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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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내가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아...이 녀석은 혼돈적 - 중립이 아니라 혼돈적 - 악 이여야 정상이었는데... 뭐, 어차피 주인공의 성향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일지의 말투니까 상관 없으려나?

쓸때는 '오~ 이거 좀 잔인하다~' 라면서 저 스스로 감탄사를 마구 날렸는데 쓰고 나니 장황하게 경고할 것에 비해 '좀 약한가?' 라는 생각도 들고...어쨌든 판단은 독자분들께 맡기겠습니다."자, 이제 끝났습니다. 여러분도 들었을테니 굳이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되겠…큭!"

얼굴의 피를 닦아내며 웃는 낯으로 이리스들을 향해 말을 건냈지만, 그녀의 주먹에 얼굴이 가격당해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이 자식! 해도 될 일과 안되는 일이 있는 법이야!"

"퉷. 뭔 헛소리들인지. 우리들은 소위 말하는 '악의 조직' 의 일원이란 말입니다. 이만한 나라의 암흑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인신매매, 살해, 강도 같은 불법적이며 상대방의 생각, 고통 따위는 무시하며 밥먹듯이 행해오지 않았습니까? 뒷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조직에 여러분처럼 마음 여린 휴머니스트가 있다는게 참 신기할 따름이군요."

그의 말대로 그녀들은 무고하고 힘없는 이들의 피눈물을 받아먹으며 살아왔다. 게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이런 조직에 들어오고자 하는 순간부터 '선' 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악' 으로서의 마음 가짐은 충분한 그녀들이었지만, 정도를 벗어난 이런 잔인한 행위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성격 파탄자들은 아니었다.

설령 다른 지부나 다른 조의 조원이 그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확실한 것은 이런 종류의 미친놈은 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주먹에 맞아 쓰러진채 침을 뱉으며 여전히 도발적인 표정을 지우지 못하자 이리스는 다시 한번 그를 향해 경고하기 시작했다.

"뒷세계에는 뒷세계만의 법이 있다. 세월이 흘러 그 법도 바뀌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법이 하나 있지. 그것은 제어가 안 되는 미친개는 다함께 힘을 합쳐 후한없이 처리해야만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는 거다. 뒷세계라고 모든 종류의 '악' 이 허용되는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 미친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뒷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사악한 행위들과 무절제한 혼돈만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암흑계를 향한 환상으로서, 오히려 빛의 세계보다 더욱 엄격하고 자신들만의 법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정도를 넘지 않는 절제선을 정해두는 질서적으로 정리된 혼돈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오늘날에 TV에서 나오는 살인마들중 전직 조폭이나 암흑계에 몸을 담갔던 인물들이 살인을 저질러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러니한 말이긴 하지만, 더러운 곳에 인생을 썩히다보니 무기를 휘둘러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명확하게 몸으로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곳에 서식하는 그들이 등장하는 경우는 흔히들 잘 알고 있는 사채, 인신매매, 밀수 등이지 무차별 살인을 통해 드러나는 일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다. 굳이 예외를 따지자면 테러리스트 정도랄까.

물론, 현재 루나틱 돈은 인권이 거의 없는 관계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항쟁들이 자주 일어나지만, 그 영향이 빛의 세계쪽에 최대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현대와 동일하다.

암흑계가 빛쪽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순간, 매우 부패하거나 무식한 영주가 아닌 한에는 자신의 영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깨닫고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며 강제 진압을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뒷세계에서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손 쳐도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고 공격해오는 무수한 병사들과 기사들을 감당할 수 있을리 만무. 어찌어찌 막아낸다 쳐도 정규군을 공격하였으니 반란에 준하는 죄명이 씌어져 국가 단위로 몰려오는 병사들에 의해 갈갈이 찢겨져 나갈테니 미치지 않고서는 정규군을 공격한다는 미친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암흑계의 주민인 이리스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미친개인 디엔을 향해 더이상 말도 섞기 싫다는 듯이 자신의 조원들을 이끌고 뒷정리를 하기 시작하였고, 6조의 조원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은 그는 여전히 주늑 들지 않는 기세와 함께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뭐, 서로의 가치관이 다른것 같으니 토론을 해 봤자 피차간 입만 아프겠죠. 어쨌든 가보의 위치는 알게 되었으니 제 일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는 먼저 돌아가 보고해두지요."

