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69)화 (170/319)

“이런 지루한 건 아저씨들이나 하는 건데…….”

“지루할 틈조차 없을 테니 기대하라고 했을 텐데.”

“예, 예…….”

퍽이나 그러시겠지. 이예주는 썩어 들어가는 얼굴을 감출 의도 없이 드러냈다. 

남자가 배 안에 마저 올라서서 얌전히 놓여 있던 노를 들었다.

선체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이내 배가 출렁거리며 물 위에 떴다. 

이예주는 기겁을 하고 선체를 움켜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은 채 남자는 천천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나룻배가 물살을 가르며 호수의 더 깊은 수심으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이예주는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호수 아래 면을 멀거니 내려다보며, 과연 제가 몇 마리나 낚을 수 있을지 가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0이나 1 같은 이진법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대충 하고 밥이나 좀 줬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저 미친놈과 함께 배를 타고 괜한 짓에 시간을 낭비할 줄만 알았지, 흘려들었던 ‘기대해도 좋다.’는 말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       *       *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던 물의 수위가 점점 깊어져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호수 정중앙에 도착할 때쯤이 돼서야 람은 노를 젓는 것을 멈췄다. 

노를 내려놓은 그는 가죽 가방을 뒤적여 산장에서 쓸어 담은 것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남자가 하는 행동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이예주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들이 떠나온 먼 육지를 응시했다. 

꽤 한참 동안 배를 타고 온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육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물보라 치며 출렁이는 호수는 얼마나 깊은지 그저 시꺼멨다. 

구명조끼도 없어서 혹여 배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뒈지는 건 자신뿐일 텐데, 흐흑. 

겁이 난 이예주가 흔들리는 눈으로 다시 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무통에서 실지렁이를 꺼내 낚시 바늘에 꿰고 있었다. 

날카로운 바늘에 관통되었음에도 꿈틀거림을 멈추지 않는 지렁이의 모습에 이예주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윽고 람이 멀리까지 낚싯대를 던졌다. 

“이, 이렇게 하면 정말 물고기가 와서 물어요?”

그녀가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나무에 질긴 실을 엮은 낚싯대는 한눈에 봐도 임시방편용으로 대충 만든 것처럼 조잡했다. 

여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그녀와는 다르게, 남자는 물고기가 물어도 그만, 안 물어도 알 바 아니라는 듯 퍽 심드렁한 투로 대꾸했다.

“미끼를 던졌으니 물겠지.”

“계속 기다렸는데도 아무것도 안 잡히면, 그럼 어떡해요? 그, 그럼 기껏 여기까지 와서 쫄딱 굶는 거예요?”

“그럴지도.”

“크아악!”

하나님, 제가 이 미친놈을 때릴 수 있도록 부디 허락해 주소서! 

이예주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간절히 기도했다. 

왜! 대체 왜 이 망할 배까지 타고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인 물고기를 찾아 나온 거냐고! 

“그러니까 저는 육지에서 과일 같은 거나 찾아본다고 했잖아요!”

“쉬이― 조용. 네 돼지 멱따는 소리 때문에 오던 것도 도로 달아나겠군.”

“돼, 돼지 멱따는……! 하아…….”

현기증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불 뿜는 것을 멈추고 이예주는 아찔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렇게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낚싯대 하나 더 있으니 네 몫은 네가 직접 잡도록.”

남자가 한 손으로 낚싯대의 끝을 대충 부여잡고 느른한 자세로 가죽 가방을 턱짓했다. 

내가 잡으라면 못 잡을 줄 알고! 내 기필코 잡아서 네놈 도움 없이 밥을 해결하리라! 

없던 오기까지 다 생기는 기분에 이예주는 부득불 가방에서 낚싯대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앞서 남자가 했던 행동을 되뇌며 낚시 바늘에 미끼를 꽂기 위해 실지렁이가 담겨 있는 나무통을 가방 안에서 마저 꺼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이예주는 그것을 꺼내 바늘에 꿰기는커녕, 재빠르게 뚜껑을 도로 닫았다. 

틈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얽히고설켜 미친 듯이 꿈틀대던 불그스름한 덩어리의 잔상이 뚜껑을 닫아도 눈앞에 남았다. 

우욱,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애써 참으며 낚시를 통해 남자에게 복수하리란 계획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한바탕의 폭풍-이예주 혼자만의-이 지나가고 잔잔한 호수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나룻배 안에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람은 어느새 한강 둔치에서 많이 본 아저씨들처럼 익숙한 포즈로 앉아서 먼 수면 너머를 바라봤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처럼 낚시를 생판 처음 하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까 물을 걷는 것을 봤을 때처럼, 자신은 모르는 남자의 새로운 모습이 새삼스럽게만 다가왔다.

