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56)화 (157/319)

“……조롱이가, 조롱이가 죽었어요.”

“…….”

“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조롱이가 죽었어요. 미안해요.”

남자의 시뻘건 눈동자 아래, 이예주의 고개가 죄인처럼 아래로 푹 숙여졌다. 

투둑, 아래로 향한 얼굴 탓에 간당간당하게 맺혀 있던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그녀의 몸이 다시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구해…… 구해 주려고 했는데…… 소리 나는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구해 주려고 지하에 내려갔는데…… 흐, 구해 줬는데. 구, 구할 수 있었는데.”

“…….”

“제가, 제가 다른 신인류들까지 구하느라, 조롱이가 죽어 버렸어요.”

“…….”

“미안해요. 정말 미안…….”

눈물만 뚝뚝 흘리던 이예주는 문득 제 양 볼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힘에 의해 숨기듯 숙였던 흉측한 얼굴을 강제로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을 가리는 물기 때문에 남자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분노한 얼굴을 마주 볼 용기 또한 나지 않았다. 

분명 증오와 혐오로 뒤범벅된 살기 어린 시뻘건 눈을 하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겠지. 

이예주는 지금 정신머리가 많이 부서진 까닭에, 전처럼 그 무시무시한 눈을 보고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살포시 건네진 남자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따스하고 다정했다. 

“네 탓이 아니다.”

람이 엄지손가락을 뻗어 눈물이 쏟아지는 이예주의 눈꼬리를 꾹꾹 눌렀다. 

세지도,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은 그 손길에 물방울들이 거짓말처럼 그의 지문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찬바람처럼 시원한 감각이 대신했다. 

왜. 왜 화를 내지 않지? 

자신 때문에 아끼는 부하가 죽어 버렸는데도 남자가 화를 내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는 족족 남자에게 빨려 들어갔기에 이예주는 더 이상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다. 

그녀는 그만 울음을 그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마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처럼 얼굴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사,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릴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 때문에…….”

“쉬이, 못난이 같다. 그만 울라고 했지 않아.”

“그, 그래도. 그래도…….”

“황조롱이는 죽지 않았다.”

남자는 결국 이예주의 울음을 그치기 위해 사실을 털어놨다. 

그의 얼굴에서 미묘하게 시선을 비끼던 이예주가 마지막 말에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뭐, 뭐라고 했어요? 조, 조롱이가 안 죽었다고요?”

“그래. 안 죽었다.”

“정말? 정말 안 죽었어요?”

“그렇대도.”

오, 하나님 아버지. 

오로지 제 목숨 구하는 것과 저주와도 같은 빌어먹을 ‘능력’, 이 두 가지밖에 믿지 않았던 이예주는 태어나 처음으로 먼저 하나님, 예수님을 부르짖으며 찬양했다. 

“조롱이는! 조, 조롱이 괜찮아요?”

이예주는 혀까지 벌벌 떨며 제드처럼 말을 더듬었다. 

황급히 조롱이의 안부에 대해 묻자 남자가 성의 없이 고개를 까딱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예주는 ‘람멘!’ 하고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 그럼! 그럼 조롱이 지금 어디 있는데요? 여기, 여기 옆에 있어요? 여기요?”

그녀가 람에게 잡힌 고개를 억지로 휙휙 돌려 대며 그들이 주저앉아 있는 들판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를 보아도 온통 풀만 무성할 뿐, 조롱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예주의 얼굴이 다시금 울적해지자 람이 성의 없는 태도 따윈 집어치우고 재빨리 덧붙였다.

“여기 없어.”

“그럼 어디, 어디 있는데요?”

“기력이 많이 쇠해 북쪽 대륙, 동물의 숲으로 요양 갔다.”

“요, 요양이요?” 

요양 소리를 들은 이예주의 눈살이 못 들을 것을 들은 것처럼 찌푸려졌다. 

요양이라니. 요양이라니!

“흐, 흐으…… 무슨 늙은 할아버지도 아니고…….”

