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98)화 (300/319)

그녀는 아이가 열쇠에 정신이 팔린 사이 부지런히 다시 족쇄를 잠갔다.

“자, 여기 넣어봐.”

그녀가 열쇠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브레든이 열쇠와 족쇄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철컥?”

“응, 철컥. 아까 누나가 했던 것처럼 여기에 열쇠 넣어봐.”

“누나.”

브레든이 영 곧 바로 움직일 기세를 보이지 않자 이예주가 조심스럽게 그 손을 잡아끌었다. 

다행히 아이는 돌변하지 않고 순순히 잡힌 대로 따라왔다. 

다시 한 번 열쇠가 족쇄의 구멍에 밀어 넣어졌다. 철컥.

“우아.”

힘없이 풀어지는 족쇄를 보고 브레든은 또 다시 기계음 같은 반응을 토해냈다. 

이예주는 활짝 웃었다.

“이제 할 수 있겠지? 또 해봐, 브레든.”

족쇄를 잠그고,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그것을 풀게 하는 행동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반복 학습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건지 브레든은 얼마 안 가 도움 없이 혼자서도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우아. 철컥. 우아.”

질리지도 않는지 완전한 학습 후에도 아이는 계속 족쇄를 잠그고 풀기를 반복했다. 

마치 아기가 막 놀이를 배운 듯한 모습 같았다. 

아기라 하기엔 덩치가 너무 컸지만.

베니와 비슷한 또래인 브레든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이예주는 또 다시 족쇄에 열쇠를 집어넣으려는 손을 천천히 감싸잡았다.

“이제 이거 들고 다시 위에 올라가.”

“위에?” 

“응. 브레든 네가 위에 갔는데 철컥 잠겨 있다고 그랬잖아.”

“철컥. 철컥.”

“그래. 철컥, 철컥. 이제 이거 가지고 올라가서 그거 따면 돼.”

“위에?”

이예주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하는 브레든에게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았다. 

다만 첫 심부름을 보내는 어린 아이 대하듯 여러 번 당부했다.

“응. 위에. 그래서 족쇄에 열쇠 구멍을 찾은 것처럼 문에도 구멍을 찾으면 돼.”

“구멍. 구멍.”

“문 말고 또 잠겨 있는 게 있어도 구멍만 찾아서 열쇠를 넣으면 돼. 그럼 뭐든 철컥하고 열릴 거야.”

“철컥. 철컥.”

“잘하네, 우리 브레든.”

그녀는 손을 뻗어 기특하다는 듯 브레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잔뜩 떡 진 머리에 먼지가 한가득 엉겨 붙어 딱딱하기까지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기분이 좋은 건지 브레든이 기계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나. 나가. 위에.”

“그, 그래…….”

그 모습이 조금 섬뜩했다. 

그러나 이예주는 내색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주입했다.

“위에 올라가서 네가 철컥, 하고 문을 따. 잠겨있는 게 뭐든 일단 다 따. 그러고 나서는…….”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고 나서는 사실 생각해보지 않았다. 

족쇄도 방금 막 간신히 딸줄 알게 된 브레든이 상식적으로 문 옆에 붙어 있는 수동 장치를 돌려 자신을 구덩이 속에서 끌어 올릴 수 있을 리 없었다. 

“하…….”

이예주는 한숨을 쉬었다. 

잠깐 화르륵 타올랐던 희망이 점점이 꺼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냥 다시 나한테 돌아와.”

그래. 일단 브레든이라도 내보내는 게 어딜까. 

추측이지만, 처음엔 자신과 같이 매달아 두거나 구덩이 속에 대충 처박아 둔 아이가 절벽을 기어올라 바닥에 고정시켜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아이가 또 다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도 모자라 문까지 열었다면 눈족 놈들도 무슨 조치를 취하겠지. 

자신의 탈출은 그 때가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든. 이 열쇠 꼭 가지고, 누나한테 다시 돌아와.”

“누나?”

“그래, 누나. 이제 내가 네 누나야.”

“누나.”

이예주의 말에 브레든이 문득 바닥에 떨어진 안대를 가리켰다. 

족쇄 놀이를 하느라 입에 문 것이 떨어진 듯 해보였다.

“그것도 네 누나 맞고, 나도 네 누나야. 그러니까, 누나 버리지 말고 꼭 돌아와야 돼. 알았지? 응?”

“…….”

아직 거기까진 인지 할 수 없는 건지 브레든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끝내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예주는 포기하지 않고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제 다시 올라가. 위에 올라가서 철컥 하고 오면 돼.”

