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02)화 (204/319)

작은 몸집으로 보아 대여섯 살쯤일까. 조명이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기둥 뒤에 반쯤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바라보는 아이는 미동 하나 없었다. 

그 모습이 조금 소름 끼쳤다.

“……귀신인 줄 알았잖아.”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탓인지 쿵쿵거리는 가슴이 좀체 진정되지 않았다.

“웬 어린아이가 이곳에 혼자…….”

비행선에서는 딱딱한 군인들만 봐 와서 그런지 어린아이가 있는 게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하긴, 이 사람들도 짝을 이뤄서 후손을 낳았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어린아이가 혼자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무려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무기 테스트도 진행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이예주는 걱정스런 마음에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다가섰다. 

“저기, 길을 잃었니?”

“구원자님.”

하지만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여준의 팔에 가로막혔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십시오.”

“예? 왜요? 애기가 혼자 있는데…….”

“철수 상병.”

여준은 이예주의 물음에 대한 답 대신 철수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차가웠다. 이 사람, 화난 건가? 

여준의 호출에 뒤쪽에 있던 철수가 몸을 바짝 세우고 답했다.

“상병 철수!”

“명령을 내린 지가 언젠데 지금 일을 이따위로…….”

이를 악문 투로 딱딱하게 내뱉던 여준은 휘둥그레진 이예주의 시선을 느끼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방금 전보단 유한 어투로 철수를 채근했다. 

“위험하니까 아이들 관리 잘하라고 했지 않나. B구역 총책임자가 누군가.”

“그,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현욱 대위님입니다!”

머뭇거리며 대답을 주저하던 철수가 결국 우렁차게 총책임자를 밝혔다. 

어린아이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거야? 

당황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던 이예주는 슬쩍 아이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심상치 않은 어른들의 기세에 아이가 놀랄까 봐 걱정되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기둥 뒤에 반쯤 숨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전의 폭발에 놀라 숨은 것일까? 

어둠 속에 있으면 무서울 법도 한데, 아이는 사람을 마주하고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일단 당장 저거부터 치워. 그리고 B구역 담당자 전부 본부로 집합하라고 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저거라니?’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이예주가 황당한 얼굴로 여준을 돌아보기도 전에, 딱딱한 명령을 받든 철수가 서둘러 무전기를 꺼내 읊조렸다. 

“B구역, B구역 통제실. 여기는 B구역 1층 메시아. B3 상황에 직면했다. 위험 수준 보고 바람.”

이예주는 철수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귀에 들어온 것은 메시아가 자신을 지칭하는 암호란 것 정도. 

어느 정도의 짧은 간격을 둔 뒤, 그가 들고 있던 기계에서 ‘칙’ 하고 혼잡한 소음이 들려왔다.

―RTBD 투여 직후. 위험 수준 제로. 

그 말을 들은 철수는 무전기를 품에 넣고 오도카니 서 있는 어린아이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우락부락한 덩치의 그는 자신의 무릎에 간신히 미치는 작은 아이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채어 어깨에 둘러멨다. 

아무리 군인이라지만 어린아이를 거칠게 다루는 철수의 모습에 이예주는 기겁했다. 

그의 어깨 위에 얹혀 어둠 속에서 끌려 나온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렸다. 

게다가 어디서 구걸하다 온 것처럼 바싹 마르고 꼬질꼬질했다. 

종잇장처럼 철수의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힌 아이의 눈은 초점이랄 게 없이 멍했다. 

동공이 탁 풀린 채 허공을 부유하는 그 눈이, 대여섯 살 난 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을 천진난만함과 거리가 멀어서 뒷목이 섬뜩해졌다.

철수는 이내 여준을 향해 목례를 하고 아이를 짊어진 채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예주는 당황했다. 

그냥 저렇게 애기를 데려가는 거야?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짊어지고? 

“어, 어디로……!”

