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53)화 (154/319)

얼굴의 왼쪽 절반이 불에 직접적으로 타 질질 녹아내려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눈알까지 녹아내린 건지 눈이 있어야 할 구멍에서 노란 고름이 질질 흘러나왔다. 

비단 얼굴만이 아니었다.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용병 대장의 전신이 붉은 화염 자국과 함께 쪼그라들어 있었다. 

곳곳에 새까맣게 타 붙은 피부 조각이 괴기스러움을 더했다.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마을을 제멋대로 지배했던 과거의 용병 대장은 없었다. 

다만, 지옥 불 속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두려움이 잠식된 채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을 뿐이었다.

“너인가.”

람이 물었다. 그 목소리에 족장도, 용병 대장도 움찔 몸을 떨었다.

“하기야 독기를 풀풀 풍기며 이것을 칼로 쑤시려 했으니 네가 분명하군.”

단조롭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내던 람이 불현듯 이예주를 안고 있지 않은 손을 돌려 제 허리춤에 박혀 있는 칼의 손잡이를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배를 뚫고 튀어나온 칼을 쑤욱 뽑아 용병 대장의 발치에 휙 던졌다. 

챙캉―! 

딱딱한 바닥과 쇠로 이뤄진 칼날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음을 내었다. 

보는 사람조차 아플 것 같은 검은 파편의 그 행동은 장내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아프지도 않은지 무감각한 얼굴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고작 이따위 것으로 뭘 하겠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 저놈이 주인님을 찔렀어! 어디선가 불쑥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즉시 주변이 술렁였다. 

주, 주인님을 죽이려 들었어! 

거, 검은 파편을! 

술렁임이 커졌다. 그 수군거림은 어느덧 용병 대장의 귓속까지 날아와 박혔다. 

용병 대장이 부릅 눈을 홉뜨고 외쳤다.

“으으…… 아, 아니야! 나, 나는…… 나는 족장 저놈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모두 족장이 시킨 일이야! 저 말더듬이 새끼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여자를 죽이라고 했다고!”

“다, 닥쳐라, 이놈! 어, 어디서 그런 거, 거짓을 고하는 게야!”

배턴을 넘기듯 다시 자신에게로 훅 쏠리는 시선에 족장 또한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더니 람을 바라보며 바짓가랑이를 붙들 듯 애원했다.

“아, 아니오, 검은 파편. 내, 내 말이 진실이오. 나, 나는 하, 하늘에 맹세코 그,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너야말로 거짓말하지 마라, 이 말더듬이 병신 새끼! 네놈이 저 계집을 찾아서 잡아 죽이라고 나를 지하에 보내지만 않았어도 폭발이 일어날 일은 없었어! 저, 저 계집이 모두 죽자고 검은 안개를 폭발시키는 바람에 내가 그 불지옥에서 어떻게 간신히 살아 나왔는데. 어떻게……!”

자신을 가운데 두고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마치 한 편의 희극을 보듯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람이 이윽고 걸음을 옮겼다. 

그 방향은 이예주의 목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심한 상처를 입어 살점을 바닥에 뚝뚝 흩뿌리고 있는 용병대장 쪽이었다. 

뚜벅뚜벅. 소문만 무성했지 실제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 검은 파편이 다가왔다. 

용병 대장의 하나 남은 눈동자에 두려움이 드글드글 들끓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흐흐으! 오지 마! 내,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 커헉!”

용병 대장은 최후의 변론을 채 마치기도 전에 거센 손아귀 아래 목줄기를 콱 틀어잡혔다. 

컥! 어마어마한 악력이 숨구멍을 조이자 용병 대장의 하나 남은 눈깔이 그마저도 굴러떨어질 듯 앞으로 툭 돌출됐다. 

람이 놈의 목을 잡은 팔을 들어 올리자 용병대장의 두 발은 지상에서 가뿐히 떨어져 공중에서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어리고 약한 것들은 조심히 다뤄 주어야 한다.”

한 손으로 용병대장을 번쩍 쳐든 채 또 다른 한 손으로 이예주를 조심히 보듬어 안으며 람이 말했다. 

컥컥! 살려…… 살려 주……. 

놈이 살겠다고 발악하며 그의 팔을 손톱으로 득득 긁어 상처를 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눈치였다.

“더더군다나 이것은 신체도, 정신도 약해 빠졌지. 조금만 욕심내려 해도 세상이 망한 것처럼 울어 젖힌단 말이야.”

“크…… 크컥! 컥!”

“꽉 쥐면 부서질까, 툭 치면 죽어 버릴까.”

“……크으…… 어어…….”

“도망 못 가게 묶어 두기만 할 뿐, 나조차 손 하나 대지 않은 것을.”

목덜미를 파고드는 손가락에 점점 더 큰 힘이 들어갔다. 

