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34)화 (135/319)

그전까지는 태평하게 조롱이의 말을 경청하던 눈족 여자가 이번에는 얼굴을 미세하게 일그러뜨렸다. 

인간들은 하나같이 죽음에 민감하고 삶에 집착했다. 

이 여자도 아닌 척하지만 결국엔 무슨 짓이든 저질러서라도 살고 싶어 하는 인간들 중 하나라고 조롱이는 생각했다. 

여자가 애써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다시 얼굴을 풀었다.

“얘야…… 아가야. 너는 동물이고, 또 검은 파편의 힘을 빌려 인간의 거죽만 뒤집어쓴 채 인간인 척을 하느라 잘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모두 인간답게 살아가고, 또 인간답게 죽는 것을 소원한단다……. 피식자인 네게 이해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우린 시간이 없어서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동쪽 대륙까지 온 거야…….”

“글쎄여. 같은 종족까지 먹어 치우는 주제에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하다니, 별로 공감되지 않아여. 이해하구 싶지도 않구여. 당신이 동물이라고 칭한 우리 신인류들도 그런 짓을 하는 종들은 드물거든여.”

조롱이는 여자의 말에 나직이 대꾸했다. 

진심이었다. 그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인간답게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 그것이 다른 이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롱이의 말이 여자를 제대로 자극한 건지, 여자가 돌연 쓰고 있던 흐리멍덩한 가면을 파사삭 부수며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얼굴로 윽박질렀다.

“네가 뭘 알아! 너 따위 게 뭘 아냐고!”

“흐엑!”

조롱이는 눈 깜짝할 새 변한 여자에게 짧은 비명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고, 실상은 몸을 조금 움찔거리기만 할 뿐,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괴물같이 붉으락푸르락 변한 여자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조롱이를 괴롭히기 위해 악마같이 웃던 이예주보다 훨씬 무서웠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내겐 시간이 없단 말이야! 우린 그냥 인간답게 죽고 싶을 뿐이야! 검은 파편이 우리에게 망할 검은 안개를 먹인 탓에 모두 엉망이 되었어! 엉망이 되었다고!”

여자는 악을 쓰며 조롱이 앞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화를 내는 내내 그녀는 허공에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두껍고 펑퍼짐한 옷 아래의 제 아랫배 쪽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치며 자해했다. 

조롱이의 황금색 눈동자가 두려움에 물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간족이 아닌 멍청한 인간들은 검은 안개를 가진 것이 축복이라고들 말하지! 망할, 창자를 씹어 먹고 눈깔을 뽑아 똥구멍에 처넣을 것들! 이건 저주야! 난 괴물이 되기 싫어! 내가,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내가! 내가아아악―!”

다시 조롱이의 앞에 멈춰 선 여자가 그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며 히스테릭한 고성을 질러 댔다. 

조롱이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버벅거렸다. 

아아아악―! 

숨이 막힐 때까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던 여자와 조롱이의 눈이 일순 마주쳤다. 

여자가 한껏 벌리고 있던 입을 텁 다물었다. 

그러고 나서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순식간에 낯빛을 달리해 조곤조곤 말했다.

“……오, 아가야. 겁에 질린 눈이구나. 나는…… 나는 너를 무섭게 대하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예쁜 아이야…….”

조롱이는 제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얘야, 내게도 너만큼 예쁜 남자아이가 있었단다. 너처럼 너무나 천사 같고 예쁜 아이 말이야…….”

여자는 그새 기분이 괜찮아져 뜬금없이 묻지도 않은 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 미친 여자야. 황조롱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완전히 돌은 여자라고. 

황조롱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꿈을 꾸듯 몽롱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지껄여 대었다.

“나는 어렸을 적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아이였어……. 검은 파편에게 쫓겨 인간들이 조금씩 조금씩 파멸해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를 만큼 순진했지. 내 꿈은 자상한 남편을 만나 너처럼 예쁘게 생긴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는 것이었으니까…… 얼마나 멍청했는지 조금 감이 오니?”

“…….”

조롱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당연히 감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는 저 여자가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단순히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자고 피식자 앞에서 과거 이야기를 꺼낼 만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끔찍하기만 했어! 과거를 보는 힘이 조금 강하다는 이유로 나는 눈족 장로인 늙은 남자에게 팔려 가듯 시집을 가야 했어…… 그 늙은이가 더러운 손으로 나를 만져 댈 땐 정말 죽고만 싶었지.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늙고 노망난 남편을 만나야 하는 걸까! 내가 왜!”

“…….” 

