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사히 문을 통과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조롱이의 주인 놈이 벌이랍시고 채워 놓은 사슬의 공이 매우 컸다. 빌어먹을.
탁.
등 뒤로 완전히 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예주는 ‘하’ 하고 짧은 한숨을 토해 내며 긴장으로 얼어붙었던 몸을 풀었다.
건물 안은 밖에서 볼 때 예상했던 것처럼 깜깜했다.
다행히 벽에 드문드문 등불이 걸려 있어서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등불과 다음 등불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어 사실 불이 있으나 마나 한 상태였다.
이예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 안으로 더, 더 들어가야 돼요.”
그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잡고 있던 사슬을 놓아주었다.
챠르릉, 철컥. 무거운 사슬이 바닥에 닿자 커다란 소음이 건물 안을 텅텅 울리고 퍼져 나갔다.
제가 사슬을 놓았으면서 제드는 그 소리에 눈에 띄게 어깨를 흠칫거렸다.
방금 전 문 앞의 남자 두 명을 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그의 모습에 이예주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얘 대체 뭐 하는 애일까?
제 아비와 짜고 자신을 엿 먹이려는 건지 아닌지, 이제 정말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얼빠진 얼굴로 어둠이 가라앉아 있는 제드 쪽을 쳐다보던 이예주가 답답한 후드를 벗으며 읊조렸다.
“너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뭐가요?”
제드가 어리벙벙한 얼굴로 물었지만, 이예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착잡해진 얼굴로 제드를 밀치고 먼저 앞서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쩔그럭쩔그럭하는 사슬 소리가 뒤따랐다.
소리가 다른 때보다 큰 것으로 보아, 바닥이 대리석 같은 석재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건물 안에서는 꼭 오랫동안 쓰지 않은 먼지 쌓인 다락방처럼 퀴퀴한 나무 냄새가 났다.
오래 쓰지 않은 곳이라는 추측이 적중했는지, 드문드문 걸린 희미한 등불 아래 아무렇게나 배열된 가구들이 모두 흰 천으로 덮여 음산하게 늘어져 있었다.
꼭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놓은 것처럼 분위기가 스산했다.
다시 한 번 쭉 둘러보니 건물 안은 흰 천이 덮인 정체 모를 것들 때문에 비좁아 보였지만, 딱히 별것 없는 홀이었다.
심지어 2층도 없었다.
밖에서 볼 때는 2층 건물 같았는데 그냥 층을 나눠 창문만 냈을 뿐, 천장까지 휑하니 뚫려 있었다.
홀의 반대편에는 왼쪽 옆으로 꺾어지는 길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쪽에서 어렴풋이 빛이 새어 나왔는데, 가구에 가려져 있어서 그게 방인지 복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예주는 고개가 갸웃거렸다.
이런 곳에 조롱이가 갇혀 있다고?
누군가를 가둬 둔 장소라고 보기엔 내부가 너무나도 고요했다.
감시도 허술했고.
지하 깊숙한 곳에 비밀 장소가 숨겨져 있던 팔족 족장의 저택과는 사뭇 달랐다.
“조롱이가 여기 있다고?”
이예주가 미심쩍은 눈을 하고 묻자, 제드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 아니요. 조, 조금 더 가야 돼요.”
그럼 그렇지.
그녀는 제드의 말을 의심 없이 수긍했다.
검은 파편의 눈을 피해서 신인류들을 팔아먹어야 하는 족장이 이렇게 허술하게 지은 건물에 신인류를 가둬 둘 리 없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저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들어온 건물 안은 괜히 들어왔다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음침하고 습했다.
그녀는 입구 바로 앞을 떡하니 막아선 흰 천으로 덮인 길쭉한 가구―짐작컨대 소파 같았다―를 피해 돌아갔다. 그 뒤를 제드가 바짝 쫓았다.
“여긴…… 뭐 하는 데야? 창고야?”
길도 모르면서 일단은 음산한 가구들을 피해 느릿하게 전진하던 이예주가 그들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운을 뗐다.
“……차, 창고 아니에요. 하, 할아버지가 만드신 벼, 별관이에요.”
“할아버지? 어제 돌아가셨다는 선대 족장?”
그녀가 되물으며 뒤돌아보자 엄마 뒤에 숨은 아이처럼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바싹 따라오던 제드가 고개를 아래위로 빠르게 끄덕였다.
“마, 맞아요. 서, 선대 족장. 우, 우리 할아버지예요.”