그녀들도 그와 함께 일한다는게 꺼려지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된 눈빛으로 배웅(?) 하였고, 밖으로 나오면서 턱을 어루만진 디엔은 혀를 차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쯧. 저기나 여기나 '법' 에 얽매이긴 매한가지로군.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전까진 아무래도 '조용히' 살아야겠는걸."

자신의 행위에 긍정은 안할거라곤 예상했지만 이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일줄은 몰랐기에 앞으로 주의해서 행동하기로 결정하며 아려오는 턱을 붙잡고 본부로 돌아가 자신의 성공을 보고하고 개인 시간을 얻고자 빠르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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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를 통한 협박에서 많은 부분을 축소하고 결과만을 보고한 디엔이였지만, 루이네는 이리스들이 지하수로에서 가보를 가져와야만 임무가 성공된다며 물건이 기다릴때까지 기다리라고 일축하였다.

카일런이 거짓말을 치지 않았다면 금방 찾아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그는 하루가 지났을땐 지하수로가 상당히 넓어서 헤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흘이 지나자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하였고 그 직감은 루이네의 호출과 함께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별로 기쁘진 않지만.

"내가 널 왜 불렀는지는 알고 있겠지."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그렇다."

자신이 직접 들은 정보였기에 서류를 보고 기억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어떻게 일이 틀어졌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직접 조사해보니 사흘전, 6조가 지하수로에 들어간 것은 확실하다. 그 후의 종적은 밝혀지지 않아 지하수로에서 뭔가 일이 생겼다고 판단하여 이 도시의 '협조자' 에게 부탁하여 그 곳을 탐색하도록 해보니 예상외의 트러블이 생겨나있더군."

"어째 좋은 얘긴 아닌것 같네요."

"가스트를 필두로 한 언데드 무리가 지하수로 일부를 점령했다. 거기다가 자세하게 확인되진 못하였으나 슬라임 무리까지 발견되었다 하더군."

몬스터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디엔이였지만, 어째서인지 표정은 '그래서?' 라는 의문이 잔뜩 섞여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자신이 한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한것이라 생각한 루이네는 그를 불러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너는 알아서 지하수로에 있는 목표물, 테너 가문의 가보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가져오도록."

"예? 자…잠깐만요. 제가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어째서라니? 나는 네게 이 일의 책임자를 맡기지 않았나?"

"하, 하지만! 저는 가보의 위치를 알아내는데……!"

"너는 책임자라는 자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것 같군. 최소한 이리스들과 함께 따라가 너의 눈으로 적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고하였다면 거기에 걸맞는 지원을 준비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자신의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사흘이라는 헛된 시간을 보냈어. 너의 실수는 너의 손으로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더이상 반론을 폈다간 목이 베일것이라는 위기감이 디엔의 목덜미를 쿡쿡 찔러보였고,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서 지하수로에 있는 몬스터 무리를 퇴치하며 가보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자신에게 호의가 있다 하더라도 공과 사는 뚜렷한 루이네의 성격이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해주었으나, 그녀의 그러한 성격으로 인해 이번엔 사지로 향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지원은 포션의 보급과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다. 포션은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놓을테니 몬스터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디엔에게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가장 요주의해야 할 몬스터들에 대해서만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책임을 지라곤 했지만 몬스터에 대한 정보 없이 보내는 것은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지하수로를 점령한 언데드 무리의 리더인 가스트는 구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보다 상위의 몬스터다.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데몬들의 수하이기 때문에 평범한 시체에서 만들어지는 구울이나 좀비보단 당연히 상위의 몬스터일 수 밖에. 구울은 주로 근접 공격을 하지만, 공격한 상대를 마비시키는 독을 사용하기 때문에 요주의 해야 한다. 그리고 가스트는 3m 반경으로 매우 역겨운 냄새를 풍기니 쉽게 그 존재를 알 수 있을거다."