이예주는 조롱이가 들었다면 자다가도 번쩍 일어나서 꽥꽥 소리를 지를 말을 잘도 지껄여 대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왜 또 우는 건지 좀체 이해할 수 없어 람이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그녀는 ‘으아앙!’ 하고 불쑥 람의 품에 고개를 푹 파묻었다. 

흐끅흐끅, 어깨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람이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물었다.

“살아 있다는데 왜 울지?”

이예주가 훌쩍 코를 들이마시며 답했다.

“……모, 몰라요. 그냥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지는데요?”

“하…… 네 콧물 때문에 옷이 더러워지고 있으니, 제발 울지 마.”

“으허어엉―! 그깟 옷 좀 더러워지면 뭐 어때요! 조롱이가 살았다는데! 조롱이가, 조롱이가…… 어허엉, 흑!”

이예주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도 다행이다, 다행이야 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물론 애석하게도 입을 크게 벌리고 우는 탓에 람이 들을 때는 그저 ‘아해이야 우어어 아해이야’ 하는 괴상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만 울어.”

꺼이꺼이, 좀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우는 인간 여자를 어찌해야 할지 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저 손으로 질척질척한 인간 여자의 체액들을 닦아 주고 또 닦아 주기만을 반복했다. 

울지 말란 소리가 더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것을 이 시뻘건 미친놈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가슴이 사무치는 서글픔에 이예주는 저를 완전히 내려놓고 미친년처럼 엉엉 울어 젖혔다. 

탄광에서 그렇게 개고생 한 것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조롱이가 죽을 때는 또 어떠했던가. 

가슴이, 심장을 누군가 꽉 움켜쥐고 우그러뜨리는 통증이었다. 

그런데 조롱이가 살아 있단다. 

아직, 아직 살아 있어. 봉구처럼, 엄마처럼.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죽어 버린 것이 아니야…….

으허어엉. 멈추고 싶어도 자꾸만 괴상한 신음 소리가 입술 틈새로 비집고 나오면서 눈물과 콧물이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듯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명치를 후벼 파던 고통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렇게 한바탕 더 엉엉 울던 이예주는 주위가 한층 더 짙은 어둠으로 뒤덮였을 즈음, 토끼처럼 벌겋게 핏발이 선 눈을 들었다. 

“조롱이. 조롱이, 마, 많이 다치진 않았어요? 흑. 몸은, 몸은 괜찮아요?”

람은 이예주의 질문에 털끝 하나 손상된 곳 없던 황조롱이의 본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인간 여자를 내려다보자마자 하얀 볼에 난 작지만 눈에 띌 만큼 붉은 생채기를 단번에 찾아내었다. 

그것을 보자니 그는 괜히 심술궂은 기분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칼에 찔린 저는 괜찮은 것을 확인했으니 바로 뒷전이라 이건가.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눈초리를 누르고 있던 엄지를 내려 생채기 나 살짝 부푼 그 부분을 슬쩍 쓸었다. 

그 괴악스러운 행위에 인간 여자가 대번 눈살을 좁히며 “아! 아파요!” 하며 얼굴을 피했다. 그는 그제야 샐쭉하니 손을 내리고는 답해 주었다.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다, 다행이에요, 진짜. 다행이야…….”

이예주는 한시름 크게 덜은 얼굴로 다행이라는 소리를 끝없이 중얼거렸다. 

아직도 지하 탄광에 있는 것처럼, 그녀는 멀어지던 조롱이의 모습을 눈에 그릴 만큼 선명하게 기억했다. 

이름 지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또, 용서해 달라고,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던 조롱이의 모습을.

“조롱이가…… 제게 용서해 달라고 했어요.”

그녀는 다시 핑 고이는 눈물을 꾹 참으며 람에게 조롱이의 이야기를 전했다.

“누이를 죽인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 제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요…….”

“그렇군.”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조롱이는 계약 당시 내게 용서하는 방법을 요구했지. 나는 인간의 감정을 알지 못해 그가 요구하는 바를 들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나를 따라 대륙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을 뿐.”

람이 조롱이와의 계약을 언급했다. 

