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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앤 매드 (138)화 (139/319)

왜 진작 여자가 제 몸보다 배는 큰 옷에 몸을 숨기고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 애초에 짐작하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여자는 히카톤처럼 몸에 축 늘어져 있는 시체들을 달은 채로도 잘만 살아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이건, 이건 말도…….

끼기, 끼기기긱…… 

여자의 몸통에서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철을 긁는 끔찍한 소리가 작게 흩어져 나왔다.

“어, 어떻게…….”

“왜 그렇게 나를 괴물 보듯이 보니?”

여자는 파들파들 떠는 조롱이가 전혀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영문 모를 얼굴로 물었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그렇지? 응? 나는 괴물이 아니야! 이렇게 너랑 마주 보고 대화도 하고 똑바로 내 이야기도 설명해 주고 있잖니? 나는 괴물이 아니야. 나는 그냥 행복하기만을 바라던 어리석은 인간이었지, 절대로 괴물이 아니라고!”

“괴, 괴물이라고 한 적 없어여…….”

“그런데 지금 그렇게 바라보고 있잖아! 네 주인이 나를 괴물로 만들고 있어! 네 주인의 검은 안개가 나를 점점 괴물로 만들고 있다고! 나는 괴물이 아닌데! 이딴 역겨운 것들을 달고 다니면서……! 아니야. 역겹다니. 아니야, 우리 아이가 역겹다니. 이런 생각 하면 안 돼, 안 돼.”

여자는 제 옆구리로부터 삐죽 튀어나와 있는 어린아이를 쓰다듬으며 신들린 듯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죽은 지 오래됐는지 삐쩍 마른 상태로, 생기 있는 여자의 피부와 대조될 만큼 시퍼렇게 썩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쓰다듬는 바람에 여자가 들고 있던 두꺼운 옷이 스르륵 내려가면서, 반대편 옆구리 쪽에서 상체를 추욱 늘어뜨린 채 달려 있는 또 다른 시체를 가렸다. 

여자는 애지중지 제 왼쪽에 달린 것을 쓰다듬다가 홱 소리가 날 만큼 거칠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네가 도와줘야 해, 예쁜 아이야. 네 주인이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까. 검은 파편을 먹어 치울 순 없으니까 그의 힘이 깃든 너희라도 먹어 치워야지! 그래야 내가 괴물이 되지 않고 살지 않겠니? 네 주인이 싸 놓은 똥은 너희들이 치울 줄 알아야지! 응?”

“내, 내가 왜…….”

조롱이는 이를 아래위로 딱딱 부딪치면서도 용케 반항했다. 

그에 눈이 허옇게 뒤집히도록 조롱이를 노려보던 여자의 얼굴이 일순 또 다른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멍해졌다.

“……왜라니? 너는 날 이해해야 하잖아.”

“…….”

“너도…… 네 누나를 잡아먹고 살아남았으면서…… 왜 나를 괴물 보듯 바라보는 거야?”

“…….”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네? ……말했잖아. 나는 좀 먼 과거까지 볼 수 있는 눈족이라고. 남편을 잡아먹고 그 힘이 더 커졌다면 믿을 수 있겠니? 엘로?”

여자의 마지막 말에 그때까지만 해도 벌벌벌 떨던 조롱이의 몸이 딱 굳었다. 

여자는 완전히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웃는 얼굴로 테이블 쪽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 있던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고 무언가를 찾듯 내용물을 뒤적거렸다. 

찰그락, 찰그락. 

마치 유리병들끼리 부딪치는 것처럼 청랑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여자가 노래 부르듯 가볍게 말했다.

“순진하고 예쁜 아가야. 너는 비록 이 상황이 억울할지 모르겠으나, 너로 인해 한 인간이 나락까지 떨어지지 않은 것을 죽기 전까지 잊지 말렴……. 네 피로 하여금 나는 앞으로 더 오랫동안 괴물이 되지 않고 인간으로 있을 테고, 또 인간답게 죽을 수도 있게 될 거야……. 그리고 나를 너무 원망하지도 말려무나. 나도 너처럼 예쁜 아이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어쩌겠니. 내 망할 놈의 남편 새끼가 너처럼 작고 예쁜 아이를 원하는 것을……. 이 새끼는 죽은 후에도 인간성이라고는 지극히 없는 돼지 새끼라서 때에 맞춰 먹이를 던져 주지 않으면 미쳐서 소리를 꽥꽥 질러 대거든.”

“……으으.”

조롱이는 여자의 눈치를 보며 다리에 힘을 주려고 노력했다. 

도망가야 했다. 얼른 주인님께로 달려가 이 사실을 모두 알려야 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안간힘을 썼다. 움찔움찔, 다리가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마비가 도통 풀리지 않았다. 