마침내 그녀는 다시 한 번 희망을 위로 올려 보내기로 결심했다.

“위에?” 

“응. 위에.”

“나. 가. 위에.”

“그래, 네가 가는 거야.”

“누나.”

브레든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제 누나의 안대를 주었다. 

그리고 첫 번째 시도에서처럼 그 축축하게 젖은 것을 이예주에게 건넸다. 

“으응…… 내가 잘 맡고 있을게.”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든 이예주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독려 했다.

“조심히 잘 갔다 와.”

“누나. 누나.”

끝까지 제 누나를 찾는 말을 끝으로 브레든이 다시 괴물 같이 벽을 기어올랐다. 

얼마 안 가 ‘절그럭’ 소리와 함께 사슬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꼭 돌아와야 돼!”

이예주는 고개를 쳐들고 아이를 좇으며 애타게 외쳤다.

작은 몸은 금세 어둠 속에 잠식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털썩 지친 몸을 바닥에 누였다. 

이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브레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뿐.

*       *       *

이예주는 다시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섬뜩한 어둠과 정적을 홀로 견뎠다.

육체적인 고난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커다란 충격을 받아서일까. 잠깐 넋을 놓을 때마다 수명이 다한 전구처럼 의식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경계가 불분명한 무의식에서조차 그녀는 시커먼 어둠 속에 갇혀 헤맸다. 

예전에는 그토록 암경에 갇히거나, 그 관련된 꿈을 꾸는 것을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막상 현실마저 어둠이 침범하니 무엇을 두려워했던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두려워했던 건지, 아무도 없는 소름끼치는 정적 속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던 건지.

시간을 알 수 없는 구덩이 속에서 이예주는 하염없이 브레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분명 처음 위로 올라갔을 땐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던 것 같은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시간은 별로 흐르지 않았는데 괜히 초조해서 오래되었다고 느끼는 걸지 모른다.

“괜찮아.”

이예주는 일부러 명랑하게 소리 내었다. 

“아직 시간 얼마 지나지 않은 거야. 겁먹지 마, 멍청아.”

그로부터 또 얼마간의 알 수 없는 침묵이 구덩이 속을 잠식했다. 

이제 돌아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설마 열쇠 구멍을 못 찾고 문 앞에서 계속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슬슬 브레든에 대한 걱정이 치솟을 무렵이었다. 

쩔컥-! 

문득 위쪽에서 희미하게 사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브레든?”

이예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헛것을 들은 것이 아닌지, 정말로 ‘쩔그럭, 쩔꺽’ 하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브레…… 악!”

이예주는 기쁨에 겨워하며 무심결에 한 발자국 떼려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감각이 없던 오른쪽 다리에서부터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일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통증에 숨도 못 쉬고 끙끙대던 순간이었다.

최르라락, 타앙―!

문득 그녀의 앞에 훅 바람이 일면서 그와 동시에 육중한 것이 떨어져 둔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깜짝 놀라 아픔도 잊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발치 앞바닥에.

“……어.”

처음 이예주를 매달았던 긴 쇠사슬이 떨어져 똬리 튼 뱀처럼 잔뜩 쌓여 있었다.

이에주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벽을 짚고 어렵사리 일어났다. 

아직도 오른발이 불로 지지듯 아팠지만, 그것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녀는 사슬이 떨어진 곳으로 절뚝절뚝 다가갔다.

“이, 이게 왜…….”

브레든이 절벽 위를 오르내릴 수 있던 유일한 연결 줄이었다. 

그런데, 대체 이것이 왜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건가.

“……브레든?”

혹시 사슬이 중간에 끊어지기라도 했던가? 

이예주는 불안한 예감에 한달음에 사슬 더미로 다가갔다.

“브레든!”

포로의 발에 족쇄를 채워 매달아 두는 목적답게 사슬은 두께가 무척 두껍고 무거웠다. 

손에 생채기가 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녀는 미친 듯이 사슬을 파헤쳤다.

“브레든! 브레든!”

하지만 마침내 사슬이 걷어지고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그녀가 찾는 아이의 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브레든?”

이예주는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고개만 한껏 위로 쳐들었다. 

구덩이 위는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브레든. 장난치는 거지?”

안대를 놓고 갔잖아. 브레든이 저만 이 구덩이 속에 처박아 둔 채 홀로 가버릴 리 없었다.

“열쇠 가지고 내게 다시 돌아오기로 했잖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도 그녀는 무언가를 찾듯 연신 어둠 속을 훑었다.

“브레든. 너 위에 있는 거지? 응?!”

왜 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진 거지?

“너 문 따는 거 성공했잖아. 대답해! 브레든!”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었다.

