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91)화 (293/319)

“우우! 으우우!”

코와 입이 뜯겨 얼굴이 온통 피 칠갑인 5장로가 미친 듯이 우짖으며 꿈틀거렸다. 

도망을 치기 위한 움직이었으나 이성이 완전히 사라진 10장로가 좀비처럼 다시 달려들었다.

“우으으―!”

끼긱, 기기기긱. 끔찍한 비명소리가 히카톤의 울음소리와 한데 섞여 들렸다. 

버둥거리는 먹이의 가슴팍을 물어뜯던 10장로의 등 한가운데에서 옷을 뚫고 팔 두 개가 튀어나왔다. 

이미 그의 팔은 5장로를 잡고 있는데, 또 다른 팔 두 개가. 

늘어진 채 힘없이 흐느적거리던 두 팔은 곧 기운을 받아 재탄생한 것처럼 위로 맹렬히 치켜 들렸다. 

그리고 공격하듯 5장로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찌지직. 괴물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악력이 덜 들어갔는지 팔들이 5장로의 몸을 뚫는 대신, 몸 위에 덮고 있던 로브를 찢었다.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건지 늙은이의 맨살이 쉽게 드러났다.

“흐읍!”

이예주는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아 서둘러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저…… 저게 뭐야?”

그녀는 제 눈을 의심했다. 

벗겨진 5장로의 몸에, 바닷가의 바위에 따개비가 박혀 있듯 무언가가 다닥다닥 박혀 있었다.

제 눈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람들의 얼굴 형상들이었다.

벌거벗겨진 5장로를 사정없이 뜯어먹고 있는 10장로를 보며 나머지 장로들이 난처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조, 족장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제기랄.”

족장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매만지다가 손짓했다. 

장로들이 재게 움직이며 아직까지 항아리 위로 피를 쥐어짜내던 3장로의 팔을 걷어냈다. 

핏기 없이 새하얀 혈색의 그는 그 짧은 사이 살이 내려 홀쭉해져 있었다. 

족장은 괴물이 두렵지도 않은지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는 3장로의 후드자락을 질질 끌고 가 10장로의 위로 던졌다. 

털썩.

“이것이나 먹어라.”

끼긱, 기기기긱― 

5장로의 몸을 사정없이 물어뜯던 히카톤이 제 몸을 덮친 것에 반응하여 휙 고래를 돌렸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3장로를 인식한 괴물이 반쯤 먹어 치운 먹이를 내팽개치고 금세 새 먹이로 관심을 돌렸다.

우둑, 뿌드득. 살이 뜯기고 뼈가 부서지는 기괴한 소리가 연달아 퍼져나갔다. 

팔이 비틀려 떨어져 나가고 있는데도 정신을 잃은 3장로는 미동이 없었다. 

그 사이 먹이와 한데 뭉쳐있는 10장로에게로 주춤주춤 다가간 족장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었다.

내장을 파헤치던 괴물이 고개를 퍼뜩 들고 전기에 감전 된 것처럼 부들부들 경련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고개를 푹 내리깔고 잠잠해졌다. 

족장이 그 옆에 들고 있던 껍데기를 대충 던졌다. 

바닥을 구르는 그것을 이예주는 예의주시했다. 

빈 주사기였다.

“RTBD는 정말이지 잠깐뿐이군. 눈족에게는 영 쓸모가 없어. 역시 원천만 하지 못해.”

토막 살해 현장처럼 피로 난장판이 되어 있는 살풍경한 장면 앞에 선 채 족장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모없는 것 때문에 두 명이나 손실이 되었어.”

“족장님. 5장로는 어떡하죠?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순식간에 둘 남은 장로들이 쓰러져 있는 5장로를 잡고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마저 숨이 끊어지기 전에 눈을 파먹게.”

족장이 여상한 얼굴로 답했다. 두 장로가 흠칫 하며 눈을 크게 홉떴다. 

“5…… 장로를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저희 셋은 족장님께서 새 시대를 같이 이끌어 갈 세 장로들로 선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이대로 5장로를 가만 죽게 놔두고 10장로처럼 변하여 난동 부리기를 지켜보자는 건가?”

“아, 아닙니다!”

족장이 신경질적이게 소리치자, 장로들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쓰러진 동료를 먹는 것이 영 꺼림칙한지 2장로와 8장로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족장이 그런 그들을 보며 크게 혀를 찼다. 

그리고 달래듯 덧붙였다.

“걱정 말게. 5장로도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자네들과 같이 선택 했고 말이야. 의식이 끝난 후 먹이를 자네들에게 넘길 테니 어서들 들도록 하게.”

“가, 감사합니다. 족장님!”

불과 방금 전까지 같은 배를 탔다고 여겼던 동료를 뜯어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아니었다. 