“그런데 진짜 왜 이렇게 익숙해요? 꼭 많이 해 본 사람처럼…….”

“미끼 꽂아서 낚싯대 던지는 것도 못하는 바보가 있나?”

이예주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 바보가 바로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치. 제가 사는 곳에서는 절대 낚시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하지 말라는 속설이 있어요. 남자가 낚시에 빠지게 되면 가정 파탄을 면치 못한다고…….” 

“…….”

“아,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요…….”

구시렁거리던 이예주는 ‘어쩌라고.’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담긴 남자의 시뻘건 시선에 우물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씨, 그렇게 무안하게 볼 것까진 없잖아. 

그렇게 그녀는 우울하게 남자와 같이 낚시 바늘이 사라진 수면 위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강제로 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예주는 얼마 안 가 우울한 얼굴 따윈 집어 치우고 헤벌쭉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입을 다문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건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낚싯대 끝에서 입질이 왔다.

람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물속에서 줄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힘겨루기를 하던 물고기는 얼마 안 가 위로 휙 낚아 올리는 람에 의해 갑판 위로 속수무책 끌려왔다. 

촤악 하고 흩뿌려지는 물 때문에 잠시 ‘아악!’ 하고 두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 안던 이예주는 그사이 배 위로 떨어져 펄떡이는 물고기를 보고 물개 박수를 쳤다.

“오오! 잡았어요!”

첫 수확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급격히 고조되었다. 

이예주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묵묵히 잡은 고기를 바늘에서 빼내던 람이 핀잔을 주었다.

“시끄럽게 굴면 오던 물고기도 다시 달아난다고 했지 않아.”

“완전 신기하다! 저 이렇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가까이 본 적 진짜 처음이에요.”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 앉아 있었으면 좋겠군.”

그러나 무뚝뚝한 말과는 다르게 람의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위로 슬쩍 들렸다. 

이예주는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여전히 간헐적으로 펄떡이는 생선에 보며 신기해했다. 

람이 낚은 물고기는 기이하게도 그냥 보면 그저 은빛의 비늘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였지만,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무지개처럼 오색 빛깔이 찬란하게 빛이 났다. 

1000년 후라고 해서 괴악한 생물체를 건져 올린 후 물고기라고 그러면 어쩌나 싶었지만,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들치와 같은 모양새에 이예주는 크게 안심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낚시 바늘을 물은 탓에 안쪽에서 배가 뚫린 생선에서는 질금질금 피가 새어 나왔다. 

고약한 비린내가 풍겼다. 

“헐, 이게 무슨 냄새야.”

이예주는 코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생선 썩은 내보다 더 심한 비린내였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생긴 물고기에서 나는 냄새치곤 코를 마비시킬 만큼 강도가 셌다. 

과연 조리해서 먹을 수 있을까. 

게다가 크기도 고작 검지만 해서 통째로 삼켜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여전히 코를 틀어쥔 채 웅얼거렸다.

“근데 좀 작네요. 당신이랑 나랑 둘이 먹기엔…….”

“계속 잡아야지.”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는 낚시 바늘에 새 미끼를 끼운 채 그것을 멀리 던질 채비를 했다. 

이예주는 내심 사라졌던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내리눌렀다. 

저렇게 당당하니 어떻게든 되겠지. 이 쪼끄만 것도 쉴 새 없이 잡다 보면 어떻게든 매운탕 거리는 될 거야. 

점점 꺼멓게 죽어 가는 생선 눈깔을 내려다보며 이예주는 애써 남자를 믿었다. 

그런데 여기엔 고추장도 고춧가루도 미나리도 없는데 과연 매운탕은 해 먹을 수 있을까? 

문득 매운탕 재료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리자 내리눌렀던 불안감이 다시 치솟았다.

그 후로 람은 미끼를 던지는 족족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일정한 속도로 배 안으로 떨어지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이예주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 숨은 강태공, 아니 숨은 람태공이 있소! 

혹시나 자신들이 타고 있는 나룻배 아래 물고기 떼라도 있나 싶었지만 수심이 깊어서 그런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호수 아래를 눈여겨보던 이예주가 배 밖으로 내빼고 있던 목을 원상태로 했을 때, 람은 또 한 번 낚싯대를 힘차게 잡아 올렸다.

“와아!”

맑은 물을 허공에 흩뿌리며 제 앞으로 툭 던져진 물고기의 모습에 이예주가 다시 환호하며 짝짝짝 손바닥을 마주쳤다. 

전혀 생각지 못한 람태공의 선전으로 그녀의 발 근처에는 꽤 많은 물고기들이 쌓여 있었다. 

