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01)화 (203/319)

중앙 통로와 맞붙어 있는 B구역은 통로 면적만큼 커다랗고 두터운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디 방공호나 지하 벙커 같은 곳에서나 볼 법한 외양의 B구역 입구는 A구역의 얇실한 유리문과는 그 위엄이 사뭇 달랐다. 

게다가 비행선 내부임에도 경계가 무척 삼엄해 보였다.

둥그런 CD 모양의 철문 중간엔 타륜(손잡이가 달린 바퀴 모양의 장치로, 배의 키를 움직이는 데 기능함)처럼 생긴 수동 개폐 장치가 달려 있었던 걸로 추측되었다. 

추측을 한 이유는 수동 개폐 장치가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디로 튀어 나갔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헐.”

이예주는 경악했다. 

대체 얼마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기에 저렇게 두꺼운 문이 뚫리는 것도 모자라 문손잡이가 통로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을까? 

B구역 입구에 다가가기에 앞서 이예주는 잠시 철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파손된 통로 근처에 멈춰 섰다. 

파손된 벽의 잔해들을 치우고 있던 장정들이 여준을 보고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다.

“필승.”

경례를 마친 그들은 서둘러 통로 안으로 더 이상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비닐을 덮었다. 

날아간 수동 개폐 장치로 보이는 타이어 크기의 쇳덩어리가 언 땅 위에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 비닐 너머로 흐릿하게 보였다. 

구멍이 뚫린 면적이 꽤 넓었다. 

몸을 바짝 옹송그리고 게걸음을 치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 

이예주가 파손된 외벽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 여준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그녀를 저지했다.

“위험합니다, 구원자님.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부서진 벽을 따라 ‘팟, 프직! 하고 퍼런 스파크가 일어났다. 

벽을 뚫고 무거운 쇳덩이가 날아가면서 부득이하게 벽 안쪽의 여러 전선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찬바람을 계속 맞고 계시면 탈이 납니다, 구원자님.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부는 칼바람은 무척이나 매섭거든요. 오죽하면 몇백 년째 눈이 녹지 않았겠습니까.”

“아…… 좀 춥긴 하네요, 하하.”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머릿속으로 상반되는 생각을 했다. 

‘또 거짓말을 하네.’

람은 다리족 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 위의 만년설이 매년 녹아내려 산장 뒤의 낮은 지형 전체가 수장됐다고 했다. 

그 호수는 가히 바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크기가 거대했다. 수심은 또 얼마나 깊었던가. 

여준의 말에서 벌써 두 번째로 느끼는 위화감이었다. 

호수를 직접 보고 겪은 이예주는 이번에야말로 놈의 말이 거짓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코가 빨개지셨습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준의 재촉에 그들은 대파된 통로 벽에서 멀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부터 위압감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까이서 본 B구역 철문은 실로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중앙 통로를 거대한 프링글스 통이라고 본다면 B구역의 철문은 그 통을 꽉 막는 밑바닥이었다. 

그 웅대한 철문은 폭발의 여파인 듯 이곳저곳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이예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수동 개폐 장치가 사라져 가운데가 커다랗게 뻥 뚫린 구멍 너머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틈으로 보이는 문의 두께가 벽돌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 상당히 두껍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 커다란 문을 대체 무슨 수로 열까. 

이예주가 생각에 잠겨 문을 바라보고 있자, 여준이 A구역에서처럼 철수에게 언질을 주었다. 

“철수 상병.”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철수는 문의 좌측으로 다가서더니, 벽에 부착되어 있는 작은 인터폰에 버튼을 꾹 누르고 말했다.

“메시아, 메시아. B구역 입구 개방 바람.”

“……메시아는 또 뭐야.”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메시아는 성서에나 나오는 단어가 아닌가. 붉은 개도 그렇고, 다리족의 입을 통해 듣는 암호들은 하나같이 괴상망측했다. 

“B구역은 암구호를 정해 두었습니다. 구출 작전에 무사히 성공하여 구원자님과 함께 귀환했다면 메시아. 고대에서 구주(救主)를 가리켰던 말입니다. 작전에 실패하여 구원자님을 모시지 못했다면 제로입니다. 아무 소득 없다는 뜻이죠. 시간 내에 둘 중 하나를 답하지 않으면 저기, 바로 저기.”

