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이예주의 혼잣말에 동조하는 타인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깜짝 놀라 어깨까지 들썩이며 휙 뒤를 돌았다.
여신상과 똑 닮은 얼굴.
남쪽 대륙에서 만났던 첫 번째 눈족 인간이 하나 남았던 계단을 마저 오르고 있었다.
‘대체 어느 사이 온 거지?’
아무리 제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겁에 질려있더라도 계단을 오르는 소리 하나 듣지 못할 리 없는데.
여자가 오는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경악스러운 얼굴로 저를 보는데도 여자는 태연한 얼굴로 걸어와 이예주의 곁에 섰다.
“과거에 인간들은 신에게 가는 길이라며 갓로드(god road)라고 불렀었죠.”
“…….”
“다리족에서 과거를 보지 않았던가요? core1의 진입 구에요. 한때는 내핵까지 뚫렸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용암이 넘치고 퇴적물들이 쌓여 뚫어놓은 길들은 막혔어요. 그래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지금은 그냥 쓰레기와 오물처리장으로 쓰고 있지요.”
여자는 변함없었다.
이마까지 후드를 깊게 뒤집어 쓴 로브.
지금까지 봐왔던 눈족 인간들과 똑같은 차림새였지만 옆으로 삐져나온 금발과 고상하고 차분한 목소리 덕분에 누군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네요.”
“그러게요. 다시 볼 줄 몰랐는데.”
이예주는 차갑게 응수했다.
제게 남쪽 대륙을 떠나라 지껄였던 여자였다.
람에게서 도망갈 방법이랍시고 그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칼까지 쥐어준 여자.
좋은 목소리가 나갈 리 없었다.
여자는 굳은 얼굴의 이예주에도 개의치 않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전에 계시는 동안 이곳은 웬만하면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벌써 들켜버렸네요.”
“이곳이 어딘데요?”
“신전이었지만, 용암 폭발로 인해 무너져버렸어요.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잊혀진 신전이에요.”
“내핵까지 뚫어놓은 구덩이 옆에 신전은 왜 지었어요?”
“글쎄요. 여신께 core1의 성공을 치성 드리려고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군요.”
이예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터만 남은 신전은 천 년 전, 내핵으로 가기 위해 땅을 팔 때 같이 지어졌단 소리였다.
그것을 알아차렸다 해도 기쁘지 않았다.
신전이든 터널이든 모두 잠들어 있는 람에게 해코지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녀의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왜 이곳을 저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요?”
“보잘 것 없으니까요. 다 무너지고, 쓰러져서 흔적만 남았지요. 위대한 여신을 모셨던 장소라 말할 수 없어요.”
여자의 말이 맞았다.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사라져 버린 건물 터는 신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을씨년스러웠다.
묵묵히 쟈니아를 바라보고만 있자 그녀가 덧붙였다.
“하지만 순록을 풀어놓고 키우기 알맞아요.”
“…….”
“순록은 영특하고 쓰임새가 많아요. 수명이 길고 생명력 또한 강한 동물이죠. 눈족에서는 순록이 신성한 동물이라 여겨 중요하게 관리합니다.”
“훔쳐온 순록들을요.”
침묵하던 이예주가 여자의 말을 정정했다.
여기 있는 순록들은 다 순심이 가족의 후대들이 분명했다.
저들 편할 대로 쓰기 위해 숲에서 끌고 와놓고 뭐? 신성한 동물로 여겨?
“순록을 받은 건 일종의 거래였어요.”
곱지 않은 눈초리에도 쟈니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어리석은 펭귄들의 실수가 눈족들에게 아직까지 팽배하고 있었다. 이예주는 더 이상 여자와 쓸모없는 대화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친근하게 인사하고 순록에 관해 대화 나눌 사이도 아니었고.
그래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여자가 다시 쓸데없는 말을 붙였다.
“당신을 여기서 볼 줄 예상치 못했는데…… 결국은 눈족 터전의 심장부까지 들어왔네요.”