"으음……."

가스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디엔은 생각보다 상대하기 꺼림칙한 상대임을 직감하였으나, 어차피 가보만 챙겨오면 끝이기 때문에 혼자서 그것들을 상대할 생각따윈 추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스트에 대한 설명은 기억해 둬야겠군.'

그녀의 설명을 핵심 부분만 기억해내고 있을때, 루이네는 다음 몬스터를 설명하였다.

"구울은 가스트의 마이너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냄새가 덜 역겹다는 정도랄까. 좀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건 슬라임이다."

"슬라임이요? 슬라임은 그냥 누구나 간단히 죽일 수 있는 하급 몬스터가 아닌가요?"

"…누구한테 그런 헛소리를 들었는진 모르겠다만 죽고싶지 않다면 내 말을 잘 들어라. 나에게 슬라임들과 싸우라고 하면 솔직한 심정으론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니까."

"!?"

자신이 알고 있는 슬라임이란 판타지 세계에 막 입문한 주인공들을 위해 경험치를 주는 하급 몬스터에 불과하였기에 루이네의 발언은 깜짝 놀랄만 했다.

이때다 싶으면 후퇴하는 효율적인 성격인건 알고는 있지만 싸우지도 않고 도망부터 치고 싶다고 하니 루이네의 뛰어난 능력과 담력을 알고 있는 그로선 믿기 어려운 발언이였다.

"잘 듣도록. 슬라임의 종류는 색깔별로 다양하다. 회색 슬라임은 전사의 무덤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네가 입고 있는 갑옷을 20초안에 모두 부식시켜 고철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설령 마법이 걸린 무구라 하더라도 시간만 더 오래 걸릴 뿐, 모조리 부식시켜 먹어치우기 때문에 나같이 무기를 사용하는 전사계열은 도저히 싸우고 싶은 상대는 아니지. 다른 슬라임은 인간의 뇌를 세뇌시켜 슬라임을 보호하고 먹잇감을 구하도록 명령한다. 그 밖에도 색상이 다양한 슬라임들은 학습을 한다던가, 180m 이내의 동족들과 텔레파시를 통해 협력을 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은 하급일지 몰라도 특수 능력을 생각하자면 중,상위 몬스터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데미지조차 입힐 수 없으니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몬스터지. 부디 그 지하수로에서 회색 슬라임만큼은 만나지 않기를 기원해주마."

가스트라는 언데드 몬스터들보다도 슬라임이 더더욱 위험한 몬스터임을 일깨워준 루이네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디엔은 모르고 덤볐다가는 무슨 일이 생겨났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에…슬라임이라는 놈들이 이토록 무서운 존재들이였다니! 특히 회색 슬라임이라는 놈과 멋모르고 싸웠다가 갑옷들과 무기가 모두 부식되었다면 농담이 아니라 원통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대신 하나같이 속도가 느리고 전략적인 행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주하기는 쉽지. 자, 내가 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전해주었다. 나머지는 네 스스로 목표물을 가져오는 것 뿐. 미리 경고하겠지만, 지하수로는 반나절 정도만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왕복이 가능할 정도니 기간은 넉넉하게 일주일 주지. 그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탈주자로서 본부에 보고할테니 도망가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으극……."

"로로나에게 힐링 포션 2개를 준비시켜 주었다. 모두 중급으로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이상의 부상만 아니라면 완치가 가능하니 위기시에는 주저없이 사용하도록 해라."

자기 할 말만 하고 축객령을 내린 루이네에 의해 집무실 밖으로 나오게 된 디엔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살짝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많은 정보를 얻은것도 있지만 무능한 이리스와 그 똘마니들 떄문에 지금까지중 최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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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내 몸이 3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무쌍연희, 루나틱 돈 모두 쓸 수 있을텐데!

