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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앤 매드 (170)화 (171/319)

낚싯대 끝에 줄줄이 매달린 채 흔들리는 물고기들에게서 정체불명의 진득한 액체들이 뚝뚝 떨어졌다. 

이예주는 진저리를 쳤다.

“이, 이걸 나한테 왜 줘요?”

“들어.”

“왜, 왜요?”

“이제 네 밥벌이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목에 핏줄을 세웠다. 

며칠 새 들은 것 중 가장 황당한 소리였다. 

왜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지 놈의 뒤를 따른 건데! 

고작 이딴 독 든 물고기나 잡자고 그랬냐고. 이런 끔찍하고 흉측한 냄새가 나는……!

“바, 밥벌이하라고 해서! 등산하는 내내 끽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이 망할 가방 들고 왔잖아요오! 그렇게 밥벌이했으면 됐지!”

“그건 밥벌이를 위한 준비였을 뿐이지. 가방 들고 가만히 서 있는다고 누가 네 입에 밥을 떠먹여 주는 건 아니지 않나?”

“…….”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인지라 이예주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가만히 가방 들고 온다고 해서 누가 제 입에 밥 떠먹여 주는 건 아니지.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오느라 갖은 용을 쓴 건 자신이란 말이야? 

그녀는 그의 말이 요상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자신이 미웠다. 

남자가 붕어 주둥이처럼 입술이 툭 튀어나온 그녀를 보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지루할 틈이 없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지 않아.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그만 들지. 들고만 있으면 밥은 먹도록 해 주마.”

“…….”

“얼른, 예주야. 해 진다.”

“……어흐으! 진짜!”

그것은 타격과도 같았다. 

누군가 갑작스레 명치끝을 주먹으로 치는 것처럼 훅 들어오는 공격에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제게 내밀어진 낚싯대의 두꺼운 손잡이 부분을 움켜쥐고 말았다.

왜 갑자기 이름은 부르고 난리야!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어느새 남자의 손에 양어깨를 부여 잡힌 채 배 밖으로 낚싯대를 내밀고 있었다. 

부루퉁했던 이예주의 얼굴이 울상으로 탈바꿈하기까진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이 나쁜 놈. 내가 이름 불러 주는 것에 흐물흐물 녹아서 방어 태세조차 취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부른 것이다. 

수 쓸 새도 없이 당해 버린 제 자신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제 손에 들려진 묵직한 낚싯대와 그 끝에서 덜렁거리는 생선 한 두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얀 내를 풍기는 정체불명의 물고기 체액들이 물 위로 뚝뚝 떨어졌다. 

잔잔했던 수면 위에 둥그런 파동들이 규칙적으로 일어났다. 

남자가 뒤에서 낚싯대를 드는 것을 돕고 있었기에 어느새 그들의 자세는 백허그를 하는 것처럼 묘해졌다. 

이예주의 입술 새로 앓는 신음처럼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 어깨 좀 놔주었으면 좋겠는데. 왜 뒤에서 그렇게 잡고 있는…….

“이렇게 가만있으면 돼요?”

별거 아닌데도 괜스레 떨리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이예주는 람에게 잡힌 몸을 어색하게 비틀었다. 

그러나 남자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앞으로 좀 더 몸을 숙이도록.”

“흐, 흐으…… 이, 이렇게요?”

좀 더 숙이라는 요구에 그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몸을 숙였다. 

물론 람의 눈에는 아무런 미동조차 찾아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더. 남자가 낮은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속살거렸다. 

이예주는 누가 제 욕을 하는 것처럼 귓속이 간질거려서 퍼드득 떨다가 좀 더 몸을 숙였다. 

제 딴에는 남자의 입김이 닿는 귀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었지만, 슬프게도 방금 전과 별 차이 없는 움찔거림에 불과했다. 

“이, 이렇게요?”

“아니. 더 숙이라고.”

으드득, 어쩐지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움에 자꾸만 몸을 뒤치락거리던 이예주는 불현듯 뒤에서부터 누르는 강한 힘에 의해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으허억! 엄마악!”

수면 위에서 덜렁이던 물고기들이 철퍽하고 물에 잠김과 동시에, 멀찍이 있던 호수가 눈앞으로 쑤욱 다가왔다. 

그녀는 퍼덕이며 강제로 숙여진 상체를 들려 했다. 