이예주의 흐릿한 머리로 ‘참으로 불공정한 조건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구름처럼 둥둥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아릿하게 아려 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남자에게 물었다.

“조롱이는…… 자기 자신을 용서했을까요?”

“글쎄.”

람은 바퀴벌레 등에 업힌 채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황조롱이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잠든 모습이 편안해 보이더군.”

“…….”

“인간, 네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더라도 황조롱이는 아마 네 용서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황조롱이에게 직접 들은 것이 아닌데도 람의 그 말 한마디에 이예주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얻었다. 

편한 모습으로 잠들었다니, 그거면 됐다. 그래, 그거면 됐어. 

이예주는 진심으로 바랐다. 조롱이가 모든 짐을 내려놓고 마음 편한 안식을 얻기를……. 

어지러이 널려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 보던 그녀는 졸도하기 전의 일들을 찬찬히 되돌아보았다. 

그러다 번뜩, 기절하기 바로 직전에 보았던 광경을 기억해 냈다. 

눈앞이 꺼지기 전에 보았던 마을 광장은 온통 피와 광기로 사로잡힌 진창이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제드가 발발거리며 제 뒤에 서 있었는데…….

“그런데 람. 마을은 어떻게 됐어요? 아! 혹시 제드 봤어요? 왜 저번에 그레이의 숙소에서 같이 한 번 봤는데. 당신 보고 도망친 좀 찌질한 남자애 있잖아요.”

이예주는 뒤늦게 제드를 광장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약간 걱정 섞인 투로 람에게 물었다.

열심히 제드의 인상착의에 대해 설명하던 그녀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시뻘건 눈이 금방 험악해졌기 때문이다. 

“왜, 왜 그래요? 그 눈치 없는 자식이 당신한테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했어요?”

인간 여자의 걱정이 그 애송이에게서 자신에게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 자식이 무슨 짓 했기에 그래요? 네? 

이예주가 애타는 목소리로 연달아 묻자 차갑게 굳었던 람의 표정이 묘하게 풀어졌다. 

그녀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모른다. 마을은 온통 전쟁 통이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군.”

람은 조금 관대한 심정으로 다른 사내를 찾던 발칙한 짓을 용서해 주었다. 

애석하게도 이예주는 제가 용서받았다는 사실 따윈 전혀 몰랐다.

“전쟁? 전쟁이요? 헐.”

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전쟁 소리에 그녀는 살기와 살육으로 점철되었던 신인류들의 분노를 기억해 냈다. 

어마어마한 혈세에 쥐어 짜이던 그들은 자식들까지 위험에 처하자 결국 참지 않고 봉기를 일으켰다. 

어쩐지. 피와 살점이 더덕더덕 붙어 있던 살벌한 농기구들을 볼 때부터 심상치 않다 싶더라니, 기어이 전쟁이 일어난 모양이다. 

“……알아서 잘 도망갔겠지?”

그래도 지하 700미터 땅굴 속에서 피똥 쌀 만큼 같이 고생을 하는 동안 미운 정이라도 든 모양이다. 

그녀는 걱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은 미련마저 남자가 가차 없이 잘라 냈다.

“신인류들한테 잡혀 끌려갔으면 사지가 찢겨 죽었을지도.”

으으. 이예주는 인상을 썼다. 

아무리 짜증 나던 놈이었어도 그건 좀 불쌍한데. 

하지만 그녀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라, 조롱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지덕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는 제드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안쓰러움, 그뿐이었다.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한 마을 인간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예주는 조롱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난 뒤 긴장이 풀려 흐물거리는 몸을 슬그머니 람의 품에 기댔다. 

그리고 람의 가슴 짝에 살포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두근, 단단한 근육 너머에서 느릿하지만 규칙적으로 뛰는 남자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이 남자도 심장이 뛰는구나. 

이예주는 돌연 얻은 깨달음에 아,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미친놈이란 생각은 오늘부로 끝이다. 

망할 용병대장 놈의 칼에 피를 흘리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 인간이라 볼 수 없는 괴물 같은 치유력으로 벌써 나아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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