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14)화 (115/319)

으레 그렇듯 조롱이와 네가 잘못했니, 내가 잘못했니 옥신각신하던 이예주는 불현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모든 일의 원흉이 떠올라 고개를 돌려 남자를 찾았다.

분명 아까 강철 주먹으로 불량한 어린애들을 혼내 주기 전까지만 해도 자리에 엎어진 채 어리바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다시 돌아본 그 자리에 제드는 보이지 않았다.

“제드여? 그게 누군데여?”

기웃거리며 골목 안을 둘러보는 이예주의 곁에 서며 조롱이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바쁘게 고개를 휘적거리다 곧 골목 안쪽, 햇볕이 들지 않은 어두운 구석에서 잔뜩 몸을 움츠린 채 덜덜 떨고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저기 있다.”

언제 저기까지 기어간 거래. 다 큰 남자가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았지만, 그녀는 내색치 않고 저벅저벅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예주의 뒤를 조롱이가 황금색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졸졸 따라왔다.

“저기, 제드. 괜찮아요? 많이 놀란 것 같은데.”

그녀와 조롱이가 다가가자 안 그래도 볕이 없는 골목 구석, 제드의 앞에 더욱더 짙은 그림자가 졌다. 

꼭 그 그림자가 자신을 잡아먹는 것 같은 느낌에 그의 입에서 ‘흐이익!’ 하고 괴상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 인간은 또 누구에여, 누나? 아까 그놈들과 같은 편인 인간이에여?”

“그런 거 아니야.”

꼴사납게 떨어 대는 제드가 신기한 듯 조롱이가 요쪽 저쪽 고개를 빼 들어 그를 내려다보며 묻자, 이예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은 편이라니. 

제 목 부근에 오는 어린애들한테 맞으면서도 말을 더듬던 제드가 아직도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이렇게 사시나무 떨듯 떠는 것을 보니 한심하면서도 좀 안쓰럽기도 하고.

거북이처럼 몸을 한껏 틀어 말고 있는 제드를 보자니 없던 동정심이 다 생기는 것 같았다.

“저기, 제드. 아까 그 나쁜 놈들 다 갔어요. 어디 다쳤어요? 그래서 못 일어나는 거예요?”

“…….”

“제드?”

“히이익―!”

불러도 미동 없는 제드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를 피해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치는 왜소한 남자로 인해 손이 허공에서 멋쩍게 멈춰 버렸다.

파바바박, 더 갈 데도 없건만 계속해서 엉덩이를 움직여 뒤로 물러나는 제드의 얼굴이 꼭 귀신을 본 것 같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찢어질 것처럼 잔뜩 확장된 그의 동공이 덜덜 떨리는 그의 몸만큼이나 서슴없이 흔들렸다.

중딩들에게 너무 심하게 맞아서 패닉에 빠진 건가? 

발작을 일으키듯 경련하는 제드의 모습에 잠시 갈등하던 이예주는 이내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지를 잃어버린 것처럼 핏발이 서 있는 제드의 눈동자는 자신을 전혀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꼭, 방금 전 기함을 토하며 뛰듯 기듯 도망간 남자애들처럼 끔찍함과 혐오감, 역겨움 등을 가득 담고 있었다.

“괴, 괴, 괴물…….”

제드의 입술이 달싹거리더니 이내 실낱같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무언가를 토해 냈다. 

이예주는 그것이 중딩들과 별다를 바 없이 조롱이를 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러나 말은 같아도, 그것을 내뱉은 제드의 모습은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노란 발톱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가슴팍을 그어 대는 신인류에게 겁먹은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뭐랄까…… 

조금 더 본질적이고 순수하고 적나라한 공포가 제드의 온몸을 잠식한 듯했다.

제드가 어렵사리 쏟아 낸 적대감과 두려움을 그 당사자는 도통 알아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 숙인 조롱이가 제드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되물었다.

“뭐라구여?”

“흐, 흐으! 다, 다, 다가오지 마, 괴물!”

조롱이의 발걸음이, 허공에 멈춘 이예주의 민망한 손처럼 뚝 멈췄다.

“저, 저, 저주를 내리는 황조롱이…….”

“…….”

“파, 팔이 발톱으로 변하는 신인류야. 흐이익!”

제드가 비 맞은 중처럼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불현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조롱이에게 삿대질을 했다. 

초점이 완전히 풀린 채 소리치는 그는 제가 무슨 말을 지껄여 대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 하, 할아버지한테 저, 저주를 내렸어! 우, 우리가 마, 마, 말을 더듬도록 저, 저주를 내렸다고!”

“저주? 저주를 내리긴 무슨! 그리구 내가 왜 괴물이에여!”

울컥한 조롱이가 자신을 변호하려고 들었으나, 제드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조롱이가 눈을 부라리자마자 별안간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골목 밖으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저주! 저주를 내린 괴물이야! 흐아아악!”

