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55)화 (257/319)

남자에게 잡혀 있는 왼손에 아득 힘이 들어갔다.

“왜…….”

“…….”

“왜 그랬어요?”

남자의 오른쪽 목 근처 어깨 부분에 무언가에 깊게 베였다가 흉터가 진 듯 선명한 붉은 자국이 자리 한 것이 보였다. 

어둡고 뿌연 시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처참한 상흔이 어깨너머 등 뒤까지 쭉 이어져 있을 것이 안 봐도 훤했다. 

이예주는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절하기 전, 자신을 붙잡기 위해 남자가 제 몸을 일부러 파괴한 흔적이란 걸.

치솟았던 뜨거운 덩어리는 금방 목구멍과 눈가까지 점령했다.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오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왜 그랬어요? 왜 그랬냐구요.”

“예주야.”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나한테 왜 그랬냐고, 이 나쁜 자식아!”

이예주는 잡히지 않은 손으로 남자의 맨살을 퍽퍽 내리치기 시작했다. 

돌 같은 남자의 몸뚱이를 내리쳐봤자 아픈 건 제 손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예주는 눈앞이 시뻘겋게 변해서, 도저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젠 하다못해 내 목숨도 모자라 자기 목숨까지 들고 협박해? 왜! 또 도망가면 죽인다고 그러지! 그냥 죽여! 대체 왜이래! 이제 와서 왜 이러는데! 이용 할 만큼 다 이용해먹고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구요!”

“…….”

“내가 뭘 포기했는데! 흐으, 내가 당신 때문에 뭘 포기 했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잔인하게 굴어!”

이예주는 과거를. 엄마를, 봉구를, 수학여행에서 죽은 친구들을 포기했다. 

단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었다. 

언제나 가시처럼 목구멍 한 쪽에 남아 그녀의 숨통을 갈작갈작 긁으며 조여 와서, 포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예지몽에서 남자가 팔을 다친 모습을 본 후로 더 고민할 새도 없이 모든 걸 포기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인가.

남자는 감히 자신을 내리치는 한낱 인간 계집의 손을 저지하지 않았다. 

묵묵히 맞고만 있는 그의 태도에 오히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이예주 뿐이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금방 현기증이 돌며 힘이 부쳤다. 

그녀는 그를 때리는 것을 관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엉엉 울었다.

남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이런 자신이 왜 그러는지 공감도, 이해도 못 할 거란 것도 잘 알았다. 잘 알면서도. 그래도 마주쳤을 때 한 번 쯤은 사과를 해주었으면 바랐다. 

그래야 자신이 용서 할 수 있을 테니까. 

남쪽 대륙에서 정신을 차린 이후 내내 이예주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사방으로 날뛰었다. 

자신을 다리족을 끌어내는 미끼로 이용한 남자한테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남자의 사라진 팔에 대한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를 피해 숲을 빠져나갈 길을 찾아 헤매면서도 막상 남자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그가 용서를 구하면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용서해주고 다시 속어 넘어가 주어야 할지. 

아니면 나를 과거로 보내달라고 화를 낼지……. 

그러나 람은 람이었고, 그녀가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또 남자가 다치는 꼴을 보고 기겁하여 제 입으로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애원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나한테 기회를 좀 주지 그랬어요.”

“…….”

“나는 멍청해서, 당신이 시키면 미끼인줄 알아도 그냥 갔을 텐데.”

“…….”

“그럼 알리자린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서 탈출하지도 않고 좋았잖아…….”

이예주는 오물을 토해내듯 힘겹게 말했다. 

그랬다. 자신이 봐도 헤벌레 했던 지난날의 자신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멍청했다. 

그래서 람이 시키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그것만이 답인 줄 알고 그냥 다리족으로 갔을 것이다.

멍청한 계집. 이예주는 손 틈 새로 온천물보다 더 뜨겁게 새어나오는 물들을 느끼며 어리석은 자신을 욕했다. 

이 바보야. 바보같이, 남자가 이미 능력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알리자린을 사지로 밀었다. 

남자를 데리고 다시 산꼭대기로 올라가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계획이랍시고 지껄이면서.