저도 모르게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고 다가가 물어보려던 그녀는 또 한 번 여준에게 가로막혔다.

“비행선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눈족 아이입니다. 길을 잃은 것 같아 원래 있던 객실로 다시 데려다주는 겁니다.”

“눈족 아이요?”

“네. 본부에서 말씀드렸듯 눈족은 정기적으로 같은 일족의 어린아이들을 주거지역 밖으로 쫓아냅니다. 우리 다리족이 구해 온 눈족 아이들은 비단 유나 일병과 그녀의 동생뿐만이 아닙니다. 작전 중 죽어 가는 난민 아이들을 한두 명씩 데리고 와 보살피다 보니 이젠 그 수가 수십에 이르렀지요.”

유나 외에도 다른 버려진 아이들이 수십 명이 더 있다는 소리에 이예주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 쪽을 돌아보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동자가 여전히 무감각했다. 

자고로 피와 살이 튀기는 전쟁에서도 임산부와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하물며 눈족이 내쫓은 아이들은 인류의 대를 이어 멸종을 막을 귀중한 후손이었다. 

이예주는 생각보다 더 잔악무도한 눈족에게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여준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람 같은 초월적인 존재와의 힘겨운 전쟁 도중, 제 일족조차 파리 목숨처럼 죽어 가는 마당에 남의 일족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데리고 와 보살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여준은 분명 한 일족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꽤 훌륭하고 괜찮은 사람이다. 

눈족 아이들을 위해 그가 하고 있는 노고는 정말로 존중받고 치하받아 마땅했다. 

그런데…… 

이예주는 왠지 모를 위화감이 몸을 잠식하는 것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분명 ‘저거’ 치우라고 그랬어. 툭 치면 부러질 듯 작고 빼빼 마른 안쓰러운 아이에게 저거라고…….

“위험 수준이니…… 그런 건 왜 묻는 거예요?”

“저희와 마찬가지로 처음 비행선에 올라탄 아이들은 마킹 후 소독을 해야 합니다. 버려진 채 구걸하던 아이들은 오랜 시간 병균과 세균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지요. 그들의 몸에 남은 병균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을 시 비행선 내부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 수 있습니다.”

이예주는 여준의 설명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심쩍음을 쉬이 풀지 못하고 멀어지는 철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어린아이니까 좀 살살 다뤄 줬으면 하는데……. 

놀라 자빠질 만큼 아이를 다루는 손이 거칠던 철수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스르륵 눈동자를 돌렸다. 

언제부터였는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유나 일병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눈이 마주쳤음에도 유나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눈을 피하려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한쪽밖에 남지 않은 묘한 시선에 이예주는 그저 어정쩡한 미소를 띠며 화답했다. 

역시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가시죠, 구원자님. 피곤하시겠습니다.”

여준이 길을 재촉했다. 

전과 별다를 바 없이 선하게 웃고 있는 얼굴임에도 어쩐지 그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린 유나에게도 딱딱한 명령어를 내뱉었다.

“유나 일병은 지금 거리를 유지하며 구원자님의 뒤를 엄호한다.”

“예.”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구만, 뭘 엄호까지……. 

이예주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없이 여준을 따라 발을 재게 놀렸다. 

깜짝 선물처럼 튀어나온 어린아이 때문에 중간부터 미친 듯이 걸은 덕분인가. 

그로부터 얼마 안 가 B구역 1층 끝의 엘리베이터에 도달했다. 

마치 미로 게임의 탈출구처럼 엘리베이터 근처에는 환한 조명이 많이 달려 있어 유독 그 주변만 과도하게 밝았다. 

승강기의 폭은 A구역보다 훨씬 컸다. 자재를 옮기기 위함인 것 같았다.

승강기 앞에는 커다란 유리 케이지가 있었다. 

멀찍이 있었을 때는 그 안에 있는 것이 그저 크고 빨간 뭉텅이로 보였기 때문에 그게 뭔지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밝은 빛 아래 그것의 정체를 알아본 이예주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녀의 감정이 싸늘하게 식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건…….” 

