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92)화 (194/319)

비행선은 크키가 다른 원형의 구조물 두 개를 가운데 길쭉한 통로가 잇고 있는 모양이었다. 

절벽 끄트머리를 바라보는 앞쪽 구조물의 가장 위층은 전면이 벽 대신 커다란 창으로 감싸여 전방을 볼 수 있게 했다. 

그곳이 조종실인 듯했다.

먼지가 껴서 밖이 흐릿하게 보이는 헬기의 창과는 달리 비행선의 창 너머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꽤 선명하게 보였다. 

모두 군복과 비슷한 짙은 갈색의 실내복을 입고 있었다. 

두두두두― 헬리콥터가 거센 풍랑을 일으키며 비행선 앞의 평지에 착지했다. 

이예주는 상병 철수에게 아기처럼 둘러메어져 지상으로 하차했다.

“허.”

그녀의 입에서 경탄인지 어이없음인지 모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헬리콥터에서 내려서 올려다본 비행선의 크기는 위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너무 크고 현실감이 없어서 그녀는 지금 자신이 SF 영화를 보고 잠들어 이런 꿈을 꾸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정상은 산 중턱보다 상당히 춥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구원자님.”

아연한 얼굴로 거대 비행체를 바라보던 이예주를 여준이 재촉했다. 

코끝에 닿는 공기가 싸늘했다. 

비행선의 덮개 위에도, 주변 땅에도 녹지 않은 딱딱한 얼음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여준의 안내에 따라 선체 가까이로 주춤주춤 다가갔다.

“여기는 붉은 개, A구역 출입문 개방 바람. 반복한다. 여기는 붉은 개, A구역 출입문 개방 바람.”

그때 철수가 무전기를 꺼내 전보를 쳤다. 

이예주는 모처럼 제가 아는 단어에 휙 그쪽을 돌아봤다.

“……붉은 개?” 

“붉은 개는 다리족 정예 요원을 지칭하는 암호입니다. 다른 인간들 사이에서는 붉은 개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뜻으로 불리기도 하죠.”

아리송하다는 반응에 여준이 친절하게도 곧바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이예주에게 붉은 개는 람을 꼬드기던 그 요망한 불여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인 듯싶었다.

―Roger.

어느 정도의 틈을 두고 철수의 무전기에서 답이 왔다. 

그와 동시에 ‘지이이잉―’ 하고 커다란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무것도 없던 비행선의 벽에 네모난 균열이 생기더니 그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성인 남자 두 명을 가로로 누이고도 남을 넉넉한 크기의 벽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벽이 완전히 내려와 내부로 들어가는 오르막길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문이 다 열리자 비행선 안의 광활한 공간이 보였다. 

어느 공장 창고처럼 조명이 밝지 않은 내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뭔가를 만들고 있는 듯 챙, 캉, 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조명이 어두워서 그런지 거대한 비행선의 입구가 꼭 이예주를 집어삼키기 위해 쩍 벌어진 괴물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가시죠.”

다리족 족장은 제 근거지에 도착해서 신이 났는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앞서 걸어 들어갔다. 

이예주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바짝 따라붙어 무언의 압박을 하는 군인들 때문에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스무 명이나 된다는 ‘붉은 개’ 정예 요원들까지 모두 승선했다. 

“A구역, 출입문 폐쇄 바람. A구역, 출입문 폐쇄 바람.”

마지막으로 올라온 철수 씨가 다시 한 번 무전을 했다. 

이예주는 불안한 얼굴로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문을 바라보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왠지 이대로 닫히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근거 없는 불안함과는 별개로 문은 점점 벽으로 탈바꿈하더니 얼마 안 가 완전히 닫혔다. 

“구원자님.”

여준이 상냥한 목소리로 이예주를 불렀다. 

문은 그만 보고 가자는 소리란 걸 모를 리 없었다. 

이렇게 족장이 직접 에스코트해 주는 친절한 인간들인데, 참 이상하지. 갇힌 것 같아. 

