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이는 불그죽죽한 이예주의 목덜미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팔을 억지로 쳐들었다.
간신히 이예주의 목 근처에 손이 닿았지만 차마 처참한 상흔을 차마 건들지 못하고 근처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어느덧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짙은 고동색으로 푹 젖어 있었다.
이윽고 조롱이의 팔이 주인의 의지를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동시에 그의 고개도 바닥을 향했다. 힘없이 처진 조롱이의 두 어깨가 간헐적으로 떨렸다.
그가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이예주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보야, 네 목도 만만치 않거든?”
그녀는 제 목을 만지지 못한 조롱이 대신 불쑥 손을 뻗어 조롱이의 하얀 목에 난 붉은 자국을 어루만졌다.
다행히도 큰 상처는 아니었는지, 질금질금 새어 나오던 피는 그새 굳어 목 주변에 흉한 피딱지를 만들었다.
바늘을 우악스럽게도 쑤셔 넣어 그 부위만 유독 부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예주는 괜히 울컥한 마음에 눈가가 시큰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꾹 참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이깟 상처, 나가서 네 주인한테 치료해 달라고 떼쓰면 금방 없어지니까 신경 쓰지 마. 알았지?”
“…….”
“그러니까 걱정 말고…….”
끼기기기기, 기기기긱―
그때였다.
손톱을 잔뜩 세워 철판을 내리긋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고막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이예주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가까스로 조롱이를 부축한 채 균형을 잡고 서 있던 제드가 새파래진 얼굴로 소리쳤다.
“흐, 흐에엑! 저, 저기! 저, 저기 봐요!”
경악과 공포에 가득 찬 제드의 눈초리를 따라 그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껏 전혀 상상치 못한 장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힘껏 휘두른 이예주의 강철 주먹에 맞고 쓰러진 눈족 장로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활짝 열린 문 사이에 있던 장로의 배가 기괴하게 부풀어 올랐다.
얼마 되지 않아 여자가 걸치고 있던 두꺼운 모포를 헤치고 그곳에서 두 개의 거무튀튀한 팔이 쑤욱 튀어나왔다.
끼에에엑! 제드가 돌고래보다 더한 목소리로 비명 질렀다.
끼기기긱, 기기, 기기기긱―
장로 쪽에서 다시 괴기한 짐승 울음소리가 튀어나와 제드의 비명과 한데 어우러졌다.
저 여자의 팔은 저기 머리 위로 들린 채 잘 붙어 있는데. 대체 왜 여자의 배가 있는 부분에서 한 쌍의 팔이 또 튀어나온 거지?
이예주가 멍하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때쯤, 여자의 옷자락을 헤치고 나온 거무튀튀한 팔 중 하나가 쑤욱 길어졌다.
인간의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길어진 그것이 젖혀져 있던 철문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이예주는 유명한 만화에 나왔던 고무고무 열매 따위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팔이 천장으로부터 매달린 두꺼운 밧줄 끝을 잡아, 미친 듯이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대앵―
어디선가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탄광 전체에 속속히 퍼졌다.
대앵, 댕 댕―
“저, 저게……!”
“도망가야 돼여!”
문득 조롱이가 날카롭게 외쳤다.
“저거 위에 있는 인간들에게 연결되어 있는 밧줄이에여! 곧 인간들이 내려올 거예여!”
“저건 대체…….”
“궁금한 건 나중에 나가서 해결하구 일단 도망부터 가여, 누나!”
다급히 외치는 조롱이의 말에 이예주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제드 너, 조롱이 부축해서 데리고 먼저 나가.”
“헤, 헤엑! 제, 제가 부, 부축이요? 그, 그리고 저길 어떻게……!”
이예주는 그때까지 미동 없이 널브러져 있던 토끼 신인류의 팔을 잡아끌고 힘겹게 들어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또 다른 신인류고 뭐고 내팽개치고 조롱이만 데리고 후딱 도망가고 싶었지만, 머리 위에 튀어나와 있는 회색 토끼 귀를 보니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돌았지. 완전히 돌았어. 제 몸 하나도 간수 못하는 주제에 누구까지 데리고 탈출이래.
그렇지만 핏발이 그득 선 눈으로 내 자식들을 내놓으라며 울부짖던 그레이 부인이 자꾸만 눈앞에서 가시지 않았다.
이예주로선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
“으으!”
변기 위에서 변비로 고통받을 때보다 더한 힘을 주면서 이예주가 어렵사리 산쵸인지 칸쵸인지 모를 토끼 신인류를 제 등 위에 엎었다.
