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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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도착한 곳은 저택 내부에 있는 그녀의 집무실이었다.

무언가를 찾는지 한참동안 책장 여기저기를 뒤지던 그녀는 기억이 잘 안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자신이 구석 어딘가에 쳐박아둔 책자를 찾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무예는 물론, 머리 또한 남들보다 비상한 루이네가 자신의 물건의 위치를 깜빡했다는 것은 믿기어려운 일이었으나,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아, 여깄군."

그녀는 종이가 아닌 가죽으로 만들어진 수십겹의 두루마리를 책상 한 쪽 구석에 밀려 들어갔던 것을 꺼내들었고, 상당히 오랫동안 찾지 않았는지, 구석에 밀려들어서 제대로 청소를 못 한건지 먼지가 상당히 쌓여 있었다.

"림무란 제국의 밀무역상들로부터 건너져온 물건이지. 밀무역을 했기 때문에 비싸게 팔긴 팔아야 겠는데 사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림무란 황실의 근위 기사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단련법의 복사본인지라 제국인들이 보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물건이기 때문에 쉽게 내보이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이 곳에 쳐박혀 있다고 하더군. 인수 인계를 하면서 여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도 실물로 보는건 처음이다."

림무란 제국 기사들의 단련법?

복사본이긴 해도 황실의 물건이라는 뜻!

황실의 물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러워보이는 가죽 두루마리의 가치가 디엔의 머릿속에서 천정부지 솟아 올라가며 자신의 앞길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내 자신의 특성을 기억해내고 괜히 좋아했다는 듯이 시무룩해졌다.

"근위 기사들이 아니라 황제의 물건이라 해도 저에겐 그리 도움이 안될텐데요."

가죽 특유의 두터운 두께와 함께 고급스러운 가죽을 썼는지 표면이 매끌거리는 두루마리를 루이네로부터 받아들긴 하였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한 디엔은 다시 되돌려주려 하였다.

"림무란 제국은 우리와 달리 마나를 배우기 전에 강인한 육체를 만드는데 신경을 쓰지. 우리와 달리 그 쪽 기후는 사막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육체를 단련해야 하니까."

세계 지형은 어디에 어떤 국가가 자리 잡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로카스트는 평지가 많고, 림무란 제국은 사막이, 호에로아는 밀림이, 삼태극은 산이 많다.

물론,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더 많은 특징들이 나열되어 있으나, 일단 각 국가의 대표적인 특징은 이러하다.

루이네의 설명은 이어졌다.

"이 두루마리는 그러한 육체 단련법이 적힌 일종의 수련서다. 황실의 근위 기사가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완성된 육체를 지닌 이들도 큰 도움이 될 정도라 하더군."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있어 정말 안성맞춤인 수련서였기에 디엔은 도도함과 드높은 자존심을 가진 여성은 무조건 능욕으로 깔아뭉개고 보는데, 처음으로 그런 도도한 캐릭터를 상대로 무조건 순애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고마움이 들 정도로 감격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명하고 나니 뭔가 좀 이치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신경쓰지 말자. 원래 이런 녀석이니까.

"이…이걸 제게……."

감격어린 목소리로 조심스래 물어온 그였지만, 역시나 공과 사는 명확히 구분짓는 루이네는 고개를 내저었다.

"완전히 주는건 아니다. 이래뵈도 상당한 값어치를 하는 놈인데다 외부에 유출되면 일이 복잡해지기도 하고, 더더욱이나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은 하급 조직원에게 포상으로 내려주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운 물건이지. 사흘의 기간을 줄테니 그 동안 이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도록. 나중에 공을 세우게 된다면 포상으로 이 수련법을 다시 빌려줄 수 있도록 해주겠다."

블러디 바이퍼 내부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루이네는 스칼리아 지부장으로 임명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하사된 포상이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은 최하급 말단 조직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수하들의 불만이 커져 최악의 경우엔 명령 위반이라는 결과까지 나올 수 있었다.

대신, 빌려주는 임대의 형식이라면 다른 수하들이 의문을 제기하여도 얼마든지 이유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겨우 3일동안 수련법의 내용을 모조리 머리속에 집어넣는건 불가능하다 여겼기에 더더욱 열심히 일하여 다음 수련법을 알아낼 수있게 공을 세울 수 있도록 그의 공명심을 자극해낸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챈 디엔은 그녀의 작은 호의로도 감지덕지하였기에 감사의 인사를 건내며 두루마리와 함께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좋아.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마법 아이템과 단련된 육체 뿐이다. 마법 아이템은 현 상황에서 구하는건 어려우니 최소한 육체라도 단련시킨다면 지금같은 약골에서 벗어날 수 있어!'

