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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앤 매드 (144)화 (145/319)

이상한 놈, 저는 뭘 해도 살 수 있으면서 뭘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지? 

그녀는 제드가 정말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도망간 철문 쪽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예주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강아지가 갇혀 있는 우리 앞으로 다가갔다. 

“누나.”

조롱이가 제드의 도움 없이 비척비척 이예주를 따라왔다. 

그녀는 마지막 신인류가 갇힌 쇠창살의 자물쇠에 열쇠를 쑤셔 넣었다. 

쩔컥, 자물쇠는 역시나 손쉽게 열렸고 이예주는 그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와들와들 떨고 있는 강아지를 꺼냈다. 

공교롭게도 봉구를 닮은 하얀색이었다. 

비록 새하얗고 털이 풍성했던 봉구와는 달리, 이곳저곳 때가 타 지저분한 행색이었지만. 

이예주는 등을 돌려 조롱이의 면전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뱉는데 이상하게 목이 콱 메었다. 

제 스스로도 너무 어처구니없는 변명 같았기 때문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짓만 골라 멋대로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 고작 어쩔 수 없었다 뿐이니, 조롱이로선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날까. 

조롱이가 당신 때문에, 빌어먹을 당신 때문에 죽게 생겼다고 욕을 하고 화를 내도 아무 말 못할 처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다 꺼내 줬는데. 얘 혼자만 이 무서운 곳에 두고 갈 순 없잖아.”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허겁지겁 이예주의 품에 달라붙었다. 

본디 눈처럼 하얬지만 오랜 옥 생활로 가맣게 기름때가 엉긴 강아지를 내려다보던 그녀의 눈가가 불현듯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도저히 조롱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롱이는 짧은 시간 동안 침묵했다. 

그는 이내 한숨을 한 번 포옥 내쉬고 말을 건넸다. 

이게 다 누나 때문이라고, 왜 무모한 짓을 했냐고 억하심정을 감추지 않고 쏟아 낼 줄로만 알았는데, 그가 건넨 말은 생각보다 퍽 다정했다.

“……미안해할 거 하나도 없어여. 누나가 그렇게 안 했으면 다 죽었을 테니까.”

“…….”

“고마워여. 우리를 살려 줘서 고마워여, 예주 누나.”

이예주는 예상하던 것과는 현저히 다른 조롱이의 말에 퍼뜩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조롱이가 이예주의 짐을 덜어 주려는 듯, 그녀를 향해 여전히 어색하고 뻣뻣한 손을 뻗었다. 

강아지를 넘기라는 뜻이었다. 

이예주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순순히 강아지를 넘겼다. 

조롱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이젠 우리 도망가여.”

“…….”

“이제 우리가 도망갈 차례예여.”

이예주는 ‘그러마.’ 하고 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구렁이와 바다거북, 코끼리 이후로 철문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정말 탈출을 하고자 했다면 그들을 뒤따라 미친 듯이 달음박질쳐서 입구인 철문을 지나쳤어야 했다. 

“으윽! 망할! 모조리 잡아다가 뜨거운 기름에 팔팔 끓여 죽일 것들! 꺼져! 꺼지라고!”

용병대장의 악에 치받은 목소리가 석굴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예주와 제드, 조롱이의 시선이 그쪽으로 휙 돌아갔다. 

도구를 쓰는 인간, 그것도 체격 좋은 성인 남자 셋이 미친 듯이 휘두른 칼질에 어느덧 박쥐와 쥐들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그들의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기절하거나 부상을 입은 동료가 속출하자 박쥐들과 쥐들이 점점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도망을 치는 게 보였다. 

핏발이 드글드글 선 채 연달아 “죽인다! 모조리 잡아 죽인다!” 하고 외치는 용병대장의 고함에 제드가 바들바들 몸을 떨어 댔다.

“이, 이제 어, 어떡해요? 이, 이제 어떡하죠, 레이디?”

“승강기로 나가는 길 말고 여기 또 밖으로 이어진 길 없어?”

“예, 예?”

“저 갈림길 있잖아, 레일도 양쪽으로 다 이어져 있고. 계속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이예주는 우리가 끝나는 곳, 깊숙한 동굴 끝에 위치한 양 갈림길을 손가락질하며 제드에게 물었다. 

제드는 그녀의 닦달에 ‘어, 어…….’ 하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어렵사리 답을 내놓았다.

