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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정확히는 악을 토벌하고자 하는 선의 세력.
여기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정식 조직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스토리의 궤도가 오를겁니다.
'하지만 충격 반전으로 주인공이 죽어서 게임 리셋 ㅋㅋㅋㅋㅋㅋ'
라는 스토리를 만들었다간 내 면상을 보고자 하는 분들이 계실것 같기에 일단 주인공은 살려두겠습니다. 대신 고생좀 해야겠죠?
으아...주인공을 어떻게 괴롭힐지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오싹 거리네...행군은 계속되었다.
어차피 흔적이 남지 않게 도시에서 멀리 벗어나고 적을 유인하는게 목적이었기에 최초의 1시간만 속보로 움직였고, 나머지는 20분가량 휴식을 취하도록 하며 대열을 크게 이탈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과 작은 목소리로 잡담을 하는 것을 허락할 정도로 상당히 널널한 편이었기에 디엔은 조금씩 자신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만약, 계속해서 군기 유지를 위해 휴식을 취할때도 꼼짝없이 앉아만 있어야 한다면 오히려 쉬는게 쉬는것 같지 않았으리라.
보기엔 숨 구멍 하나 만들어주지 않고 꽉꽉 조일것 같은 루이네였지만, 본능적인지 뛰어난 재능으로 얻은 지도력인지 몰라도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누군가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던가 자신이 정한 기준 이상의 짓을 벌인다면 즉각 참수를 하겠지만.
다른 조직원들은 조금 풀려진 분위기에 긴장을 푸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루이네의 악명이 어디 간것이 아니기에 알아서 절제를 하는 분위기였고 보충병들은 괜히 나서다가 밉보이기 싫어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후아~ 죽갔다, 죽갔어. 그건 그렇고 출발했던 때가 초 저녁을 조금 지난 시간대였나? 어째 가면갈수록 더 어두워지지?'
솔직히 말해 군대에서 완전 군장을 매고 야간 행군을 했던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 이미 군대를 전역해 민간인이 되면서 그런 기억들은 모조리 소거해버린 그는 현재를 불평하며 피로해진 다리를 주물렀다.
밖으로 나와 차가운 밤공기를 쐬자 칙칙한 분위기의 방에 갇혀있으면서 말문을 열지 못했던 보충병들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개와 함께 조금씩 말문을 터기 시작했다. 디엔을 포함한 남자들을 제외하고.
보충병 사이에는 남성들도 군대군대 끼어 있었는데 모두 눈짓을 하며 자신들끼리 말문을 열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눈짓만 하며 이내 서로의 대화를 포기한 상태였다.
남자를 깔보는 경향도 있지만, 허약한 남자들은 아무리 강해봤자 일반병의 실력을 넘지 못하기에 얼마 안가 죽을거라는 고정관념에 가까운 결론을 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블러디 바이퍼의 조직원들중 남자 조직원은 그야말로 모래바닷에서 금가루 찾기나 마찬가지다.
가끔씩 남자들 중에서도 한 기사단의 단장을 맡을 정도로 강한 이들도 간간히 나오지만, 그건 말 그대로 극악의 확률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 누구도 보충병에 들어간 남자들이 살아남을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디엔이라고 했겠지?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전에도 말했다시피 루이네는 자신의 기세에 주늑들지 않고 당당한 사람을 좋아한다. 말이 기세지 실제론 압박감을 약간 무겁게 하는 것 뿐이라 자신의 기세에 짓눌리는 인물들은 아무 이유도 없으나 겁을 먹거나 담이 작은 소인배, 혹은 뭔가 비리나 죄를 저지른 죄인쯤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남성이 자신에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블러디 바이퍼의 고위 간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땐 겉으론 웃어 보였으나 속으로 매우 놀란 상태였다.
자신의 설명으론 블러디 바이퍼라는 조직이 얼마나 거대하고 그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충성심과 공적을 다투며 정받아야만 하는지 몸으로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거대한 조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터였다.
자신만이 정체를 알고 있는 블러디 바이퍼의 수장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힘, 금력, 인력, 그 어떤것으로 실현 가능하기에 실제로 또 하나의 왕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신의 기세를 받아내면서 거대한 포부를 드러낸 최초의 남성이였기에 그만큼 뇌리에 박힌터라 과연 이번 전투에서 그가 살아남을지 아닐지가 그녀의 두번째 관심사였다. 물론, 첫번째 관심사는…….
'자아, 너희들이 공격하기 쉽도록 자리까지 깔아줬다. 빨리 너희들의 힘을 보여라.'
계속된 행군에도 적들이 기습 공격을 하지 않자 빨리 적의 힘을 체험하고픈 루이네는 일부러 휴식 시간을 길게 잡아 몸이 밤공기에 차갑게 굳지 않는 한까지 쉬도록 하고 일부러 어느정도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여 약간 어수선해 보이게끔 한 상태였다.
몇 차례나 공격할 타이밍을 만들어 주었지만 쉽게 공격을 하지 않자 쓰잘대기 없는 적들의 꼼꼼함에 서서히 짜증이 날 무렵, 그녀의 기감에 마나가 퍼지는 것을 포착하였다.
"로로나."
"옛."
로로나 또한 마력을 감지했는지 몸을 살짝 낮추며 허리쪽에 걸려있는 두 자루의 단도 손잡이를 잡아 언제든지 반격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후우웅---
"으앗?"
"엇?"
갑작스럽게 큰 바람이 불면서 횃불이 크게 요동치더니 훅 하면서 한꺼번에 기름위에 불타오르는 화염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나올때 빛이 갑작스래 꺼지는 것처럼.