놈들은 그저 제 안위가 걱정되었을 뿐이다. 

강해진 힘을 제어하지 못하면 언제든 몸에 달린 것들에게 좀 먹힐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만큼 오랜 기간을 살아남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목숨을 유지하는 대가로 몸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지긋지긋한 것들이 날뛰는 것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언제나 검은 파편의 힘이 필요했다.

그들은 지체없이 숨이 끊어져 가는 5장로에게 마수를 뻗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이뤄지는 일에 이예주는 다시 제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징글맞은 괴물 같은 것들…….”

족장이 진저리를 쳤다. 

괴물로 변한 10장로가 아니라, 죽어가는 인간의 눈을 끄집어내 게걸스럽게 먹는 장로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예주를 제외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잠시 장로들의 행태를 지켜보던 족장이 불쑥 고개를 돌려 용광로가 있는 쪽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한 명 이리로 와봐!”

화로에서 일을 하던 우락부락한 사내들 중 한 명이 그 소리에 후다닥 제단으로 뛰어갔다. 

이예주는 그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안면이 있는 남자였다. 

어제 베니와 함께 이 지하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들의 등을 마구 떠밀며 다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두었던 자였다.

이예주는 리즈가 숨어 있는 쪽을 흘긋 돌아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그녀와 베니를 내보내려 들었던 이유를. 

“무슨 일이십니까, 족장님?”

“이것을 끌고 가서 용광로에 집어넣어.”

릭의 물음에 족장이 손가락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10장로를 가리켰다. 

자주 해왔던 일인지 릭 아저씨는 지체 없이 10장로를 일으켰다. 

체격 차가 커서 그런지 괴물의 몸은 너무나도 쉽게 딸려올라갔다.

저러다가 정신을 차린 괴물이 공격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그나마 베니와 안면이 깊은 사람이라 그런지, 이예주는 불쑥 걱정이 일었다. 

하지만 릭은 담담히 족장에게 제 할 일을 확인했다.

“3장로와 5장로님도 말씀이십니까?”

“쯧. 아깝게 됐군. 이놈의 눈은 쓸 수 없게 되었어.”

족장이 3장로를 흘깃 내려 보며 중얼거렸다. 

피가 모조리 빨린 것도 모자라 괴물에게 상당히 잡아먹힌 그는 여전히 고요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의 것이라 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괴기스럽게 위 아래로 들썩거렸다. 

RTBD로 임시방편을 해두었지만 머지않아 변할 것이다.

“이것들도 깨어나서 변하기 전에 모조리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피를 모두 빼냈지만 그래도 검은 안개가 소량이나마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썩어빠진 몸뚱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예, 예.”

“그리고 준비가 다 되었으면 가져와.”

“네. 그럼…….”

릭은 10장로를 데리고 화로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사내들에게 무어라 설명을 하더니, 두 명이 다시 제단으로 가서 3장로와 5장로를 끌고 왔다.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시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끌려간 자리를 따라 소량의 시커먼 것들이 꿈틀대다 사르륵 흩어졌다.

세 사람은 녹은 철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용광로 속으로 쓰레기처럼 집어넣어졌다. 

방금 전까지 그 난리를 피웠던 인간들은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모든 것들에 경악스러운 건 이예주 뿐이었다. 

족장도, 장로도, 다른 눈족 인간들도. 모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그저 제 할 일을 재게 할 뿐이었다.

깡, 깡, 깡! 널따란 지하 공간 안에 다시 철을 제련하고 쇳덩이를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 후 이예주 있는 물레방아 옆에서 한 남자가 주물에 쇳물을 부어넣어 대강 모양을 잡은 시뻘건 쇳덩이를 커다란 집게로 잡고 들어올렸다. 

그는 그것을 들고 그대로 족장에게로 향했다.

드디어 눈족들이 만든 검은 칼을 보게 되는 것인가. 

이예주는 그것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남자의 커다란 덩치에 가려 쇠 집게에 들린 쇳덩이가 어떤 모양인지 볼 수 없었다.

“족장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오, 그래.”

남자가 들고 있던 집게를 족장에게 넘겼다. 

족장 같은 힘없는 노인네가 들기엔 턱없이 버거울 만큼 크고 무거운 집게였다. 

그러나 족장은 반색을 하고 기꺼이 그것을 잡아들었다.

“가서 먹이를 끌고 와.”

놈이 집게를 건네준 남자에게 명령했다. 

그가 우렁찬 대답과 함께 제단에서 오른쪽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저기야.’

이예주는 눈을 빛냈다. 

먹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달려가는 쪽이 토마스나 베니를 가둬 두었을 곳이 분명했다. 

그녀의 짐작에 확신을 남자가 도달한 지하 공간의 가장 외딴 구석. 

