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문이…….”
“거봐여, 누나. 능력 쓸 수 있는데 나 때문에 안 간 거 맞져?”
이예주가 홀린 듯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드득 정신을 차리고 조롱이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뛰고 있는 조롱이의 얼굴이 안쓰럽게 질려 있었다.
“누나 혼자 도망칠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일부러 그랬져?”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런 적 없어, 조롱아. 그만 말하고 손부터 잡아, 응? 손은 안 잡고 왜 이래, 갑자기!”
“……누난 너무 착해.”
흡사 애원하듯 손을 잡으라고 종용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롱이가 웃는 듯 우는 듯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사막에서, 계약을 하는 대신 뭘 요구했기에 주인님께 아직도 그 조건을 못 받은 거냐고 물었져?”
조롱이가 손을 잡는 것과는 전혀 다른 화두를 꺼냈다.
그러더니 이예주가 애절한 얼굴로 뭐라 소리 지르기도 전에 먼저 선수 쳐서 말을 이었다.
“저는…… 저는 주인님께 저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알려 달라구 했어여.”
“조롱아.”
“누이가 저 때문에 죽고 나서부턴 제 자신이 너무 미워, 미워 죽을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어여.”
“그만 말해. 그만 말하고 내 손부터 잡아! 잡으라고!”
“그런데 누나라면…… 예주 누나라면 날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기어코 손을 잡지 않는 조롱이 때문에 이예주는 상체를 아예 광차 밖으로 떨어질 듯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끌려고 들었다.
그것이 역효과를 부를 줄 알았다면 그녀는 절대로 그 짓거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손끝이 더 가까이 쑤욱 뻗어 오자 그가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차체를 잡고 있던 한 손을 훅 내뺐다.
이예주가 경기(驚起)해 비명을 질렀다.
“조롱아!”
“지금 저까지 타면 바퀴가 아예 빠져나갈 거예여.”
어떡하지?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제가 내릴까. 제가 내려서 열린 ‘문’ 안으로 뛰어들면 될까? 그럼 될까?
하지만 그 생각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조롱이의 등 뒤 천장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 무너진 틈새로 검붉은 화마가 폭죽처럼 불꽃을 내뿜으며 그들의 뒤를 야금야금 따라왔다.
또 한 번 터진 폭발로 인해 이예주는 조롱이 바로 뒤에 위치한 ‘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아무것도 없이 하얗게 빛나기만 하던 문 안에 어떤 영상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영상은 차츰차츰 실루엣을 찾더니, 이윽고 꽤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도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해졌다. ‘문’ 안에서 윤기 있는 황갈색 털을 가진 황조롱이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새의 모습이었지만, 이예주는 ‘문’에 비치는 영상 속의 새가 조롱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동적으로 날개를 퍼덕이는 황조롱이의 노오란 한쪽 발목에 깊은 흉터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문’ 안의 영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되돌아보지 않았다.
그 순간, 어떤 방법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변해! 어서 황조롱이로 변해!”
그래! 그 방법이 있었다. 조롱이가 본래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거야.
그럼 제가 안고 갈 수도 있으니까 무게도 덜 나갈 테고, 조롱이 스스로도 비행할 수 있으니까 충분히 같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예주는 절박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용병대장이 억세게 죈 목에서 피비린내가 울컥 올라와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악착같이 황조롱이를 잡을 뿐이었다.
“새로 변하면 무게가 안 나가잖아! 내가 안고 갈게! 황조롱이로 변해, 조롱아! 빨리 변해!”
조롱이는 덧없는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소리 지르는 이예주가 안쓰러웠다. 누나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계속 아끼고 아꼈던 힘은 광차를 밀면서 모두 소진했다.
인간들이 주사를 놔 몸 안을 점령한 약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로 무리한 힘을 끌어 썼다.
힘을 억누르고 있는 약 기운을 물리치면서까지 본체로 변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름 지어 줘서 고마워여, 누나.”
이예주를 바라보며 조롱이는 진심을 다해 웃어 주었다.
그 말간 웃음에 그때까지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이예주의 얼굴이 둑 무너지듯 와르르르 허물어졌다.
“용서해 줄 거져?”
“……이러지 마.”
이예주가 빌었다.
나를, 나를 얼마나 더 나락으로 밀어 넣으려고 이래. 지금도 절벽 끝에 발 하나 걸치고 아슬아슬 하게 서 있는 나를. 얼마나 더, 나를 얼마나 더.
“예주 누나, 나…… 용서해 줄 거져?”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곧 사라질 거품처럼 하얗게 웃는 조롱이가 천천히 광차를 부여잡고 있던 한 손을 놓았다.
안녕, 예주 누나.
얼핏 작은 인사가 귓가에 환청처럼 맴돌았다. 뜀박질을 멈춘 조롱이가 레일 한가운데에 우뚝 멈춰 섰다.
