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지느러미라든지, 혹은 여러 갈래로 찢어진 주둥이 중 하나라면 정말 남자의 면상에 강철 주먹을 갈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던 것이 무색했다.
그가 손에 쥐어 준 것은 낚싯대에 달려 있던 낚싯줄이었다.
얼이 나간 표정으로 줄을 두어 번 잡아당기자 끝이 묵직했다.
이예주는 그 줄이 이어진 곳을 따라 쭈욱 시선을 돌리다가 ‘으흐으―’ 하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미간에 낚싯대의 절반 이상이 꽂힌 괴물이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배 바로 옆에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죽었으니 겁낼 것 없다.”
남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예주는 죽어 버린 괴물의 사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람을 돌아보았다.
그는 조금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잘난 얼굴을 멍청하게 올려다보고만 있자니, 남자의 기분을 조금쯤 알아챌 수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염병할 밧줄 하나를 쥐어 주고 나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는, 굉장히 의기양양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볼 텐가?”
평소 같으면 그런 헛소리 좀 지껄이지 말라고 생각했을 그녀였으나, 너무 경황이 없는 나머지 그런 생각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그저 뿌듯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망연자실 바라보다가 우는 듯 웃는 듯 흐느낄 뿐.
“흐, 흐흐…… 이, 이 괴물은 대체 뭐예요? 이, 이게…….”
“인면어다.”
“이, 인면어……?”
“그래. 이 호수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포식자지.”
최상위에 위치한 포식자.
그녀는 눈앞을 아찔하게 만드는 현기증에 밧줄을 쥐지 않은 손으로 이마 위를 짚었다.
호수의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이 시뻘건 미친놈은 그럼 뭘까. 신?
이예주가 현기증으로 괴로워하거나 말거나 남자는 제 할 말만을 이어 했다.
대다수가 전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는 내용뿐이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인간들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들짐승들을 싹 다 잡아먹어서 씨가 마른 판에 물고기들이 끊임없이 낚이는 것 말이다. 물론 조금 커다란 것은 이것이 모두 잡아먹었기 때문에 이런 자그마한 피라미들밖에 남지 않았지만.”
“…….”
“어쨌거나 이것 덕에 호수 안에서 사는 것들은 그럭저럭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인간 고기가 이것의 입에 잘 맞는 것 같더군. 그 버러지 같은 것들이 물고기나 좀 잡을까 해서 배를 띄워 어슬렁거리면, 어떻게 알았는지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배까지 통째로 씹어 먹곤 했지. 주둥이를 다물었을 때의 생김새가 인간의 거죽을 닮았다고 해서 인면어라고들 부르던데. 어쩌면 인간들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생김새 또한 그렇게 변한 것일 수도.”
이예주는 괴물에 관한 그런 끔찍한 정보 따윈 쥐뿔도 뇌에 입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절로 돌아가는 시선을 막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시 보게 된 괴물 사체의 외향은, 얼핏 잘못 보면 거대한 거인이 죽은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인간과 비슷한 누런 덩어리였다.
특히 부릅뜬 커다란 눈깔 주변은 꼭 인간의 쌍꺼풀처럼 진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럼…… 이, 이거 잡으려고 나보고 그렇게 서 있으라고 했던 거예요……?”
이예주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잠시 동안 침묵하던 람은 이내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어를 낚기 위해선 가지고 있는 미끼 중 가장 좋은 것을 써야 하기 마련이지.”
“그 미끼가 설마…….”
이예주는 괴물을 찌르듯이 가리키고 있던 검지를 돌려 제 쪽을 가리켰다.
나? 경악이 그득 찬 얼굴을 하고 눈으로 묻자 남자가 방금 전과는 다르게 성의 없이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이 시발. 눈 안쪽이 후끈하더니, 눈앞에서 번쩍하고 불똥이 튀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만 방심해도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앞으로 튀어 나갈 것 같았다.
“내, 내가! 내가 그러다가 잡아먹혔으면 어쩌려고요! 배까지! 배까지 통째로 씹어 먹는 괴물이라면서! 어떻게, 어떻게에엑!”
그녀는 퍼들퍼들 떨며 고성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초고음파 공격에 귀가 따가웠는지 남자가 설핏 인상을 쓰다가 심드렁히 내뱉었다.
“그러니 잡아먹히지 않도록 제때 뒤로 잡아당겨 주었지 않아.”
“어억―!”
이런 천벌 받을 쳐 죽일 놈!
이예주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이마에 굵은 핏줄이 솟았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 제때를 놓치면! 그럼 어떡하는데요! 그럼 난 저 빌어먹을 문어 다리처럼 찢어진 주둥이에 오독오독 씹혀 죽으면 되는 건가? 어?! 하하! 하하하!”
