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30)화 (232/319)

“무슨…….”

무슨 소리냐고 채 묻기도 전에 유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적막을 깨트리며 유나가 쏜 총알이 어느 곳에 박혔다. 

단발마의 총성에 유나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고 착각했는지, 기둥 저편에서 ‘피융, 픽, 픽’ 하고 총알이 날아와 그들이 숨어 있는 기둥 모서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유나는 개의치 않고 연달아 방아쇠를 당겨 반대편의 아무도 없는 공간에 총을 쐈다. 

탕, 탕! 탕! 탕! 

네 발의 총성이 더 울리고 난 후 무언가 묵직한 것이 벽에서 뚝 떨어졌다. 

챙캉! 쇠붙이가 바닥에 부딪혀 나뒹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그제야 총구를 내렸다. 

“눈족 어린아이로 만든 히카톤은 그냥 실험용에 불과해. 그건 검은 파편의 눈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덫이야. 대어를 잡으려면 유인할 미끼가 필요하니까.”

“……미끼?”

“B구역의 1층은 거대 개체를 가둬 두는 용도로 쓰이기도 해. 화약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폭탄을 마구잡이로 쓸 순 없으니까. 다리족의 최종 목표는 폭탄 대신 그만한 파괴력을 가진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의 히카톤이야. 고작 작은 어린애로 만든 개체로 검은 파편에게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게 무슨…….”

쿵, 쿠쾅― 

그때였다. 진동을 수반한 엄청난 굉음이 B구역 1층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예주는 어깨를 흠칫 떨며 굉음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총질을 할 때부터 유나는 그곳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예주는 기억하려 노력했다. 

1층 B구역에 뭐가 있더라. 음침한 회색 바닥, 기둥, 철벽. 

그리고 철벽에는.

쿠우우웅, 쾅! 

다시 한번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B구역을 강타했다. 

멀리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벽이 소리에 맞춰 울룩불룩 튀어나오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마치 안쪽에서 누가 거센 힘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아…….”

이예주는 그제야 생각해 냈다. 

일정한 간격으로 수동 개폐 장치가 달린 거대한 문들이, 드넓은 B구역 1층 천장 끝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문들이 있었다는 것을. 

유나가 총을 쏘고 난 후 들렸던 쇠붙이 나뒹구는 소음은, 바로 문에 달려 있는 수동 개폐 장치의 문고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들린 소리였다. 

이예주가 거기까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 무렵.

콰아앙―! 

폭발하듯 반대편의 벽 한 면이 쓰러졌다. 

정확히는 강철을 여러 겹으로 겹쳐 만든 커다란 문이 나가떨어지는 소리였다. 

“어린 눈족의 히카톤 개체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유인한 뒤에.”

뽀얗게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고개를 한참이나 들고 또 들어 거의 천장을 마주할 즈음이 돼서야 그 끝이 보일락 말락 했다. 

“물량이 부족한 폭탄 대신 저걸로 검은 파편을 때려잡을 심산인 거야.”

끼기기긱. 끼이, 기기기긱― 

굉음은 사라지고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먼지 연기가 가라앉을수록 그저 거대하게 뭉뚱그려져 있던 그림자는 점점 섬세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수백 개의 머리, 팔다리가 제각각 움직이는 것까지 보일 정도로 구체화되었다.

“히, 히카톤이다!”

누군가 경악에 가득 차 외쳤다. 

그 말에 답하듯 수백 개의 머리와 팔다리를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두 다리가 움직였다. 

쿵, 쿵. 기기기긱. 

괴물이 한 발작, 한 발작 뗄 때마다 온몸이 우두두 떨릴 만큼의 진동이 느껴졌다. 

“A급이다! 위험해! 피해!”

두두두두, 두두두두. 

갑자기 나타난 히카톤으로 인해 구원자를 향한 포위망을 좁혀 가던 다리족의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거대 괴물의 출현으로 당황하거나 혼돈에 빠진 군인들이 대열을 이탈하더니 급기야 다가오는 괴물을 향해 마구잡이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긴급 상황, 긴급 상황. B구역 1층 A급 개체 수용실 이탈. B제로 상황에 직면했다. 지원 요청 바람! 긴급 상황, 긴급……!

으아악! 크아악! 사, 살려 줘! 아악! 

다급하게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비명 소리에 묻혔다. 

