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96)화 (298/319)

“흐으…….”

발목이. 아니, 오른쪽 다리 전체가 탈골이라도 된 것이면 어떡하지. 

당장 다리를 못 쓰게 된 걸까봐 덜컥 겁이 났다. 

울컥 울음이 치솟았지만, 이예주는 그것을 꾹 눌러 참고 눈을 더 크게 떠 족쇄를 관찰했다.

그러나 아래쪽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만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그녀는 안간 힘을 짜내어 거꾸로 몸을 들어올렸다.

“으으……!”

족쇄에 살짝 손이 닿았다가 다시 아래로 풀썩 허리가 펴지는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족쇄의 열쇠구멍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복사뼈 옆쪽이었다. 

자동 잠금이라든지 그런 최신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인걸까. 

이예주는 제 로브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그 난리 속에도 열쇠는 빠지지 않고 주머니 속에 고이 들어 있었다. 

“……다행이다.”

그녀는 만능열쇠를 꺼내들고 그것에 입을 맞췄다. 

한 때는 자취방 키를 흉측하게 바꿔버린 람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둘도 없이 감사했다. 

이게 아니었더라면 그동안 행했던 대부분의 탈출에 실패했을 것이다. 

“으흐으!”

이예주는 다시 한 번 몸을 있는 대로 구부렸다. 

평지에 제대로 선 상태에서 발에 손을 뻗는 것도 힘든 뻣뻣한 몸을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들어 올리려니 딱 죽을 맛이었다. 

당연히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중에는 배가 찢어질 듯 당겨와 물 밖으로 튀어나온 물고기처럼 펄떡 거리며 족쇄해 열쇠를 내리꽂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몇 십번, 철컥. 마침내 홈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목이 헐거워졌다.

“아악!”

퍽-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이예주는 쏜살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컥!”

다행히 그렇게 높은 위치는 아니었기에 부상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바닥에 등이 처박힌 순간 숨이 턱 막혀서 한참동안 꿈쩍도 못하고 버르적거려야 했다. 

“헉, 허억…… 하아, 하…….”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간신히 고통이 가라앉을 즈음이었다.

“……누나?”

그녀가 허공에서 뭔 짓을 하던 미동도 없던 아이가 문득 무릎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고 킁킁거렸다. 

이예주는 힘없이 고개만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피 냄새를 맡은 동물처럼 허공을 향해 코를 킁킁대던 아이가 바닥에 누워 있는 이예주 쪽으로 스르륵 시선을 돌렸다. 

“누나.”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안광이 스산했다. 

오싹한 기분에 이예주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뚱이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쩔그럭. 

그러는 와중 브레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누나.”

“자, 잠깐……!”

그리고 득달같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 아악! 왜, 왜이래!”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순식간에 이예주의 위를 덮친 아이가 거친 손으로 그녀의 얼굴과 목을 마구 긁었다.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이를 딱딱 부딪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하, 하지 마! 야! 하지 말라고!"

“아아. 누나 냄새. 아아아. 아아. 누나.”

이예주는 자신을 긁어대는 브레든에게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억센 손아귀와는 달리 비쩍 곯은 아이의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 탓에 어렵지 않게 아이의 손을 저지하고 제 위에서 떼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브레든은 그녀를 단단히 먹이로 인식한 건지 옆으로 굴러 떨어져도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악! 왜 그래! 정신 좀 차려봐!”

“누나. 누나.”

“비켜! 난 네 누나가 아니야!”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하는 몸싸움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뻗은 이예주의 왼 발이 아이의 배를 정통으로 걷어찼다. 

퍽- 거센 발길질에 아이의 몸이 반대편으로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아이는 더 이상 달라들지 않았다.

“하아, 하아…….”

이예주는 벽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읏!”

마구 발버둥 칠 땐 몰랐는데 발을 딛고 서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니 족쇄에 묶여있었던 오른쪽 발목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고통이 느껴졌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통증에 다시 주루룩 바닥으로 쓰러진 이예주는 신음도 제대로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이 지난 후 발목을 타오르던 고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녀는 더 일어날 엄두도 못 낸채 힘없이 상체를 벽에 기댔다. 

어쩌다 보니 브레든과 사이좋게 마주보고 앉은 형상이 되었다.

“……누나.”

힘이 소진된 건지 더 달려들진 않지만 브레든은 여전히 누나 타령을 했다. 

놈의 손톱에 긁힌 얼굴과 목덜미가 따끔거렸다. 

“……정신 좀 차려봐.”

이예주는 잔뜩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누나는 알리자린이잖아…….”

그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토록 찾던 알리자린의 동생이었다. 

그러나 잔뜩 다친 채 알 수 없는 구덩이 속에 처박혔고, 아이는 같이 탈출할 수나 있을까 싶을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예주의 말에 답이 없던 아이가 또 다시 코를 킁킁댔다.

“누나. 누나 냄새.”

“자꾸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여긴 온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뿐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누나 냄새가 난다고……. 

문득 이예주의 머릿속을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냄새?”

“누나.”

“너 혹시…….”

그녀는 로브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 깊숙이에 딱딱한 열쇠 외에 까슬까슬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예주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이거…… 말하는 거야?” 

“누나!”

꺼낸 것을 내밀기가 무섭게 브레든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낡은 천 쪼가리를 낚아 챈 아이가 미처 말릴 새 없이 제 입 속에 마구 우겨 넣었다.

“우나, 우나…….”

“너…….”

이예주는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이가 짐승처럼 제 누나를 부르짖으며 쭉쭉 빨아대는 것. 

그것은 바로 알리자린의 안대였다. 

“미…….”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꾹 인내하고 차단하려던 감정들이 단숨에 목 끝까지 차올랐다. 