유리 안에는 낯설지 않은 형체의 동물이 날카로운 이를 한껏 내보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커다랗게 확장된 채 빛을 잃은 부리부리한 동공, 허공에 멈춘 날 선 발톱, 이예주가 아는 그 요망한 것의 머릿결처럼 탐스러운 붉은색 털. 

사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붉은 개가 유리 케이지 안에 박제되어 있었다.

“……붉은 개.”

“이 녀석은 살아 있을 적에 붉은 개들의 우두머리를 맡았던 놈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선대 족장이었던 제 조부께서 어렵게 생포하여 박제했다고 들었습니다.”

곁으로 다가온 인기척에 이예주가 휙 고개를 돌렸다. 

여준이 방금 전의 저와 같이 유리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붉은 개는 다리족만큼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다리족의 자랑스러운 정예요원들을 상징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붉은 개들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월등히 빠르긴 하지만 다리족을 따라잡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지요.”

“역부족……이라고요?”

“실험에 입각한 사실입니다.”

그녀가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여준이 딱딱하게 말했다.

이예주는 인상을 찌푸렸다. 

동쪽 대륙에서 조롱이와 나비 아저씨에게 들은 적이 있다. 

붉은 개들은 막무가내로 침입해 온 인간들을 내쫓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도와 마지막까지 인간들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대신 놈들은 뛰어난 추적 능력을 가졌습니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를 따라잡을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지요. 인간이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붉은 개들은 곧잘 다리족을 따라붙곤 했습니다.”

인간들의 벗이 되어 주고,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했던 붉은 개 일족은…….

“……붉은 개들은 인간의 손에 멸종되었잖아요.”

박제된 붉은 개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육중한 발톱으로 말랑한 살들을 사정없이 내리긋고, 날카로운 이빨들로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역동적으로 보였다. 

살아생전의 용맹함과 위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죽어 버린 붉은 개 우두머리를 바라보던 이예주는 미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여준을 돌아보았다. 

“검은 파편에게 멸종해 가는 인류처럼, 인간들이 붉은 개를 멸종시켰잖아요.”

여준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예주의 눈빛에 당황했다. 

그 눈이 꼭 자신을 비난하는 것만 같아서, 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슴 한 켠이 불편해졌다.

“산에 살던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제 조부도 살아 계실 적에 많이 후회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산 중턱에서 붉은 개들과 함께 살던 사람들은 산 아래에서 동물들이 인간으로 변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잔뜩 겁에 질린 상황이었지요. 그들은 제일 먼저 같이 살던 동물들을 의심했고, 산 정상에 터를 잡은 다리족에게 붉은 개들을 처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다리족은 당시 신인류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관련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모으는 중이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고 월등한 붉은 개는 무척이나 좋은 탐구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인간에게 호의적이라 누구든 쫄래쫄래 따라오던 놈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공격적이고 적대적으로 변해 갔다더군요. 그때 마침 실험실에서 도망간 놈을 쫓던 제 아버지가 숨어 있던 놈들에게 물어 뜯겨 죽어 버린 사건이 터졌습니다. 놈들은 차기 족장을 잔인하게 물어 죽인 것도 모자라 배 밖으로 창자가 튀어나와 있는 시신을 밤사이 비행선 앞에 두고 갔습니다. 아주 지독한 놈들이었지요.”

그의 말처럼 정말 지독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을 설명하는 여준의 얼굴은 남 얘기하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보자니 위화감이 더 커졌다. 

신인류의 등장 후 붉은 개들을 천대하고 다리족에게 실험 거리로 갖다 바친 인간들. 

그리고 다리족의 차기 족장을 잔인하게 물어 죽인 붉은 개. 

어쩌면 붉은 개는 여준의 부친이 차기 족장이라는 것을 알고 지능적으로 유인해 살해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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