무거운 몸을 가누느라 괴물의 상체를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아기의 걸음마처럼 느리고 위태롭게 움직였다. 

그러나 워낙에 크기가 비대해 두어 번만 걸음을 옮겨도 도망치는 인간들을 금방 낚아챌 수 있었다. 

날카로운 손톱 끝에 독을 잔뜩 품고 있는 수많은 팔들이 손에 잡힌 인간들을 긁고, 찢고, 뒤틀어 떼어 내며 먹이를 먹을 준비를 마쳤다. 

허공에서 폭죽이 터지듯 피가 촤아악 흩어졌다. 

이예주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처음부터 여준의 말에 사실이라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굉음과 흔들림은 비행선에 처음 왔을 때 A구역 본부 에서 겪었던 진동과 동일했다. 

“하, 씨발…….”

어쩜 이렇게 감쪽같이 속을 수가 있을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튀어나왔다. 

뭐? 최첨단 장비? 신무기 테스트? 놈의 주둥이에서 나온 말 중 진실이라곤 B구역이 특수한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어 웬만한 폭발에도 끄떡없다는 것뿐이었다.

여준의 터무니없는 헛소리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자조적으로 웃을 때였다. 

툭. 

별안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당황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지만 사방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본부에서 전력을 차단했어. 곧 지원군을 투입할 모양이야.”

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바로 옆에서 말한 것 같은데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예주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암경과도 같은 어둡고 깜깜한 곳에서는 정신을 또렷이 유지하기 힘들었다.

으윽, 끄으윽……. 

끼기, 기기기기긱― 

끔찍한 부상으로 울부짖는 인간들과 괴물의 기괴한 울음소리 외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쿵, 쿠웅. 쿵.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먹이를 찾기 위해 움직이는 육중한 괴물 때문에 연신 몸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어둠 속을 헤매고 다니는 괴물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때마다 이예주는 심장이, 아니 온 내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사막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무턱대고 괴물 앞에 뛰어들었다가 한끝 차이로 뒷머리가 잡혔다 뜯겨진 기억. 

그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언제 괴물이 수백 개의 팔을 뻗어서 제 머리채를 낚아채 자신을 갈기갈기 찢고 우둑우둑 씹어 먹을지 모른다. 

그러면 과연 제때 피할 수나 있을까. 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암흑 속에서. 

이예주는 두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람, 람…….

“너 지금 가야 돼.”

그때 어둠속에서 누군가 이예주의 팔을 와락 붙들었다. 

유나였다. 

“……어, 어?” 

이예주가 머리를 감싸 안은 팔을 내리며 멍청하게 되묻자 그녀가 한 번 더 반복해서 말했다. 

너 지금 가야 돼. 어둠이 닥쳤는데도 침착한 그 목소리가 사납게 떨리는 마음을 조금 안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어, 어디로? 이렇게 깜깜한데 어디로…….”

“네 순간 이동 능력을 사용하든 뭘 하든, 너 지금 여기서 나가야 돼.”

“순간 이동? 나한텐 그런 능력…….”

그런 대단한 능력 같은 거 없다며 유나의 말을 부정하려던 이예주는 문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제 눈 속으로 욱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이…….”

이예주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그곳에 ‘문’이 있었다. 

단 하나뿐이 문이.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서 그런 걸까. 

다른 때와는 달리 ‘문’ 안의 영상이 유독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아니, 선명한 건 비단 어둠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 안에 비치는 한 사람의 뒷모습 때문이리라. 

쾌청한 하늘 아래 빛을 담은 꽃봉오리 하나 없이 활짝 핀 꽃 사이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그저 ‘문’ 너머에 비친 희미한 미래 한 조각뿐인데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왈칵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라, 람…….”

너무 힘들고 무서워서 당장 람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여긴 너무 무서워. 그의 곁으로 가고 싶어.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이예주가 저도 모르는 새에 그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그런 그녀를 현실 속으로 끌어 내리는 힘이 있었다.

“갈 수 있는 거 맞지?”

유나였다. 

단단히 이예주의 팔을 잡은 그녀가 또 한 번 탈출 여부에 대해서 물었다. 

‘문’이 생겼기 때문에 이예주는 이제 부정할 수 없었다.

“유, 유나, 너는?”

“가.”

유나는 대답 대신 꽉 잡고 있던 그녀의 팔을 놓아주었다.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온기에 이예주는 발작처럼 고개를 저었다.