게다가 마나를 중요시 하는 풍토 현상을 알게 되어 생각보다 로카스트 왕국의 전사계열의 순수 근력이 생각보다 낮음을 깨닫게 된 그는 단련된 육체를 얻게 될 시, 마나 사용자를 상대로 어떤 방식으로 싸워나갈지 대략적이나마 감을 잡게 되었다.

'일단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뭔지부터 확인해볼까?'

두루마리의 윗부분은 철심같은 것으로 박혀져 한장씩 뒤쪽으로 걷어내 읽는 형식이기에, 두루마리를 펴내고 첫번째 장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수련서를 얻게 되었습니다. 수련서의 수련 방식을 택해주시기 바랍니다. 게임을 새로 시작하기 전까진 한번 정한 설정이 유지됩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세상이 멈춘지도 몰랐던 디엔은 갑작스런 메세지음에 깜짝 놀랐지만, 게임에 대한 적응 능력이 강한 그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설정 메세지음을 경청하였다.

-1, 수동형. 수련서에 적힌 훈련을 따라하여 능력치와 스킬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반복 수련을 통해 수련 기술의 LV가 상승합니다-

-2, 자동형. 수련서를 정독함과 동시에 패시브 스킬로 등록하여 레벨업시 능력치와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사용하여 수련 기술의 LV를 올리거나 레벨업을 할 때마다 스킬 경험치를 획득하셔서 기술 LV를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설정창이 뜨자마자 그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길이 열렸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 몇 년 정도 은둔하여 수련을 하여 고수가 되어 출두할 수 있는 수동형과 블러디 바이퍼라는 든든한 단체에 속하여 실전을 통해 레벨업을 하던가.

조직 내에서 수련을 한다는 방법도 있지만, 상관으로부터 임무를 받아 수행을 해 나가야 하는 입장도 있기에 느긋하게 수련을 할 짬이 없다.

전자의 경우는 안전하게 훈련이 가능하며, 주변에 속해있는 인근 몬스터 부족을 상대로 실전을 쌓을 순 있지만, 그 것밖에 딱히 장점은 없었다.

일단 상당히 외진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곳까지 상당히 먼 길을 가야만 하고, 자신의 휘하 리자드 맨들의 요구 조건, '암컷' 을 조달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고생을 그렇게 해놓고서도 아기 공장은 반드시 인간, 혹은 인간 비스무리한 유사 인종들로 채워넣겠다는 야망(...)을 놓지 않고 있는데다 이대로 사라지면 자신의 배신 행위에 분노한 블러디 바이퍼에 의해 자신을 추살하려 들테니 전자는 포기.

후자의 경우엔 상당히 이득이 많다. 일단 도를 넘지 않는 약탈 행위를 인정, 각자가 얻은 전리품을 개인의 것으로 인정해주는데다 왜인지 몰라도 상당한 권력을 지닌 루이네가 자신에게 호의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말단이지만, 간부가 되어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얻게 된다면 매우 손쉽게 여자들을 공급할 수 도 있고.

결국, 여러가지 고심 끝에 자동형을 선택하여 블러디 바이퍼의 힘을 기대어 레벨업을 하는 루트를 선택하게 되었다.

"자동형."

-자동형을 선택하셨습니다. 단, 플레이어에 한하여 자동형일 뿐, 다른 NPC들은 기본적으로 수동형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이 점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자동형은 플레이어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한 디엔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발을 옮기자 멈췄던 세상이 다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보자. 일단 이 놈이 뭔지부터 확인해볼까?"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가죽 두루마리로 이루어진 림무란 제국의 수련서 아이템을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칼라리(Kerala)[쿠룸 칼라리]-

인도 남부 칼라리라 불리우는 지역에서 전해지는 고대 무술. 이 무술은 언제나 파야트(Payattu) 라는 장소에서 행해지도록 하여 칼라리 파야트라고도 불리운다. 기본적으로 격투술로 알려져 있으나, 칼라리의 형태는 총 5개로, 유격훈련을 위한 쿠룸 칼라리, 격투를 위한 안카 칼라리, 치유를 위한 체루 칼라리, 명상과 혈맥의 이치를 가르치기위한 코둠 칼라리, 그리고 수련자들이 매일 연습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쿠지 칼라리로, 이 수련서는 쿠룸 칼라리에 속한다.