“창고로 쓸 것도 아니면서, 우중충하게 천 덮어 놓은 가구들만 가져다 둘 거면 왜 만들어 놓은 거야? ……아, 신인류들 가둬 두려고?”
이예주가 자문자답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비꼬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어느 부분이 제드의 심사를 건드렸는지 그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화를 냈다.
“그, 그런 거 아, 아니에요! 아, 아무리 레이디라도 하, 할아버지를 모욕하지 마세요.”
“모욕은 누가 모욕을 했다고 그래? 얘가 생사람 잡네. 나 고인 모욕할 정도로 경우 없는 애 아니다.”
제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색을 하고 대꾸하자, 그는 금세 마음이 풀려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 그건 그래요. 레, 레이디는 예쁘고 천사 같은 사람이니까…….
“미, 미안해요. 그, 그렇지만 저,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여, 여기 만들기 시작할 때 저, 저도 다 봤거든요. 여, 여기는 하, 할아버지가 가, 각시 살게 하려고 만든 곳이에요.”
“각시? 뭔 각시? 혹시 부인 그런 거 말이야?”
이예주는 뜬금없는 각시 타령에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되물었다.
제드가 방금 전같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럼 여긴 네 할머니를 위해서 지은 곳이라고? 아.”
대체 무슨 가구인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긴 가구와 그것을 덮고 늘어진 천을 밟지 않으려고 왼쪽으로 크게 반원을 빙 돈 그녀는, 순간 훤한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에 갑작스레 빛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미로처럼 들쭉날쭉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구들을 피해 빙빙 돌아가던 그들은, 어느덧 등불이 달린 벽 쪽에 붙은 상황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찡그린 얼굴을 하고 흘끗 제드를 돌아보며 심드렁히 물었다.
“여기 네 할머니 별관이냐고. 왜 말이 없어.”
제드는 고개를 아래로 시무룩하게 떨어뜨렸다.
“아, 아니에요.”
“그럼 뭔데? 각시라며. 혹시 뭐 일부다처제 그런 거야? 그래서 말하기 좀 그래?”
“아, 아뇨. 그, 그런 건 아니고…….”
아 참, 답답하네. 대답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비밀이라고 하든가.
조롱이 같았으면 한 대 쥐어박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예주는 관심 없는 척 발걸음을 돌렸다.
앞서 건물에 들어섰을 때 감으로 느꼈던 모서리가 나왔다.
어느새 돌고 돌아 홀 반대편까지 걸어온 모양이다.
이쪽이 신인류들을 가둬 놓은 곳과 연결되는 거겠지?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는 생각에 그녀의 발걸음이 조급해졌다.
제드가 뒤따라오건 말건 빠르게 모퉁이를 돌려던 그때였다.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계속 어물어물 거리던 제드의 목소리가 뒤에서 그녀의 귓속에 박혔다.
쥐새끼가 찍찍대는 것처럼 속삭이는 어조였다.
그 순간, 환한 빛이 다시 한 번 이예주의 안면에 드리워졌다.
“하, 할아버지가…… 화, 황조롱이 각시를 기, 기다리면서 지은 별관이에요.”
모서리 너머에는 등불 하나만이 외롭게 걸려 있었지만 앞을 분간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밝았다.
신인류들이 갇힌 곳으로 이어지는 문이 존재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길 끝에는 커다란 구식 벽난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뭐?”
이예주가 멈칫했다. 꽤 고급스러운 벽지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의 낡은 벽난로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본능적으로 드는 어떤 생각 때문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녀는 기이한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굳은 얼굴로 서서 중얼거렸다.
“황조롱이 각시……?”
등 뒤에 있던 제드가 잰걸음으로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벽난로 앞에 서서 우물거렸다.
“어…… 이, 이제 여기부터는 더 어두워져요. 아, 앞으로 드, 등불도 없으니까 조심해야 돼요.”
“아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황조롱이라고 한 거 맞지? 그러니까 내가 찾는 조롱이처럼 황조롱이 신인류? 신인류 말한 거 맞지?”
“어, 어…….”
제드는 머뭇거리기만 할 뿐 이예주에게 속 시원히 황조롱이 각시가 누굴 뜻하는 건지 밝히지 않았다.
왜 말을 안 해? 성질 급한 그녀가 제드를 채근했다.
하지만 그는 답답함을 풀어 주는 대신 벽난로의 옆쪽으로 돌아가 봇돌(벽난로 양옆에 세워 아궁이를 지탱하게 하는 돌)을 밀며 끙끙대기 시작했다.