조롱이처럼 제 의지로 어느 정도 몸에 힘을 주고 있으면 좀 더 수월할 텐데. 토끼는 정신을 완전히 놓고 있어서 납덩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무거웠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녀가 완전한 성인이 아닌 조롱이 또래로 보인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비루하기 그지없는 체력마저 모두 탕진한 이예주에게는 그것조차 다행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으어어어!”
간신히 신인류를 등에 걸친 이예주는 장기까지 토해 낼 기세로 온몸에 힘을 주어 바들바들 하체를 일으켰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흥건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중심을 잡지 못해 잠시 휘청거리던 그녀가 가까스로 등 위의 무게에 익숙해 졌을 때에도, 제드는 여전히 조롱이와 어깨동무한 채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다.
“헉헉…… 빨리 안 나가?! 내가 먼저 조롱이 데리고 나갈 테니까 네가 얘 업고 뒤에 나올래?!”
“아, 아니요! 나, 나가요! 나갈게요!”
이예주가 벌컥 화를 내고 나서야 제드는 조롱이를 데리고 움찔움찔 문 쪽으로 움직였다.
댕, 대앵― 댕.
눈족 장로의 배 속에서 튀어나온 거무튀튀하게 썩은 기다란 두 팔이 여전히 따로 놀며 밧줄을 흔들어 댔다.
여자가 통로에 대자로 뻗은 탓에 문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여자의 하체를 타고 넘어가야 했다.
배에서 튀어나온 두 팔을 건드려 자극하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찹쌀떡보다 더 하얗게 질린 제드가 흐으, 신음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조롱이의 어깨를 끌어안고, 또 다른 한 팔로는 철문의 경첩 부분을 답삭 움켜쥐었다.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본인만 먼저 여자의 몸 위를 넘었다.
제 다리를 먼저 뺀 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조롱이를 들어 옮기려는 계획 같았다.
처음 내디딘 발은 문제없이 여자를 넘어 그녀의 발끝이 있는 반대편에 도착했다.
하지만 쩍 벌린 다리를 오므리기 위해 다음 발을 내디딜 무렵, 그만 눈족 장로의 썩은 팔에 신발 끝이 스치고 말았다.
끼기기기이이익―!
그 감촉을 예민하게 알아챈 팔이 끔찍한 울음과 함께 문을 잡고 있던 손을 제드에게로 휘둘렀다.
“흐에에에엑!”
제드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며 여자의 위에서 왼발, 오른발 가릴 것 없이 미친 듯이 발길질을 했다.
퍽퍽, 퍽.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일방적인 구타라고 믿을 정도로 그의 발은 가차 없었다.
끄흐흐흑! 눈물 콧물 질질 짜는 제드에 의해 여자의 배에서부터 뻗어져 나왔던 두 팔이 모두 짓밟혔다.
‘댕, 대앵’ 하고 시끄럽게 울리던 커다란 종소리가 뚝 끊겼다.
시체의 그것처럼 시꺼먼 두 팔은 다 썩어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는지 제드의 유약한 발길질에 괴상한 모양새로 푹 꺾여 바닥에 늘어졌다.
더 이상의 미동은 없었다. 흉측했던 등장과는 달리 허무하기 그지없는 결말이었다.
“그만! 그만하고 나가여! 그만하라구여!”
“흐이익!”
참다못한 조롱이가 성질을 내지 않았더라면, 그날 제드 놈은 곤죽이 될 때까지 여자의 몸을 걷어찼을 것이다.
제드는 조롱이의 고함에 다시 정신을 차렸으나, 훌쩍임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힘겹게 제 몸에 기대고 있는 조롱이를 질질 끌고 여자의 몸 위를 마저 건넜다.
“누나! 뭐 해여! 빨리 나와여!”
조롱이가 신인류를 힘겹게 둘러업은 채 아직 방 안에 남아 있는 이예주에게 소리 질렀다.
“알았어!”
그녀는 서둘러 바닥에 대충 내려놓았던 등불을 들어 올렸다.
이 정신 없는 와중에도 등불을 잊지 않고 챙기는 제 모습이 놀라웠다.
이예주는 황급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디 있지? 어디 있어? 초조한 마음에 그녀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종소리를 듣고 지상 위에 있는 인간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얼른 찾아 도망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매번 신인류들을 데리고 이 방에서 일을 치렀다면 분명 방 안에 하나쯤은 있을 터인데.
침대와 탁자,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음침한 방에서 그것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제드에게서 들었던 검은 안개를 담은 유리병을 찾기 위해 샅샅이 눈알을 굴려 대던 이예주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나무 상자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정교한 무늬들이 새겨진 궤짝이었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둘러 그쪽으로 다가갔다.