“그렇지만…… 그래도 아이가 생기니까 마음이 조금은 달라지더구나. 아이를 가진 엄마란 원래 다 그래……. 내 아이에게는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는 관계없는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었지. 그래서 역겹고 징그럽던 남편을 좋게 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단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자기 세뇌를 했어. 운 좋게 눈족 내부에서 위치가 높은 남편을 만나, 예쁜 아이를 가진 채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나는 꿈을 이룬 거라고 말이야…….”

“…….”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지.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내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느릿느릿 말을 잇던 여자가 대뜸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또다시 목소리를 무시무시하게 바꿨다. 

그 급작스러운 변화에 조롱이가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아이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 아이가 말을 배우고 미래를 본다고 알렸을 때, 난 정말 까무러치게 기뻤단다! 내 아이가 미래를 보는 아이라니! 비록 완전한 미래를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까운 제 미래를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특하고 예뻤는지 몰라!”

“…….”

“말문이 트인 아이가 처음 제 미래를 보았다고 내게 말해 주었을 때,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아이를 안고 남편에게 정신없이 달려갔어. 달려가서 아이 아빠에게 조잘조잘 떠들어 대었지. 여보! 우리 아이가 미래를 봤대요! 우리 아이가 미래를 보는 아이예요!”

여자는 마치 당시 상황에 처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허공에다 대고 떠들어 댔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꼭 그 앞에 그녀의 남편이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은 또 다른 가면을 바꿔 쓰는 것처럼 금방 와르르 구겨졌다.

“남편이 내 작고 귀여운 아이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할 때만 해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이에게 아이를 내주었단다. 그도 나처럼 이렇게 기뻐하는 줄로만 알았거든. 우리 아이를 안고 기특해해 줄 거라고, 칭찬을 해 줄 거라고……. 그치만 그 늙고 추악한 새끼는 내 아이를 낚아채듯 넘겨받더니 나보고 방에서 나가라고 했지. 나는 의아했어. 왜 우리 아이를 칭찬해 주지는 않고 내게 방을 나가라고 하는 걸까? 왜?”

“…….”

“남편은 내가 나가지 않자 사람까지 불러서 내쫓더구나. 나는 너무 불안했어. 엄마의 직감이었지. 아이 아빤데, 우리가 같이 낳은 아이의 아빤데, 꼭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할 것만 같은 거야. 나는 미친 듯이 반항했지만 나를 붙잡는 사람들을 뿌리칠 수는 없었어. 그런데 그때, 방 안에서 우리 아이의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렸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 나를 붙잡는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물고 뜯어 버리면서 남편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지. 그리고 그 미친 새끼는 침대 위에서 내 아이를……! 흐흑…….”

“…….”

“아아악! 그 자리에서 비명 지르는 그 아이를, 그 예쁜 아이를 산 채로 씹어 먹고 있던 거야! 우리 아이의 빛나는 별빛 같은 눈이 사라졌어! 으흐흐…… 개만도 못한 새끼. 으아아악!”

여자가 다시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손을 들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부득, 부드득. 머리칼이 뿌리째 뽑히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조롱이는 시시각각 변하는 여자의 태도에 말 한 마디 내뱉지 못하고 와들와들 떨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제 머리를 잡아 뽑던 여자는, 두 손아귀 안에 자신의 머리카락들이 가득 쥐어졌을 때쯤에서야 자해를 멈췄다. 

양손 가득 축축 늘어진 머리카락 줄기들을 잡고 여자는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지…… 왜, 왜 그랬느냐고. 왜…… 왜 우리 아이…… 아니, 내 아이를 잡아먹었느냐고. 그러니까 그 새끼가 하는 말이, 집안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구나. 미래를 보는 눈족을 먹어야 미래를 보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입에서 내 아이의 피를 질질 흘리면서, 아이는 죽은 게 아니라 자신과 하나가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나, 뭐래나……?”

“…….”

“하, 하하…… 나는 또 바보같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지 뭐야. 나는 우리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니, 언젠가 남편의 몸에서 아이가 되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아이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나는 초조했지. 정말로, 정말로 남편을 죽여 버리고 싶었어. 그렇지만 그러면 우리 아이가 돌아오지 못할까 봐 죽이지도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던 나날들이었지…….”

“…….”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 어디서 자꾸만 우리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일어나서 방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울음소리만 들릴 뿐, 아이는 보이지 않더구나……. 나는 환청을 들은 건가 싶어 다시 침대 위에 누웠지. 그러자 내 아이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듯 선명하게 들리는 거야!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서 옆을 돌아보았지. 늙은 돼지 같은 남편이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어. 그리고 남편에게서 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났지. 아이가 돌아온 거야! 내 예쁜 아이가 돌아온 거야!”