그녀는 아직도 제가 오길 기다리고만 있을 어린 여자애 생각만 하면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남자에게는 딱히 답이 없었다. 이예주는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는 자신이 그 어느 때 보다. 

수학여행에서 상처 하나 없이 홀로 살아 돌아 온 후 사람들에게 미래로 가는 능력이 있다고 고해바칠 때보다 더 비참하고 부끄러웠다. 

그때. 찰박, 하고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뜨끈한 손이 얼굴을 감싸 안은 이예주의 두 손목을 잡고 얼굴에서 떼어내려 들었다. 

그녀는 꼴사납게 울고 있는 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꾹 힘을 줬지만 남자의 악력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 마요!”

이예주가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남자가 기어이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내렸고 눈물 콧물 범벅되어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진짜 나한테 왜 이래, 이 자식아! 

그녀는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딸꾹질 뿐이라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그저 여전히 진정하지 못하고 히끅 히끅 숨을 들이마시며 남자를 매섭게 노려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은 전혀 개의치 않는 건지 남자가 여상히도 입을 열었다.

“이무기의 여의주를 빼앗았을 때부터였나.”

쥐고 있던 이예주의 손목을 놓고 남자가 양손을 들어 발갛게 열이 올라 있는 그녀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꾹꾹 누르자 질금질금 흘러나오던 짠 물기들이 모두 흡수되듯 그 자리가 보송보송해졌다. 

그의 손을 피하기 위해 이예주가 마구 고개를 흔들었지만 어찌나 억세게 잡았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군.”

“…….”

“내 앞에서 울부짖는 인간들은 하나 같이 뭐든지 바치겠다며 살려달라는 것들뿐이었는데.”

남자는 제법 다정하게 이예주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며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읊조렸다. 

그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내가. 내가 우는 이유를 몰라요?”

“…….”

“정말, 흐흑…… 정말 몰라요?”

“모른다.”

남자가 매정하리만치 차갑게 단정 지었다.

“나는 인간들의 감정은 알지 못한다.”

“…….”

“그래서 네가 필요 했지. 내 앞에서 고작 가지고 있던 여의주나 책, 당과 따위가 없어졌다고 울음을 터뜨렸던 건 너뿐이었으니까.”

이 남자를 진짜 어떡하지. 어떡해야해. 이예주는 뼛속까지 느껴지는 막막함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 자신도 본인이 왜 울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서럽고 벅찼다.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었는데. 이젠 대체 이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없었던 일로 여기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되나. 그러면 될까. 

그런데 그럼 포기한 내 과거는 어떡해. 다리족 놈들의 본거지에 두고 온 알리자린은 어떡하고.

남자는 다시 이예주의 얼굴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울지 말란 소리도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그녀의 분비물들을 제 손으로 흡수 할 뿐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람은 어렵사리 다물렸던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 눈족 계집이 죽어서 우는 건가?”

눈을 아래로 내리 깐 채 훌쩍이던 이예주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녀가 못들을 것을 들은 사람처럼 허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뭐, 뭐라고 했어요?” 

“…….”

“아, 알리자린이…… 알리자린이 죽었어요?”

전혀 준비 하지 못한 시간에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알리자린의 소식을 전해준 람 때문에 그녀의 동공이 찢어질듯 확장 되었다. 

알리자린이. 알리자린이 죽었다. 

자신과 달리 흔들림 없는 남자의 시뻘건 두 동공에 이예주는 그것이 한 치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은 사실임을  잘 알았다. 

나 때문이야. 내가. 내가 그냥 두고 혼자 ‘문’을 넘어서. 

“나, 나 때문이에요. 내가. 내가 당신을 선택해서. 내가 그 애를 두고 당신한테 가서. 나 혼자만 문을 넘어서……!”

온천물에 물을 담근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설원 위에 서 있을 때와 같이 이예주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죽음을 통보받은 사람처럼 그녀의 얼굴이 모든 색을 잃고 허옇게 얼어붙었다. 

이제 알리자린이 꿈에 나올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악몽 속에 튀어나올 지도 모르겠다. 

나와서 왜 자신을 두고 갔느냐고. 너 때문에 내가 죽었노라고. 