“그럴 리 없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호언장담을 하냐 이 말이에요! 날 죽이려고! 흐흐…….”
“…….”
“죽이려면 곱게 죽일 것이지! 이, 이렇게 날 죽이려고오오!”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쪼개다가 순식간에 낯빛을 바꾸고 자신을 뜯어먹을 것처럼 구는 인간 여자를 말끄러미 바라보던 람이 눈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그녀의 손목을 와락 부여잡았다.
“너 때문에 성가시게 이곳까지 온 것인데, 널 왜 죽이지?”
“……아!”
느닷없이 붙잡힌 손목이 아릿하게 아파 오자 이예주가 새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시뻘건 눈동자 때문에 새어 나오던 신음이 도로 들어갔다.
“네가 배가 고프다고 했잖아.”
“…….”
“널 고작 물고기 밥으로 죽게 만들 것이었으면 애초부터 이런 헛짓거리는 하지 않았겠지. 너를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인간들을 잡아먹는 기특한 이것을 죽이지도 않았을 테고, 네가 굶어 죽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가 그 말을 끝으로 이예주의 손목을 던지듯 획 내려놓았다.
그리고 등을 돌려 뚜벅뚜벅 배 끝으로 걸어갔다. 죽은 괴물, 아니 인면어를 살펴보기 위함인 듯싶었다.
속사포처럼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람의 말을 이해하느라 이예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날 위해서, 인간을 잡아먹는 기특한 것도 죽인 거라고? 날 위해서?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분하고 억울했다.
여자를 위해 사냥을 한다는 놈이 사냥의 미끼로 그 여자를 쓴다는 게 말이 되나.
자신이 잘 모르는 1000년 후에는 그런 위험천만하고 아찔한 사냥이 유행인 것일까?
머릿속에서 자신을 괴물의 미끼로 썼던 망할 놈과 자신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늠름하게 사냥을 한 썸남이 거세게 상충했다.
그렇게 혼란스럽기 그지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예주는 ‘너 때문’이라는 말에 자꾸만 콩콩 뜀뛰기를 시작하려는 제 심장이 원망스러웠다.
“씨이…… 내, 내가 그렇다고. 그렇다고 용서해 줄 줄 알아? 나를 미끼로, 미끼로…….”
죽은 인면어에게 다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남자가 있는 쪽에서 찔꺽찔꺽,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다 잡기 위해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애써 노려보았지만, 봄날 눈 녹듯 스르륵 풀리려는 마음을 쉽게 다잡을 수 없었다.
흐흑, 눈에 잔뜩 준 힘이 자꾸 풀리는 것 같아 이예주는 울먹였다.
이렇게 물러 터져서 문제야, 문제. 멍청한 이예주. 나가 죽어라, 이예주.
람이 하던 일을 끝냈는지 돌연 아직까지 엎어져 앉아 있는 그녀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배 안은 좁기 때문에 몇 걸음 걷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그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걸어온 남자가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것도 주마. 덤이다.”
남자가 내민 것은 아까 이예주가 괴이한 자세로 들고 있었던 낚싯대였다.
급살 맞게 물속에서 튀어나온 인면어가 왈칵 물어 버리는 바람에 놓쳐 버린 낚싯대.
괴물의 배 속에 들어갔다 나온 탓인지, 부서져 꺾여 있는 낚싯대는 온통 회백색의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그 끝에는 람이 앞서 낚아 엮은 물고기 뭉치가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뭉개지고 짓씹힌 상태였다.
고기들의 대가리와 살점들이 곧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이것을 용케 떨어뜨리지 않고 인면어의 주둥이 속에서 꺼내 온 남자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건네받지 않고 우두커니 쳐다만 보고 있는 이예주가 감격에 젖었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넣어 둬.” 하고는 줄을 잡고 있지 않은 손에 낚싯대의 손잡이를 쥐어 주었다.
“그것도 구워서 떠먹여 줄 테니, 이제 칭얼대지 마.”
그러고는 이제 제 할 일은 끝났다는 양 깔끔하게 돌아서서 노를 잡아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예주는 한참 동안 남자가 양손 가득 무언가를 쥐어 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출렁하고 배가 물살을 가르고 움직이자 부서진 낚싯대 끝에 힘겹게 달려 있던 물고기들의 잔해가 위태롭게 덜렁거리며 역겨운 액체들을 흩뿌렸다.