이예주는 벌컥 화를 내었다.
“야! 대답은 않고 뭐 하는 거야!”
“으, 윽! 이, 이거 밀어야 하는데…… 도,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애처롭기 짝이 없는 얼굴로 돌아보며 도와 달란다.
이예주는 기가 막혀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으며 물었다.
“멀쩡한 벽난로를 왜 밀어야 하는데?”
그러자 제드가 그 특유의 기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그래야 괴물…… 아, 아니 레, 레이디의 동료인 시, 신인류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도 이예주가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끙끙대며 벽난로를 옆으로 밀어 댔다.
그러나 종이 인형같이 턱없이 말라빠진 제드의 힘으로 커다란 난로가 옆으로 움직일 리 만무했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벽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데.
뭐야, 이거.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라도 되는 거야? 벽난로 뒤에 꽁꽁 숨겨진 방이라도 있는 거냐고!
“하, 진짜 넌…….”
이예주가 머리를 짜증스럽게 잡아 뜯다가 이내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용을 쓰고 있는 제드의 옆에 가서 섰다.
“비켜 봐.”
그녀의 짧은 명령에 제드가 거친 숨을 씨근덕대며 냉큼 옆으로 물러났다.
이예주는 곧바로 제드가 짚었던 봇돌 위에 손을 얹은 후, 숨을 멈추고 힘을 주었다.
쿠궁.
제드가 밀 때는 꿈쩍도 안 하던 벽난로가 그녀의 손아래에서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를 내더니 조금씩 움직였다.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주며 이예주는 이게 과연 자신이 민망해야 할 일인지, 제드가 민망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으으윽!”
손으로 미는 것도 여의치 않자 그녀는 벽돌에 어깨를 붙이고 온몸을 이용하여 벽난로를 밀었다.
쿠웅, 쿠루룽―
벽난로가 조금씩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벽난로와 벽 사이에 검은 틈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예주는 멍청히 서서 자신이 하는 양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제드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와서 손 좀 보태!”
“예, 예!”
제드가 고함 소리에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다가왔다.
별 도움은 못 될 테지만 그래도 혼자 힘으로 끙끙대는 것보단 둘이 낫다.
제드까지 달라붙어 벽난로를 밀어 대자 차츰차츰 옆으로 밀리던 벽난로가 결국에 ‘쿠루루룽’ 하고 옆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그리고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어두운 틈이 나왔다.
그쯤 그들은 누구 하나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녹초가 되어 헉헉거리고 있었다.
“힘들어…….”
저질스러운 체력 어디 안 간다고, 이예주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제드를 돌아보았다가 더 불평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옆에는 밀치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백지장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별로 한 것도 없이 손만 얹어 줬으면서 왜 저렇게 다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대?
자신보다 더 가녀려 보이는 제드 때문에 이예주는 기분이 나빠졌다.
“야, 여기로 가는 거 맞아?”
그녀의 물음에 제드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여기 뭐 하는 덴데? 계단도 아니고, 길도 아니고. 이상하게 생겼잖아.”
이예주가 한 손으로 벽을 꽉 잡고 몸을 길게 빼 난로 뒤에 나타난 검은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 비해 그 안은 제법 넓었다.
하지만 입구가 좁아 빛이 안쪽까진 닿지 않았기에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 공간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몸을 원상 복귀 한 이예주가 말했다.
“너무 어두워.”
“네, 네. 어, 어두워요. 자, 자칫하면 위험하구요……. 그, 그러니까 여기서부터는 저, 정말 조심해야…… 뭐, 뭐 하시는 거예요, 레이디?”
네 기준에 위험하지 않을 곳이 어디 있겠니. 지네 집인데도 위험하다는데.
이예주는 또다시 위험과 조심을 강조하는 제드의 말을 흘려들으며 뒤로 돌아 등불이 달린 벽 쪽으로 갔다.
유리병 등불 밑까지 다가간 그녀는 끙차, 까치발을 들었다가 여의치 않자 제자리 뛰기를 하여 쇠기둥에 꽂힌 등불의 손잡이를 낚아채었다.
달랑달랑 등불을 흔들며 되돌아오는 이예주를 보고 제드가 기겁했다.
“히, 히익! 드, 등불은 왜 가져오신 거예요, 레이디?”
“난 어둠 공포증 있어. 어두운 거 싫어해.”
이예주가 담담히 대답했다.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어둠을 싫어했다.
어둠 속에 있다 보면 꼭 암경을 걷는 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