하지만 뒤에서 어깨를 내리누르는 힘에 의해 허리가 들리긴커녕 갈수록 몸이 배 밖으로 내밀려졌다. 

“이렇게 말이다.”

“아악! 빠질 것 같아! 놔! 놔!” 

정말로 물속으로 빠져 버릴 듯 아슬아슬하자 더욱 쩌렁쩌렁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방이라도 상체가 앞으로 쏠려서 물에 머리통부터 퍽 처박힐 것만 같았다. 

이건 신종 물고문인가? 이예주는 물과 평행을 이루며 마주 보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머리 위로 쭉 뻗은 채 낚싯대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은 간신히 들고 있지만 당장 그것을 놓쳐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물 위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도 있었지만, 고기들이 매달려 있는 낚싯대가 꽤 묵직했다. 

팔과 어깨가 아려 왔다. 

점점 물속으로 축축 가라앉는 낚싯대의 휘어진 끝을 귀신같이 알아본 남자가 음산하게 지껄였다. 

“스읍, 낚싯대 잘 잡아야지. 놓치면 오늘 밥은 없다.”

“허헝! 왜, 왜 이래요!”

“뒤에서 모자 잡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후드 때문에 목 부근이 죄어 왔다. 어쩐지 아까부터 숨 쉬기가 불편하더라. 

“아악! 무서워! 빠질 것 같아! 나 진짜 넘어질 것 같으니까 이거 놓으라고요!” 

“걱정할 것 없대도.”

안심하라는 듯 남자가 허헛 하고 작게 웃으며 호언장담했다. 

이 미친놈아! 네놈이야 걱정할 일 없겠지! 

이예주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죽이려면 제발 곱게 죽여 달라고 몇 번이나 빌었잖아! 

이런 자세로 고문당하다가 죽는 것은 정말로 그녀의 예상엔 없었다. 

버둥거리지 마라. 또다시 뒤에서 들려오는 속 편한 명령에 이예주의 눈깔이 희번덕 뒤집어졌다.

“대체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데요! 왜 이런 미친 자세로 이걸 들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요! 왜! 왜! 왜!”

“……그거야.”

악에 받친 그녀에게 남자가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가 머뭇거리며 답을 내놓았다.

“대어를 낚기 위해서지.”

“대, 대, 대어? 대어?!”

이예주는 너무 분노가 치솟아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 멀쩡한 사람도 제드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어는 무슨! 몇 시간째 이, 이런 피라미들만 낚은 게 누군데!”

“쉿, 오던 고기 도망간다. 가만히.”

남자가 자꾸만 기지개를 펴려는 그녀의 어깨를 꾸욱 내리누르며 계속해서 가만히 있을 것을 종용했다. 

이예주는 흐느꼈다.

“흐…… 흐흐흑…….”

“쉬이― 가만히 있으래도. 잠시면 된다. 가만히…….”

계속해서 꿈지럭대는 인간 여자의 뒤통수를 다른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내리며 람은 그녀를 달랬다. 

어린 것을 이리 쓰는 것에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밥 달라고 꿀꿀대는 것을 먹이려면 자신은 대어를 낚아야 했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이 필요했으니까. 

람은 어느 틈에 틀어쥔 또 하나의 낚싯대를 높이 쳐들어 이예주의 머리통이 있는 쪽을 향해 겨눴다. 

낚싯줄이 돌돌 감긴, 휘어지지 않은 낚싯대의 끝은 창처럼 날카롭고 곧았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휘어지기만 할 뿐, 쉽게 부러지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을 것이다. 

제 뒤통수에 대고 남자가 낚싯대를 흉악하게 움켜쥐고 있는 사실 따윈 전혀 모르는 이예주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잠시면 된다는 남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흐느낌을 멈췄다. 

미친 듯이 버둥거리던 몸짓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식은땀이 이마와 코끝을 타고 수면 위로 똑똑 떨어졌다. 

배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엎드린 채 가만히 심호흡만 하고 있자니, 방금 전엔 너무 흥분해서 맡지 못했던 생선 썩는 냄새가 콧속으로 끔찍이도 파고들었다.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물 위를 내려다보았다. 

물고기들에게서 떨어진 액체들로 인해 탁해진 호수 위로 제 그림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망할.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실제로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1시간과도 같이 느껴지는 시간을 감내하지 못하고, 결국 이예주가 다시 놓아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던 그때였다. 

