러지자 영웅에게 기적과도 힘이 솟아나 마왕을 퇴치한다는 것이야. 난 여기서 생각했지. 어떻게 이렇게 힘의 차이가 확연한데 겨우 사랑하는 지인이 죽었다고 마왕을 이기는 걸까?"

여성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나는 본거야. 간만에 공기좀 씌고 싶어서 별다른 특징없는 도시에 갔는데 어떤 마부가 급하게 마차를 몰다가 실수로 마차가 전복되면서 어떤 아이가 그 밑에 깔려버렸어. 그 때, 그 아이의 어미 되는 어미가 달려오더니 힘이 강한 전사들도 들기 어려운 마차를 번쩍 들어 아이를 구출하였어! 대신 그 어미는 손가락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었지만!"

여성은 흥분한듯 팔을 휘두르며 더더욱 큰 목소리로 떠벌렸다.

"거기서 나는 깨달은거야!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는 절박한 감정이 왠만한 전사들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쏟아낼 수 있다고! 미약한 인간의 육신으로 그런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내가 만든 키메라의 육체를 지니고 있다면 최강의 병기가 태어나지 않을까!"

여성은 더더욱 흥분하며 외쳤다.

"지금까지 키메라 제작의 고수들도 간과했던거지! 마음의 힘! 단지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만 먹어도 인간은 수십, 수백배의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키메라들에게 '감정' 을 완전히 배제시킨거야! 그래서 나는 이 '마음' 을 키메라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연구해서 이 결과물을 만들어 냈어!"

그리고선 여성은 수수께끼의 '고깃덩어리' 를 향해 가리켰다.

"일어나라, 퓨리!"

퓨리라 불린 살덩어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퓨리라 불린 미완성의 키메라는 그야말로 '키메라 답다' 라는 듯한 모습이였다.

상체는 피부는 녹였다가 딱딱하게 굳어져 마치 슬라임화가 되다 만 인간의 모습처럼 보였고, 두 팔과 다리는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든 굵은 힘줄이 세차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피부를 내가 만든 약물로 강화시켜 피부처럼 단단해졌지! 거기다가 팔과 다리에 오우거의 근육과 핏줄을 집어넣어 겉보기만 인간일 뿐, 축소한 오우거라 할 정도야! 거기다가 심장에 트롤의 심장과 피를 공급했으니 '키메라의 정석' 이라 부를 수 있어!"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만든 키메라는 키메라의 정석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근력 강화를 위한 오우거, 재생력을 위한 트롤의 심장은 키메라를 제조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기본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키메라는 키메라 자체로는 중하위 수준이야! 하지만! 여기에 내가 원하는 '마음' 을 부여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최강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 이라는 겁니까?"

흥미있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디엔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집어 질문하자 더더욱 흥분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 키메라의 특징은 '마음' 이야!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때 느낄 '분노' 만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 바로 이 놈! 이 놈과 퓨리는 심령이 이어져 있도록 만들어서 이 놈이 죽으면 이 키메라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죽었다는데 분노를 느끼고 적을 공격하는 구조야!"

그녀가 든 것은 사람 머리통만한 하얀색 몸체에 짧막한 두 다리와 날카로운 송곳니가 번뜩이며 서려있는 작은 괴물이였다.

"이 녀석은 심령을 이은 사람의 머리통이야. 이 머리통이 다치거나 부서진다면 퓨리는 분노하며 적을 분쇄하는거지!"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임이 분명했지만, 정말로 머리통인줄은 몰랐던 디엔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거야! 퓨리가 이 머리통의 주인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면 퓨리는 이 녀석이 죽어도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거지! 그래서 나는 다른 놈들에게 물어봤어! 상대방이 죽으면 반드시 분노할 수 있는 감정이 무엇이냐고! 어떤 놈들은 우정, 어떤 놈들은 사랑, 어떤 녀석은 군신 관계라고 하더군! 그래서 곧바로 우정, 사랑, 군신 관계인 놈들은 잡아들여 실험해봤지!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어!"

여성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바닥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발길질을 찼다.

"그것은 한 쪽만 일방적일 때의 경우인 거야! 예를 들어 사랑부분에서 여자와 남자가 사랑을 했는데 남자가 여자의 조건만 보고 겉만 사랑한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존재해! 우정과 군신 관계 또한 마찬가지야! 상대방의 조건이나 능력을 계산한 거짓 우정이나 군신 관계라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치 못한거지!"

그 때, 여성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라왔다. 조금이라도 허튼 소리를 지껄이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다분이 보일 정도로.

"이 키메라를 만드는데 어느쪽이 어느쪽에게 우정, 사랑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정밀하게 뒷 조사한다는건 너무나도 큰 시간낭비야. 그런데도 다른 놈들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넘지 못하는 감정들만 내뱉고 있단 말이야! 자, 말해! 반드시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감정' 을! 미리 말해두는데 사랑이나 우정 따위를 지껄여대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평생 고통스럽게 만들겠어!"

마음에 드는 결과가 아닐때는 피 곤죽으로 말하겠다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잠잠히 듣고만 있던 디엔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져갔다.

분노? 슬픔? 후회? 아니, 그것은 웃음이였다.

"푸…푸하하하하하핫! 크크크큭! 이거 걸작이구만! 이런 간단한 답도 몰라서 낑낑대고 있었단 말이요? 아, 배아파 미치겠네. 푸크크큭!"

"뭐…뭣? 넌 알고 있단 말이냐!?"

여성은 디엔의 웃음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실성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니 이번이야말로 수수께끼 같았던 문제의 출구를 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던 디엔은 그렇게 미친듯이 더 웃다가 호흡을 진정시키고 확고함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똑똑히 들으쇼. 당신이 그렇게 간절히 찾던 그 '감정' 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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