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별로 묻고 싶지 않았다.
제드의 가족사가 어떤지 관심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이예주는 타인의 일이나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었다.
타인의 일을 그녀에게 전달해 줄 친구도 없었지만, 다른 이의 사정까지 신경 쓰기엔 제 코가 석 자였다.
그럼에도 묻게 된 것은 순전히 ‘황조롱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다.
황조롱이.
그 망할 새는 이예주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가지게 된 여행 동료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그, 그건…….”
그녀가 끝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는지 제드가 다시금 굳어진 낯빛으로 웅얼거렸다.
아까는 벽난로를 미느라 물러섰지만, 이번에 이예주는 그가 난처하든 말든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더 물러날 곳도 없었다.
“말해 줘. 황조롱이 각시가 누구인지, 그리고 조롱이가 네 집에 내렸다는 저주는 또 뭔지.”
그녀의 굳은 표정에 제드는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하, 하, 할아버지는 워, 원래부터 조, 족장은 아니었어요.”
한참 후 힘겹게 입을 연 제드의 말에 이예주는 바로 반문했다.
“족장이 아니었다고? 그럼 뭐였는데?”
“……저, 저도 잘은 몰라요. 그, 그냥 하, 할아버지의 형제들이 사, 살아 있었을 적 하, 할아버지와 싸울 때 들었던 소리예요.”
싸웠다기보다는 그 형제들이 벙어리인 할아버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던 것이지만.
제드는 굳이 레이디에게 그런 속사정까지 말하지 않았다.
“마, 말이나 더듬고 하, 하등 쓸모도 없어서 쪼, 쫓겨난 병신 새끼를 데려다가 조, 족장 자리에 앉혀 줬으니 고, 고마워 해야 한다고……. 하, 할아버지가 화, 황조롱이 각시를 위해 벼, 별관을 짓는다고 했을 때 마, 많이 반대했었거든요. 겨, 결국엔 하, 할아버지의 형제들이 모두 주, 죽고 나서 뜻대로 벼, 별관을 지으셨지만…….”
“…….”
“제, 제가 태어나기 전에, 그, 그러니까 신인류와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은 아, 아주 오래전에는 마,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이,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사, 살았대요. 도, 동쪽 대륙은 원래 시, 신인류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구요.”
그건 조롱이에게 익히 들은 이야기로, 이예주도 대충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신인류들이 모여 살던 까마득한 옛날의 동쪽 대륙, 그리고 그곳을 침범하여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
포로로 잡혀 노동을 착취당했던 신인류들과, 오랫동안 족쇄에 묶여 있던 탓에 발목에 흉이 남은 조롱이.
어느 하나 좋게 들을 수 없을 만큼 암울하기 짝이 없는 과거사였다.
“하, 할아버지는 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내려와 시, 신인류들이 사는 마을과 꽤 가까운 곳에서 호, 혼자 살았었대요. 그, 그러던 어느 날 화, 황조롱이 신인류를 만나서 겨, 결혼을 하게 되고, 가, 같이 살았는데…….”
“잠깐, 잠깐.”
이예주가 문득 들고 있던 등불을 좌우로 흔들며 제드의 말허리를 잘랐다.
“신인류와 네 할아버지가 결혼을 했다고?”
“예? 예, 예. 그, 그런데요…….”
“신인류랑 인간이 어떻게 결혼을 해? 신인류는 일단 본질이 동물이고…….”
‘각시’라는 단어가 언급되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직접 결혼이라는 말을 들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그걸 다 떠나 어떻게 인간이 신인류랑 결합을 할 수 있어? 그 남자가 분명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하, 할아버지가 어, 어떻게 결혼을 하셨는지 거, 거기까진 저도 잘 몰라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연신 중얼거리는 이예주에게 제드가 소심하게 대답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의기소침한 제드의 반응을 보고 이내 다시 등불을 두어 번 까딱이며 말을 잇기를 종용했다.
“알았어. 일단 네 할아버지랑 황조롱이 신인류가 결혼을 했다고 치고. 그래서? 저주는 어떻게 된 건데?”
“그, 그게…….”
아까보단 수월했지만 여전히 도르래의 손잡이를 돌리고 있는 탓에 목이 메인 그는 힘겹게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 그러던 어느 날 사, 사람들과 신인류들 사이에서 저,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1차 전쟁은 사, 사람들이 승리했어요. 하, 할아버지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서 마, 마을 족장이 되셨구요…….”
“네 할아버지가 무슨 공을 세웠는데?”
“시, 신인류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지, 지름길을 알아냈다는 것 같아요. 더, 덕분에 신인류들의 마을을 그, 급습하는 데 성공했고, 하, 할아버지가 족장이 되셔서 마, 많은 신인류들이 오랫동안 노, 노예로 살게 되었다고…….”
