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보다 조롱이의 목소리가 더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이예주야 원체 도망과 회피만이 인생의 전부인 놈인 것을 알고 데려온 것이지만, 조롱이는 제드의 도망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찌릿찌릿한 눈초리에 제드가 어깨를 움츠리며 우물쭈물했다.
“부, 불길이 너무 세서 조, 조금 늦었어요. 죄, 죄송해요……!”
“아니, 죄송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너 아까 우리 버리고 도망갔잖아.”
더듬거리는 답답한 소리에 이예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맞아여! 도망갔잖아여!” 하고 조롱이가 격하게 동의했다.
그러자 제드가 사색이 되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도, 도망이라뇨! 저, 절대 도망간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도망간 거 아니면 잠시 대피했냐?”
이예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되묻자 놈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그 시선을 피했다.
새끼, 도망간 거 맞으면서 그러네. 그녀는 확신했다.
그러나 놈은 자기 합리화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끝내 부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별로 믿을 만한 변명은 못 됐다.
“이, 이거 끌고 오느라 그런 거예요……!”
“…….”
“사, 사용 안 한지 너, 너무 오래라 어, 어디 처박혀 있는지 찾기 어려워서…… 거, 걸어가긴 무리예요! 이, 이거 타고 지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검은 안개 때문에 양 갈림길은 완전히 터졌을 텐데여. 그쪽은 오른쪽으로 갔으면서 왼쪽으로는 어떻게 온 거예여?”
제드의 필사적인 열변에도 조롱이는 쉬이 미심쩍은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제드를 향해 예리한 지적을 퍼부었다.
“저, 저는…… 저, 저는 광차 몰아서 주, 중간에 있는 따, 땅굴을 통해 넘어왔어요. 그, 그리고 두 갈림길로 나눠져 있어도 사, 사실 의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어, 어차피 올라가다 보면 다시 합쳐지고요.”
“……그게 정말이야?”
그때껏 침묵하고 있던 이예주가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제드가 정신없이 아래위로 고개를 꺼덕였다.
“네, 네! 그, 그런데 오른쪽은 고, 곧 다 터질 거예요. 오, 오른쪽 길에 거, 검은 안개를 가둬 놓은 상자들이 많이 쌓여 있었거든요. 그, 그러니까 빠, 빨리 차에 타서……!”
그 순간이었다.
콰쾅―!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굉음이 저편에서 한 번 더 울리더니 이제껏 그저 준비였다는 듯 그들의 머리 위로 버력(광석이나 석탄을 캘 때 나오는, 광물 성분이 섞이지 않은 잡돌)이 우수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맞으면 위험할 만큼 커다란 돌덩이가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비껴갔다.
쿵, 탄차 안으로 떨어진 돌덩이에 제드가 사색이 되어 꽥 소리 질렀다.
“흐에에엑! 가, 가야 돼요! 무, 무너지니까 지, 지금 가야 돼요, 레이디!”
놈의 심중이 무엇인지 앞뒤 잴 것 없이 이예주는 업고 있던 신인류부터 차 안에 태웠다.
제드가 드물게 먼저 나서서 그것을 도왔다.
조롱이도 더 이상 의구심을 품는 것은 무리였다고 판단했는지, 경합금 상자 안으로 품에 안고 있던 강아지를 훌쩍 던져 넣었다.
끼잉, 겁에 질린 강아지가 오들오들 떨었다.
“조롱아, 얼른 타!”
이예주가 비명 지르듯 외쳤다.
걷는 것은 어찌어찌 무리 없이 하더라도, 높은 차 위로 다리를 쫙 뻗는 것은 무리였는지 제드의 도움에도 조롱이는 광차 안으로 올라서는 것이 지진부진했다.
이예주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조롱이의 상체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려서 그를 차체에 걸치다시피 하게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다리가 꺾여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던 제 몸 어디에서 이렇게 괴력이 쏟아져 나오는지 알 재간이 없었다.
조롱이가 탄차에 올라타자마자 몸을 돌려 아직 타지 못한 이예주에게로 손을 뻗었다.
“누나!”
그녀가 혼자서도 능히 탈 것이라 믿었는지, 제드는 차머리 쪽으로 몸을 움직여 달려 있는 모터의 줄을 좌악 잡아당기며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제드답지 않은 과감한 행동도 소용이 없었다.
모터는 ‘구릉, 꾸르릉’ 하는 힘없는 소리만 낼 뿐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줄을 잡아당기는 제드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그때 ‘콰아앙―!’ 폭발음이 한 번 더 울렸다.
