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52)화 (254/319)

“어, 어…!”

이예주는 그저 혼비백산 남자의 어깨에서 솟구치는 핏줄기를 바라보았다. 

제 피는 확실히 아니었다. 

어떻게 바득바득 살아남았는데. 

자해를 해서 허무하게 뒈질 생각으로 손목을 그은 것이 아니었으니 이렇게 호스라도 달아 놓은 것처럼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핏물은 제 것이 아님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왜? 

왜 이렇게 뜬금없이 피를 흘리고 있단 말인가? 

오른손에 꽉 쥐고 있던 쟈니아가 준 칼은 동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고로 제가 남자를 신체를 찔러 구멍을 낸 것 또한 아니란 소리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렇다기에 이렇게 구역질 날 만큼 강하고, 역한 피비린내가……. 

이예주는 남자에게 잡힌 몸을 필사적으로 뒤틀어 곁눈을 찌르는 환한 빛 쪽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린 것을 본 것 또한 꿈인지 생신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아 고개만 최대한 내빼다 보니 금세 목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지금 눈을 부릅 뜬 채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은 아닌 듯, 가까스로 눈길이 닿은 동굴 구석탱이에 ‘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것보다 더 환장할 상황이 이예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발현된 그녀의 능력이 어딘가 이상했다.

“무… 문이…….”

‘문’이, 그리고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수면처럼 일렁거리며 허물어지고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문 위로 누가 동굴 벽과 똑같은 색, 질감의 페인트를 들이 붙는 것처럼. 그것은 그저 허물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문’이 점점 허물어지며 사라지자, 그 안에 희미하게 떠올랐던 영상 또한 점점 허물어졌다. 

그런데 그저 사각의 빛 뭉텅이인 ‘문’과는 달리 그 안에는 실제 있는 지역의 모습이어서 그런가. 

이예주의 ‘문’과 함께 허물어지는 서쪽 대륙이 꼭,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이 보였다. 

고층 건물들이 도시 외곽 쪽부터 우루루 무너져 내리고, 텅 비어있는 황량한 땅들이 붕괴되는 것처럼…….

이예주는 그것이 ‘문’의 허물어짐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힘없이 아래로 푹 꺼지는 커다란 빌딩 주변으로 일어나는 거대한 구름 같은 것이 먼지 폭풍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때였다.

“자, 잠깐!” 

그녀는 다급히 남자에게로 의 하얀 볼에 점점이 튀는 핏방울들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그의 어깨 죽지를 타고 바닥으로 줄줄 물처럼 흘러내리는 뻘건 물의 양도 갈수록 늘어났다. 

그 짧은 새, 그들의 발치에는 핏물이 고여 불그죽죽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이예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 하지 마요! 하지 마요!” 

그녀의 외침에도 남자는 미동하지 않았다. 

지그시 감긴 눈,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남자의 얼굴이 전에 없이 창백해 보였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헛구역질이 치솟아 올랐다. 

이예주는 붕괴되는 서쪽 대륙과 함께 허물어지고 있는 ‘문’과 원인을 모른 채 오른쪽 어깨 죽지에서 피를 줄줄 내리 흘리는 남자를 휙휙 번갈아 바라보며 거칠게 헐떡였다. 

그리고 사라지고 있는 ‘문’이 남자와 관계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만! 그만 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아무데도 안갈 테니까, 그만 하라구요!”

“…….”

“람!”

이예주는 비명처럼 남자를 부르며 그의 덥석 껴안았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원인도 알 수 없이 피를 죽죽 내리 흘리는 남자를 멈추게 하려면.

“하지 마요! 아무데도 안 갈 테니까. 다신 이런 짓 안 할 테니까 그만 해요! 피 많이 나잖아요!”

그만 해, 이 새끼야! 손목에서 불로 지지듯이 얼얼한 통증도 무시하고 애원했다. 

애원하고, 울먹이고, 너무 놀라 숨이 넘어갈 지경이 돼서야 남자가 상냥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괜찮아. 가 보도록 해.”