예? 왜 3개냐구요? 하나는 무쌍연희, 하나는 루나틱 돈, 그리고 마지막 하나인 저는 놀고 ㅋㅋㅋㅋㅋㅋㅋ

...복제 인간들의 반란을 몸으로 맛보게 생겼군.이미 사정을 다 알고 있던 로로나는 평소에 디엔을 볼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던 평소의 모습을 집어던지고 너무나도 친절하게 포션을 건내주며 손까지 흔들어주는 상냥함을 보여주…긴 개뿔! 죽으러 간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정하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도 포션은 자신의 구명줄이니 고이챙겨둔 그는 마법 주머니에 포션을 급할때 빼내기 어렵다고 생각하였지만, 자신이 착용한 브론즈 플레이트 아머를 자세히 살펴보니 양 어깨 부분에 질긴 가죽으로 만들어진 작은 끈을 발견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포션을 왼쪽 어깨 가죽 끈에 포션을 밀어넣으려 하자 생각보다 많이 벌려지지 않아 거의 쑤셔 넣다시피 포션병을 가죽 끈안에 고정시키고 나니 유사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쉽게 휴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넣고 빼는데 힘좀 들겠지만.

자신의 예정된 죽음을 기뻐하는 로로나와 달리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루이네는 그나마 힘이 되어주는 실용적인 응원(?)을 해주었기에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많은 수의 슬라임들은 녹색들이 차지하고 있다. 녹색 슬라임은 다른 슬라임들처럼 얼리거나 불태워 죽일 순 있지만, 때리거나 잘라내면 죽는 약체이기도 하지. 왠만한 금속은 3~40초안에 모조리 녹일 순 있지만, 1인치의 나무를 녹이는데 한 시간이 걸리니 녹색 슬라임을 공격할땐 나무로 만들어진 무기를 사용하는게 좋다."

번식력이 뛰어난 녹색 슬라임들은 일반인도 조금만 힘을 쓰면 죽일 수 있다는 설명에 그나마 용기를 얻게 된 디엔이였으나, 뒤이어 따라오는 설명에 또다시 기가 죽고 말았다.

"하지만, 녹색 슬라임에게 휩쌓이면 개인차가 있겠지만 1분안에 몸이 모조리 녹아 똑같은 녹색 슬라임이 되어 버리고 만다. 녹색 슬라임들에게 몸이 덮여지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그리고 회색 슬라임은……."

그 밖에도 회색 슬라임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같은 실용적인 정보를 뒤이어 설명해면서 슬라임들을 공격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디엔은 자신의 기억이 중요 내용을 잊어먹기 전에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땅에 떨어진 끝이 뭉툭한 나무 쪼가리를 이용하여 개인 메모장에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가스트는 마비 공격을 하는 근접전 몬스터, 3m내의 지독한 악취를 풍김. 슬라임들은 여러 종류가 있는것 같은데 자세히 들은건 회색과 녹색 뿐이다. 회색의 특징은 모든 금속을 빠르게 부식시키고, 마법 공격과 불, 얼음에 면역. 유일하게 통용되는 공격은 전기와 물리적인 타격. 문제는 회색 슬라임을 공격한 금속 무기는 쉽게 부식되고 만다. 한마디로 금속 외의 무기로 공격을 해야 한다는 뜻이군. 녹색은 대부분 모든 공격이 통하지만 역시나 금속을 부식시키기 때문에 금속 무기는 절대 불가로군.'

아마 물리적인 타격이 가능한 슬라임은 회색과 녹색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좀 더 슬라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런것을 알아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 지금은 회색과 녹색 슬라임의 공략법을 알아내게 된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한다.

'젠장! 어떤 망할 자식들이 슬라임을 초보용 몬스터로 둔갑해 둔거야! 멋모르고 갔다간 게임 오버 화면을 구경할뻔 했다고!'