이예주는 손을 뻗은 그 상태 그대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녀는 그제서야 ‘문’ 안의 황조롱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대왕 바퀴벌레의 등에 탄 채 하늘을 날고 있는 이예주의 시선에서 바라본, 과거의 조롱이었다.
“과거로 가는 문이야…….”
이예주가 조롱이와 그 뒤의 ‘문’을 향해 달려 나갈 것처럼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실제로 그녀의 상체가 탄차 밖으로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롭게 삐져나왔다.
그 뒤로는 제 몸이 제 몸 같지 않았고, 제 정신이 제 것 같지 않았다.
이예주는 ‘문’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분명 그랬다.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몸을 꽉 끌어당기지만 않았어도 필히 탄차 밖으로 떨어졌으리라.
“과거로 가는 문이야! 과거로 가는 문이라고―!”
이예주가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 치며 발악했다.
“레, 레이디! 레이디, 이, 이러지 마세요! 위, 위험해요! 이, 이러면 안 돼요!”
“놔! 이거 놔! 과거로 갈 수 있어! 과거로! 과거로 가서 바꿀 수 있어!”
조롱이가 멀어진다. 구할 수 있는데, 구할 수 있는데 조롱이가 자꾸만 멀어졌다.
저렇게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되는데. 저렇게 있으면 금방 불에 잡아먹힐 텐데.
어두운 동굴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인간 형태의 조롱이와는 다르게, 그의 뒤에 열려 있는 ‘문’ 안의 황조롱이는 펄럭펄럭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그 대조되는 모습이 너무 괴로워서. 몸을 뒤흔들며 이예주는 절규했다.
“과거로, 과거로 가는 문이야! 조롱아! 조롱아아아아악!”
콰콰쾅―!
그 순간 전에 없던 엄청난 세기의 진동과 함께 조롱이의 바로 옆벽이 폭발하며 시뻘건 용암 같은 불길을 쏟아 냈다.
불길에 휩싸여 조롱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것은 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크린을 통해 무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나브로 흘러갔다.
“레, 레이디! 안 돼요! 아, 안 돼요, 레이디!”
화르륵 타오르는 불이 코앞에서 조롱이를 삼켰다.
‘문’ 안의 황조롱이 또한 삼켜 버렸다.
화마가 조롱이를 태우고, 문을 태우며 시뻘겋게 일렁거린다.
조롱아. 조롱아…….
조롱아.
흐으, 조롱아! 조롱아아악―! 으흐윽, 흐아아악!
끔찍한 울부짖음과 더불어 이예주의 시야 또한 온통 시뻘건 색으로 점멸했다.
* * *
덮칠 듯 말 듯 탄차의 뒤를 따라오던 폭발과 화염은 눈치채지 못한 사이 뚝 그쳤다.
덜덜, 터덜덜덜덜. 끝없는 나선 길을 오르고 또 오르던 탄차의 바퀴는 동굴을 채 벗어나지도 못하고 힘없이 빠져 버렸다.
끼리리리릭, 귀를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탄차가 천천히 멈췄다.
“조, 조금 더 가면 밖이에요, 레이디.”
제드의 말처럼 멀찍이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이 보였다.
탄차가 멈췄으니 이제는 다시 걸어야 할 시간이었다.
제드의 도움을 받아 미동 없는 토끼 신인류를 등에 둘러멘 이예주는 비척비척 출구를 향해 걸었다.
제드는 탈수로 축 늘어진 강아지를 안아 듣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가는 이예주의 걸음이 위태로웠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제드가 허겁지겁 잡아 준 덕에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는 꼴은 면했다.
그렇게 그들은 느린 걸음으로 탄광의 끝을 마저 빠져나왔다.
출구 앞에 서자 푸르스름한 새벽 여명이 그들을 반겼다.
저택으로 납치될 당시엔 저녁노을이 짙게 깔려 있었는데, 지하에서 고군분투하던 동안 어느덧 날이 밝은 것이다.
이예주는 메마른 눈으로 출구 밖을 바라보았다.
각기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동쪽 대륙의 마을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녹지가 펼쳐져 있었다.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옅은 햇빛이 이슬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어디선가 숲에 사는 요정이 튀어나와 두 손 잡고 뛰어놀 것만 같이 둥그스름하게 솟은 예쁜 언덕.
그 위로 한 오두막집이 그림같이 지어져 있었다.
이예주는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언덕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언덕은 그녀가 지하 700미터에서부터 올라왔던 동굴 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낮고 완만했다.
가쁜 숨을 토해 내지 않아도 그녀는 금방 오두막집 앞에 훌쩍 올라설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오두막집은 동화 속의 그것처럼 작고 아담했다.
또 사람이 사는 집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하, 할아버지가 화, 황조롱이 각시랑 살던 집이에요.”
문득 뒤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드였다.
올라오는 발소리는 못 들은 것 같은데 어느 틈에 온 거지…….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드는 생각과는 다르게 이예주는 제드가 제 뒤를 소리 소문 없이 쫓아왔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지 않았다.