“…흐흑, 네?”

“갈 수 있으면.”

“그,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

지껄이는 거냐, 이 자식아! 

말장난을 하는 남자에게 분노를 참지 못해 버럭 성토를 하려던 이예주는 문득 눈앞이 핑 도는 느낌에 그대로 힘없이 남자의 품 안에 쓰러지듯 안겼다. 

여전히 비위를 자극하는 날 것의 냄새가 속을 미식 거리게 하고 머리 한 쪽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남자의 허리를 꽉 끌어 잡고 있던 손에. 아니, 온 몸의 힘이 피가 흐르는 손목을 타고 한 순간에 쭉 빠져 버린 것처럼 고개가 저도 모르게 푹 고꾸라졌다. 

더 이상 이예주가 남자를 결박하고 있지 않음에도, 남자는 제 품 안에 쓰러진 그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축 늘어지는 이예주를 제 품 안에 조심조심 그러안고 천천히 바닥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동굴 바닥은 찬 공기에 벌써 식어버린 피로 질척했지만 람은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이예주 또한 그의 품위에 아기처럼 보듬어 안긴 상태여서 미처 알아차릴 새가 없었다. 

그들 주위가, 범죄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통 피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 발악을 했겠지만 머리를 가누는 것도 힘들만큼 강한 현기증이 정수리를 엄습했다.

“……아, 머리야…….”

금방이라도 토사물을 쏟아낼 것 같은 좋지 않은 기분에 이예주는 피가 흐르는 왼 손으로 머리를 짚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 와중에도 저를 안고 있는 미친놈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자꾸만 힘없이 고꾸라지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문’쪽으로 돌렸다.

“……무, 문이…… 문이…… 허.”

이예주는 희미한 빛 무리만 군데군데 남은 채 거의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처참한 ‘문’과 마주할 수 있었다. 

허, 하는 허탈한 실소가 입술 새를 비집고 절로 흘러나왔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남자의 어깨에서 피가 솟은 후 ‘문’이 사라졌다. 

천 년 후로 넘어와 열린 ‘문’을 외면하고 무시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나 처참하고 무식하게 ‘문’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허물어지는 ‘문’의 모습은 꼭 그때와 같았다.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중턱.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신의 뒤를 쫓던 남자를 피해 넘은 ‘문’ 속의 암경이, 허물어져 내리던 그때와…… 

아아. 머리 울려.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려 하자마자 그런 무서운 기억은 떠올리지 말라는 듯 무섭게 뒷골에서 찌르르 통증이 올라왔다. 

“……아파요.”

이예주는 느끼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놓았다. 

아주 오랜만에 부리는 어리광이었다. 

어디 머리만 아플 쏘랴. 울렁거리는 속도, 제 손으로 벤 손목도, 온 몸이 모조리 작신작신 밟힌 것처럼 아팠다.

“아프다구요.”

당신 때문에, 아파 죽겠어. 

자조 섞인 이예주의 울먹거림에 남자가 여전히 시뻘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이예주의 다친 손목을 신속하게 확인했다. 

제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피가 허옇게 묻어났다.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남자에게서 줄줄 흘러나온 피는 검은색 장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이 상황을 본다면 필시 이예주가 줄줄이 피를 내리 흘리며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녀의 팔을 자세히 들여다보느라 남자가 단단히 받치고 있던 이예주의 상체를 아예 제 가슴에 철푸덕 기대게 만들었다. 

그 짧은 움직임에도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려 그녀는 연달아 넘어오는 신물을 꾹 삼켜야했다.

“……어지러워요.”

“다행히 그리 깊게 베이진 않았다.”

“혈액 공포증 있다고 했잖아요…….”

“입은 멀쩡한걸 보니 괜찮나보군.”

이예주의 헛소리에 시큰둥하게 답하며 남자가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잘 누워있다 모포를 걷어차고 일어난 이부자리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통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 거리는 이예주를 그쪽에 눕힐 심산인 듯했다. 

“잠자리에 피 냄새 배는 거 싫은데…….”