푸다다닥,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폼이 엊저녁 람에게서 한 소리 들었다고 미친 듯이 도망치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맞을 때는 그렇게 굼뜨던 남자가 사라지는 건 어찌나 쏜살같은지, 이예주는 어이가 없어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치잇, 도망이나 치구. 저 인간들은 하나같이 겁쟁이에여.”

옆에서 조롱이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조롱이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쟤 뭐야? 왜 또 도망을 가고 그래? 우리가 뭘 했다고.”

“또여? 언제 만난 적 있어여?”

“응, 어제. 어제도 도망가고 오늘도 도망갔어. 네 말마따나 찌질이 자식 맞는 것 같아.”

“찌질……? 찌질이가 뭔데여?”

“…….”

이예주는 대답하지 않고 오른팔에 둘둘 감은 사슬을 풀었다. 

고작 콩알만 한 중딩 놈들이 분명한데, 어찌나 긴장을 하고 세게 감았는지 오른팔이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릿저릿하게 시려 왔다.

짤그락짤그락 시끄러운 쇳소리가 연달아 들리자 조롱이가 사슬을 왜 그딴 식으로 감고 있냐며, 별 괴상한 인간을 다 보겠다는 듯이 이예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건 내 강철 주먹이야. 

그녀는 조롱이에게 주먹의 비밀에 대해 털어놓을까 하다가 곧바로 관두었다. 

인간도 아닌 새한테까지 무시당한다면 제 처지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롱이에게 당해 왔던 무시와 설움을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던 이예주는 문득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껄여 대던 제드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옆쪽을 흘끗 곁눈질하다가, 황금색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지금껏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보름달 같은 커다란 동공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예주는 힐끔 조롱이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조롱이의 얼굴은 여전히 퍽 어려 보였다. 

아무리 봐도 열네 살, 많이 쳐 줘도 열다섯 살의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남자애 같은데 말이지.

그런데 이 동쪽 대륙, 해안 마을로 오고 나서부터 자꾸만 기시감이 들 법한 말들을 자주 듣는 것 같았다.

“왜 눈치 보는 것처럼 힐끔거리고 그래여?”

“너…….”

이예주는 티끌 하나 없는 조롱이의 황금색 동공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사막에서 람과 조롱이 일행이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타인임을 통렬하게 깨달은 후로부터는, 마음을 터놓고 그들에 관한 것을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조롱이의 과거사를 얼핏얼핏 주워들은 이후부터는, 그가 예전에 알던 조롱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롱이와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망설였다. 

그런 이예주를 채근하며 말문을 트게 만든 인물은 다름 아닌 조롱이 본인이었다.

“왜여. 또 뭐 불만 있어여?”

“너…… 진짜 네가 저주를 내린 거야?”

이예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마을 족장의 장례 행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떠들어 대었다. 

신인류에게서 저주를 받았다고.

또 잡혀 온 들쥐가 조롱이를 보며 저주를 내린 무서운 신인류니 어쩌니 떠들어 댔고, 이번에는 마을의 아이들과 제드가 조롱이를 마치 괴물 보듯이 취급하곤 도망쳤다.

그들 입에서 나온 말들 중 하나같이 일치하는 단어가 있었다.

“혹시 제드가 말 더듬는 게, 네가 내린 저주랑 관련 있는 거야?”

“에엑?! 저어주우?!”

조롱이가 저주 소리에 펄쩍 뛰며 이예주에게 소리쳤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주를 내려여!”

좁은 골목 안으로 조롱이가 꽥꽥 지른 목소리가 우렁차게 퍼져 나갔다. 

정말로 억울해 죽겠다는 듯한 얼굴에,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님 말지,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그럼 소리 안 지르게 생겼어여?!”

“아니, 하나같이 널 보고 자꾸 저주를 내린 신인류니 어쩌니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씨잉, 정말 저주나 내리고 그런 소리나 들었음 억울하지나 않지이! 저주를 내릴 힘도 없지만, 저는 그렇게 후손의 후손까지 저주가 이어지게 하는 치사한 짓은 안 해여!”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폭주하는 조롱이의 말을 서둘러 막으며 이예주는 황급히 앞장서서 골목 입구로 걸어갔다. 

이 이상 상대했다간 또 눈을 뒤집고 닭발로 저를 긁어 댈지도 모를 만큼 조롱이가 흥분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씨잉, 같이 가여! 앞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하는 이예주의 손목에서 사슬이 늘어져 질질 끌리자, 가까스로 그걸 잡아채며 조롱이가 투덜거렸다.

“정말 저주 안 내렸어여.”

그녀의 옆에 바짝 붙어서며 조롱이가 다시 한 번 내뱉었다.

“알았어.”

“정말여. 그냥, 그냥…… 히잉, 그냥 죗값을 치르게 해 준 것뿐이라구여…….”

알았다는 이예주의 대답에도 미덥지 않은지 조롱이가 시무룩하게 덧붙였다.