목을 조르고, 꼬집고, 할퀴어 대며 꿈속에서 몇 십번이 자신을 원망하고, 죽고 또 죽고 또…….

소리소문없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벌벌 떠는 이예주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람이 손을 뻗어 그녀를 와락 품에 끌어안았다.

“예주야.”

품 안에 인간 여자의 여린 몸을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았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몸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괴물에게 잡아먹히기 싫다고 했는데. 내가 자신을 버리는 미래를 봐서 무서워했는데. 내가 꼭 구해준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쉬. 괜찮아.”

“나 때문이에요. 내가 알리자린을 죽인 거예요. 혼자 잘 살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네 탓이 아니다. 그러니까 울지 마.”

람은 이예주가 진정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의 뒷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 인간 여자를 달래는 것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는 참을성 있게 그녀를 기다렸다.

“……나 무서워요.”

“…….”

“나 너무 무섭다고요.”

람은 인간들의 뿌리 깊은 죄책감이나 슬픔, 절망 따윈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하나뿐인 인간 여자가 그것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을 제 쪽에서 반대편을 향하도록 돌려 안았다.

“그만 울고 이것을 좀 보도록 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꺽꺽 거리느라 온 몸에 진이 다 빠진 이예주는 그저 람이 몸을 틀면 트는 대로 힘없이 흐늘거렸다.

“네가 이럴 것을 알고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눈족 계집의 혼을 따로 담아왔다.”

그가 검지만 남겨두고 그녀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접었다. 

어딘가를 지목하듯 홀로 남은 이예주의 검지 위로 작은 물체가 포르르 날아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새파란 색의 날개가 인사하듯 사부작 흔들렸다. 

손에 나비를 앉힌 채로 어정쩡하게 굳은 그녀는 아직도 물기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람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뭐예요?”

“뭐일 것 같은데.”

그의 답에 이예주는 다시금 시선을 제 검지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나비 한 마리에게로 옮겼다. 

무늬 하나 없이 영롱한 파란색의 날개. 

나비든 뭐든 곤충이라고는 질색하는 그녀였으나 징그럽다고 느끼기에, 그 색이 너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이예주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래졌다.

“……알리자린?”

그녀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나비의 푸른 날개는 알리자린의 눈동자 색이 틀림없었다. 

감정이라곤 바삭하게 메마른 동공 한편에 구원자에 대한 희망을 숨기지 못해 맑게 빛나던, 알리자린. 

새된 비명소리와도 같은 이예주의 목소리에 나비의 파란 날개가 인사하듯 날개를 또 한 번 살포시 흔들었다. 

“그렇게 바라던 검은 파편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왜 질질 짜고 있느냐고 묻는군.”

“나, 나비랑 대화도 할 줄 알아요?”

그녀의 물음에 남자의 눈썹이 위로 삐쭉 들렸다. 

“……거짓말.”

이예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자와 나비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그냥 자신을 달래주려고, 휴대폰을 빼앗아 돌뱀한테 주었을 때처럼 대충 둘러대는 게 아닐까.

“거짓말. 아, 알리자린이 이런 나비 일리 없잖아요. 기다리라고 했는데. 내가 구해준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이예주는 덜덜 떨리는 반대쪽 검지로 제 손 위에 앉아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개를 아주 살살. 만지면 부서져 내릴까 두려워 아주 살살 건드렸다. 

진짜 곤충이었다면 곧 바로 날아가 버리기 십상이건만, 인간의 손이 몸통을 툭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푸르른 날개를 산들산들 흔들 뿐 날아가지 않았다. 

몇 번 더 쓰다듬었지만 변함없었다.

“이제 놓아 주거라. 네가 울고 있어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가 없다고 한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건 알리자린이 아니야.”

보다 못한 람의 한 마디에 이예주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남자의 말에 거짓이 섞여있지 않음을.

“어떡해. 나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내가 구해주지 못해서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멍청하긴. 이건 내 선택이니 네 잘못이 아니라고 했잖아.”

“…….”

“……라고 하는 군.”

그의 입을 타고 무미건조하게 흘러나오는 몇 마디 말에 이예주가 흐읍,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문’을 넘기 전 마지막, 알리자린과 나눴던 대화였다. 

람은 모르는 알리자린과 자신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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