피가 묻은 옷을 벗길 생각도 않고 푹신한 동물 털가죽 위에 자신을 눕히는 남자의 행동에 이예주가 기겁하며 불평했다. 

핑글핑글 도는 머릿속과는 달리, 자신이 생각해도 남자의 말처럼 입은 멀쩡한 것 같았다. 

남자도, 자신도 온통 피투성이인 이 상황에서 그런 허심탄회한 불만이나 내뱉을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참 어이없어서 픽픽 헛웃음을 내뱉고 있자니, 남자가 더욱 짙은 색으로 변한 검은색 장포를 벗으며 안주머니에 무언가를 꺼내들고는 대뜸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이예주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며칠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의 손에 덜렁 튀어나온 둥그런 뭉텅이가 그녀의 코를 툭 치고 하늘하늘 흔들렸다. 

부지불식간에 안면을 얻어맞은 이예주의 미간에 부득 내천 자가 생겼다.

“아! 지금 뭐하는…!”

“부러 틈을 내서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중턱까지 갔다 왔는데.”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았을 새하얀 꽃송이에 붉은 피가 묻어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벌겋게 묻어나는 오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두운 동굴 안을 환히 밝힐 만큼 강한 빛 덩이를 바로 코앞에 두고 시린 눈을 괴롭히는 취미 따위 이예주에게는 없었다. 

그럼에도 빠질 것처럼 아픈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건. 

시뻘건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커다랗고 흉흉한 손에 덜렁 들려 있는 환하게 빛나는 뤼미에르 한 송이가.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누가…….”

“…….”

“누가, 이런 거 가지고 싶대요?”

품 안에 얼마나 소중하게 품어 왔던가. 환하게 빛나고 있는 여린 꽃 한 송이는 조금만 짓눌려도 금방 꽃잎이 뭉그러져 품고 있던 태양빛이 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손에 들린 하얀 꽃송이에 피가 묻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싱싱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동쪽 대륙 족장의 저택 지하 동굴에서 보던 시들시들한 꽃과는 차원이 다른 밝기. 

꼭 산 중턱 꽃밭에서 바로 마주하는 것처럼 예뻤다. 

“어린 애도 아니고, 고작 이런 꽃 한 송이를…….”

이예주의 얼굴이 기어이 울 것처럼 왈칵 일그러졌다. 

정말이지 이 남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리족을 없애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쓴 남자를. 

분수처럼 피를 내쏟으며 제 몸을 파괴하다가, 품 안에서 꽃 한 송이를 꺼내 건네는 이 남자를. 

이 미친놈을…….

“왜 그런 얼굴을 하지? 이상하군.”

얼굴도 목소리도, 울음기가 가득한 이예주를 보고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 정말로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단단히 토라진 어린 것에게는 반짝이는 것을 주면 좋아한다고 했는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저번부터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안 받을 건가?”

안 받는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뤼미에르를 우그러트릴 것처럼 남자의 손등에 부득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예주는 별 수 없이 얼른 그의 손아귀에서 꽃 한 송이를 구출해 냈다. 

하지만 그녀의 손 또한 남자에게 옮겨 묻은 피가 흥건하다는 사실을 미처 간과하고 있었다.

“자꾸 피가 묻어나요.”

연하고 얇은 초록색 줄기에 시뻘건 핏자국이 선명하게 묻어났다. 

이 피비린내의 향연에서 꽃이라도 구출해 내기 위해 엄지와 검지로 살짝 들어 올려 옆으로 내려놓았지만 오히려 로브에 묻은 핏자국에 하얀 꽃송이가 크게 스쳐 버렸다. 

악, 힝! 이예주가 울상을 짓다가 결국 깨끗이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요 밖으로 아무렇게나 꽃을 내려놓았다. 

그 꼴을 말없이 지켜보던 남자가 이예주에게 불쑥 지껄였다.

“기분이 무척 더럽군.”