그녀는 가마가 보기 좋게 자리 잡은 조롱이의 황갈색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말을 잃었다. 

말을 잃었다기보다는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이 쪼그마한 새가 인간을 상대로, 그것도 제드의 가족을 상대로 무언가 죗값을 치르게 했단다.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닌 기간 동안 함께했다. 

조롱이와 같이 지내고 여러 환장할 상황을 겪으며 이예주가 판단한 조롱이는, 냉정할 때는 소름이 다 끼칠 만큼 냉정해지더라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만한 성정은 못 되었다.

자신에게 하는 행동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을 증오하면서도, 조롱이는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곤 인간인 자신을 딱히 멸시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롱이는 지금껏 자신을 많이 걱정해 주었다. 

인간을 미워하면서도 또 마음만은 인간보다 여린 새였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분노했으면 이 마음 여린 새의 입에서 죗값을 치르게 했다는 말이 나올까. 

또, 그 작은 발톱으로 치르게 한 죗값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마을 인간들이 하나같이 조롱이를 보고 저주를 내린 괴물이라며 손가락질을 해 대는 것일까.

조롱이의 조막만 한 머리를 내려다보는 이예주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울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웃는 상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 표정을 짓는 데 능숙하지 못한 아이처럼 조금 이상한 얼굴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이예주가 골목 입구를 완전히 벗어나고도 한참 후에야 걸음을 늦추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에? 다친 데여?”

“아까 닭발로 변해서 미친놈처럼 휘둘러 댔잖아. 어디 걸려서 다치거나 그런 덴 없냐구.”

“없어여. 그리고 닭발이라니! 제 발톱은 용맹한 황조롱이의 강철 같은 발톱이라구여! 강철 발톱!”

강철 발톱이라는 소리에 그녀는 뜨끔한 얼굴로 조롱이의 눈치를 보았다. 

이놈이 설마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제 우스운 행동들을 놀리는 것은 아니겠지?

저를 놀리는 말이라면 마빡에 불을 놔주겠다! 

그렇게 투지를 다진 것이 무색하게, 다행히도 도록도록 굴러다니는 조롱이의 황금안에는 장난기가 비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저를 샅샅이 살피는 이예주의 시선을 잘못 이해했는지, 쭈뼛거리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손등을 내밀었다.

“사, 사실 여기 쪼끔 까졌어여.”

하얀 손등 위에 붉은 선이 주욱 그어져 있었다. 

곧바로 이예주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멍청아! 그러니까 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서고 난리야!”

“히잉! 그럼 어떡해여! 누나가 못된 인간들한테 돈 빼앗기고 있는 줄 알았잖아여! 동료가 위험에 처했을 땐 도와줘야 한다고 했단 말이에여!”

“……하, 누가 그런 말을 해?”

“우리 주인님이여.”

그놈의 주인님, 주인님, 빌어먹을 주인님! 

별걸 다 가르친다는 생각에 그녀가 험악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 동료는 무슨 동료? 너랑 내가 왜 동료야?”

“우리가 여행 동료지, 그럼 뭔데여? 누나는 주인님 사슬에 묶여 있으니까 죄인인가?”

“뭐?! 이게 죽으려고!”

“그러니까 그냥 동료해여. 동료라도 좋은 거예여.”

새대가리가 이예주의 약을 살살 올리며 뺀질뺀질 대꾸했다.

너랑 나랑은 동료라는 좋은 말로 쉽게 포장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야! 

새대가리인 네놈과 나는 ‘동(同)’부터가 아니라니까!

이예주는 왠지 조롱이가 태연자약하게 내뱉는 동료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어라 대꾸하려고 붕어처럼 연신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끝내 그녀의 입에서 동료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지지 않은 것은, 동료가 아니면 뭐냐는 조롱이의 말에 딱히 대답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예주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조롱이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처량 맞게만 보이던 갈색 머리가 이제는 구릿구릿하게만 보였다.

여행 동료라는 조롱이의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심사가 뒤틀리는 걸까.

아니다. 그게 아니란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황조롱이의 동료 소리에 이예주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동료라는 말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제 처지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 동료일 뿐이라는 것에 있었다.

람과 조롱이는 누가 봐도 확실한 군신 관계였다. 어디 조롱이뿐이랴. 

나비 아저씨도, 요망한 붉은 개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람순이들’이었다. 게다가 신인류라는 같은 종족이고.

조롱이의 말이 꼭 너는 인간이고 우리와는 엄연히 다르다고 반듯하게 선을 긋는 것 같아서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이건 어쩌면, 어쩌면 자신은 그들을…….

옆에서 따라붙던 조롱이는 이예주가 대답이 없자 드디어 그녀를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기분 좋게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었다. 

그 모습에 왠지 더 열불이 나, 그녀는 그 작은 머리통을 한번 콱 쥐어박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너! 코코아 사 온다며. 코코아는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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