아이템 가치 : 유니크

종류 : 수련서

'오오! 유니크 수련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강자들은 각자 계승되는 자신들만의 수련서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노멀 등급 수련서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 들기 때문에 디엔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서든 상점형 수련서라도 구하여 조금이나마 빨리 강해지자는 계획이 있었는데 노멀-슈페리어-레어-유니크-히어로-레전드 순의 스킬 등급중 유니크를 얻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였다.

'크흑! 드디어…드디어 나에게도 광명이 찾아오는구나!'

이 수련서만 있다면 강자가 될 수 있는 기간이 대폭 줄여질 거라 예상한 그는 아무도 없어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 당장 수련서를 모조리 속독하기로 하고 자신이 있던 곳으로 재빨리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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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선 시대 무예인 제독검을 해볼까 싶었는데 지금 당장은 쓸게 없어서 검을 사용할 뿐이지, 주력 무기는 따로 정해져 있고 육체 단련쪽으로는 그리 큰 메리트가 없기에 오랜 검색질(...)을 통해 칼라리 파야트로 정했습니다.

지형 적응, 육체 단련에 맞는 쿠룸 칼라리가 그나마 현재의 주인공에게 있어 가장 쓸만한 물건처럼 보이더군요.

그런데 이런 대외적으로 알려진 무술들이 유니크 급이면 그 이하 급은 어떤 무술이냐고 물어보실것 같아 본문에 쓰기엔 좀 그러니 미리 말하자면 아류라던가 알려진 무술의 일부분만 사용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PS:아아...요즘따라 의욕이 사라지는데 의욕을 살릴려면 어떤 수를 써야 할까요...유니크 수련서를 얻더라도 정독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에 다른 선배들의 눈총, 일정 알아가기, 기타 등등으로 인해 짬이 쉽게 나지 않겠지만, 다행히도 스칼리아는 수도 보다 조금 작은 대도시였기에 수금을 하는 고참 조들과 간만에 루트가 열리면서 림무란 제국에서 몰려오는 밀거래상들과의 거래로 인해 수련서를 정독할 시간은 충분하였다.

-수련서를 정독하셨습니다-

-수련서의 내용을 정독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력 +1-

-가치가 높은 도서물의 내용을 파악하면서 전승 지식 레벨이 1 올랐습니다. 현재 전승지식 레벨 2(견습)-

-쿠룸 칼라리가 패시브 스킬로 등록됩니다-

-쿠룸 칼라리-

설명 : 유격훈련 용으로 만들어진 수련법. 무술이라기 보단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과 거친 지형에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켜준다-

레벨 : 1(견습 등급)

효과 : 레벨업시 근력 +1, 건강 +1, 민첩 +1, 기술 +1, 정신 +1.

가치 : 유니크

하루동안 정독한 결과, 완벽하게 수련법을 익히게 되었지만, 한 글자 한 글자씩 꼼꼼하게 읽어야만 정독한 것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지루한 작업이였다.

그래도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일단 성장 타입이 식자이기 때문에 지력, 지혜, 정신이 +2. 마나 부적응자에 의해 근력, 건강, 민첩, 기술, 매력이 +1, 이번에 배운 쿠룸 칼라리의 효과로 근력,건강,민첩,기술,정신이 +1 되었기에 종합적인 능력치 상승률을 보여주자면 레벨업마다 기본적으로 근력 2, 지력 2, 건강 2, 민첩 2, 기술 2, 지혜 2, 매력 1, 정신 3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레벨이 2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쓸만한 직업을 얻게 된다면 최소한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착실하게 레벨업을 하는 것 뿐.

그런데 이제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좋다고 해야 할지 막장이라고 해야 할지 구분이 안가는데, 전사계 직업을 노리는 것 치곤 재능은 캐스터 계열, 거기다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어마어마한 패널티가 존재한다.

솔직히 까고 말해서 판타지 세계에서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악재다. 지금 당장 책방에 달려나가 판타지 소설들을 훑어보면 모든 주인공들이 마나를 이용해 다양한 마법이나 뛰어난 검술을 자랑한다.