용병대장은 이미 회까닥 눈을 뒤집고 흰자를 번뜩이며 혀를 질질 빼어 문 후였다. 

우두둑. 

람에게 제 목줄기를 고스란히 내준 용병 대장에게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괴기한 소리가 났다.

“감히 너 따위가.”

람이 까드득 이를 악물고 짓씹듯이 내뱉었다. 

우둑. 우두두둑― 

람에게서 꽤 떨어진 곳까지 여실히 들릴 만큼 커다랗고 끔찍한 소리와 함께 용병대장의 몸뚱이가 털썩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것은 ‘몸뚱이’뿐으로, 놈의 머리는 여전히 람의 손아귀 위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도 얼마 못 가 마치 쓰레기 버리는 듯한 무감정한 손짓에 의해 몸뚱이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간헐적으로 경련하며 분수처럼 피를 쫙쫙 뿜어냈다. 

그 옆으로 눈도 감지 못한 시체의 머리가 깡통 굴러다니듯이 몇 바퀴 구르다 멈췄다. 

흐이익―! 

근처의 군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 주변에서 사사삭 물러났다. 

마을 전체가 경악으로 그득 찼다. 

살아 있는 자의 머리가 뜯겼다. 

정확히는 엄청난 힘에 의해 살과 목뼈가 부서져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잔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자에게 항변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공포로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그다음이 누구일지 짐작하며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무 뽑듯이 사람 머리통을 뽑아낸 살인귀 같은 사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롭게 다시 등을 돌렸다. 

손아귀에 줄줄 흐르는 용병 대장의 뜨끈한 피를 오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불쾌한 얼굴로 슬슬 털어 내며 람이 족장을 돌아보았다.

“……그래. 어디까지 말했지? 내 다음 계약자라고 했던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검은 파편이 족장에게 물었다. 

족장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너무 역겹고 끔찍해서 관자놀이 옆으로 좔좔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그러니까…….”

족장이 도저히 떼어지지 않는 두 입술을 어렵사리 떼어 냈다. 

그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족장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이 나가 있었다.

“그, 그렇소. 그렇소…….”

람이 땀을 뻘뻘 흘리는 족장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그의 시뻘건 눈동자가 음험하게 빛났다. 

이 멍청하고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게 분수를 가르쳐 줄 때가 왔다.

“이십여 년 전이었다.”

남자가 친절하게 그때가 언제쯤인지 설명을 덧붙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신인류들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2차 전쟁의 전세가 신인류들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을 즈음이었지. 신인류에게 혀가 뽑힌 한 인간이 나를 찾아왔다.”

“그, 그런……!”

‘신인류에게 혀가 뽑힌 한 인간’의 대목에서 족장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제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어린 황조롱이에게 혀가 뽑히고 대대손손 말을 더듬는 저주까지 얻어 받은 선대 족장.

“놈은 개처럼 엎드려 내게 빌었다. 모든 죄는 제가 뒤집어쓸 테니 제 목숨을 거둬 가고 대신 제 가족과 마을 인간들을 살려 달라더군.”

“…….”

“네 하찮은 목숨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하니 앞길이 창창한 아들과 아직 눈도 못 뜬 갓난쟁이인 손자를 들먹이며 매달렸다.” 

신인류들과 인간들의 사이에서도 또다시 쑥덕거림이 퍼졌다. 

검은 파편이 말한 앞길이 창창한 아들과 눈도 못 뜬 갓난쟁이가 현 족장과 그의 아들인 제드를 가리킨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놈에게 물었지. 네 가족과 마을 인간들을 살려 주면 네놈은 내게 뭘 줄 수 있느냐고. 놈은 자신이 마을의 족장이기 때문에 이대로 신인류들과 휴전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휴전 후에도 인간들이 다시는 신인류들을 먹지도 건드리지도 않는, 인간과 신인류가 동등한 중간 지대를 만들겠노라고. 그 평화로운 동쪽 대륙을 내게 바치겠다고 놈이 답했지.”

“…….”

“그리고 나는 마지막 아량을 베풀어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놈과 휴전에 관한 계약을 했다. 계약이 지속되는 기간은―.”

“…….”

“마을 족장이었던 놈이 죽기 전까지.”

검은 파편이 명쾌하게 마지막 말을 마침과 동시에 광장 안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라는 듯 람의 시선이 지그시 족장의 얼굴을 향했다. 

족장의 낯빛은 죽은 생선처럼 퍼랬다. 

숨을 내쉬기 위해 물을 찾는 것처럼 그가 두툼한 입을 뻐끔거렸다.

“그, 그럴 리가…… 그, 그럴 리가 없어. 계, 계약이 그, 그럴 리가…….”

“네 아비를 죽였다지?”

“히, 히이익!”

