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68)화 (270/319)

그녀는 깊은 한숨과 함께 목 끝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넘겨 삼켰다. 

일단은 참아야 했다. 

놈들은 그녀를 제 발로 여기까지 걸어오게 할 만큼 차고 넘치는 약점을 쥐고 있으니까, 일단은.

“그래요. 성수든 세례든 이미 엎질러진 거…… 됐으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본론, 말입니까.”

“네, 본론.”

생소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족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눈가에 자글자글 맺혀 있는 주름이 접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금껏 겪어 본 바로는 이런 일일수록 빨리 빨리 진행하고 탈출을 도모하는 편이 신상에 더 이로웠다.

“알리자린 동생 어디 있어요? 그 애부터 먼저 보여줘요.”

“…….”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까 기어코 여기까지 끌고 온 거잖아요. 당장 풀어달란 소린 안 할 테니까 생사부터 확인하게 해줘요. 그래야 거래를 생각하죠.”

“거래.”

명확하게 뜻을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늙은 족장은 되레 흐릿한 눈으로 이예주를 응시했다. 

지금까지 별 생각 없었는데, 마주친 초점 없는 눈동자가 어쩐지 조롱이의 피를 빨아먹던 눈족 여장로를 떠올리게 오싹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노인은 금세 총기를 되찾았다.

“구원자님. 당신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 듯 하군요.”

비록 좋지 않은 방향이었지만. 

족장이 숲에서 처음 조우했던 예의 그 인자한 미소를 얼굴 만면에 띠었다. 

그 웃음이 지독히도 비릿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처음부터 우리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뭐, 뭐요?”

“우리의 거래 대상은 오로지 검은 파편, 람. 그 뿐이지요.”

이예주는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람이 없는 틈을 타 새벽부터 숲까지 겨들어온 게 누군데. 

숲에 사는 동물들과 알리자린의 동생의 목숨을 인질삼아 가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에게 볼 일은 없다니. 알리자린의 동생만 아니었어도 어떻게 서든 가지 않으려고 저항했을 것이다. 

이예주는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그럼 그 남자랑 둘이 얘기 할 것이지, 나를 뭣 하러 여기까지 끌고 온 건데요!”

“거래를 하려면 반드시 오가는 조건이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하. 조건. 인질이 아니고?”

“이제라도 아셨으니 다행이군요.”

이런 미친. 대수롭지 않게 들려오는 대꾸에 그녀는 튀어 나올 뻔한 욕설을 속으로 삭혔다. 

제 발로 납치범의 소굴로 걸어오는 인질도 다 있나. 

결국 이예주는 속았다. 

진짜로 살아있는지도 모를 알리자린의 동생이란 미끼로 어처구니없이 낚인 것이다.

“내가 구원자라면서요?”

낯부끄러워서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었다. 

저쪽에서 이렇게 유치하고 뻔뻔스럽게 나오는데 자신이라고 참을 필요 있나. 

이예주는 그나마 가지고 있는 패로 한 번 막나가 보기로 결심했다.

“당신이 예언을 했다면서요. 내가 검은 파편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구원자라고. 내가 지금껏 시간족에게 받았던 대우 중에 가장 재수 없고 형편없어요.”

비록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지금껏 시간족을 거치는 동안 극진하게 대우 받았다. 

팔족의 일리야도, 다리족의 여준도 모두 그녀에게 호의와 자비를 구했다. 

검은 파편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대재앙의 마지막 순간, 검은 파편의 곁에 있는 인간 여자. 검은 파편을 소멸하여 모든 인간들을 지옥 불에서 구원하고 신이라 불리리라.

대 현자 뭐시기라는 현 눈족 족장이 했다는 예언.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면 무려 람의 소멸에다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였으니까. 

이예주는 예언을 의심할지 언정 검은 파편의 곁에 있는 인간 여자가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람이 곁에 있도록 허락한 인간 여자는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덧 저도 모르게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원자는 자신이라고.

“예언은 구원자가 당신이라고 정확히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언을 내렸다는 그 눈족 족장은 그녀의 근거 없는 확신을 가뿐하게 깨트렸다.

“당신을 구원자로 만드는 것은 다리족들의 계획이었지요. 검은 파편을 파괴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깟 예언 따위, 얼마든 이용해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다리족들만의 전략에 불과하지 시간족 전체가 동의하는 진실은 아니지요. 때문에 구원자는 당신이 될 수도, 또 다른 인간 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전략?”

허. 칠 거짓말이 따로 없어서 이젠 없던 구원자까지 만들어 이용해 먹었구나. 

이예주는 다리족 놈들의 이중성에 다시 한 번 치를 떨었다. 

노인네의 말은 신뢰도가 조금도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준 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아직 진짜 구원자라고 입증할 수 있는 뚜렷한 명분이 없기 때문에 구원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완전한 시간족이라고 할 수도 없기에 예언과 상관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예우를 다하는 것은 당신이 구원자가 아니라는 뚜렷한 명분 또한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노인이 여전히 모호한 미소로 이예주의 현실을 차갑게 일깨웠다. 