으으. 조롱이가 억울함과 조급한 심정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뒤돌아선 상태이면서도 마치 그 모습을 다 보고 있는 것처럼, 여자가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놀리듯 말을 걸었다.

“움직이기 힘들지? 꽤 힘들 거야. 간만에 멍청한 다리족 놈들이 제대로 된 약물을 만들었더구나. 어때? 인간이 된 기분은?”

“뭐…… 뭐라구여?”

“약을 지속적으로 맞으면 거의 인간과 같이 변한다던데. 네 주인, 검은 파편이 잘못을 저지른 신인류들에게 내리던 무서운 벌에서 착안한 거라 하더구나……. 아. 찾았네.”

여자가 테이블에서 뒤로 돌아선 후 다시 조롱이 쪽으로 다가오며 히죽 웃었다. 

그 얼굴이 방금 막 관에서 튀어나온 시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음습하고 기괴했다.

“이제 막 인간이 된 셈이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 신생아와 마찬가지일 테니까……. 네 주인은 잘못을 저지른 신인류들에게 제 힘을 쏟아부어 완전히 인간으로 만들고 사막으로 버린다지……? 그것과 같은 원리야. 이 마을의 말더듬이 족장 놈은 그 약물로 마을 안의 모든 신인류를 지배하겠다며 다리족에게서 그것들을 사들이고 있던데…… 뭐, 눈족과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말이야.”

여자의 손에 날카로운 바늘과 연결되어 있는 길쭉하고 투명한 관이 들려 있었다. 

뭐에 쓰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신상에 이로울 게 하나도 없을 거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조롱이는 있는 힘껏 몸을 뒤틀었다. 마비가 조금 풀렸는지 다리가 움찔거렸지만 성에 차지 않을 만큼 미미한 변화였다. 

그는 이번에는 온 힘을 손에 쏟아부었다. 

손을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쪽으로 변신시켜 사슬을 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나와 있는 시간 동안 네가 황조롱이로 변할 일은 없단다. 약 기운이 완전히 없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하거든……. 또 변할 수 있다고 해 봤자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니? 여기에 너를 구해 줄 만한 이는 아무도 없는걸……. 네가 그토록 충성하는 네 주인님도 말이야…….”

여자가 조용히 조롱이의 그러한 노력을 지켜보다가 관을 들고 그 앞에 쭈그려 앉은 채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유달리 길쭉한 바늘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울컥 두려움이 턱 끝까지 치솟은 조롱이가 최대한 몸에 힘을 줬지만 여자의 말이 맞았다. 

몸이 동물로 변하질 않았다. 

제 본질인 자유롭게 날개를 퍼덕이는 황조롱이로 변할 수 없었다. 

절망감이 몰려왔다. 

여자가 들고 있던 바늘을 세워 그의 목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조금 아플 거란다.”

“하, 하지 마여! 하지 말라구!”

목에 따끔하는 감각이 일자 조롱이가 미친 듯이 허둥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여자가 그런 조롱이의 사정을 봐줄리 만무했다. 

“악! 하지 마! 하지 마!”

“쉬…… 가만히 있으렴. 움직이면 더 다친단 말이야, 얘야…….”

여자의 어투가 다시 원래의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돌아왔다. 

두꺼운 바늘이 그의 목 깊숙한 곳까지 쑤시고 들어왔다. 

조롱이의 황금색 눈동자가 격렬한 감정을 노출시키며 짙은 고동색으로 변했다. 

“그래도 내 암울했던 과거를 들어 준 너에 대한 배려로 네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피를 빨아서 눈앞이 핑 돌게 해 줄게. 내 남편이 네게 손을 댈 때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말이야…….”

마치 커다란 배려를 베풀 듯 조롱이의 결 좋은 머릿결을 한 번 쓰다듬은 여자가 이내 바늘과 연결돼 있는 관의 끝에 입을 가져다 대고 훅 흡입했다. 

조롱이의 목에서부터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와 관을 통해 여자의 입속으로 쭈욱 사라졌다.

“아아아악!”

피가 빨리는 섬뜩한 기분에 조롱이가 발작적으로 찢어지는 괴성을 질렀다. 

한참을 관에 달라붙어 피를 빨던 여자가 잠시 입을 떼고, 오래된 가뭄 속에 비 한 방울을 맛본 사람처럼 감격에 겨운 얼굴로 소리쳤다. 

“하…… 하! 살 것 같아! 하악!”

여자가 다시 허겁지겁 입속으로 관 끝을 욱여넣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금 양껏 피를 들이마시려던 바로 그때였다.

쿵쿵. 