이예주는 자꾸만 드는 스산한 생각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비행선 Ark-17는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뉘며, 그 둘을 연결해 주는 중앙 통로가 존재합니다. 지금 이곳은 보조 기낭(氣囊)과 추진 장치가 있는 공기실입니다.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은 이곳이 유일하기 때문에 선체 출입 시엔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합니다.”

여준이 앞서 걸으며 거대한 비행선의 구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지금 들어오게 된 A구역의 동그란 선체는 또 하나의 선체보다 크기가 작았다. 

그러니까 이 비행선은 아령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한쪽이 더 크고 무거워 균형이 맞지 않는 아령. 

깡, 깡! 

그들이 지나치는 옆쪽 공간에서 연달아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돌아보니 건장한 군인 몇 명이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그녀를 주시하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 짙은 고동색 동공. 한국인들이었다. 

이곳으로 넘어온 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낙담한 인종들을 하루만에 이렇게 무더기로 만나게 되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반가웠다. 오랜만에 꽤 정상인 같은, 그도 모자라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의-비록 남자들뿐이지만-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떻게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다리족은 여타 다른 인간들에 비해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슴이 답답했다. 

람을 생각하자니 눈앞이 다 아득해졌다. 과연 자신이 이 사람들에게서 무사히 과거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같은 한국인을 만났으니, 일단 집으로 갈 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은 것에 마음 놓고 기뻐해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재고 따져야 하는 건지 구분이 잘 서지 않았다.

그때 현대의 공사장 근처에서 보던 것과 같은 노란 전동 지게차가 철근들을 잔뜩 싣고 곁을 천천히 지나쳤다. 

이예주는 마치 지게차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머뭇머뭇 물었다.

“……뭘 하는 거예요?”

여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물어보면 안 될 질문인가. 그녀가 뻘쭘한 표정을 짓자 그가 마지못해 답했다.

“비행선을 수리하는 중입니다.” 

“수리요?”

“네.”

그는 말하기 곤란한 듯 전에 없던 난처한 얼굴로 뜸을 들이다가 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Ark-17는 현재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운행 불가능?”

“네. 쉽게 말해 더 이상 뜰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거 불시착륙으로 인해 메인 엔진과 기낭이 완전히 파손되어 버렸습니다. 꽝꽝 언 땅속에 반쯤 처박힌 선체를 꺼내고 균형을 맞추는 데만 해도 몇십 년이 걸렸다더군요. 어렸을 때 A구역 곤돌라에는 덮개가 없어서 선실 내부로 눈이 쏟아진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하하.”

전혀 웃기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다리족 족장은 정말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주변에 서 있던 군인들이 덩달아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예주만이 공감하지 못한 채 어색해했다.

“전기나 수도와 같이 내부 생활에 필요한 시설은 수리한 지 오래지만, 메인 엔진의 동력 추진 장치와 기낭의 복구는 언제 완료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 세대에서도 복구가 불가능할지도요.”

“아…… 예.”

웃음을 그친 여준이 다시금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이예주는 이해한 척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구원자님. 적어도 제 세대에서 검은 파편에게 몰살당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

“아직 총알이나 탄두도 많이 남아 있고, 뭣보다 그동안 검은 파편에게 대항할 수 있을 만한 무기 개발과 고도의 훈련을 해 왔으니 말입니다. 안 그러나, 제군들?”

“예! 맞슴다!”

이예주는 별안간 들려오는 벼락같은 음성에 놀라 어깨를 파드득 떨었다. 

뒤를 따라오던 정예 요원들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준의 말을 엿듣고 있기라도 했던 양, 망치질과 톱질을 하던 인간들이 갑자기 들고 있던 연장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벼락처럼 소리를 질렀다.

“검은 파편 따위에게 지지 않슴다!”

“당장이라도 검은 파편과 맞서 싸우겠슴다!”

“검은 파편을 격파하기 전엔 죽지 않슴다!”

이곳저곳에서 끊이지 않고 열정과 투지가 넘쳐흐르는 전쟁 선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듣던 이예주의 얼굴은 점차 파리해졌다. 

