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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저희 할머니께서는 연세가 좀 많으십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구요.
요즘따라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하시더니 어제는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시기에 병원에 가서 혈액 채취, x레이 검사, 종합 검사(이건 관계자외 출입금지라서 안에서 뭐하는지 못함)을 하고 입원 수속을 밟아드리고 왔습니다.
솔직히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한 사고가 없다면 저처럼 평범한 일반인에게 있어 최초의 인간의 죽음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아파지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아서 뭐랄까...마음이 좀 울적합니다.
날짜는 기억 안나지만 입원하기 전에는 제 동생이 고민이 있는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신경질적으로 변하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자잘한 고민과 함께 할머니께서 계속 아픈걸 보니까 언제 돌아가실지 무섭다면서 우는걸 다독였지만, 솔직히 저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비현실적인 이름이 처음으로 무겁게 다가오는군요.
마인리스님이 제 포인트를 쫓아오는거 보고 미칠듯한 광란의 연참을 준비중이었는데 기분이 울적하니 글도 제대로 안 써지네요.
그냥...조금...조금 마음의 정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올 때와 마찬가지로 붕대를 눈에 감고 밖으로 나와 어느정도 걸어나가자 붕대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보안 문제로 여기저기 빙빙 돌아다녔을거라 예상한 디엔은 붕대를 풀자마자 눈에 보인 광경은 화려한 대저택의 내부였다.
로로나 라고 불린 여성은 왜인지 몰라도 자신을 싫어하기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채 막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그는 상대방에 대한 능력치가 문득 궁금해졌기에 그녀를 향해 정보창을 열어보기로 했다.
'루이네에겐 이리저리 휘둘려서 미쳐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게 조금 아쉽지만, 일단 이 녀석부터 알아볼까나.'
상대방을 능욕이든, 순애든 공략하기 위해선 하찮거나 작은 정보라도 필요한 법. 그리고 그 기본은 정보창에서 나온다.
-로로나-
나이 : ?
레벨 : ?
근력 : ?
지력 : ?
건강 : ?
민첩 : ?
기술 : ?
지혜 : ?
매력 : ?
정신 : ?
성격 : ?
?? : ?
HP : ?
MP : ?
STA : ?
'어…잠깐. 이게 뭐냐?'
NPC의 스킬, 재능, 성장 타입은 원래 루나틱 돈의 시스템상 마법이나 마법 도구의 힘을 빌려야만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것까지는 미리 메뉴얼을 통해 알아놨으니 그렇다손 쳐도 이름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들이 '?' 가 되어 있자,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당혹해하던 디엔은 불현듯이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리얼리티!'
그렇다. 리얼리티는 긍정적인 감정이 높아야만 상대방의 능력치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게다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간에 감정은 그 수치가 60 이상이 될 경우에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수치 또한 60이 되어야만 숫자로 제대로 입력되는 형식.
또다른 문제는 상대방의 이름인데, 플레이어가 상대방의 이름을 모른체 지낸다면 호감도가 어떻든간에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거나 타인의 부른 이름에 대답하는 것을 플레이어의 시야나 귀가 확인해야만 제대로 된 이름이 등록된다.
만약, 가명을 쓴다면 타인에 의해 밝혀지거나 본인이 밝히기 전까진 상대방의 정보창은 플레이어가 알고 있는 가명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을 것이다.
무쌍연희 3에서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거기서 한 발…아니, 십 수발은 더 앞서 나간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 아주 플레이어를 죽여놓으시겠다 이거지. 오냐, 내가 이기나 니들이 이기나 한번 두고보자.'
평소 언더 드림을 향해 가지고 있던 존경심따윈 와장창 무너진 그에게 남은것은 반드시 이 게임 세계에서 장수 해보이겠다는 악이었다.
판타지 모험물인 루나틱 돈은 나이로 인한 자연사와 몇몇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킬때 생겨나는 엔딩을 제외하곤 네버 엔딩 스토리나 마찬가지.
설령 엔딩을 본다쳐도 자신이 남긴 자손으로 다시 플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게임 속에서 천 년 이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플레이어가 먼저 질리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하지만, 디엔의 목적은 엔딩이고 자시고 최소한 지금의 캐릭터를 장수 시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설정하게 되었다. 플레이어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이 빌어먹을 난이도에서 성공하여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 이 게임을 향한 자신의 승리라 생각한 것이다.
어쨋든 머릿속으로 새로운 다짐을 할 무렵, 로로나를 따라 저택 후문으로 빠져나간 디엔은 사람의 키보다 3배 정도 높으며 두터운 담벽과 자신이 방금전까지 있었던 곳이 3~4층에 달하는 크고 거대한 호화 저택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뭐지? 일반적인 상인의 저택 치곤 쓰잘대기 없이 거대한데? 혹시 루이네는 귀족인가?'
그렇게 궁금증을 증폭시킬 무렵, 저택 뒤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하자 묵묵히 그 뒤를 따라간 디엔이 목격한 것은 넓디 넓은 거대한 지하 공터였다.
마침 열려있는 문 너머를 살펴보니 2층 침대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마치 군대의 생활관(2005년부터 내무반이 생활관으로 호칭이 바뀜)과 같았다.
다른 한 쪽에는 서로 대련을 하거나 허수아비 인형을 상대로 기합성을 내지르며 무기술을 연마하는 조직원들이 땀내나는 생활을 하며 언제든지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지하는 창고나 그런 종류의 용도로 사용되는데, 이 곳은 인위적으로 지하를 넓혀 수백여명이 한꺼번에 생활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건축물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디엔이 봐도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지하의 풍경에 감탄사와 군대에 막 전입 신고를 하는 신병의 기분이 교차되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곤란해 하고 있을 무렵, 한 쪽 눈에 긴 검상을 입은 거친 얼굴의 여성이 다가왔다.