 잠시 잠깐 천국에 발을 담갔다가 다시 지옥 속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기분이 얼떨떨했다.

“가, 같이 나가자. 지금 어두우니까 같이 나갈 수 있을 거야. 우리 같이…….”

“환한 곳에선 먹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따라 움직이지만, 어둠 속에서는 피 냄새를 맡고 움직여.”

‘문’ 너머의 람을 보고 희망이 조금 차오른 이예주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었지만 돌아온 건 냉철한 거절이었다.

“내 피 냄새를 맡고 따라 올 거야. 어둠 속에서 너까지 간수하면서 피할 자신 없어.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 각자 행동하자.”

쿵, 쿠웅. 끼기긱, 끼기기긱― 

기둥 너머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 끔찍한 칠판 긁는 소리를 내며 어둠을 헤치고 다녔다. 

유나의 말은 이 상황에 걸맞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자신에게는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열린 ‘문’을 넘어 바로 람에게로 가는 것.

유나는 자신에 비하면 제 앞가림을 잘 할 수 있는 똑똑한 아이니 어떻게든 괴물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이예주는 도무지,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

유나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울컥, 억울함 비슷한 감정이 치솟았다.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떨어지는 유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 다리도 다쳤는데 어떻게 너 혼자 움직여. 혼자 갈 순 없어.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부축하는 편이…….”

“왜 탈출해야 했는지 생각해.”

“……뭐?”

“검은 파편에게 가려고 했잖아?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다가 갑자기 환풍구까지 기어오른 이유가 뭐야? 길도 모르고 무작정 탈출하려 드는 멍청이는 없어. 길이 어딘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탈출할 건지, 최소한의 계획을 세울 여유조차 없을 만큼 급했다는 소리겠지.”

“그걸…… 네가 어떻게…….”

한 발자국 앞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유나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이예주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유나의 말이 맞다. 

최소한의 생각조차 해 볼 새 없이 무작정 방을 나섰다. 

물론 비행선으로 온 이후 탈출은 언제나 그녀의 염두에 있었다. 

그게 언제가 됐건 기회가 생긴다면 바로 비행선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왜 이렇게까지 앞뒤 잴 것도 없이 무작정 빠져나가려 들었더라.

예지몽을 꿨다. 

꿈에서, 미래에서 람의 팔 한쪽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당장 그에게로 가야 된다는 것 이외에 이예주는 아무런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래에서 널 봤어.”

유나가 작게 속삭였다. 

마치 미래의 람을 본 자신처럼 미래에서 저를 보았노라고.

“내가 본 미래에서 넌 구원자인데도 아무런 힘이 없고 볼품없었어. 그래서 널 처음 봤을 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 환영인 줄로만 알았던 미래가 현실이 됐는데, 내가 본 것처럼 네가 너무 보잘 것없어서. 그것도 모자라 구원자란 걸 부정하기까지 하는 거야.”

“…….”

“나는 네가 오면, 네가 오면 나랑 내 동생을, 구원자가 오면 나랑 내 동생을 이 지옥에서, 이 지옥에서 꺼내 줄 거라고,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그래도 병신처럼 믿고 있어서! 구원자니까, 어떻게든 해 줄 거라고……!”

유나의 목소리가 어느새 격양되었다. 

처음 B구역에 와 엘리베이터에 같이 올라탔을 때, 저를 향해 숨기지 않고 적의를 드러낸 그녀가 떠올랐다. 

저녁 식판을 가져다준 그녀에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최대한 선을 그은 자신도.

관심 두지 않았던 그때의 얼굴이 지금에서야 생생히 보이는 것 같았다. 

구원자라는 존재에 대한 실망, 억울함, 분노, 슬픔.

“그렇지만 이젠 네가 구원자가 맞든 아니든 상관없어.”

“…….”

“우릴 가엾게 여겨 줘. 병신처럼 당하기만 한 내 동생을. 버림받고 이용만 당하다가 죽은 힘없는 눈족 아이들을 가엾이 여겨 줘. 그래서 검은 파편의 분노로부터 벗어나게 네가 도와줘.”

“…….”

“평생을 이용만 당하다가 검은 파편의 손에 다리족 놈들과 똑같은 취급당하면서 죽는 건,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이예주의 손을 유나가 다시 맞잡았다. 

그러니까 제발 도와줘. 

아플 만치 제 손을 꽉 쥔 아귀힘을 통해 그녀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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