미친놈들 집단에 둘러싸인 기분이다. 

사막에서 그렇게 히카톤에 깔려 죽을 뻔했으면서. 

그래서 네놈이 구출한답시고 나까지 깔려 뒈질 뻔하게 만들었으면서, 벌써 그 검은 파편의 힘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인가? 

검은 파편을 향한 전투적인 다짐은 그로부터 꽤 한참이나 흐른 후에야 잠잠해졌다. 

여준이 굉장히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이 꼭 ‘자, 우리들의 이 전투욕과 강한 정신력이 어떠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불현듯 말문이 턱 막혔다. 

“그…… 투지를 다지는 건 좋은데. 음, 너무 헛된 희망을 가지거나 무리인 목표 설정을 하는 건 좀…… 위,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예주는 소심하게 반박했다. 

이 인간들이 아직 람맛을 덜 봐서 이래. 

만약 이 군인 놈들이 검은 파편을 격파에서 죽이겠다 따위의 망발들을 람 앞에서 지껄이려 든다면 그녀는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다. 

괜히 억울하게 휩쓸려 요단강 근처까지 가 본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위로 올라가시면 구원자님께서도 걱정을 한시름 놓으실 거라 장담합니다. 저희의 방식과 일궈 놓은 것들이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저는 당신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닥쳐! 이건 네놈들 때문에 같이 죽을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날 위해서라고, 이 자식아! 

이예주는 이 망할 집단의 사고방식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들의 수장인 여준은 여전히 쾌활한 얼굴로 “하하, 걱정 마십시오!” 하고 다시 한 번 환장할 소리를 지껄이며 그녀의 등을 마구 밀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입니다. Ark-17 내에는 비상계단이 없습니다. 대신 모든 엘리베이터는 자기장을 이용한 특수 동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동력 장치가 없더라도…….”

제발 그만해!

이예주는 해안 마을에서 탔었던 구식 엘리베이터 때문에 자신이 엘리베이터 공포증이 생겼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행히 비행선의 엘리베이터는 현대식과 같았다. 

화물용이라고 해도 수긍할 만큼 면적 또한 굉장히 넓었다. 

때문에 ‘붉은 개’ 정예 요원들을 다 태우고도 자리가 남았다. 

좁고 녹슬어 쇠 냄새가 나고, 구멍이 뚫려 있던 얄팍한 판때기가 간신히 밑바닥을 받치던 승강기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잘 아는데도 막상 여준에게 등 떠밀려 그 안에 오르게 되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것도 잠시, 눈 한 번 깜빡하자 엘리베이터 내부의 전광판에 ‘2’가 뜨더니 스르륵 소리 소문 없이 문이 열렸다. 천만다행이었다.

“내리십시오, 구원자님.”

여준이 먼저 내려 정중하게 에스코트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인 것은 커다란 유리문이었다. 

센서로 추정되는 조그마한 네모 박스가 천장에 달린 것을 보지 못했다면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투명했다.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부터 세 평 남짓한 공간의 사방이 유리 벽으로 막혀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어느 대학 병원 실험실처럼 온통 새하얬다. 

눈처럼 하얀 타일들이 바닥과 벽도 모자라 천장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그 안에 기능을 알 수 없는 기계들과 로봇들이 배열된 채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공상 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광경에 자꾸만 드는 기시감을 떨치지 못하며, 이예주는 천천히 승강기에서 내려섰다. 

그 순간 물컹하고 신발 밑창이 닿은 곳이 푹 들어갔다. 

“……응? 스펀지?”

바닥에 미처 보지 못한 초록색의 스펀지들이 깔려 있었다. 스펀지가 깔린 공간은 유리 벽 안뿐이었는데, 이예주를 포함한 21명이 모두 서 있기엔 좁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 듯, 군인들이 뒤를 따라 우르르 내렸다. 

대체 언제까지 이 19명의 떨거지들을 달고 다녀야 하는 거지. 이예주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한 유리 우리에 갇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바로 그때였다. 

촤아아악― 

천장에서 차가운 물이 보슬비처럼 분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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