이예주는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배 밖으로 집어 던지며 아주 작게, 잔뜩 귀를 기울여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만큼 미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친……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아니 귀신 보는 것보다 더한 경험을 해서인지 산장으로 가는 내내 이예주는 해쓱해진 얼굴로 빌빌대었다.
그녀는 초점이 나간 흐리멍덩한 얼굴로 말 한 마디 없이 앞서 걸어가는 남자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뒤를 잘 잡으라고 명령한 채 인면어를 고이 태운 나룻배를 통째로 질질 끌며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물살을 가로질러 뭍에 도착했을 때 저 거대 생선 괴물을 어떻게 들고 갈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녀를 비웃는 듯한, 참으로 기상천외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는 힘이 무식하게 센 나머지, 낚싯줄을 뱃머리에 묶은 채로 무자비하게 끌고 갔다.
혹시나 배가 뒤집어져서 물컹물컹한 괴물의 몸뚱이가 쏟아질까 봐 벌벌 기는 것은 이예주의 몫이었다.
덜컥, 덜커덩. 박혀 있는 돌에 걸려 나룻배가 위태로이 흔들리자 이예주가 기겁을 하며 기우뚱하는 선체를 와락 붙잡았다.
“으허억! 조, 조심해요!”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 그동안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만 걸어가던 도도하신 분께서 그제야 속도를 늦추고는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예주는 허겁지겁 불만을 토로했다.
“배 다 뒤집어지겠어요! 좀 천천히 가면 안 돼요?”
“그러니까 뒤집어지지 않도록 잘 잡고 따라오라 하였잖아.”
“잘 잡아도 당신이 미친 듯이 끌고 가서 자꾸 놓치거든요? 이러다 엎어지면 어떡하게요!”
“그것 참 애석하군. 기껏 잡아 주었는데 땅바닥을 뒹굴면 먹지 못할 테니까.”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남자가 전혀 애석하지 않은 표정으로 휙 뒤를 돌았다.
어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 약을 이렇게 박박 올릴 수가 있지? 어흐으…….
잠시 부들부들 떨던 이예주는 놈이 또 미친 듯이 질주하기 전에 서둘러 인정에 호소했다.
“히, 힘들어요!”
애원에 가까운 인간 여자의 목소리에 앞을 보려던 남자가 멈칫하더니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우뚝 멈추자 자연스럽게 그가 끌고 가던 나룻배도 멈췄다.
배 뒤에 달라붙어 있던 이예주 또한 덩달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분명 미는 데 힘을 보탰던 것 같은데, 람이 멈추니 거대한 인면어가 담겨 있는 나룻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아래가 뜰 만큼 덜렁덜렁 끌고 다닌 남자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배도 고파 죽을 것 같고! 흐흑, 다리도 아프고요…….”
“…….”
“뒤에서 이거 보고 걷느라 속도 안 좋아요. 네?”
이예주는 제 앞에 다소곳이 죽어 있는 인면어를 최대한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것을 손가락질했다.
남자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복장 터져 죽을 것 같은 그녀가 ‘그냥 가자!’ 하고 외치기 바로 직전에서야 간신히 그 비싼 입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
“걷지 못할 정도인가?”
이예주는 그 짧은 새에 잠시 고민했다. 걷지 못하니 그냥 쉬었다 가자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제발 날 두고 먼저 이 빌어먹을 것을 끌고 산장으로 가 달라고 해야 할까.
혼자서도 잘만 끌고 산장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으면서, 이 남자가 자신에게 대체 왜 굳이 배가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잡도록 종용하는 건지 이예주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배가 뒤집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없는 힘을 짜내기도 전에, 남자가 걷는 속도를 따라가다 숨이 벅차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이거 너 혼자 들고 신나게 뛰어가면 안 되겠니?
목 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은 빤히 자신을 직시하는 시뻘건 눈동자를 마주하자 곧바로 아스라이 사라졌다.
“아, 아뇨. 걷지 못한다기보단 그냥…….”
그녀는 그저 천천히 보폭 좀 맞춰 걸어 달라고 할 참이었을 뿐이다.
힘들다고 사정해 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남자인 것을 이미 통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보폭 좀 맞춰 걸어 달라.’ 의 ‘보’ 자도 꺼내지 않았건만 대관절 무엇이 이 미친놈의 신경을 자극한 걸까.
남자가 뜬금없이 쿵쿵쿵 제게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왜, 왜요? 왜 오는 거예요?”
이예주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 오는 람을 피해 뒷걸음질 쳤지만 신장 길이부터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탓에 금방 붙잡히고 말았다.
잠시 도망치려던 그녀를 벌건 눈으로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몸을 숙였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업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