여준이 중얼거림에 답하며 문 바로 위, 천장의 양 끝을 가리켰다.

“무인 자동소총이 발사되어 접근인을 사살합니다.”

“헉.”

생각보다 엄중한 보호 절차에 덜컥 겁을 집어먹었을 즈음, 때마침 인터폰에서 무전이 흘러나왔다.

―Copy that.

덜컹, 쿠우우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한 판의 조각 난 피자처럼 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열렸다.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시스템인지 문 안쪽의 천장에서 팟, 팟, 연달아 불이 들어왔다.

B구역은 A구역과 확연히 차이가 날 만큼 분위기가 음산했다. 

바닥과 벽이 온통 칙칙하고 어두운 회색으로 페인트칠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왠지 들어가기 싫을 만큼 거부감이 들었다.

“가시죠, 구원자님.”

“…….”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우두커니 서서 멍청하게 내부를 바라보던 그녀를 여준이 재촉했다. 

정녕 이 음침한 곳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자신만 거북함을 느끼는 걸까. 

이예주는 무언의 재촉에 못 이겨 마지못해 걸음을 떼었다. 

문에서부터 B구역으로의 첫 진입로는 꽤 긴 내리막길이었다. 

왜 이렇게 바닥이 깊숙한 곳에 있는 건가 싶던 그녀는 금방 중앙 통로가 2층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B구역의 1층은 A구역의 1층과 2층이 합쳐진 거대한 공간이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그녀는 B구역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거대한 철문이 뻥 뚫리고 울퉁불퉁 튀어나올 만큼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 것치고 문 안쪽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불에 그슬린 자국이나 폭발의 잔해조차 없어 안전하다는 여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바닥에 다다랐을 때쯤 느닷없이 ‘쿠우우웅―’ 하고 뒤로부터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이예주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활짝 열려져 있던 거대한 철문이 다시 조각을 맞추며 닫히고 있었다. 

그나마 안심되는 점은 개폐 장치가 튕겨져 나간 탓에 가운데가 뻥 뚫렸다는 점이었다. 

통과하기엔 조금 높았지만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키와 구멍의 높이를 재던 이예주는 문득 제 행동이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내뱉었다. 

닫힌 문을 보고 빠져나갈 퇴로부터 찾고 있다니, 누가 보면 적의 기지에 침투한 첩보 요원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비행선 밖에서 보았을 때도 여실히 차이가 났지만, 바닥에 발을 딛고 본 B구역 내부는 정말 기가 질릴 만큼 넓었다. 

1, 2층을 터놓고 지었기 때문인지 천장 높이 또한 가마득했다. 

그 높은 천장을 거대하고 각진 기둥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떠받쳤다. 

드넓은 공간 양옆의 벽 쪽에는 수십 개의 커다란 문이 넓은 간격으로 나 있었다. 

문과 벽의 색이 동일한 데다 호수조차 달려 있지 않았다. 

문인 것을 알아본 것은 일정 간격으로 달려 있는 쇠 타륜과 쪽창 덕분이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무늬인가 보구나.’ 하고 넘겼을 것이다.

불이 켜진 전등의 수는 많았지만 천장이 높은 탓인지 시야가 많이 어두웠다. 

짙은 회색의 벽과 바닥이 우중충함을 자아내는 데 한몫 더했다. 

꼭…… 어디 교도소나 수용소 같았다.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

“초기 설계도를 보면 B구역의 1층은 본디 비행선에 올라탄 사람들을 모두 소집할 수 있는 있는 홀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워낙 천장이 높고 공간이 광대하여 2, 3층의 실험실에 두기에는 위험한 물질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임새가 변질되었습니다. 제가 족장으로 있는 지금 세대에게도 그렇게 쓰이고 있지요. 설령 아까 전처럼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광범위한 너비 덕에 화력이 분산되어 큰 피해는 없습니다.”

“아…….”