“브레든. 끌어줘! 다시 안 돌아와도 되니까 나 끌어줘! 나 끌어 올려줘!”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끌어올려줘! 브레든! 브레든! 브레든! 브레든!”

이렇게 나만 이 구덩이 속에 갇혀서…….

“브레든―!”

끝내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만이 공허한 굴속에 텅텅 울려 퍼졌다.

이예주는 벌떡 일어났다. 

도저히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넘어질 듯 절뚝이며 마구 걸어대자 금방 반대편 벽에 도착했다. 

“왜!”

그녀는 주먹으로 미친 듯이 벽을 내리치며 절규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치는지. 왜 나만, 왜 나에게만.

“왜―!”

내리치는 것도 모자라 손톱으로 벽을 박박 내리 긁었다. 

그렇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여린 손끝에 돌멩이 파편이 박혀 벌겋게 갈라지고, 손톱 몇 개는 너무 쉽게 뒤집혔다. 

열 손가락이 모두 피투성이가 된 후에야 이예주는 벽을 긁는 것을 멈추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흐, 흐으윽…….”

억지로 잠재웠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몸을 점령했다. 

이예주는 겁에 잔뜩 질린 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       *       *

이예주는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채 끊임없이 악몽을 꿨다.

악몽 속에서 그녀는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여신상이 있는 신전의 제단 앞에 서 있었다. 

높은 제단의 끝에는 황금 의자가 있었고, 잠든 람이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얼마 안 가 황금 의자 뒤에서 회색 로브를 입은 눈족이 나타났다. 

얼굴이 뿌옇게 보이지 않아 쟈니아인지, 족장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놈은 끝내 여신이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검은색 삼지창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높이 쳐들어 잠들어 있는 람의 가슴에 지체 없이 내리 꽂았다.

“아아악!”

그와 동시에 이예주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났다. 

누운 채로 헐떡이다 보면 잠깐 깬 것이 무색하게 기절하듯 다시 잠에 빠졌다. 

그러면 또 다른 악몽이 펼쳐졌다. 

어딜 둘러봐도 사방이 용암으로 들끓는 곳. 

그 한 가운데에 어린 람이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옆에 마그마가 흘러 지나가는 데도 어린아이의 얼굴은 무감각했다. 

이예주는 어떻게 해서든 람에게 다가가 그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든 마지막에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이의 차가운 외면뿐이었다. 

두 악몽이 번갈아가며 끊임없이 이예주를 짓눌렀다. 

안 그래도 피폐해진 정신은 금방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해졌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실제 하는 곳이 악몽 속인지, 구덩이 속인지 조차 구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늪 같은 수렁 속을 헤매다 간신히 눈을 뜨면 악몽보다 더한 현실에 울부짖었다.

분노, 원망, 증오, 혐오. 

처음엔 누구에게 향한지 몰랐던 수많은 감정들이 대상을 찾아 점점 구체화 되어갔다.

그리고 그 끝에, 죽어가는 람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이 있었다.

이예주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힘겹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여전히 깊은 구덩이의 가장 밑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가물가물 날짜를 세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세어도 이곳에 갇힌 후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도, 날짜도 알 수 없으니 당연했다.

“아직 이틀이 지났으면 안 되는데…….”

다 쉬어터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문득 허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도 람이 잠든 기일을 잊지 않은 자신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람이 보고 싶었다. 

당장 그 남자에게 가고 싶었다. 

그를 지키고, 그리고 그를 구해내서, 깨어난 그에게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며 화를 내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없었다.

“어……?”

누운 채로 멍하니 시커먼 구덩이 위를 바라보던 이예주의 눈이 일순 커다래졌다. 

그것은 아주 작은 점이었다. 

구덩이 저 멀리 끝에, 아주 작은 점이 보였다.

이예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펴며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했지만, 헛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이예주가 있는 구덩이 밑바닥까지 닿지 못한, 빛의 흔적이었다.

“……끝?”

희미한 점으로 보일 만큼 엄청난 깊이, 그것을 지난 구덩이의 출구.

“아…….”

이예주는 불현듯 제가 갇힌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단순히 포로를 가둬 놓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 따위가 아니었다. 이곳은.

―다리족에서 과거를 보지 않았던가요? core1의 진입 구에요.

람이 있던 내핵으로 가기 위해 뚫어 놓은 길이었다.

“……당신이 고독하게 숨어 있던 곳에 나도 오게 됐네.”

이예주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문득 뜨거운 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하, 하하…….”

허망한 웃음이 신음 같은 울음으로 뒤바뀌는 것은 무척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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