들리는 소음이라고는 조롱이의 비명과 여자의 목울대가 꼴깍꼴깍하는 소리뿐이던 동굴 방 안에, 긴장감을 깨부수듯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소한의 인간성도 집어치운 채 본능만이 남은 듯하던 여자의 몸짓이 멈췄다. 

방금 전까지 꿈속을 걷는 것처럼 몽롱하게 지껄이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민한 속도로 여자가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문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누군가 철문을 두들이고 있는 것이다. 

쿵쿵쿵. 

안쪽에서 답이 없자 바깥쪽에서 다시 한 번 세게 철문을 두드렸다. 

여자는 대답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한 번 더 크게 철문이 울리자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누구야!”

“자, 장로님! 저, 접니다. 조, 조, 족장이요!”

그녀의 유희를 방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신인류들의 연결책인 동쪽 대륙의 족장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 그, 그게…… 그…… 거, 검은 안개에 관련된 일로 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 장로님.”

검은 안개? 

아까까지만 해도 별말 없이 사라진 족장이 왜 이제 와서 뜬금없이 검은 안개에 대해 논하려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족장이 아닌 것인가? 

문밖의 인물에 대해 잠깐 의심이 들었지만 여자는 이내 그 의심을 쉬이 접었다. 

족장 같은 말더듬이 병신의 말투는 쉽게 따라 할 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은 안개는 내가 섭섭하지 않을 만큼…… 두둑하게 챙겨 준다고 했잖아……!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 다 끝나고 얘기해. 지금 바쁘니까…….”

“거, 검은 파편이 지, 지금 도, 동쪽 대륙에 와 있다는 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장로님. 그, 그에 관해서 그, 급하게 전해 드릴 말이 있는데요……!”

족장의 말 따위 들은 체도 않고 무시하려던 눈족 장로는, 다급하게 덧붙여 온 말에 행위를 멈췄다. 

“……뭐? 검은 파편이…… 이곳에 와 있어?” 

철문을 바라보며 멍청하게 족장의 말을 되풀이하던 장로가 곧이어 미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돼. 안 되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데 이대로 검은 파편에게 잡혀서 끔찍하게 소멸당할 수는 없지……. 안 되고말고…….”

눈족 장로는 들고 있던 조롱이의 피가 잔뜩 묻은 관을 스윽 내려놓고 정신없이 중얼거리며 철문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관 끝에서 조롱이의 피가 질금질금 새어 나왔지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철컥, 끼리릭― 

‘족장과 용병대장의 목소리가 아니면 절대로 열지 말 것’이란 규칙을 가진 철문 잠금장치가 장로의 손에 의해 직접 풀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자물쇠를 옆으로 밀어 젖힌 눈족 장로가 이윽고 묵직한 철문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검은 파편이 이곳에 와 있…….”

퍼억!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다급하게 묻던 눈족 장로의 광대 위로 엄청난 힘을 실은 강철 주먹이 적중했다. 

“억!”

장로가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으며 휘청거릴 때쯤,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단단한 주먹이 그녀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거세게 후려쳤다. 

“죽어!”

퍼억―! 

눈족 장로는 더 이상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문턱에 그대로 엎어졌다. 

바닥에 처박힌 그 머리통에서 조롱이와 연결된 관이 찔끔찔끔 뱉던 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피가 죽죽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짤그락, 쩔걱. 이예주는 쇠사슬을 감은 아릿하고 시린 주먹을 살살 털며 그 광경을 무감각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온 힘을 실어 날렸으니 못해도 코뼈가 부러졌거나 광대가 내려앉았을 것이다. 

아래로 체중을 실어 내리친 머리야 두말할 것도 없이 깨졌을 테고. 

걱정하던 유혈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딱히 사람을 죽을 만큼 쳤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을 신경 쓰기엔 시선을 훅 잡아끄는 무언가가 발치에서 발발거렸다. 

그것이 대자로 쓰러진 장로의 몸 위를 타고 그녀의 발을 스쳐 지나갔다. 

철문 안으로 눈에 익은 흰색 강아지가 헥헥, 혀를 내밀고 뛰어 들어간다. 봉구였다. 봉구가 차도로 뛰어가고 있었다. 

봉구는 죽었는데. 봉구가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 정신없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레, 레이디. 레이디. 멀찍이서 누가 그녀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이예주의 눈은 홀린 듯이 봉구의 뒤꽁무니에 못 박혀 있었다. 

봉구가 뛰어간다. 

빠앙― 

자동차가 아슬아슬하게 봉구를 치기 바로 직전, 이예주는 간신히 그 흰색 털 뭉치를 들어 올려 품에 한가득 끌어안았다.

“구했어!”

이예주가 다 쉬어 터져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어느 사이 그녀의 두 팔 안에 있던 하얀색 강아지의 환영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부드러운 갈색 머리와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앳된 얼굴이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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