쿠구구구궁, 불길한 소음과 함께 동굴이 자꾸만 흔들렸다.
정말 탄광이 무너지려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왜 그래? 왜 안 가는 거야!”
아래 저편에서 다시 불길이 확 치솟았다.
입고 있는 두터운 로브를 뚫고 천불 같은 화마가 끼치자 더럭 겁이 난 이예주가 제드를 닦달했다.
“시, 시동이 안 켜져요! 너, 너무 무, 무거워서 그런가 봐요. 이, 이 탄차는 2인 전용이라서…….”
“뭐? 2인?!”
“네, 네…….”
제드가 울상을 지었다.
이예주는 좀체 따라 주지 않는 운과, 상황에 절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하으, 씨…… 시동 계속 걸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탄차의 뒤편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두 손을 올려 차체를 턱 받쳤다.
제드가 어수룩하게 물었다.
“어, 어떡하게요, 레, 레이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버럭 화를 낸 이예주는 곧이어 ‘끄으으응―!’ 하고 온 힘을 줘서 차를 밀기 시작했다.
예상했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제드가 흐이이익, 기괴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잠시 잿빛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탄차 안에 큰 폭을 차지하고 누운 토끼를 가리켰다.
“차, 차라리 이 신인류를 두고 가면 아, 안 될까요? 2인이 최대인데 시, 시동이 걸리더라도 아, 앞으로 잘못 가면…….”
“지랄. 누가 누굴 놓고 가? 한 번 시동 걸리면 알아서 다 가게 돼 있어! 잔말 말고 시동이나 계속 걸어!”
제드 놈이 입을 다물고 다시 좌악 좌악 모터 줄을 잡아당겼다.
이예주는 차를 밀기 위해 끙끙대며 또 한 번 힘을 줬다.
으으으윽! 이를 악문 탓에 이 사이로 까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검푸른 멍으로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목에 굵은 핏대가 섰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릿속이 혼몽해질 정도로 힘을 준 것이 영 그른 짓은 아니었던가.
끼이익―
미세하지만 차체가 조금씩 움직여 경사로로 진입했다.
내리막길도 아닌, 오르막길을 밀어 올리려니 벌써부터 앞이 막막했다.
그래도 이예주는 멈추지 않고 제드의 시동에 맞춰 두 손에 힘을 줬다.
허옇게 드러난 그녀의 이마 위로 송글송글 솟은 땀방울들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이예주 홀로 용을 쓰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칠 때였다.
누군가 탄차에서 훌쩍 내려 그녀의 옆에 두 손을 척 올리고 섰다.
“뭐야. 왜? 왜 내려?”
“같이 밀어여.”
“됐어! 몸도 잘 못 가누면서. 다시 타!”
“그렇게 누나 혼자 하다간 동굴 다 무너져도 계속 이 자리일 거예여.”
다시 타라는 그녀의 말에 조롱이가 새침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이예주는 굳이 토를 달았다.
그녀의 눈에 담긴 빛이 번거로움과 짜증이 아닌 걱정이라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챈 조롱이가 애써 웃었다.
“혼자 미는 것보다는 둘이 미는 게 더 낫잖아여. 그만 실랑이 하구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힘 줘여. 알았져?”
조롱이는 침착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그녀는 목 끝까지 여러 말들이 치올랐지만, 차마 더 내뱉지 못하고 그것들을 꿀꺽 삼켰다.
이것저것 따지기엔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
조롱이가 구령을 외쳤다. ‘셋’에 맞춰 이예주는 부드득 어금니를 꽉 깨물고 힘을 줘 탄차를 밀었다.
“으으윽!”
억눌린 신음 소리가 다물린 이 사이로 튀어나옴과 동시에 ‘쿠궁, 쿠구구구’ 하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차체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예주와 조롱이의 힘에 떠밀린 광차가 오르막길 위에 완전히 올라탔다.
이제 힘을 별로 주지 않아도 차체는 경사로를 무리 없이 쑥쑥 올라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차를 미는 제 손과 조롱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새에 조롱이의 콧등을 타고 구슬땀들이 뚝뚝 떨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이예주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순탄히 밀리는 차체를 따라 올라갔다.
조롱이가 무슨 짓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은 이상, 꿈쩍도 하지 않던 무거운 광차가 오르막길에서 이렇게 쉬이 밀릴 리가 없었다.
“누나! 힘들어여! 농땡이 피우지 말고 힘 줘여!”
희한하다는 눈길로 저를 바라보는 이예주를 귀신같이 알아챈 조롱이가 끄응, 신음하며 냅다 소리쳤다.