“미안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제 누나의 냄새를 알아차리고, 그리고 누나의 안대를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우물거리는 아이…….

“우나. 우나. 우나.”

“흐, 미안해.”

눈시울이 후끈해졌다. 

이예주는 바닥을 기듯 움직여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우나?”

아이가 우물거리던 것을 멈추고 이예주를 돌아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말갛게 빛났다. 

때가 잔뜩 낀 볼썽사나운 얼굴임에도 알리자린의 흔적이 뚜렷이 보였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이예주는 결국 브레든을 와락 껴안았다.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

누나라는 말 밖에 모르는 듯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슴이 무너졌다.

“흐, 네게서 누나를 빼앗아서 미안해.”

동생을 두고 도저히 비행선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알리자린은, 자신을 돕다 죽었다. 

그리고 하나 남은 누나마저 잃은 아이는. 자신을 붙잡을 미끼로 쓰이기 위해 이 시커먼 구덩이 속에 몇 날 며칠을 처박혀 있었을 아이가……. 

이 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예주는 아이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시커먼 구덩이 속. 흐느끼는 소리와 더불어 무언가를 쭉쭉 빨아먹는 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졌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예주는 브레든과 벽에 나란히 기대 앉아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 대체 어딜까.”

이곳이 어딘지, 얼마나 깊은 지하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지상에 있는 탑에서부터 미친놈들의 대장간으로 쓰이고 있던 지하 공간까지 도달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르긴 몰라도 1시간은 훌쩍 넘게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그렇게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 눈족들의 비밀스러운 공간인데, 이곳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까마득한 구덩이였다. 

게다가 단순한 감옥은 아닌 건지 구덩이의 바닥은 돌 부스러기라든지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이 군데군데 잔뜩 쌓여있었다. 

그나마 빛이 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쓰레기들 사이에 섞여 있는 야광물질 잔해였다. 

그런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시야를 구분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 탓에 구덩이의 너비가 무척 넓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있을만한 공간은 협소했다.

하긴, 사슬에 매달아 구덩이 속에 집어 던지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가둬두는 것 만해도 평범한 지하 감옥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즈랑 베니는 잘 빠져 나갔겠지.”

아무리 봐도 시커멓기만 하면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던 이예주는 이내 공허하게 웃었다. 

제 처지에 지상 위를 걱정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람…….”

리즈와 베니의 생각을 접기 무섭게 애써 잊고 있던 남자가 머릿속을 점령했다.

돌아가야 했다. 

당장 돌아가서 그를 지켜야 하는데. 

하나로 합쳐진 미친 족장 괴물이 그가 잠든 틈을 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전무했다. 

그나마 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자신이 묶여 있던 쇠사슬뿐이었다. 

있는 힘껏 뛰어 오르면 족쇄에 손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에 닿아 족쇄를 움켜쥐어도 그뿐이었다. 

그 이상 뭘 할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쇠사슬을 잡고 끝도 보이지 않은 아득한 깊이를 거꾸로 기어오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부상이 심했다. 

계속 욱신거리던 오른쪽 다리는 다시 감각이 없어졌다. 어쩌면 정말로 탈골이 됐거나 부러진 걸지도 모른다. 

“하…….”

이예주는 두 손으로 피로한 눈을 문질렀다. 

지독한 무력감이 찾아왔다. 

엄마가 죽었을 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엄마를 죽인 개새끼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그리고 그 놈들이 제게서 다시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려는 것을 막는 것도. 

“배고파. 먹이. 먹어. 아니야.”

구석에 처박힌 브레든은 제 누나의 안대를 쥐고 아까부터 끊임없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어둠속에서 그녀를 직시하는 안광이 형형했다. 

“누나. 먹으면 안 돼. 아니야. 브레든.”

아이가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이예주는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넌 왜 그렇게 바닥에 묶여 있는 거야?”

“…….”

“바로 끌어 올려 진 거 보면 베니나 늑대도 나처럼 매달려 있던 거 같은데. 왜 너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바닥에 커다란 말뚝이 박혀 있었고 브레든은 그것에 묶여있는 사슬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다시는 구덩이 속에서 끌어올려질 일이 없는 것처럼.

“설마…….”

이예주는 불쑥 드는 끔찍한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이 어린아이를 가지고 그렇게까지 하겠냐 싶었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베니의 눈알을 도려내었던 악귀들을 떠올리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여기 얼마 동안이나 갇혀 있었던 거야?”

“밥. 배고파.”

“하…….”

이예주는 좀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브레든에게 더 말을 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어쩌면 아이는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일지도. 

사실 자연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아나 다를 바 없는 브레든의 몰골을 보면 이곳에 갇힌 지 엄청 오래된 것만은 분명했다. 

이 구덩이 속에 갇힌 아이의 식사를 족장 놈이 제대로 챙겼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걸 보면, 그러니까…… 

브레든은 반쯤은 괴물화가 진행된 걸지도 모른다.

“……어떡하지.”

이예주는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다리를 손으로 들어 올려 있는 대로 몸을 쭈그렸다. 

그리고 무릎 위에 울적한 얼굴을 묻었다.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었던 과거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저 상태로는 같이 탈출을 도모하기는커녕, 설령 탈출 한다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가고 싶어.”

그녀는 저 혼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님에 안도하면서도 이 시커먼 구덩이 속에 저 혼자 처박혀 있는 것 같은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람에게 가고 싶어.”

람이 준 기간은 고작 이틀뿐인데. 

이곳에 갇혀 있는 사이 이틀이 지나가버리면 어떡하지. 

이틀 후 그가 깨기 전에, 족장이 무슨 짓을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잠든 그가 다신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러면…….

있는 대로 몸을 둥글게 만 채 한없는 우울 속으로 빠져들 때였다.

“……나가?”

옆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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