지금까지 그에게 있어 슬라임이란 초반 렙업용 경험치 덩어리 였기 때문에 슬라임의 변신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슬라임들을 처리하기 힘든 만큼 슬라임 퇴치 전용 무기가 존재하여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였으나 현재로선 그림의 떡…수준이 아니라 그림조차 구경못하는 신세였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 당장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던전에 있는 리자드맨 병사들을 이끌고 지하수로의 몬스터들을 퇴치한다던가, 그냥 다 포기하고 자신의 던전으로 돌아가 주변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는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정말이지 자신에게 던전이 없었다면 지금쯤 울상을 짓고 거의 막장 테크를 타고 있었으리라.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하수로에 가보자. 정 안되겠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자고.'

최소 하나 이상의 탈출구가 마련된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깃든 디엔은 모든 무장을 갖춘 후, 루이네의 설명을 들으면서 퀘스트 일지가 갱신되었다는 메세지음을 떠올리고 자신의 일지를 꺼내 퀘스트 목록의 첫번째 장을 읽어보였다.

-빌어먹을! 그 빌어먹도록 멍청한 년들때문에 이게 무슨 꼴인가! 어째서 내가 무능한 것들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져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남의 뒷처리를 하다 죽을 순 없어!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거다! 일단은 지하수로로 향하여 그 멍청한 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부터 확인해보는게 좋을듯 싶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차라리 도주하는게 낫겠지. 다른 년놈들이 수십, 수백만이 나가 뒤져도 내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으니까!-

보상 : EXP 5000, 공적치 650, 실패시 공적치 -700

제한 시간 : 6일 23 : 50

보상은 경험치가 2000 높아지는 것 뿐이고 제한 시간이 등장하여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줄어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표시하고 있었다.

그 밑에는 대략적인 약도가 그려져 있었고, 그 덕분에 그는 지하수로로 처음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지 않고 능숙하게 찾아나가게 되었다.

지하수로로 향하는 입구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중소 크기의 강물이 흐르도록 만들어진 수로를 따라가니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계단을 내려가자 마치 기둥같아 보이는 둔직한 철창으로 만들어진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팔뚝만한 철창으로 이루어진 철창문을 향해 손을 향하려는 순간.

"거기 당신. 뭐하는 겁니까?"

흠칫!

긴장을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뒤쪽에서 자신을 호명하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자 깜짝 놀라고 만 디엔은 신경질적인 얼굴로 자신의 뒤를 바라보자 계단쪽에 다섯명의 여성이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제각각인 복장들을 하고 있어 통일성이 없어 보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처음 목격했음에도 '모험가' 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수로 위쪽을 오가는것으로 보아 그녀들도 자신과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날 모르고 어떤 이유인진 몰라도 지하수로로 들어가려 한다. 그렇다면…….'

"여기는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용무가 없다면 돌아가십시오."

일반 경비병처럼 감정이 최대한 억제된 사무적인 태도와 함께 할버트 창 끝을 바닥에 살짝 찍어내자 모험가들중 리더인 여성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계단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호오? 이것봐라?'

나이는 대충 20대 초반. 적갈색의 머리를 볼륨있게 살짝 띄어 올리고 작은 곡선이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살짝 날이 선 뚜렷한 이목구비와 거의 완벽하다 할 수 있는 바디라인이 몸에 찰싹 달라붙는 스케일 메일로 인해 더더욱 두드러지는 그녀는 약간 내려온 눈꼬리와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로 인해 '선하다' 라는 것이 느껴지는 여성이였다.

예상외의 보물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녀들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탈출구가 될지부터 알아보는게 우선이였기에 표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최대한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집중을 하였다.

"이상하네. 우리들은 분명히 의뢰를 받고 온건데……."

기본적으로 남성의 인권이 별로 없다보니 마찰을 일으키면 모험가 입장에선 여러모로 곤란해지는데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였지만, 어차피 자신은 게임상 나이도 어렸기 때문에 거부감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 의뢰를 받으셨다던 모험가분들이 당신들이셨군요. 인상 착의는 저에게까지 내려오지 않아 몰라뵈었습니다."