너는 완전한 시간족도 아니니 구원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바로 네 목을 치지 않고 이정도 예우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이예주는 놈들의 배려가 전혀 감사하지 않아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럼 이건 상관있겠네요.”

“…….”

“나한테 능력이 있다는 것. 다리족에게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 들었을 거 아니에요? 내가 거래 대상이 아니면 굳이 여기 있을 필요도 없겠네.”

족장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걷혔다. 

눈가의 주름이 씰룩거리다가 파르르 떨렸다. 

긍정적인 반응은 당연히 아니었다. 

한방 먹인 건가. 

“글쎄요…… 신성한 공간에서 딱히 귀빈을 강제 할 생각 없습니다.”

분명 반가운 말인데도 하나도 달갑지 않았다.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노인이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 것 같다가도 조금만 틈을 보이면 금세 낯을 바꾸고 윽박지른다. 

다리족처럼 겉으로나마 예의를 차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무슨 소릴 이어서 지껄일지 긴장되어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다만 당신이 사라지는 즉시 그 애는 죽을 겁니다. 효수한 목은 친히 숲으로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잠시일 뿐이지만 늙은이의 말동무가 되어준 선물로 말이지요.”

“…….”

“몸뚱이는 오물 처리장에 던져 놓는 걸로 하고요. 설원에 묻어봤자 꽝꽝 얼 뿐 썩지 않지요. 제 누이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그 아이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예주는 듣기만 해도 귀가 썩을 만큼 잔인한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미소를 되찾은 눈족 족장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사람 거죽을 쓰고 저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지? 

알리자린의 동생은 고작해야 초등학생, 많아봤자 중학생으로 볼 만큼 어린 아이였다. 

아무리 협박이라지만 그런 어린 애를 가지고 어떻게 저런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지껄일 수 있나.

“같은…… 같은 동족이잖아요.”

찹쌀떡이라도 걸린 것처럼 목이 콱 막혀서 이예주는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짰다.

“같은 눈족이잖아.” 

“…….”

“대체 왜 그래? 내가 왜 당신들 보다 더 당신네 동족을 신경 써야 되는데!”

이예주는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외쳤다. 

그녀는 시간족이라면 욕부터 나올 만큼 너무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 없이 버려지는 어린 눈족 아이들까지 경시할 수는 없었다. 

그 애들은 일족에게 버려지는 것도 모자라 다리족 놈들에게 끌려가 끔찍한 실험까지 당해야 했다. 

왜 애꿎은 아이들을 그렇게 소모품처럼 이용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와는 모순되게도 눈족 족장은 끔찍할 만큼 담담하게 말했다. 

책에 적혀 있는 당연한 규칙을 읊는 것 같았다.

“우리에겐 쓸모가 없어 버려진 아입니다.”

“…….”

“당신 때문에 쓸모가 생겨서 데리고 와서 필사적으로 보살폈지요.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 몫의 식량과 약품들이 줄어들었지요. 어쩌면 그로 인해 죽어 버린 아이가 있을 수도요.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그 숭고한 희생도 무용지물이겠지요.” 

“나보고 어쩌라고!” 

이예주는 별안간 버럭 비명 질렀다. 

“인간 말종은 네놈들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자님. 지금은 그저 우리가 베푸는 호의를 받아들이고 람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눈족 족장이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이예주의 현실을 일깨웠다. 

그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랬다. 그녀는 결국 람이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인질이 되어서. 

“그러니까 대사제를 통해 검은 칼을 주었을 때 남쪽 대륙을 떠나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에 분하다 못해 눈물가지 고인 이예주의 충혈 된 눈을 바라보며 노인이 쯧, 혀를 찼다.

“그만 가시죠. 머무실 방으로 안내 해드리죠.”

족장이 고개를 까딱이자,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던 눈족 인간 중 두 명이 번뜩 그녀의 양 팔을 잡아채어 압박했다. 

방금 전에 강제 안 한다며, 개새끼야! 

계단 쪽으로 질질 끌려가다 시피 걸어가며 이예주는 마지막으로 발악했다.

“이런다고 무사할 것 같아? 당신들 람 오면 싹 다 죽어!” 

“잔인한 말씀을 하시는 군요, 구원자님.”

“미친, 니네가 더 잔인해!”

놀리는 듯한 족장의 말에 바싹 약이 올랐다. 

여신상을 기준으로 왼쪽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내내 투덜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위층으로 완전히 끌려 간 것인지 신전 내부는 다시 소름끼칠 정도로 적막에 잠겼다. 

숲에서부터 이예주를 둘러 싼 채 이곳까지 데리고 왔던 눈족 인간들이 조용히 족장 앞에 부복하여 고개를 숙였다. 

여신의 왼쪽 어깨 옆을 흐릿하게 바라보며 족장이 중얼거렸다.

“벌써 잠에 들 시간이군…….”