“물론 연쇄 폭발의 염두는 철저히 관리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기 가운데의 특대형의 흡입기로.”

여준이 1층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천장으로부터 칸칸이 내려와 있는 커다란 환풍기의 흡입구가 아래를 향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곧바로 폭발 화력과 유독 물질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1층 내부는 언제나 청결하고 균일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독성 물질은 정화 장치를 거친 후 밖으로 방출되거나 연구에 재사용됩니다. 그러니 오늘 있었던 작은 폭발과도 같은 문제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구원자님께서 오시는 날에 그런 드문 일이 일어난 것을 보니 Ark 이 녀석도 우리의 위대한 구원자님을 환영하나 봅니다, 하하핫!”

마지막 개소리만 빼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이었다. 

어이가 없을 만큼 대단히 긍정적인 사고로 말을 마친 여준은 큰 소리로 호쾌하게 웃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측 기둥으로 붙어 걷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번 폭발은 좌측에서 일어나 우측 기둥이 있는 곳까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 예.”

앞장선 여준이 이끄는 대로 그들 무리는 오른쪽 기둥으로 치우친 채 B구역 1층을 걷기 시작했다. 

기둥과 벽에 나 있는 문들을 제외하고 1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대한 너비의 문 하나를 지나치며 이예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넓은 간격으로 띄엄띄엄 벽에 나 있는 문에는 모두 타륜식으로 돌리는 수동 개폐기가 달려 있었다. 

A구역의 문들은 대부분이 전자동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B구역은 입구부터 1층 안의 모든 문이 수동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일일이 돌려서 문을 열다 보면 불편할 것 같은데. 

나름 세심하게 문을 관찰하자니 그때까지 어두운 시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1층 벽이 보였다. 

벽은 폭발로 인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B구역의 입구 철문에서 본 것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문 안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난 건지 벽 한복판이 종잇장처럼 두서없이 구겨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단단하고 두꺼운 철벽이 우그러질 정도면 엄청난 화력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예주는 다리족 족장의 말처럼 그 어마어마한 화력에도 끄떡없는 B구역에 안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지 갈피가 서지 않았다. 

확실한 건, 자신이 오늘 하룻밤을 이 망할 곳에서 묵어야 한다는 사실뿐.

평면인 부분과 두드러지게 차이 나는 곳을 주의 깊게 볼 때쯤이었다. 

쿵― 쿠웅, 쾅! 

불현듯 누군가 거센 힘으로 철벽을 내리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이예주가 서 있는 기둥 바로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꼭 철벽을 사이에 두고 제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쿠웅, 쿵―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고 증명하듯 다시 한 번 둔중한 소리가 났다. 

그녀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제군들 몇이 안에서 무기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학물질로 인한 폭발은 아니니 괘념치 마십시오.”

앞서 걷던 여준이 완전히 멈춰 선 채 벽을 바라보는 이예주를 향해 멋쩍게 웃으며 다가왔다. 

“……무기 테스트?”

“종종 빈방에서 수류탄이나 대포 같은 것들을 시험해 보곤 합니다.”

어느덧 소리가 끊겼다. 

괘념치 말라는 여준의 말에도 이예주는 경계 서린 눈으로 벽을 바라보며 작게 혼잣말했다. 

“방금…… 그건 뭐지?”

이예주가 놀란 것은 비단 뜬금없이 울려 퍼진 굉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간이었지만 분명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제 주변에는 여준과, 철수, 유나뿐이었다. 

이미 익숙해진 이들이니 새삼스레 그들의 시선을 느낄 리 없었다. 

그런데 분명, 근처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흐헉!”

별안간 이예주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문이 있는 곳에만 전등이 있기 때문에 전등 빛이 닿지 않는 문과 문 사이는 많이 어두웠다. 

가장 어둠이 짙은 그곳, 기둥에 몸을 반쯤 내밀고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구원자님?”

“저, 저기……!”

그녀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어린애가 있는데요?”

그녀는 제가 말하고도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싶어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연신 그쪽을 곁눈질했다. 

하지만 두 번 보고 세 번 보아도 자그마한 어린아이의 몸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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