제드는 신인류가 오랫동안 노예로 살았다고 말하면서 흘끔흘끔 이예주의 눈치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신인류와 친하고, 그를 구한답시고 미친 짓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가 별말을 않자, 그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저, 저주는 아마 시, 신인류와의 2차 전쟁이 이, 일어날 때쯤에 내려진 것 같아요. 저, 정확한 시기는 아, 아버지도 저도 잘 몰라요. 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그, 그때쯤 할아버지가 뜨, 뜬금없이 벙어리가 되셨다고 하, 하셨거든요……. 제, 제가 기억을 하기 전부터 하, 할아버지는 혀가 없었기 때문에 저, 저주에 관한 건 거의 다 하, 할머니의 욕설에서 얻어들은 거예요.”
“…….”
“하, 할머니는 자, 자신이 두 번째 부인이라는 걸 저, 정말 싫어하셨어요. 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화, 황조롱이 계집을 잡아 찌, 찢어 죽여야 한다고 하셨을 정도예요. 그, 그래서 할머니의 유언은 화, 황조롱이 척살이 되었어요. 하, 하…….”
유언이 황조롱이 척살이란 소리를 지껄여 대며 어색한 웃음을 내뱉던 제드는 표정이라곤 하나 없이 정색을 하고 그를 바라보는 이예주와 눈이 마주치고는 황급히 웃음기를 지웠다.
“무, 물론 도, 동쪽 대륙에는 더 이상 화, 황조롱이 신인류가 살지 않아서 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예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 딴에는 싸늘한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기 위해 덧붙인 말이었겠지만, 그녀에겐 전혀 통하지 않은 농담이었다.
제드는 결국 헛소리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저, 전쟁이 끝나고도 그 황조롱이 각시를 계, 계속해서 찾았다고 하셨어요. 저, 전쟁 통에 가, 각시를 잃어버렸지만 조, 족장이 되는 대신 각시를 데리고 살기로 야, 약속했다고 하면서요. 호, 혹시나 화, 황조롱이 각시가 돌아와서 조, 족장 부인 자리를 꿰찰까 봐 불안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형제들은 모, 모의를 해서 마, 마을 안에 살아 있는 화, 황조롱이 신인류를 모두 주, 죽이기로 결정했대요. 모, 모두 죽이기로 한 이유는 시, 신인류들을 노, 노예로 가둬 두긴 했지만 그,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어, 어떤 새가 그 황조롱이 각시인지 일일이 화, 확인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시, 신인류들은 대부분 보, 본래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보, 본래 모습 아시죠? 도, 도, 동물 같은 거…….”
“…….”
“그, 그 2차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하, 할머니는 탄생일을 맞아 누, 눈알이 황금색인 새 한 마리를 자, 잡아먹었다고 그랬어요. 하, 할머니랑 할아버지의 형제들이 화, 황조롱이 신인류에 대해 아는 것은 누, 눈알이 황금색이라는 것뿐인데, 그, 그때 감옥에 있는 화, 황금색 눈알을 가진 새는 고, 곧 죽을 것처럼 고열에 시달리던 어, 어린 황조롱이 새끼밖에 없었대요. 화, 황조롱이 각시는 당연히 없었구요……. 하,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그 황조롱이 새끼를 사, 산 채로 먹고 싶다고 졸랐고 하, 할아버지는 그, 그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데…….”
“…….”
“하, 할머니는 전쟁 통에 화, 황조롱이 각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 그 신인류…… 아, 아니, 어, 어린 황조롱이의 깃털을 뽑아 산 채로 자, 잡아먹었고요. 할아버지도 아마 가, 같이 먹었을 거예요. 그, 근데 시, 신인류들을 잡아 둔 감옥 안에 사, 살아 있는 황조롱이 신인류가 하, 하나 더 있었나 봐요. 그 황조롱이는 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잡아먹힌 화, 황조롱이의 가, 가족이었구요…….”
제드가 여전히 반응 없이 조용한 이예주의 눈치를 보며 음울하게 꿍얼거렸다.
“그, 그래서 2차 신인류와의 전쟁이 일어나고 도, 동시에 우, 우리 가문의 저주도 시작된 거예요…….”
이예주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사실 일부러 침묵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꺼번에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서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차마 열리지 않는 무거운 입을 억지로 열어 착잡하게 말했다.
“저주가…… 어떻게 내려진 건데?”
“노, 노예였던 신인류들 몇몇이 가, 갑자기 족쇄에서 풀려나서 가, 감옥 문을 모두 여, 열어 댔어요. 가, 감옥에 갇혀 있던 신인류들이 마, 마을로 쏟아져 나오면서 2차 전쟁이 시작됐는데요…….”
이예주의 질문에 제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 냈다.
그녀는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까지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듣는데도 입안이 쓸개즙을 한입 베어 문 것처럼 너무나도 썼다.
“그, 그때 조, 족장의 저택으로 화, 황금빛 눈알을 가진 신인류가 찾아온 거예요. 하, 할머니는 그 신인류를 보고 뭐, 뭔가 잘못되었다고 이, 일찌감치 숨어 버렸고, 바, 방에 남은 할아버지만 그 황조롱이 신인류와 마, 맞닥뜨렸는데…….”