그곳의 벽면에서 남자가 쇠사슬을 풀어냈다. 

‘저기가 감옥이겠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기도 멀거니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너머를 보는데 온 집중을 가하던 그 순간이었다.

“이제 모양을 잡는 단계에서 깨져버리는 단계는 끝났군.”

족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예주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족장은 어느새 제단 위로 올라가 아까처럼 황금 항아리 뒤쪽에 서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위에 달아오른 기다란 쇳덩이를 집고 있는 집게를 높이 들어올렸다.

‘뭐 하려는 거지?’

이예주는 입술을 깨물며 한쪽에서 감옥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열고 있는 남자와 족장의 행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여기고 지켜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베니가 갇혀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과, 아직 미완성된 칼의 비밀.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족장이 들고 있던 쇳덩이를 항아리 속에 집어넣었다. 

치이익- 항아리 속에서 뿌연 검은색 연기가 미친 듯이 속아 올랐다. 

그 사이로 족장이 집게를 잡아 빼는 모습이 보였다. 

놈은 그 이상한 행동을 여러 번 반복했다.

“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아리 안에는 장로들의 시커먼 피가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왜…….

족장의 손에 따라 항아리 깊숙이 처박혔다가 위로 들어 올려 질 때마다 벌건 쇳덩이에 검은 칠이 듬성듬성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행위를 반복할수록 벌건 쇳덩이는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드라이아이스처럼 끊임없이 뭉게뭉게 솟던 연기들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예주는 무기를 만드는 일 따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지만, 족장이 하는 괴상한 일이 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족장은 지금 담금질(급랭(急冷)함으로써 금속이나 합금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저지하여 경도를 높이는 열처리)을 하고 있었다. 

보통 차가운 물이나 기름으로 하는 것을, 장로들의 피. 눈

족들이 가진 검은 안개로…….

“족장님. 끌고 왔습니다.”

이예주가 홀린 듯이 족장의 손아래 시뻘건 쇠가 검은 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였다. 

지켜보길 놓친 남자가 그 사이 누군가를 끌고 왔다. 

이예주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쇠사슬에 묶인 채 남자가 마구 끌고 온 것은 갑옷을 입은 회색 늑대. 아니, 신인류였다. 

주사라도 주입한건지 늑대는 이전의 조롱이처럼 정신을 통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늘어졌다.

“가져가.”

족장이 제단에서 내려와 남자에게 집게를 건넸다. 

처음과는 달리 시꺼멓게 변한 쇳덩이가 집게 끝에 잡혀 있었다. 

남자는 집게를 가지고 다시 물레방아 주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모루 위에 올려놓은 채 단조(鍛造, 금속을 일정한 온도로 가열하고 타격 또는 압력을 가해서 성형하는 작업)처리를 시작했다.

남자가 검은 쇳덩이를 옆의 작은 화로에서 달군 후 꺼내어 커다란 망치로 내리쳤다. 

그러자 허공으로 빨간 불똥이 아닌, 검은색 철 조각이 튀었다. 

그 과정을 몇 번 더 반복될 쯤이었다. 

쾅-! 

남자가 다시 망치를 내려치는 순간 모루 위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쇠가 검은 색으로 바뀐 후에는 아무리 달궈도 불똥이 튀지 않았는데, 폭발 후 사방으로 불덩이가 튕겨져 나갔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뭐야! 피해!”

주변에 있던 인간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다행이도 화력이 작았다. 

인간들은 능숙하게 물을 부어 바닥에 떨어진 잔불들을 꺼트리고 하던 일을 이어했다.

마침내 남자의 손에서 검은색 쇳덩이의 성형이 끝났다. 

물이 뿌린 후 반질반질한 돌을 들로 날을 가는 작업까지 마친 남자는, 아직 식지 않아 손잡이에 끼울 수 없는 아래쪽을 두꺼운 가죽으로 잡아들었다. 

그리고 족장에게 다가갔다.

“웬 폭발이었느냐.”

“시, 시간이 좀 지나버려서 검은 안개에 불꽃이 닿아 그렇습니다.”

“물건에는 이상이 없겠지?”

이예주 또한 완성 직전 단계의 무기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전과 같이 남자의 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조바심이 나 몸이 들썩였다.

“네. 물론입니다. 모양을 잡는 중에 금도 가지 않았고, 이전에 비하면 경도도 훨씬 좋은 편입니다.”

“잘 됐군.”

족장이 남자에게서 기다란 검은색 쇳덩이, 아니 완성된 무기를 받아들었다. 

놈은 장로들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회색 늑대를 둘러쌌다. 

“확실히 이전보다 모양이 잘 잡히기 시작했어. 효과가 있군.”

족장이 완성 된 무기를 휙휙 돌려 보다가, 불현듯 신인류의 갑옷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아래로 칼날을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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