10마리는 족히 넘어 보였다. 

하지만 이예주는 많이 쌓인 물고기의 수에 비해 점점 불안이 실체화되고 있다는 꺼림칙함을 좀체 떨칠 수 없었다. 

서로의 몸과 몸을 부딪치며 퍼덕이는 생선들의 모양새는 다양했다. 

1000년 후치고는 아직 생선만은 멀쩡하구나, 하고 생각했던 제가 얼마나 멍청했었는지 깨달을 만큼. 

이 호수에 많이 살고 있는 토종인 듯 물고기 떼의 대부분이 처음 낚았던 버들치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갈색, 분홍색, 연두색 등 현대에서는 듣도 보도 화려한 색을 가진 것들도 볼 수 있었다.

이예주는 그래도 람을 믿었다. 먹을 수 있으니 남자가 낚는 족족 바늘에서 빼내어 배 안으로 던져 놓는 것이겠지. 

설마 기세 좋게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구분도 못할 리는……. 

번뜩 드는 끔찍한 생각에 이예주는 퍼드득 고개를 저었다. 

일단, 먹는 것이든 못 먹는 것이든 간에 쌓여 있는 물고기 중 가장 큰 물고기가 바로 처음에 잡은 버들치라는 게 가장 문제였다. 

열 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잡혔지만 그 피라미들을 모두 뭉쳐 놓아 봤자 관상용 잉어 한 마리 크기에도 미치지 못했다.

“근데 있잖아요…… 여긴 이런 것만 살아요?”

무려 두 마리씩이나 되는 연두색 물고기를 이예주는 음울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아가미를 연달아 뻐끔대는 그것이 금방이라도 ‘개굴’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이런 건 아무리 먹어도 배도 안 찰 것 같은데요. 흐, 흐흑. 배도 고프고 더 잡다간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아요.”

거짓말은 아닌 듯 인간 여자의 눈 밑이 한눈에 봐도 퀭하니 음푹 들어가 있었다.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며 밥 달라고 기세 좋게 난리를 치던 배 속도 이젠 잔잔해졌다. 

다만 공허한 쓰라림만이 그 자릴 메울 뿐이었다. 

다시 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던 람이 잠시 멈칫했다. 

이예주는 남자가 주춤한 것이 그래도 배고파서 죽어 가는 저를 위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낚싯대를 위로 힘차게 잡아당겼다. 

단순히 입질이 와서 멈칫한 것이다.

촤악! 

당연한 수순처럼 머리맡에 튀기는 물방울을 피할 새 없이 옴팡 맞은 이예주의 눈앞으로 멍 든 것처럼 푸르뎅뎅한 색의 물고기가 철퍽 떨어졌다. 

크기가 손바닥만 한 것이, 전에 없던 월척이었다. 

하지만 이예주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이거 독 들은 거 아니냐고 물어보려던 그녀는 먼저 선수를 친 남자 때문에 말할 차례를 놓쳤다.

“흠. 이만하면 된 것 같군.”

“……이만하면 됐다고요?”

되긴 뭐가 돼! 이예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도 시각과 후각이라는 것이 있었다. 

낚시 바늘에 찔린 물고기들이 하나같이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통에, 코가 마비된 지 오래였다.

“으흐으, 그러니까 그냥 과일이나 좀 따자고 했잖아요오……! 누구 코에 붙여요? 그리고 전 도저히 이거 못 먹겠어요. 생긴 것도 그렇지만 냄새가……! 이,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에요!”

“사람 먹을 것을 잡는다곤 안 했는데.”

그러나 이예주의 절규에도 남자는 태연히 보랏빛의 생선 하나를 맨손으로 잡아 들었다. 

그는 이 어마어마한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 건지 잡는 것도 모자라 그것의 아가리에 날카로운 낚시 바늘 끝을 욱여넣었다. 

그러곤 낚시 바늘을 아가미로 빼내어 줄에 엮었다. 

람은 이어서 다른 고기를 잡아들어 새끼줄에 굴비 엮듯 그 행동을 반복했다. 

그의 손이 금방 더러워졌다. 

이예주는 입을 떡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에 물 한 번 묻힌 적 없게 생겨 가지고 저런 징그러운 짓을 잘도 하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그럼 누가 먹는데요?”

그녀가 비명처럼 새된 목소리로 간신히 되물었을 때, 그는 마지막 남은 생선을 엮어 그것들이 빠지지 않도록 줄을 두어 번 묶었다. 

그러고는 낚싯대의 끝을 잡고 휙 돌려 이예주에게 깨끗한 손잡이 부분을 들이밀었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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