“어! 어어. 미안!”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가 그제야 광차를 미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좌악― 좌아악―!
제드가 계속해서 광차 안에서 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의 힘을 받은 차체의 속도가 탄력을 받은 듯이 점점 빨라졌다.
쾅!
또다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불기운이 뱀의 아가리처럼 입을 쩌억 벌리고 방금 전에 이예주가 있던 경사로 진입 부분을 화르륵 덮쳤다.
그녀와 조롱이는 간발의 차로 그보다 더 높은 길에 다다른 참이었다.
불길이 닿을 듯 말 듯 하자 조롱이가 옆에서 으윽, 한 번 더 짧은 신음을 토해 냈다.
그와 함께 비탈길을 오르는 차의 속도가 현저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예주가 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조롱이에겐 이럴 만한 힘이 없는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빨라진 광차의 속도를 따라가기 급급해 더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이예주와 조롱이는 두 다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휙휙 뛰기에 이르렀다.
콰앙―! 또 한 번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그저 천장에서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천장 한 부분이 와르르 무너졌다.
동굴이 무너지려 하는 전초전이었다. 이예주가 피웠던 불씨가 이제는 집채만 한 괴물이 되어 뒷머리에 닿을 듯 말 듯 바짝 쫓아왔다.
망할, 망할! 이예주는 끊임없이 욕을 내뱉으며 뛰었다.
쿠구구구궁. 지진으로 인해 자꾸 다리가 풀렸다.
그녀가 ‘아직도 멀었냐!’ 하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거리려던 때, 기적처럼 ‘부르르릉!’ 하고 모터가 힘차게 울었다.
“레, 레이디! 레이디! 시, 시동이 걸렸어요! 시, 시동이요!”
제드가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예주는 그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조롱이에게로 휙 고개를 돌렸다.
“헉, 헉. 조롱아! 빨리 올라타!”
“누나가 먼저 타여!”
조롱이가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이예주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말 좀 들어, 진짜! 빨리 타라! 응?!”
“허흑, 누나. 저, 저 다리 힘 풀려서 혼자 못 올라타여. 누나가 먼저 타서 저 끌어 올려 줘야 돼여!”
조롱이가 기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목소리로 애원하듯 읊조렸다.
그의 말에 이예주는 짧은 순간 그대로 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지 고민했다.
“아, 빨리여! 빨리! 다리 풀려여! 다리 풀려여!”
고민은 조롱이의 재촉으로 인해 바로 무산됐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에 목이 따끔따끔 죄었다. 한계였다. 그것은 조롱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하, 씨. 이예주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 광차의 모서리를 부여잡고 힘껏 도약했다.
앞으로 엎어져 머리부터 광차 안에 처박은 그녀는 후드를 잡고 무식하게 끌어 대는 제드의 도움 덕분에 빠르게 광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다리가 안에 닿자마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여전히 차체 뒤에서 달리고 있는 조롱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조롱아! 잡아!”
황조롱이는 제게로 뻗어진 인간 여자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그는 흘끗 시선을 내려 제 쪽에 위치한 탄차의 뒷바퀴를 바라보았다.
덜컥덜컥. 오랜 시간 이용하지 않아 군데군데 이가 빠진 레일 위에 닿을 때마다 바퀴 하나가 위태롭게 덜컹거렸다.
차에서 내려 인간 여자와 함께 차를 밀기 시작할 때부터 알아챈 사실이었다.
“뭐해, 조롱아! 얼른 잡으라니까!”
인간 여자가 손을 두어 번 힘주어 흔들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던 황조롱이의 황금색 동공이 조금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인간 여자의 몸에서부터 시야가 깜빡 죽을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눈이 멀 만큼 아름답고 찬란한 빛이었다. 황조롱이가 탄성을 내질렀다.
“하…… 정말이네…….”
“왜 그래, 조롱아. 뭐가? 손은 안 잡고 대체 뭐 하는 거야!”
“정말…… 정말 누나한테 빛이 나여. 태양처럼 밝고 환하게…….”
주인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계집, 제 능력을 발휘해서 도망칠 때마다 몸에서 빛이 나거나 주위에 빛 더미를 만들더군.
그 말이 맞았다.
어떤 식으로 빛이 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인간 여자의 몸이 정말 별처럼 반짝거렸다.
“빛? 뜬금없이 빛은 무슨…….”
이해가 가지 않는 조롱이의 말을 되물을 때쯤, 불현듯 안구를 찌르는 환한 빛에 이예주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조롱이의 뒤에 강한 빛을 쏟아 내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까 전 버리고 왔던 ‘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