아마 루나틱 돈에서 전투계 직업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마나를 얻고자 할 것이다.

단순히 초반부터 그랜드 마스터 등급인 스킬 4개를 얻었기에 스스로 제약을 걸어둔 것 치곤 매우 큰 패널티였지만, 남들이 안가는 독특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 디엔은 자신의 결정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판타지 세계니까 마법 아이템들로 치장하면 마나를 사용하는 전사들보다 더욱 뛰어난 전투력을 보일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나를 사용해서 강해진다는 말은 역으로 생각하면 마나가 없다면 약해진다는 뜻이며, 모든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면 자신은 다른 길을 선택하여 당당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호승심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있어 현재 자신이 나아가고 있는 길은 자신의 죽음밖에 막을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그렇다면 최소한 매직급 무구들을 얻어야겠지. 문제는 그 전에 물가들을 알아야 해."

마나를 사용하는 전사들을 대적하려면 그에 준하는 마법 무구들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디엔은 루나틱 돈을 시작하자마자 단 한번도 상점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세계의 대략적인 물가를 전혀 모른다.

아예 여기에 말뚝 박는다면 조직에서 주는 보급품으로 해다 먹겠지만, 언제나 조직 내에서 주어지는 보급만으로는 한계가 있는법.

게다가 능력치를 충분히 키우고 적당한 기회만 된다면 모험가로서의 삶으로 전향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물건들의 대략적인 가치와 거기에 따른 가격 정돈 알아야 한다.

아주 작은것이라도 '안다' 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법이니 한번쯤은 세상의 정보를 대략적으로라도 알아두는게 좋을 듯 싶었다. 문제는…….

"입대한지 일주일도 안되는 신병이 외박을 나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일단 다짜고짜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할 순 없으니 수련서를 돌려주는 이유로 말문을 튼다음 조심스럽게 언급은 해보겠다만, 솔직히 나갈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은 디엔이였다.

"뭐, 일단 찔러는 볼까. 안된다면 나중에 공을 세워서 포상 형식으로 나가면 되겠지."

그렇게 지하에서 나와 저택으로 향한 그는 자신을 향한 묘한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는 메이드 복의 하녀들을 거치며 자칫하면 길을 잃기 쉬운 거대한 저택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루트인 루이네의 집무실로 발을 옮겼다.

왠지 모르게 하녀들의 눈빛이 영 꺼림칙하긴 했다만, 수련서를 반납하기 위해 집무실 앞에 선 그는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들려는 순간.

"그런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적대 집단이라……. 그거 꽤 재미있군."

처음 들어보는 여성의 목소리가 집무실 안에서 들려왔다. 억지로 힘을 짜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기품과 고고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놀랍게도 루이네의 존댓말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의 배후까지는 모르고 있던듯 싶습니다. 하긴, 알았다면 하르카네처럼 반항을 포기할텐데 말이죠."

"꽤나 고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힘을 빌려줄까?"

"아니요. 저는 지금 매우 즐겁습니다. 지금까지 너무나도 순조로웠던 차에 저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등장한 덕분에 다시 검을 잡을 활력이 생겼달까요."

"후훗. 그래야지. 고귀한 자라면 무례한 자들의 저항을 자신의 손으로 분쇄해야 하는 법. 자신에게 적대하는 이들이 무섭다고 회피하거나 손을 벌리는 이들은 고귀함과 멀어."

그렇게 몇차례 담소를 나누는 것을 문 밖에서 듣게 된 디엔은 3류들처럼 대사를 더 듣기 위해 문에 가까이 접근하여 자신의 기척을 드러내기 보단, 문에서 조금 떨어져 그 앞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있다가 안의 인물들이 눈치를 채도 중요한 대화를 하는 것 같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변명이 통할테니까. 단지 조금 멀어진 만큼 그만큼 그녀들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게 되었으나, 귀를 기울이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정도였고 괜히 첩자라던가 중요한 대화를 엿들었다고 죽임을 당하는 졸개 1의 신세는 극구 피하고 싶은 그였다.

"그건 그렇고, 이 저택의 하녀들로부터 묘한 소문이 감돌던데."

"어떤?"

"네가 어린 소년 하나를 대리고 다닌다는 소리가 있더군. 남의 취미를 가지고 뭐라하기 좀 뭐하다만 나이 차이가 꽤 있는 소년은 좀 그렇지 않은가?"