"지금이다! 공겨억!"
모든 횃불들이 꺼짐과 동시에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적이 들려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순간적으로 빠르게 판단을 한 디엔은 적들이 약간 고지식한, 기사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거리로 충분히 사상자를 늘린다음 안전하게 근접전으로 몰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거나 지금 공격하는 이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것이리라.
"제길! 아무것도 안 보여!"
블러디 바이퍼의 조직원들은 대부분이 오밤중에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기에 어둠에 익숙하다. 일반적인 기습 공격이었다면 조직원들은 냉철하게 반응 할 수 있었겠지만, 방금전까지 횃불로 인해 눈이 빛에 적응된 상태를 단시간에 어둠에 적응하는 것은 숙련된 암살자들도 매우 힘든 고난이도의 생체 컨트롤이다.
촤악! 촤악!
"끼아악!"
"저…적이 안보…캬아!"
사방에서 어둠에 적응이 안 된 조직원들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지자 디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재빨리 주변을 더듬어 가까이 있던 조직원의 목덜미를 뒤에서 껴안은 것이었다. 방어구로 보호받지 못하는 목 부분을 향해 검을 찔러 넣으면서.
"크욱!?"
갑자기 뒤쪽에서 가해오는 습격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불운의 조직원(혹은 보충병)은 경련을 부르르 떨었지만, 목덜미가 꿰뚫렸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추욱 늘어졌고 디엔은 재빨리 웅크려 엎드리면서 자신이 만든 시체를 몸 위에 올려두었다.
와아아아!
탁- 터덕--
사방에서 아군과 적군들이 피를 토하는 듯한 기합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와중에 아군의 시체를 보호막 삼아 최대한 웅크린 그는 시체를 거칠게 밟거나 차는 진동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지만, 최대한 빨리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두 눈을 감으며 과도하게 긴장되지 않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적이 공격할지 몰라 조금은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이미 현재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해두었기 때문에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체 아래에 웅크리고 엎드린 자신을 단순한 바윗돌로 여긴건지, 아니면 난전이기에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건지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조직원들이 죽어나가 디엔의 머릿속에서 그냥 가만히 이대로 죽은척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순간.
"메스 라이트 볼(Mass Light Ball)!"
치지지직!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수십 이상되는 빛의 구체가 떨어져 내렸고, 밝은 빛에 의해 주변이 대낮처럼 환하게 보이자 순간적으로 적아를 판별하기 위해 모든 공격이 멈춰졌다.
암청색의 옷을 입은 블러디 바이퍼와 달리 몸에 최대한 달라붙고 펄럭이는 부분을 없앤 타이트한 갈색의 로브로 자신들의 몸체를 가린 여성들의 모습이 발견되자 조직원들은 방금전의 일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적을 향해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빛이 나오면서 더이상 숨기가 여러모로 껄끄러워진 디엔도 최대한 티가 안나게 마치 넘어졌다는 듯이 무릎을 쩔뚝거리며 일어섰고,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며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알을 굴려갔다.
본능적으로 육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리를 짓는 것처럼 뭉쳐있는 보충병들과 맹렬하게 적들과 싸우고 있는 정식 조직원. 그의 선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빨리 맹렬한 전투 지역으로 향하였다.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구석에서 벌벌 떠는건 적성에 안맞지! 여기서 한 두명이라도 죽여 경험치를 얻고 말테다!'
난전이 되면 적들이 어디있는지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 시야를 빠르게 돌리지만, 그만큼 보는 폭은 좁아지기 때문에 그는 몸을 아랫배까지 몸을 낮추고 하이에나처럼 빈틈을 보이는 적의 뒤를 기습하는 것이였다.
안그래도 16살로 시작해 키가 가장 작은 편이니 시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담력이나 난전에 대한 깊은 이해도 또한 필요하기에 디엔은 가장 공격하기 쉬우며 안전한 장소를 본능적으로 파해치며 마침 조직원의 복부에 검을 꽂아넣느라 후방이 무방비가 된 정체불명의 습격자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등짝 좀 보자!'
"으아아아!"
그런데 디엔은 평소의 자신답지 않게 적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듯이 일부러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게 아닌가? 그가 외친 함성에 순간적으로 등이 움찔거린 습격자는 자신의 뒤쪽에서 크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빠르게 몸을 돌려 자신의 머리 높이로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없다……? 커흑!"
머저리같이 자신의 존재를 크게 드러내는 적이 점프하려는 소리가 들려오자 가뿐하게 몸을 반으로 갈라주려 했던 습격자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휘두르며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눈치챘지만, 그 때는 이미 몸을 크게 들어올리며 자신의 턱에서 뇌까지 쑤셔올리는 소년의 모습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전투였다면 디엔이 당해낼 수 없는 실력자였으나, 난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뇌가 단숨에 꿰뚫리자 몸을 부들부들 떨던 습격자는 이내 팔을 추욱 늘어뜨리며 쓰러졌고, 난전을 이용한 속임수로 한 명의 습격자를 처단한 디엔은 자신의 검을 내던지고 안목이 없는 자가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습격자의 장검을 재빨리 주워들었다.
아이템 능력은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다시 난전에 참여하려 하였으나, 생각보다 아군들이 잘 싸워줬기에 상황은 서서히 블러디 바이퍼 쪽으로 온다고 생각해 안도의 한 숨을…….
"블래스(Bless)! 메스 힐(Mass Heal)!"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습격자들 전원의 몸이 밝게 빛나며 겉보기에도 눈에 띄게 입고 있던 상처들도 빠르게 아물어가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한 그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씨벌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