존속 살해 혐의를 묻는 남자의 목소리에 족장이 괴성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꿈틀거렸다. 

그 벌레 같은 모습에 람이 눈동자만큼 새빨간 입술을 끌어 올려 진득하게 웃었다. 

“계약이 종료됐군.”

그리고 신인류들의 주인이 오로지 그를 위해 존재하는 종들에게 명했다.

“휴전은 끝났다. 지금부터 3차 전쟁이다.”

와아아아아아! 

신인류들이 함성을 외치며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인간들은 몇십 년 전과 같이 날카로운 철제 무기로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랜 시간을 땅속에 움츠린 채 인간들과 섞여 살며 그들의 기술과 지식을 배운 신인류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광장 안이 순식간에 다시 광란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티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거름 삼은 땅 위로 피비린내를 풀풀 풍기는 것들이 싹을 움 틔우고 순식간에 자라나 핏빛 꽃을 활짝 피어 냈다. 

바야흐로 꽃이 만개하는 여름이 찾아왔다. 

동쪽 대륙의 주인이 바뀔 시간이었다.

*       *       *

동쪽 대륙, 인간과 신인류들이 모여 사는 마을. 

그곳에서 가장 최남단에 위치한 족장의 으리으리한 저택이 새벽녘에 느닷없이 폭발했다. 

발화의 시작점이 지상이 아닌 지하였기 때문에, 오랜 위엄을 간직하고 있던 저택은 손을 쓸 틈도 없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땅속으로 푹 꺼졌다. 

그 어마어마한 잔재 속에서 황조롱이의 시체를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건물의 잔재만 있다면 금방 찾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폭발로 인해 지반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 황조롱이의 시체를 찾기 위해선 먼지와 폭발 잔해, 어둠이 점령한 지하 700미터까지 내려가야만 했다. 

커다란 화염으로 주변에는 온통 탄내와 알 수 없는 구린내가 진동했다. 

덩치에 비해 비위가 약한 나비가 냄새를 맡고 욕지기를 꾹 참다가 결국 우웨웩 속을 게워 냈다. 

붉은 개가 그 옆에서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후각으로 죽은 황조롱이를 찾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결국 해안가 근처에서 모래를 파헤치고 단잠을 자고 있던 바퀴벌레를 강제로 깨워 질질 끌고 올 수밖에 없었다. 

대왕 바퀴벌레는 그 거대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첩첩산중처럼 쌓인 잔해들을 요리조리 피해 지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머리에 달린 크고 아름다운 더듬이를 이용하여 황조롱이가 파묻혀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여기야! 여기!”

커다랗게 외치는 대왕 바퀴벌레의 목소리에 재빠르게 달려온 나비와 붉은 개, 그리고 그를 찾아낸 대왕 바퀴벌레는 기이한 광경을 마주했다.

“이게 황조롱이야?”

붉은 개가 잔해 더미 사이로 희미하게 쏟아져 나오는 빛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대왕 바퀴벌레가 더듬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여기서 황조롱이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

“어, 어떻게 찾은 거로라? 그리고 왜 빛이 나는 거로라?”

나비가 성급히 물었다. 

대왕 바퀴벌레가 이번에는 더듬이를 쌕쌕 두어 번 세게 흔들고 답했다.

“몰라. 더듬이에서 갑자기 따듯한 기운이 느껴지기에 따라와 봤더니 있던데?”

그들은 힘을 모아 열심히 빛 위에 첩첩이 쌓여 있는 바윗덩이들과 버력 따위의 잔해들을 치워 냈다. 

마치 내가 여기 아래 묻혀 있소, 하고 환하게 발하던 빛은 희한하게도 그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그 존재를 죽여 갔다. 

마침내 그들이 마지막 돌을 치워 내고 새로 변해 있는 황조롱이를 찾아냈을 때는 완전히 꺼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뭐지? 뭐지?”

바퀴벌레가 당황하여 외쳤다. 

빛이 사라지고 드러난 황조롱이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굴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점잖게 죽을 수 있지? 

바위틈에서 새어 나온 빛을 보았을 땐, 못해도 무너진 잔해에 깔려 쥐포처럼 납작하게 짜부가 됐거나 내장이 터져 있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에 타 죽거나 폭발에 휩쓸려 같이 터져 죽은 게 아니라 유독 가스에 질식해 죽은 건가? 

축 늘어진 작은 황조롱이 새를 바라보며 대왕 바퀴벌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나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큼 커졌다.

“허, 헉! 가, 가슴이 움직이로라! 수, 숨소리가! 수, 숨소리가……!”

붉은 개와 대왕 바퀴벌레의 눈이 미미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황조롱이의 가슴과 까무러치게 놀라 자빠진 나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경악에 그득 찼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들은 동시에 외쳤다.

“황조롱이가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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