"로로나님께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거친 얼굴이나 기세로 보아하니 이 지하를 관리하는 인물이라고 예상되는 그녀는 로로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였다.
"신입이다. 알아서 배치 시키도록."
"이 녀석 말입니까? 별로 오래 살 것 같진 않군요."
"그럼 뒤를 맡긴다."
로로나는 그녀에게 디엔을 맡기자마자 냉혹하게 돌아섰고 졸지에 인솔자를 잃은 신병 꼴이 된 그는 마치 보디 빌더 대회에 나오는 여성처럼 얼굴 근육이 크게 도드라진 눈 앞의 여성을 향해 고개를 힐끗 돌렸다.
'왠지 밉보이면 곱게는 안 죽일것 같은 인상이로구만.'
디엔을 맡게 된 여성은 이내 어떤 서류를 가져와 종이들을 한 장씩 넘기더니 이내 입을 열어보였다.
"흐음…3 보충대에 자리가 남는군. 따라와라."
그녀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명령하며 앞장 서서 어디론가 향하였고, 그 뒤를 따라간 디엔이 도착한 곳은 눈초리가 사납거나 후줄근한 복장에 불안한듯 눈알을 뒤룩뒤룩 굴려대는 인물들이 반반씩 섞여 있는 창고 비스무리한 건물이였다.
"명령이 있을때까지 여기에 있도록."
그렇게 말하고선 문 안으로 그를 집어넣더니 그것이 끝이었다.
'엉? 잠깐, 일정은? 말단 조직원이라 해도 일단 기본적인 훈련 같은거 안시키나? 그리고 신입이 왔으면 고참급이나 고참 쫄따구들이 와서 좋은 의도로 오든, 나쁜 의도로 오든 일단 누구든지 알아야 정상 아냐?'
건물 안은 어느정도 넓어서 편안하게 앉아 있는 공간은 충분하였기에 멀뚱히 서있기 뻘쭘함을 느낀 그는 조용히 비어있는 자리에 엉덩이를 걸터 앉았다.
'좋아. 일단 생각을 해보자.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조직원들은 복장은 통일되지 않았지만 색깔은 어두운 암청색으로 통일된 것으로 보아 그 색깔의 갑옷이나 옷이 이 조직의 제복 비스무리한 것일거야. 그런데 여기에는 그런 복장을 한 인물이 보이지 않아. 그렇다는 것은…….'
그렇게 곰곰히 한 단계씩 따지고 벗겨나가자 이내 한가지 진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망할! 보충대라는 것은 정식 조직원이 아니었구나!'
말단도 아닌 비정식 조직원. 쉽게 말하자면 화살받이 소모품!
애초에 로카스트를 어둠에서 지배하고 있는 블러디 바이퍼가 뒷배경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이들을 향한 인명의 소중하다는 인명사상 따위를 가지고 있을리가 만무하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루이네의 성격을 제대로 짚었다는 가정하에서 자신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공을 세우면 최하급 말단이라 해도 정식 조직원으로 입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한가닥 희망이 있었다.
언제든지 사용할 화살받이들을 모아둬 도주가 어렵도록 조직원들이 사용하는 거주 공간에 감금시키는 잔혹함.
자신이 있는 이 곳이 악의 조직이라는 실감이 나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어두운 부분을 지배했다면 반드시 거기에 반발하는 선의 조직들이 있을텐데? 걔네들은 다 블러디 바이퍼가 쌈 싸먹었나?'
악이 존재하면 선 또한 존재하는 법.
만약, 이 나라의 어둠을 완전히 장악했다면 블러디 바이퍼는 외부 인력을 구하기 보단 내부의 강화나 강자들을 키우는데 주력했을 터. 어차피 다른 나라의 거대 조직이 들어온다면 은연중에 관계를 맺고 있는 귀족들이 '치안 유지' 를 위해서 공개적으로 토벌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군사력을 키우는 것으로 보아 뒷세계를 완벽하게 장악을 하지 못하였거나 블러디 바이퍼의 존재를 알게 된 다른 선의 조직들이 존재하여 훼방을 놓고 있으리라.
'뭐, 아직 이 게임 시간으로 사흘도 안 지났는데 벌써 이런걸 걱정하기엔 뭐하구만.'
처음에는 탈출도 생각 해본 디엔이였으나 이내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저들과 똑같은 색깔의 제복을 입지 않고 조직원들의 눈을 피해 도주한다는 것은 도둑 스킬을 최대까지 올리지 않은 이상 임파서블.
화살받이 용도로 사용되기 위해 도시쪽으로 향할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이만한 저택을 지닌 자금력과 권력을 가진 루이네가 그정도도 방지 못할리가 없었다.
일단 화살받이들을 모아둔다는 것은 어딘가에 써먹는다는 뜻이기에 차라리 숙면을 취해 조금이나마 피로도를 회복시켜두는게 나아 보였다.
'그건 그렇고 저기서도 화살받이, 여기서도 화살받이, 그냥 화살받이 인생이로구만.'
지금까지 자신이 가상현실 게임을 하면서 이토록 암울한 적이 없었기에 색다른 기분과 함께 빌어쳐먹을 난이도를 욕하며 서서히 수마에 가라앉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