"반은 정답입니다. 아직 행운인지 실력인진 잘 모르겠다만, 미래를 기대해볼 만한 유망주랄까요."

"괜한 시간 낭비가 아닐까 싶은데. 남자들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기사, 운이 좋으면 지방 영주의 기사 단장 정도쯤은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야."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녀석은 내 기세를 받고서도 나보다 더욱 높은 직위를 차지해 부려먹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더군요. 그 때와서 후회나 하지 마랍니다."

"쿡쿡쿡. 입담 만큼은 확실히 기대할만 하군. 어쨌든 난 일이 바쁘니 이만 가보도록 하지."

"살펴 가십시오."

그렇게 안에 있던 정체모를 여성이 나오려 하자 좀 더 멀리 물러난 그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척하며 문으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

"아, 그러고보니 원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자네를 클랜의 일부로 받아들일만한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자네만한 기품과 고귀함은 우리 혈족 내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언제든지 혈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말만하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전 아직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같았지. 오히려 기회가 생기자마자 앞뒤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성격이었다면 그만한 기품을 보일 수 없을테니까. 우리들은 언제든지 자네를 받아들이기 위해 손을 벌리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도록. 그럼."

이번에 진짜로 나오려 하자 문이 열리기를 집중하기 시작한 디엔이였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러도 문은 열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 집무실 안에서 루이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분은 가셨다. 들어오도록."

"허?"

목소리만큼은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기에 나름 얼굴을 기대하던 그에게 있어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지만, 그 전에 자신이 문 밖에 있음을 눈치챈 루이네의 기감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딸칵-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자 서류들을 읽고 있으며 자신을 향해 곁눈질로 한번 힐끗 쳐다본 루이네의 입이 열렸다.

"무슨 일이지?"

"수련서를 모두 외워서 돌려드리고자 왔습니다."

"모두 읽었다고?"

자신이 알기론 상당히 어려운 내용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하루도 안 되어 모두 읽어 외웠다는 디엔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한 그녀였지만, 강해지고자 하는 욕심을 두 눈으로 확인한게 자신이었기에 그가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수동형이였다면 수련서에 적혀있는 방식으로 단계별 훈련을 해야 했기에 루이네의 의도대로 공을 세워 지속적으로 수련서의 내용을 읽어야 했겠지만, 자동형으로 선택하여 패시브 형식으로 등록하면서 생긴 어긋남.

"일단 받아두지. 그 외의 용건은?"

"루이네님께 은혜를 받은 몸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 너무나도 죄송스럽지만…하루 정도만 제게 자유를 주셨으면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현재 디엔의 행동은 상당히 정도를 넘어섰다.

최하위 계층에서 끌어올려주고 몸을 단련시키는 림무란 제국의 황실 기사 전용 수련법까지 줬는데 휴가까지 달라니?

아무리 사람이 착해빠져도 이정도까지 오게 된다면 화가 나야 정상이리라.

"그래? 다녀오도록."

"……."

"……?"

"저기…뭔가 더 하실 말씀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러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린 디엔은 너무나도 시크하게 승낙하는 모습에 오히려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네가 이대로 도주하면 나는 아직 사람보는 눈이 미숙한 것이겠지. 뭐, 걱정은 하지 말도록. 여차하면 다른 지부들과 연락하여 네 인상착의를 알리면 끝이니까."

그렇다. 어차피 도주한다 해도 로카스트에 존재하는한 디엔은 영원히 블러디 바이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루이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한 디엔이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설령 도주한다 쳐도 일주일도 안되어 목만 남겨진채 자신에게 배달될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간단히 허락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조직원들이 없을동안 혼자 두기 찜찜했는데 알아서 바깥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확실히 현재의 자신으로선 도망을 쳐도 갈대가 없었기에 믿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복잡한 심정이 되었으나 허락을 받았으니 하루동안 이 세계의 사회를 겪어보기로 결정한 디엔은 고마움이 섞인 정중한 인사를 끝으로 문 밖으로 향하였다.

"아, 그리고 루이네님. 루이네님과 대화를 나누신 분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들은 것은 끝까지 함구하겠습니다."

문 밖으로 나간 디엔이 자신과 자신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는 분과의 대화를 함구하겠다며 자진 약속을 해오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루이네는 피식 웃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여간 재밌는 녀석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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