뭐라고, 이 새끼야? 피 묻은 꽃이 기분 나쁘다는 건지, 자신이 아무렇게나 꽃을 내려놓은 것이 기분 나쁘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어느 쪽이건 둘 다 기분 나빠! 기분 더럽다니! 누가 할 소린데! 

이예주가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몸을 버르작 거리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허, 그건 내가 할 소리예요!”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자 잠시 잊고 있던 분노가 남자의 무심한 말을 기폭제 삼아 화르륵 발화했다.

“나도 기분 더럽거든요? 저번에 눈 뜨자마자 당신이 다친 꼴을 봐야 했을 때도 그렇고! 오늘도!”

“…….”

“나한테 한 마디 언질도 없이 네 몸이든 내 몸이든 있는 몸뚱이 모두다 막 굴리자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놀랄지 생각 좀 해봐요!”

쟈니아에게서 받은 칼로 ‘문’을 열기 위해 손목을 긋던 것을 들킬 때보다. 느닷없이 검은색 장포를 뚫고 남자의 어깨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을 보았을 때가 더 기절할 것 같았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고어 영화를 꽤 자주 보았다 자신했는데 막상 본 실제상황은 달랐다. 

사람 몸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흐를 수 있는지. 그 더운 열감과 비린내가 이렇게 생생할 수 있는지 알게 된 건 기필코 처음이었다. 

아니, 이제는 두 번째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몇 번을 겪던, 절대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제발 이러지 좀 말아요.”

“…….”

“당신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 때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구요.”

과거로 갈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미래로 가려자니 또 다시 제 몸을 망가뜨려 이예주의 ‘문’을 없앴다. 

다친 남자가 또 무슨 개짓거리를 할지 몰라서 차마 다리족 일을 화내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자신이 미웠다. 

이예주는 두 손으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못난 얼굴을 가리며 지친 목소리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아무데도 안 가겠다고 결심했는데…… 나를 산 정상으로 보낸 건 당신이잖아요.”

아직도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손목의 피가 볼 근처에 찝찝하게 묻어나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후끈해진 눈시울을 가리기 위해서라면. 

이 남자에게 결국 감정적으로도 약자라는 것을 들키기 싫었다. 

있는 자존심이랄 것도 없지만 그 수모를 당하고도 남자가 다친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이, 이예주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해할만한 감추고 싶어 하는 감정이 있다는 말도 먹히는 같은 사람에게나 통하는 소리였다. 

이예주는 바보같이 또 간과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남자가 얼굴을 덮고 있는 그녀의 두 손 중, 다친 손을 덥석 잡아 억지로 들춰냈다. 

흉하게 찌푸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예주는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줘 계속해 얼굴을 가리려고 했으나, 놈의 힘은 막강했다.

“악! 왜 이래요!”

“힘 빼. 피가 더 새지 않느냐.”

“당신이 내 손을 놓으면 되잖아요!”

“스읍-”

결국 남자에게 손을 낚아 채인 이예주는 불퉁거리는 표정으로 씩씩 씨근덕댔다. 

아주 잠시라도 제 박복한 신세 한탄할 시간도 안 주는 놈이라니까. 

한 송이 뿐이지만 그들 곁에 있는 빛나는 뤼미에르 덕분인지 주변 시야가 방금 전보다 환히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남자는 그녀의 손목에 난 상처를 아까에 비해 더욱 주의 깊게 살폈다. 

이미 베일대로 베인 상처, 그렇게 들여다봐서 뭐할거냔 심산에 이예주는 그저 나 몰라라 제 왼손을 포기하고 누워있었다.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을 벌겋게 속살을 보이며 벌어진 환부를 내려 보던 남자가 이예주의 염장을 지르려는 목적인지 짜증나는 소리를 툭 내뱉었다.

“치료, 안 해줄 거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 둬라. 이예주는 반응하지 않았다. 

저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답했다가 홧 병나서 앓아눕는 건 자신일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 없이 외면하는 그녀의 모습에도 남자가 꾸준히 헛소리를 지껄여댔다.

“대신 네게 내 에너지를 직접 주입할 거야.”

“…….”

“지금 널 안을 것이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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