“바,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럼 저쪽 길로……!”

“그, 그렇지만 거, 걸어선 절대 못 나가요!”

“뭐? 왜!”

“지, 지하 700미터인데 어, 어떻게 걸어서 나가요. 도, 도망가다가 자, 잡힐 거예요.” 

이예주를 도와준답시고 쫓아온 것이 후회라도 되는 건지 제드가 원망 어린 기색을 띠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그, 그리고 이쪽은 구석구석 거, 검은 안개를 가둬 둔 나무 상자를 마, 많이 쌓아 뒀을 텐데. 이, 이런 등불을 가지고서는 저, 절대로 못 가요, 절대로. 다, 다 터져요. 다 터져서 도, 동굴이 무너질 거라고요오!”

그는 훌쩍거리더니 이내 이예주가 아까 떠넘기다시피 맡겼던 등불을 내팽개치듯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집어 던지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꼼짝 없이 개죽음당할 것이 걱정되어 바닥에 닿을 때쯤에는 살살 내려놓는 게 눈에 보였다. 

그 뒤 녀석은 대놓고 이예주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흐, 흑…… 그러니까, 그, 그러니까 드, 등불은 가지고 오지 말자고 했는데. 말자고 했는데, 흑.”

“그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면서, 넌 왜 이쪽 방에 길이 또 있다고 안내한 건데?”

“……여, 여기에라도 수, 숨어 있다가 나가려고 그랬죠!”

이예주의 짜증에 제드는 역모 죄라도 뒤집어쓴 사람처럼 더없이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다. 

하, 그녀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억누르지 않고 고스란히 내뱉으며 제드가 바닥에 내려놓은 등불을 들어 올렸다. 

그 몸짓이 지금껏 다루던 것과 현저히 다르게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녀 또한 당장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짧은 사이 두개골이 빠개지도록 팽팽 머리를 돌리던 이예주가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방법은…….”

“잡아! 신인류들이 절대로 승강기를 타고 도망가지 못하게 당장 잡아!”

그때, 그녀의 말허리를 싹둑 잘라 먹고 바락바락 악다구니를 쓰는 용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셋의 시선이 다시 놈에게로 돌아갔다. 

대부분 쓰러지거나 도망쳤는지 이제 용병대장 놈들의 주위에 살아 꿈틀대는 박쥐와 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용병대장은 여전히 박쥐가 있다는 양 허공에서 살풍경한 칼춤을 추고 있는 멍청한 제 수하들에게 고함질렀다.

안 돼.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앞서 나갔다. 

어떻게 풀어 준 애들인데. 어떻게 도망치게 한 애들인데. 

승강기를 타고 도망치기도 전에 도로 잡혀 오게 할 수 없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저 망할 놈들을 저지하지. 그녀는 대책을 고안했다. 

그러나 용병대장의 말을 듣고 뒤로 돌아서는 수하 한 명을 보자 입이 먼저 움직여 버렸다.

“야!”

이예주는 황급히 사슬 딸린 수갑 찬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우렁차게도 소리를 내지른 후였다.

“가, 가지 말고 이리 와.”

놈들이 곧바로 뒤돌아 어린것들의 뒤를 쫓을지도 모른다는 압박이 극심했던 탓일까.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헛소리를 잘도 지껄여 댔다. 

가지 말고 이리 오라는 그녀의 말에 용병대장과 그 뒤의 수하들이 얼굴을 와작 구겼다. 

놈들은 별 해괴한 것을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놈들은 도망친 짐승 새끼들을 뒤쫓아라. 저 미친년은 나 혼자 상대해도 충분할 것 같으니…….”

“야!”

용병대장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이예주가 다시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흐익! 레, 레이디 대체 왜 그래요!”

제드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그녀를 타박했다. 

그녀는 마른침을 연이어 삼키며 제드와 조롱이가 뒷목 잡고 넘어질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너……! 너 혼자선 나 못 상대할걸? 너 우리 납치할 때도 무서워서 찌질하게 네 친구들 잔뜩 데려왔잖아. 그런데 그 따까리 두 명마저 없으면 어떡하려고?”

“저, 저런……!”

“왜! 왜! 무섭냐? 무서워?”

이예주의 말에 용병대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그녀를 노려보는 그의 핏발 선 눈은 금방이라도 팍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놈이 거센 콧김을 씩씩거렸다.