“…….”
“히, 히익! 그, 그 신인류가 글쎄 파, 팔 한 쪽만 동물의 발톱으로 벼, 변해 버렸대요. 그 어떤 신인류도 그, 그렇게 변하진 못하거든요. 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도 귀, 귀나 꼬리가 다, 달려 있긴 하지만 그, 그걸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녜요.”
“귀나 꼬리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다고?”
이예주는 사막에서 만났던 포니의 여우 귀나, 그레이의 토끼 귀 따위를 머릿속에 덧그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봐 온 몇몇 신인류들에게 달려 있던 동물의 특징들은, 조롱이의 닭발처럼 딱히 이렇다 할 위협을 가할 만한 것들이 못 되었다.
이예주가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그녀가 자신을 못 미더워한다고 생각했는지 제드는 허겁지겁 소리쳤다.
“저, 정말이에요! 마, 마을 사람들도 시, 신인류와 전쟁을 하기 위해 시, 시간족한테서 그들에 대해 마, 많이 배웠거든요. 지, 지금도 배워요. 마, 마을 지주 아이들은 자라면서 피, 필수적으로 하는 가정교육인걸요.”
“그런 걸 왜 필수적으로 배워?”
“모, 모르겠어요. 저 어렸을 땐 배, 배우지 않았지만, 아,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차, 차기 족장이라고 이것저것 나선 이후부터 배, 배워야 한다고 한 거라서……. 아, 아무튼 그 화, 황조롱이 괴물은 다른 신인류들과 달랐대요. 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한 손을 휘젓는 것도 모자라 그, 그 손으로 하, 할아버지의 혀, 혀, 혀를…….”
제드는 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이예주는 어렴풋이 뒤의 말을 짐작하고 미간을 좁혔다.
입을 잘못 놀려 평화로운 동쪽 대륙 신인류 마을에 전쟁을 가져온 대가로 족장의 혀를 뽑았구나.
평생을 저택 구석에 처박혀 숨어 산 족장은 그렇게 혀가 뽑혀 벙어리가 된 것이다.
“하, 할머니는 숨어서 그, 그 장면을 다 지켜보셨어요. 화, 황조롱이가 하, 할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하고 저, 저주를 내리는 장면까지요.”
“…….”
“그, 그리고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그, 그 이후에는 계속 정신이 까, 깜빡깜빡 나가셨어요. 때때로 화, 황조롱이 괴물이 저, 저택에 나타났다고 괴, 괴성을 지르셔서 그, 그럴 때마다 아부지가 저, 저택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재, 재갈을 물릴 정도였어요……. 저, 정신이 나간 밤마다 황조롱이 괴물이 내, 내 남편과 아들과 소, 손자에게 저주를 내려서 벼, 병신들이 되어 버렸다고. 화, 황조롱이 괴물을 죽여야 한다고요. 아, 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이 다 맞다고 했어요. 우, 우린 저주를 받아서 마, 말을 이렇게 더, 더듬는 거라구요.”
그렇게 길고 긴 저주 이야기가 끝이 났다.
제드는 이예주의 표정은 쉽게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화두에 올릴 만한 말을 찾았다.
그것은 방금 전처럼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변명과도 같았다.
“사, 사실 레, 레이디와 같이 있던 신인류에 대해서 아버지한테 말할 때는 그 괴, 괴물 때문에 레, 레이디가 위험하다는 생각밖엔 아, 안 들었어요. 파, 팔과 손이 막 발톱으로 변하는 무, 무서운 신인류니까……. 게, 게다가 저주를 내리는 괴물이었고 또, 또…… 또…… 아, 아버지가 그 신인류만 잡으면 더, 더 이상 마, 말을 더듬지 않을 거라고 하셔서…….”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침묵하던 이예주가 마침내 제드의 입을 열었다.
“예, 예?”
“너는 그 황조롱이 괴물이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너에게 저주를 내렸다고 생각해?”
제드는 곁눈질로 그녀를 살피며 그걸 묻는 저의를 가늠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레이디의 얼굴은 무표정해 어떠한 낌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과연 그렇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건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건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잠시간 고민하던 그는 이내 포기하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저, 저주를 내린 게 맞아요. 하, 할머니가 그 황조롱이가 저, 저주를 퍼붓는 것을 똑똑히 들으셨다고…….”
“그럼 네 아버지는 2차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말을 더듬지 않았어? 그 황조롱이 괴물이 저주를 내렸다면 그 저주를 내린 시점부터 네 아버지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을 거 아니야.”
이예주의 지적에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건지 제드의 표정이 일순 정지 화면처럼 딱 멈췄다.
도르래를 돌리던 손마저 멈추려 들어서, 그녀는 들고 있는 등불로 그의 손을 가리키며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