“난 칼 돌려줬어요. 당신들이 새끼여우와 알리자린으로 협박해서 끌고 온 거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신을 그대로 뒀다간 동쪽 대륙처럼 서쪽 대륙마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르니까요.”
“뭐……라고요?”
여자를 향해 적대감을 남김없이 드러내던 이예주의 눈은 한순간에 휘둥그레졌다.
“서쪽 대륙, 사막과 맞닿아 있는 도시 외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더군요. 하루아침에 지반이 꺼져버려서 당분간 팔족들과의 교류는 헬기를 가지고 있는 다리족들밖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히카톤이 더 이상 도시로 쳐들어가진 못 할 테니 어쩌면 팔족들에겐 긍정적인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멍하니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이예주는 순간 벼락처럼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온 몸이 뻣뻣해졌다.
불현듯 얼음 동굴에서 여자가 준 검은 칼로 손목을 그었을 때가 생각났다.
람에게 벗어나기 위해 어디로든 ‘문’을 열 요량이었지만, 막상 열린 문안에는 팔족 땅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던가.
동굴에 온 람에게 그 멍청한 짓을 들켰고, 별안간 그의 어깨가 터졌다.
그와 동시에 ‘문’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죠?”
무아지경으로 기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이예주는 불쑥 상념을 깨우는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운 채 그녀에게 의중을 묻고 있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제가 준 성물과 연관된 일인가 싶어서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예주는 벌벌 떨리는 속을 감추며 차갑게 말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제 ‘문’과 피가 솟아오르던 람의 어깨로 인한 것일지 모르겠단 생각이 피어올랐다.
대륙이 무너진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쟈니아의 묘한 어투 때문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
제 능력 때문에, 람이 왼팔에 이어 오른팔까지 다친 걸까봐 더럭 겁이 났다.
이예주가 말없이 저를 쏘아보고만 있자 여자가 뜬금없이 로브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당신이 돌려준 칼은 제가 소중히 지니고 있었어요.”
품 안에서 무언가를 불쑥 꺼내든 여자는 그것을 이예주에게 내밀어 보였다.
돌려준 시커먼 색의 단도였다.
어쩌라는 건가. 여자를 멀거니 바라보자, 그녀가 짜증이 날 소리만 골라 지껄였다.
“왜 그를 찌르지 않았죠?”
‘그’가 람을 말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예주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왜 안 찔렀냐고? 찌르지 못하니까 안 찔렀겠지.
울컥 치미는 말들을 삼키며 이예주는 짓씹듯 내뱉었다.
“그깟 칼로 찔러봤자 그 남자 어떻게 못해요.”
“알고 있어요. 이런 작은 칼로는 검은 파편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요.”
“뭐?”
다 알고 있으면서 칼을 줬다고? 이런 개 같은……!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여자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당신 나한테 거짓말 했죠?”
“…….”
“그걸로 찌르면 꼭 람이 큰일 날 것처럼 나한테 거짓말하고 떠봤잖아. 동쪽 대륙까지 들먹이면서.”
쟈니아의 말을 듣고 멍청할 만큼 순순히 칼을 받아온 자신이 끔찍했다.
그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람에게서, 남쪽대륙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든 산꼭대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했다.
뭐가 뭔지 분간도 잘 못했을 때라 여자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헤아리기도 벅찼다.
여자는 이예주에게 말했다.
제가 준 칼로 람을 찌르면 그를 해칠 수 있고 잘하면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고.
그래서 그 틈을 타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후에 찬찬히 생각해보니 완전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이 람을 찌를 수 있을 리 없는 것도 그렇지만, 그를 찔렀다하더라도 제가 어떻게 도망을 칠 수 있을까?
그 남자가 인간이 만든 칼 따위에 어떻게 될 리 없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분노한 람에게 벼락 맞고 뒈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그 사람 찌르라고 왜 시켰어요? 내가 당신 말을 믿고 따를 것 같았어?”