문득 물에 비친 제 그림자와 물고기들의 잔상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착각이 아니었다. 

그림자는 점점, 점점 커져 마침내 이예주의 그림자를 집어삼킬 정도가 되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비명마저 지를 수 없었다. 그 순간, 남자가 낮게 읊조렸다.

“지금이다.”

물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무언가 촤아악 튀어나와 이예주가 들고 있는 낚싯대 끝을 물었다. 

“쿠웨에에엑―!”

“아아아악! 억!”

그와 동시에 후드를 뒤로 거칠게 잡아당기는 힘에 이예주는 놀랄 틈도 없이 배 안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너무 쏜살같이 튀어나와 낚싯대를 놓쳤다는 자각도 없었다. 

무언가 물속에서 튀어나왔다는 놀라움보단 옷에 목이 졸려 죽을 것이라는 공포가 눈앞을 먹먹하게 만들었을 즈음, 그녀를 뒤로 물린 람이 배 밖으로 튀어 나갈 듯 몸을 뻗더니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무언가를 사정없이 내리 찔렀다. 

푸욱― 날카로운 것이 장막을 뚫고 안을 들쑤시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선체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쉬, 쉭! 쿠루루엑! 쿠웨에에에엑!”

“으아아악!”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커다란 진동에 이예주는 손에 잡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지진 나듯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 그녀는 보았다. 

이렇게 배가 요동치는 가운데에서도 뱃전 위에 흔들림 없이 올라서서 낚싯대를 물속에 꽂고 있는 남자를. 

그리고 그 낚싯대에 꽂혀 물속에서 사정없이 꿈틀대고 있는 그것을. 

이예주가 들고 있던 낚싯대를 삼키려고 든 건지, 활짝 만개한 꽃처럼 쫘악 벌어져 있는 괴물의 주둥이가 낚싯대 걸려 다물리지 않고 꾸물거렸다.

“꺄아아악! 엄마야! 저거, 저거! 아아악—!”

살기 위해서 비명 지르던 이예주는 이번엔 그 혐오스러운 모습에 비명 질렀다. 

그것은 미끈하고 끈적끈적한 액체로 뒤덮여 있는 누리끼리한 살색의 괴물이었다. 

주둥이가 문어 다리처럼 여러 갈래로 찢어진 채 활짝 펴져 있었는데, 그 안쪽은 시뻘건 점막이었다. 

그 위에 톱날같이 날카로운 하얀색 이빨들이 틈 없이 다닥다닥 돋아 있었다. 

마치 꽃잎 깊숙한 곳에 암술의 머리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갈라진 주둥이 안에 진짜 주둥이가 하나 더 숨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위장으로 직결되는 모양인지, 여러 갈래로 찢어져 있는 것들에 달려 있는 잔 이빨보다 훨씬 크고 위협적인 이빨들이 카메라 조리개처럼 둥그런 모양을 따라 맞물려 있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나룻배만 한 크기의 그 주둥이 괴물이 ‘쿠웨에엑’ 하는 굉음을 내지르며 물속에서 풀쩍 튀어 올랐다. 

그것이 활짝 만개한 주둥이를 허공을 향해 꿈틀거리다 다시 물에 떨어졌다. 

괴물이 완전히 물속에 들어가기 전, 때에 맞춰 뽑아 든 낚싯대를 그 미간에 꽂아 넣는 람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푸욱― 물컹한 살 더미를 헤집는 괴기한 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금방이라도 난파될 것처럼 요동치던 배가 잠잠해졌다. 

이어서 역겨운 피비린내가 격하게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퍼져 나갔다.

“죽었군.”

남자가 머리 위로 조금 튀긴 물방울들을 홀가분하게 털어 내며 인간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집채만 한 생선 괴물의 출현이 두려웠는지 그녀는 두 팔로 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손목을 잡아 억지로 머리에서 떼어 낸 남자가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자, 네 것이다.”

“아악!”

딱딱하고 까슬까슬한 것이 손에 닿았다. 

혹시 그 망할 괴물의 일부라도 쥐어 준 걸까 봐 이예주는 발작적으로 손을 털어 냈다.

“네 것이라니까.”

“돼, 됐어요!”

싫다는데도 굳이 꽉 쥔 손을 억지로 펴서 자꾸만 쥐어 주는 바람에 이예주는 결국 제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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