“…….”

“나는 정신없이 남편의 옷을 걷었어. 그런데 아무리 그 더러운 몸뚱아리를 보아도 아이는 없었어. 미칠 것 같았어……. 그런데 있잖아, 자세히 들어 보니까 그놈의 배 속에서 우리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 엄마…… 나는 그래서…….”

여자의 눈은 어느덧 짠 물에 푹 젖어 있었다. 

그 눈은 다시 처음의 혼몽하고 초점 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나는 그래서 이빨로 남편의 배를 물어뜯고, 손톱으로 그이의 살가죽을 찢어 내서 우리 아이를 꺼내려 들었지…….”

우웁. 조롱이는 속에서부터 역류하는 토기를 간신히 눌러 참았다. 

여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과거는 역겹다 못해 혐오스러웠다. 

“이빨로 물어뜯는 도중에 입속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찝찌름한 피…… 물컹한 내장…… 억센 살들을 많이도 씹어 삼켰어……. 그때는 우리 아이를 꺼내야 한다는 생각에 입에 들어온 것이라곤 뭐든 우걱우걱 삼켰지만…… 아무리 남편의 배 속을 손으로 휘젓고 물어뜯어도…… 우리 아이는 없었지……. 결국 아이는 찾지 못하고 내가, 내가 남편을 잡아먹었어. 나는 남편을 잡아먹고 장로의 탈을 뒤집어쓴 거야…….”

장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마친 후, 여자는 입이 찢어져라 헤벌쭉 웃었다. 

몽롱해 보이기만 하던 그녀의 눈가에 이제는 광기라고 정확하게 명명 붙일 수 있는 기승(氣勝)이 들끓었다. 

“나는 끝까지 아이를 찾지 못했어. 남편, 그 빌어먹을 자식의 몸뚱이를 처먹고 더 먼 과거를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면서 장로가 되었지만, 난 그런 걸 원하지 않아! 난 그저 내 아이를 만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하, 하…… 그런데, 그런데.”

“…….”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건지, 며칠 후에 우리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어! 마침내 내 아이를 다시 찾게 된 거야! 그 늙고 추레한 남편의 몸뚱이를 뜯어 먹은 탓에 쓸모없는 그놈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지만, 우리 아이를 만났으니 그걸로 된 거야. 그걸로 된 거지! 그렇지?”

“…….”

“……너처럼 예쁘고 착한 우리 아이를 보여 줄까? 응? 내 사랑스러운 아이를 볼래? 보여 줄까?”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조롱이에게 속삭였다. 

조롱이는 두려움에 허옇게 질린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여자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앞에 떡 버티고 선 뒤, 실실 웃으며 자신의 옷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애앵, 애앵. 

그럴 리가 없는데, 어디선가 애가 칭얼대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여자는 두려움에 떠는 조롱이의 시선을 즐기듯 제 몸통보다 크고 두꺼운 옷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조롱이가 눈을 돌릴 새도 없이, 모포 아래 감춰져 있던 여자의 몸뚱이가 뤼미에르 빛 아래 드러났다. 

“……으아악!” 

마주 본 여자의 나체에 조롱이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이라곤 고작 움찔거리며 몸을 뒤로 젖힌 것뿐이었다. 

이전부터 말을 듣지 않은 몸이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는지, 여자의 하반신은 모두 나체였다. 

그러나 조롱이가 놀란 것은 여자가 나체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자가 기괴하게 들뜬 얼굴로 제 오른쪽 옆구리에서 혹처럼 튀어나와 덜렁거리는 그것을 쓰다듬었다.

“보여? 우리 아가야……. 지금은 잠들었지만, 곧 피 냄새를 맡으면 깨어나서 보채겠지…….”

“…….”

“이건 좀 혐오스럽겠지만 그래도 인사해. 내가 먹은 내 남편이야……. 이 더러운 새끼는 죽고 나서도 네 또래의 남자아이들에게 환장을 한단다……. 쯧쯧, 불쌍한 것. 이 미친 새끼가 비역질을 해 대는 정신병만 없었더라도, 이 자리는 네가 아닌 저 계집이 차지했을 텐데…….”

“흐, 흐욱!”

여자가 짧게 혀를 차며 옆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토끼 신인류를 가리켰다. 

조롱이는 작은 입을 벌려 우웩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는 이제 단순히 두려움에 질린 것을 떠나 호흡이 컥컥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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