하지만, 적갈색 머리의 여성은 뭔가 영 미심쩍은듯한 눈빛이었다. 분명 그녀 자신이 듣기로는 지하수로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이 지금 조직되고 있기 때문에 홀로 떨어진 경비병과 경비병치곤 좋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생각해봐도 의심이 갈만하였다.

'지금쯤 나를 의심하고 있겠지? 의심이 커지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쳐야한다.'

"저…죄송하지만 저도 지하수로에 내려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 저 또한 동행시켜줄 수 없겠습니까?"

"음?"

대화가 길어지는것 같자 그녀의 일행이 우르르 내려왔으나, 지금은 임기응변으로 탈출구를 뚫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그녀들의 외모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보상을 나눠 갖자는게 아닙니다. 저는 요 근래에 부모님들께서 건강 악화로 돌아가시고 누님과 함께 경비병직을 하며 살고 있는데, 누님께서 부모님의 유품과 유언장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이 귀족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귀족이었다는 증거인 가보는 자신들을 노리는 적대 가문의 마수를 피하고자 지하수로에 몰래 가보가 들어간 상자를 숨겨두었다는 유언장의 내용을 토대로 경비병직을 내놓고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지하수로에 들어갔지만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지하수로를 점령한 몬스터들 말이지?"

자신이 꾸며낸 설정에 의심어린 눈빛이 가시고 안타까움이 섞인 동정의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울려퍼지자 더더욱 쐐기를 박기 위해 다시 말을 이었다.

"예. 모험가분들이 몬스터들을 퇴치하면서 누님을 발견하시면 도와줄 거라 믿어 의심친 않지만…언제 돌아올지 모른채 조마조마해 하기 보단 직접 찾아나서는게 좋겠다 싶어 유품들을 팔아 이 장비들을 구입했습니다. 부모님들의 유품도 중요하지만 저에겐 누님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혈육입니다. 누님까지 사라진다면 저는……."

마지막에 아랫 입술을 꽉 깨물며 조급함과 슬픔을 표출해내자 그녀의 눈동자는 안쓰러움과 동정의 빛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동정과 일원의 주장과는 다른 문제였기 때문에 그녀는 일행들과 무언가를 속닥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서 재빨리 하나하나씩 그녀의 일행을 확인하기 시작한 그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싸! 보물단지다아아아아!'

마치 금을 녹여 만든듯한 금빛 장발과 금빛 눈동자, 거기에 빛으로 반짝일 정도로 화려한 은빛 플레이트 메일과 머리 양 옆에 날개가 돋아나있는 것처럼 만들어진 은색 윙드 헬멧을 쓰고 있어 북구 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키리와 같은 자태를 뽐내는 중년의 여기사.

분홍빛 롤헤어와 디엔보다 약간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지만, 눈꼬리가 올라간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은 그녀의 성격이 다부지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상체는 어깨와 옆구리가 드러나 있고 하반신은 중요 부위를 가리는 긴 천과 양 다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소서리스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

갈색 피부와 거기에 어울리는 흑갈색 눈동자, 단발 머리에 특별 제작한듯한 타이트한 검은색 레더 아머와 검은색 스타킹 너머로 제대로 제대로 싸울 순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얇은 팔다리와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로그.

마지막으로 은발의 장발과 은색의 눈동자와 함께 표정의 변화가 없어 더욱 신비로워 보이며 차이나 드레스식으로 개조하고 활동성이 강조된 수녀복을 입고 있는 성직자. 상체는 수녀복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풍만한 가슴이 도드라지고 허벅지와 함께 드러난 각선미는 확실히 최상품의 그것이였다.

하나부터 끝까지 최상급에 속하는 미인이였기에 보물을 발견한 심정이 된 디엔은 그녀들이 차후에 자신이 블랙윙이 되었을때 앞을 막는 최대의 강적이 되리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공포와 절망을 전하는 검은 날개와 어둠을 꿰뚫기 위해 쏘아진 실버 블릿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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