앞서 누가 먼저 손을 댄 건지 궤짝의 뚜껑이 열려져 있었다.
그 안에 그녀가 찾던 것이 검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작은 유리병들 안에 고이 담겨 있었다.
검은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사막에서 람이 모래로 괴물을 터뜨렸을 때였던가.
뭉게구름이나 솜사탕 뭉친 것과 같은 귀여운 생김새와는 달리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할 만큼 새카만 뭉텅이가 마치 살아 있는 굼벵이처럼 굼질굼질 움직였었다.
유리병에 담긴 검은 안개는 소량이었다.
하지만 폭 깊은 궤짝 안에 수십 개의 유리병이 쌓여 있는 것을 내려다보자니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예주는 들고 있던 등불을 일부러 탁자가 아닌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불에 닿으면 터진다니, 가지고 가기엔 좀 위험할 것 같은데…….
금방이라도 폭발할까 봐 마른침을 연달아 삼켰다.
이것을 들고 가는 것은 답 없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확실히 위험하고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람과 그레이같이 아이들을 빼앗긴 신인류들에게 가장 필요한 증거가 아닐까.
이것을 얻기 위해 신인류들을 납치하여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또 그렇게 얻은 것을 되팔아 다시 신인류를 억압하기 위한 약물을 사들이는 데에 사용했으니.
모든 흑막의 중심에 있는 가장 실질적인 것. 이예주는 등불과 궤짝 안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자살 수단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최고의 무기이자 물증이었다.
“예주 누나! 뭐 해여! 누가 오는 것 같아여! 빨리 나와여!”
“마, 맞아요! 레, 레이디, 얼른 나오시는 게……!”
그때 문밖에서 조롱이와 제드가 번갈아 가며 이예주를 종용했다.
누가 온다는 조롱이의 말에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손을 뻗어 유리병들을 한 주먹 움켜쥐었다.
되는 대로 움켜쥔 탓에 유리병들이 손안에서 딸그락딸그락 서로 부딪치며 헛돌았다.
이예주는 그저 다급한 손길로 제가 입고 있는 로브 안주머니에 그것들을 쑤셔 넣었다.
가슴이 닿는 부분이 불룩 튀어나와 딱딱했다. 하지만 불편을 호소할 틈도 없이 내려놓았던 등불을 잡았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토끼 신인류를 고쳐 업은 후, 경쟁하듯 떽떽거리는 두 사람에게로 뛰어갔다.
아니, 사실 마음은 뛰고 싶었으나,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로 엉금엉금 걸었을 뿐이다.
문에 도착하니 눈족 장로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여자의 배에서 솟아나와 식물의 꺾인 줄기처럼 축 늘어져 있는 팔을 피해 몸뚱이를 넘어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역겹고 혐오스러워서가 아니라, 신인류를 업은 채 다리를 높이 드는 일 자체가 엄청난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별수 없이 그녀는 그냥 발에 차이는 모든 것들을 밟고 지나가기로 결정했다.
여자의 일부분일 배에서 뻗어 나온 팔을 밟았을 때, 발아래서 ‘뿌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그보다 여자의 배를 밟고 올라섰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신인류까지 더해진 이예주의 무게에 여자가 무의식중에도 ‘욱!’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조롱이의 피를 쭉쭉 빨아 댔던 쳐 죽여도 시원찮을 여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이예주가 신인류를 둘러메고 헐레벌떡 철문 밖으로 나왔을 때, 멀찍이서 동굴 벽을 타고 지금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메아리치며 들려왔다.
끼릭, 끼리릭. 끼리리릭― 엘리베이터의 낡은 도르래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승강기 타고 누가 오는 것 같아.”
그녀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청각이 인간에 비해 뛰어난 황조롱이는 한참 전에 눈치채고 있었는지 이미 얼굴이 흙빛이었다.
“승강기 타고 도로 나가는 건 글렀고…… 이제 어떡하지?”
이예주는 암담한 눈으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동굴 벽을 바라보았다.
천장까지 틈 하나 없이 막힌 벽을 보니 인위적으로 막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가 정말 탄광의 끝인 것이다.
그녀는 차례차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나온 오른쪽 방은 징그럽기 짝이 없는 눈족 장로가 쓰러진 채 문을 막고 있었고, 조롱이가 끌려나왔던 왼쪽 방은 사슬과 자물쇠로 꽁꽁 잠겨져 있었다.
끊겨진 레일, 더 이상 뚫려 있지 않은 탄광굴의 마지막. 점점 커지는 음산한 승강기 소리.
“……어떡하지?”
이예주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속삭이듯 혼잣말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문’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어떡하지, 이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