말하고 보니 그러네. 진짜 정신 놓고 찔렀다면 꼼짝없이 뒈질 뻔 했네.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예주는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쟈니아에게 바짝 다가서며 삿대질했다.
“이제 보니 순 사기꾼 아니야? 이걸로 찌르면 람이 날 죽일 줄 알고 일부러 준거죠?”
침이 튀길 만큼 드세게 따졌는데도 여자가 설핏 웃었다.
웃어? 이예주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여자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싶었어요. 찌를 것이라 생각은 안했지만 그래도 조금의 기대를 했었는데…….”
쟈니아는 바짝 다가온 이예주에게서 조금 물러나 인간들이 천 년 전에 파놓은 까마득한 구덩이 가까이 다가갔다.
위태롭게 벼랑 끝에 선 그녀는 아차 할 새도 없이, 구덩이 속으로 단도를 던졌다.
“뭐, 뭐하는 거예요?”
“어차피 이 칼은 실패물이에요.”
깔끔하게 칼을 구덩이 속에 버린 채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걸어오며 답했다.
그렇다고 멀쩡한 칼을 버려?
희한한 사람을 다 보겠단 눈으로 바라보자 여자가 다시 희미하게 입 꼬리에 미소를 걸쳤다.
“하지만 당신은 곧 후회할 겁니다. 남쪽 대륙을 떠나지 않은 것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당신들한테 속수무책으로 이곳까지 끌려 온 거야.”
이예주는 이를 악물고 답했다.
그 놈의 후회, 후회. 이왕 온 거 어디 한 번 갈 때까지 가보자고. 후회하는지 안하는지.
들끓는 눈으로 그저 노려보자 쟈니아가 먼저 고개를 구덩이 쪽으로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신전에 지내는 동안 이곳은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발을 잘못 헛디뎠다가 두 번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테니까요. 방금 던진 칼과 같이 말이죠. 그리고 순록은 예민한 동물이랍니다. 쉽게 스트레스를 받지요.”
옛 신전의 터가 아무리 넓어봤자 어차피 나갈 곳 없는 우리 안이었다.
스트레스는 네놈들 때문에 받겠지. 쟈니아의 가식적인 말에 이예주는 속으로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순록을 따라 온 거예요. 게다가 날 피하지도 않고요.”
“당신에게 흰 순록의 기척이 느껴져서 경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여자가 이예주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흰 순록은 영생을 산다고 하죠. 우리는 흰 순록을 영물로 여깁니다.”
동물 다큐는 종종 봐와서 이예주는 여러 동물에 대해 알고 있다 자신했다.
하지만 흰 순록은 이곳에 와서 머리털 나고 처음 봤기 때문에 진짜 영생을 사는지 같은 건 잘 몰랐다.
영생을 산다면 그건 현실 속 동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펭양이 순심이는 엄청 오래 살았기에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했었다.
하긴 순심이는 정말 동물 같지 않고 똑똑해서 신인류 같았긴 했는데…….
“기억을 보기 때문에 눈족들은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에요. 영생은 누구나 탐을 내죠.”
어디 눈족 뿐인가. 팔족도 다리족도 아주 끈질기기 그지없었다.
시간족들은 죽으면 지옥을 갈 것을 알기라도 하듯 하나같이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시간족들에 대한 감상평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쟈니아는 눈족 나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눈족들은 신체적, 실체적인 능력을 가진 다른 시간족들과는 달라 살아남기 힘들었어요. 과거를 보는 우리들은 여신이 인간들에게 베풀었던 위대한 업적과 사랑을 영겁의 시간에 걸쳐 잊지 않고 기려왔습니다.”
“…….”
“이 신앙심을, 다른 시간족들은 대부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편이죠. 하지만 눈족들은 신전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살아남았어요. 생존을 위해 혈족과의 결합도 만연했지요. 불완전한 아이들, 돌연변이들이 많아요.”
“돌연변이?”