제드의 말에도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제드 또한 마찬가지인지 그는 입을 열어 더 이상 묻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을 계속해서 쏟아 냈다.
“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화, 황조롱이 각시가 도, 돌아올 거라고 믿으셨어요.”
“…….”
“가, 각시가 돌아오면 배, 배신의 아픔을 알게 해서 미안하다고. 펴, 평생을 살면서 갚겠다고…… 트, 틈만 나면 종이에 적어서 저, 저한테 보여 주셨거든요.”
“…….”
“지, 집으로 돌아온 황조롱이 각시가 지, 집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걸 알게 되면 다, 다시 떠날까 봐 하,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름 없이 타, 탄광을 통해 탄차를 타고 여기로 오셔서 지, 집을 돌보셨어요. 도,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도요…… 그, 그니까 탄광은…… 타, 탄광은…….”
제드가 잠시 말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킨 후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이곳 약초 언덕으로 화, 황조롱이 각시를 빠르게 보러 오려고, 그, 그래서 황조롱이 각시를 꽃가마 태워 저, 저택의 별채로 데리고 오려고 하, 할아버지가 석탄 캐는 것이랑 상관없이 뚜, 뚫어 놓은 굴이에요.”
“……흐윽!”
불현듯,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말없이 장승처럼 서 있던 이예주가 거짓말처럼 풀밭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로 인해 그녀의 등 위에 축 늘어져 있던 토끼 신인류가 옆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그녀는 그것을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레, 레이디!”
제드가 화들짝 놀라 헐레벌떡 뛰어왔다.
“레, 레이디. 왜, 왜 그러세요? 어, 어디 아파요? 어, 어디 아픈 거예요?”
“크헉, 하…… 흐으으!”
제드가 이예주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다급하게 물었지만 그녀는 답하지 못하고 그저 꺽꺽, 숨 막히는 소리만 내었다.
끄, 끄흡, 끅. 누군가 숨구멍을 꽉 틀어막은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제드의 잿빛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처 없이 흔들렸다.
언제나 당당했던 레이디의 이런 모습은 처음일뿐더러, 가슴을 콱콱 내리치는 그녀의 행동이 꼭 울음을 토해 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이디. 수, 숨 쉬어요. 수, 숨 쉬세요.”
“흐. 흐으. 끄으…….”
“레이디. 어, 어디가 아픈 거예요? 가슴요? 가, 가슴이 아픈 거예요?”
가슴? 가슴이 아픈가? 안개가 들어찬 듯 머릿속이 온통 혼몽했다.
눈 안에 성에가 낀 듯 앞이 아무것도 안보였다.
이건 울고 싶은 기분 같은데. 아니, 울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아니 아니, 나는 이미…….
이예주는 제가 울고 있나 싶어 두 손으로 더듬더듬 제 얼굴을 만졌다.
하지만 손에 닿은 것은 메마른 피부일 뿐, 그 어디에서도 물기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때, 도저히 신음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둔탁한 통증이 명치끝을 사정없이 쑤셨다.
“흐으윽!”
이예주가 찢어질 듯 짐승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수그렸다.
어디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조롱이만 데리고 나가면 될 걸. 다른 신인류들 따위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말걸, 괜히 제가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 걸까?
조롱이를 구한답시고 람을 데려오는 대신, 제드를 끌고 지하로 내려온 것이 잘못인 걸까?
아니면, 람의 말을 무시하고 조롱이를 데리고 숙소 밖으로 나온 것부터?
아니, 처음부터. 사막에서 ‘문’을 넘어 조롱이가 끔찍해 마지않는 동쪽 대륙으로 온 것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모든 것이 제 잘못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격렬한 통증이 다시 명치를 덮쳤다. 그녀는 ‘으흐으!’ 하고 신음을 토해 내며 경련하듯 몸을 뒤틀었다.
“레이디! 레, 레이디…….”
제드가 애가 타다 못해 뭉개질 만큼 절절하게 그녀를 불렀다.
“주, 죽을 것 같아…….”
이예주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통증으로 벌벌 떨면서 간신히 한마디를 쥐어짜듯 내뱉었다.
“……나, 흐으, 나, 나 무서워.”
“…….”
“으으…… 나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 엄마.”
춥지도 않은데 자꾸만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끈적끈적하고 질척한 보이지 않는 심연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갈작갈작, 갈작갈작. 이예주는 얼마 안 가 제 몸이 엄습하는 검은 늪에 완전히 삼켜질 것을 알았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잡아먹힌다.
미치도록 두렵고 죽을 것 같이 아파서.
그리고 조롱이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조롱이의 손처럼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이른 아침, 그의 누이가 머물렀던 오두막 집 앞에 엎드린 채.
이예주는 그렇게 상처 입은 어린 짐승처럼 한참을 헐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