방금 전까지 맑았던 눈빛이 점점 탁해지기 시작했다. 

초점도 빠르게 흐려졌다. 

늙어빠진 신체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부터 무리를 감행했다.

“소란스럽지 않게 제단을 잘 지키고. ……어차피 빠져나갈 구멍 따윈 없겠지만.”

사제들이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눈족 족장은 점점 허물어지는 몸을 이끌고 여신상 뒤로 걸음을 옮겼다.

이예주는 본인을 사제라고 지칭하는 눈족 수하 두 명을 따라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나선형 계단 중간에 복도를 두 번 정도 지나치고 나니 더 이상 계단이 이어지지 않았다. 

4층이 꼭대기 층인 것 같았다. 

눈족 인간들은 꼭대기 층에서도 가장 복도 끝, 구석에 처박힌 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지들이 위험도 감수하고 데리고 왔으면서, 시간족 놈들은 왜 하나같이 가장 깊숙하고 구석탱이에 자신을 숨기려 드는 건지. 

다리족과 비슷한 눈족 놈들의 기행에 이예주는 입매를 비틀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여신상이 있는 1층까지 복도가 뚫려 있어 언제든 난간 밖으로 신전 입구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들어가시지요.”

하얀색 문을 열어준 족장의 수하 두 명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예주는 별 다른 반항 없이 순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 소문 없이 문이 닫히고 새로운 공간에는 그녀 혼자만이 남겨졌다.

그녀는 문 근처에 서서 방 안을 쭉 둘러보았다. 

테라스가 딸려 있는 방은 그다지 넓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깔끔했다. 

화장실에 침대, 그 옆에 벽난로와 작은 탁자까지 있을 건 다 있어 보여 의외였다. 

족장 늙은이의 기세를 보면 당장이라도 어디 지하 감옥에 쳐 넣을 거라 생각했는데. 

방 탐색을 마친 그녀는 테라스 쪽으로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통 창 너머로 눈족들이 사는 곳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벽난로에 불이 켜져 있는 덕분일까. 바람이 숭숭 불던 1층과는 달리 방 안은 온기로 훈훈해서 창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예주는 그저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높은 곳에서 보니, 눈족들의 주거지는 온통 새하얗다. 

어디하나 오점이랄 게 없이 하얀 사각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은 얼핏 보면 어디 해외 유적지를 방문한 것처럼 장관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보다 새하얀 석고건물들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보통 하얀색은 순결과 결백, 평화 따위를 상징하기 마련인데, 거리에 사람 하나 나다니지 않는 곳에 그런 상징성을 붙여봤자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게다가 눈족 인간들이 얼마나 음험한지 이미 톡톡히 겪어온 그녀에게는 더더욱.

“무슨 정신병자 소굴도 아니고…….”

눈살을 찌푸린 채 가만히 신전 아래 광경을 바라보던 이예주는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성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을 전체를 아우른 채 새워진 성벽을 따라 쭈욱 눈을 돌리자니 일순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탈출로는 확보해놔야 할 텐데.”

눈살을 한껏 찌푸린 채 그녀가 중얼거렸다. 

오자마자 탈출부터 생각하는 자신이 안쓰러웠지만 별 수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또 엄한 일에 휩쓸려 뒈질 수는 없으니까.

눈족 놈들은 뭐가 두려워서 저렇게 높이 벽을 쌓고 외부와 차단하듯 마을 전체를 둘러쌌을까. 

마치 외부로부터 마을을 지키듯 견고하게 세워진 벽이 우스웠다. 

눈족 인간들에게는 퍽이나 안정감을 가져다 줄 벽이, 그녀에겐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 다른 눈족에게는 비참함으로 다가오겠지. 

비행선에서 보았던 알리자린과 그녀의 동생을 떠올리며 이예주는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벽까진 어찌어찌 도달해도 벽 바깥으론 또 어떻게 나가나. 

그 전에 눈족 족장의 눈을 피해 신전 밖으로 나갈 방법은. 

아니, 그 전에 알리자린의 동생이 어디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자신이 사라진 것을 알면 람이 분명 지랄 발광을 할 텐데, 변명은 또 뭐라 해야 하지……. 

“아오, 씨! 몰라!”

이곳에서 할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보려던 이예주는 해야 할 일이 너무 태산 같은 나머지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생각을 포기하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동안 평화롭고 좋았는데. 망할,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 거지? 

전혀 만날 일 없다 여겼던 눈족 놈들의 마을까지 꼭두새벽부터 끌려온 것도 모자라 늙은이와 기싸움까지 했다. 

멍하니 아무 무늬 없는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피곤이 물밀 듯 닥쳐왔다. 

이렇게 좋지 않은 컨디션과 혼탁한 머리로는 될 일도 안 되기 마련이다.

“자고 일어나면 뭔가 생각이 나겠지.”

이예주는 일단 자기로 결정 했다. 

설마 끌려온 첫날 죽이거나 하진 않겠지. 

결정을 내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는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듯 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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