돌연변이라는 말에 불현듯 비행선, 원형 통에 담긴 물속에 갇혀있던 이가 떠올랐다.
마치 사막 괴물처럼 양 옆구리에 인간의 상반신들을 단 눈족 장로가.
조롱이의 피를 빨아먹었던 그 혐오스러운 여자를 떠올리니 반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쟈니아의 말대로라면 그런 인간들이 이곳에 많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돌연변이에 관한 생각은 빠르게 밀려났다.
“남쪽 대륙은 척박한 땅이고,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당신도 지나왔으니 알겠지만, 아이들을 키울 능력이 되지 못하는 부모들 많지요.”
“제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어서 아이들을 버리는 종족은 여기밖에 없어요.”
눈족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던가.
알리자린과 그 애의 동생처럼 다리족에게 끌려가 죽을 때까지 유린당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체 왜 아이들을 버리는 거예요? 차라리 다 같이 굶어 죽어요! 아니면 성인이 되고나서 내쫓던가!”
이예주는 이번에 제 생각을 숨기지 않고 가감이 드러내었다.
온실에서 자신에게 해맑게 인사했던 리즈라는 아이가 떠올랐다.
그녀의 허리춤을 간신히 넘은 어린애였다. 다른 애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격렬한 그녀의 반응에도 여자의 어투는 평이했다.
“그건 당신만의 견해일 뿐. 아이고 어른이고 그 누가 영면에 들고 싶을까요? 다들 살아남기 위해 그러는 짓인데.”
“그럼 뭉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아무 힘도 없는 애들을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힘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다 같이 한데 모여 쫄쫄 굶던 때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러면 큰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작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잡아먹기 마련이지요. 그렇다고 어린 것들을 태어나는 족족 먹어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것은 인도에 너무 어긋나는 짓이니까…….”
“뭐, 뭘 먹어치워요?”
이예주는 방금 제가 헛것을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멍하니 되물었다.
쟈니아가 일순 낯을 바꿨다.
무언가를 회상하듯 이예주를 빗겨간 시선이 아득한 먼 허공에 박혔다.
“한 때는 그런 적도 있었지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을 때가요…….”
한순간 초점이 사라진 동공이 불쾌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본 적 있는 눈빛과 말투였다.
해안 마을 족장과 지하 동굴에서 떠들던 눈족 장로의 동공과 엇비슷했다.
동태 눈깔처럼 이지도 없고, 이성도 없는…….
여자의 혐오스러운 말도 그렇지만 아주 먼 옛날을 회상하는 듯한 모습은 안 그래도 더러웠던 이예주의 기분을 순식간에 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쟈니아의 초점은 금방 돌아왔다.
“과거에 눈족 족장이 두 명일 때가 있었어요.”
“방금 애들을 먹어치운다고 했어요?”
“과거와 미래를 보는 자로 나뉘기 때문에 두 명이었는데 그 둘의 성별이 다르면 권력의 통합을 위해 부부의 연으로 묶일 때가 많았죠.”
무시하고 제 할 말만 쏟아내는 여자의 모습에 아연해져 이예주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다리족에서 이미 들어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은 중요합니다. 살아남아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어느 죽어가던 족장은 같은 족장이었던 아내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기도 했다고 하지요.”
“…….”
“눈족은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어요.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우리만큼 잘 아는 일족은 없을 테죠. 우린 그렇게 살아남은 일족이에요.”
“그런 역겨운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데요?”
“족장을 조심하세요. 그는 기회주의자이니까.”
이예주는 일순 여자가 어떤 족장을 말 하는 건지 순간 헷갈렸다.
쟈니아는 족장의 딸이었다.
제 아비를 기회주의자라고 칭하는 패륜아였구나.
그간 고상했던 말투와 판이한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헷갈렸던 이예주를 비웃듯 여자가 마지막까지 쐐기를 박았다.
“생존을 위해 필요 없는 군식구는 자비 없이 버리는 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