꼭 독이 잔뜩 오른 복어 같네. 이예주가 그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할 때쯤, 용병대장이 칼을 들고 섬뜩하게 이를 갈았다.

그녀의 몸뚱이를 금방이라도 도륙 낼 듯 날카로운 칼날을 빛내며 놈이 빠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따갑도록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이예주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대, 대장! 신인류들은 어, 어떻게 할까요? 뒤쫓을까요?”

“그것들을 잡기 전에 저 계집년부터 육시를 해서 젓갈 먼저 담구고!”

망했네. 그녀의 목을 조를 때까지도 빙글빙글 웃던 놈이 정말로 독이 오를 대로 올랐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되묻는 수하들조차 뿌리치고 훅훅 다가왔다. 

희번덕한 눈깔 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철문 근처에서 머뭇거리던 우락부락한 남자 두 명도 결국 확답 없는 제 대장의 뒤를 따라왔다. 

일단 녀석을 도발하는 데 성공한 것 같긴 한데, 과연 이걸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이예주는 알 수 없었다. 

제드가 혹한기에 벌거벗고 서 있는 사람처럼 와들와들 떨며 물었다.

“이, 이제 어째요? 이, 이제 어쩌냐고요, 레이디!”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예주가 초연하게 대꾸했다. 

“예, 예? 그, 그게 무슨 소린데요?”

“내가 살던 곳의 이순신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야.”

“자, 장군요? 그, 그게 무슨 소린데요? 타, 탈출하는 마, 마법 주문이에요?”

“마법 주문은 개뿔! 닥치고 도망치란 소리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빨리 앞서서 안내해!”

놈들이 쿵쿵 넓은 보폭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이예주와 제드, 조롱이는 그에 맞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온몸에 퍼진 마비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닌지 조롱이의 걸음걸이가 한없이 어색하고 느렸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초인적인 힘이 발현되는 것인지 다 죽어 가던 제드가 그런 조롱이를 거의 질질 끌고 가며 꽁지 빠지게 뛰었다.

“제드 도련님!”

불현듯 용병대장이 이예주보다 앞서 도망을 치고 있던 제드를 쩌렁쩌렁하게 호명했다.

“족장님이 제드 도련님을 당장 잡아 방에 처넣으라고 하실 때도 저는 설마설마했습니다. 어떻게 도와줄 이가 없어 저 계집을 도와 거사를 그르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요!”

흐이익! 용병대장의 말에 제드는 퍼드득 어깨를 떨었다. 그의 눈엔 순전히 공포밖에 담기지 않았다. 

세 명의 커다란 덩치들은 마치 사냥 몰이를 하듯 쫙 펼쳐 서서 다가왔다. 

어느덧 일행은 양 갈림길까지 완전히 몰렸다. 

그녀와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용병대장이 휙휙 위협스럽게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발칙한 계집. 족장님이 나무통에 처박아 바다에 던지라 했을 때 곧바로 죽였어야 했는데!”

“…….”

“왜 말이 없지? 아까 이리 오라던 그 패기는 어디 간 거냐? 그새 겁에 질려 오줌이라도 지린 것은 아니겠지?”

용병대장이 조롱하자 그의 수하들도 덩달아 낄낄거렸다. 

여전히 답이 없는 이예주를 보며 웃던 놈이 갑자기 낯빛을 굳히고 음험하게 뇌까렸다.

“왜 답이 없느냐고! 그새 겁에 질렸냐고 물었다.”

이예주는 침묵했다. 

용병대장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놈의 크고 두터운 손이 목을 조르고 조롱이를 자신에게서 마구 앗아 갈 것만 같았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몸이 덜덜 떨려 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놈들에게 그녀가 들고 있던 등불을 훅훅 흔들며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

하지만 저도 느낄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용병대장이 모를 리 없었다. 

놈은 하등 위협 될 것 없는 등불을 바라보다 샐쭉 웃었다.

“보셨죠, 제드 도련님?”

용병대장이 다시 제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드 도련님께서 도와준답시고 풀어 준 계집이 얼마나 하찮고 볼품없는지요. 이 계집이 저를 도와주면 금은보화라도 준답디까?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뭐, 검은 파편인지 빨강 파편인지가 부귀영화라도 준다고?”

“……레, 레, 레이디는 그, 그런 말 한 적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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