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13)화 (114/319)

황조롱이는 시각과 청각이 발달한 맷과의 맹금류이다. 

그는 달리는 생쥐도 한 번에 낚아챌 정도로 용맹한 황조롱이였다. 

시각과 청각이 발달된 황조롱이는 먹이를 사냥할 때는 물론이고 길 또한 능히 외울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적에 열병을 크게 앓은 이후 시각세포를 많이 잃었기에 다른 황조롱이들에 비해 시력이 낮은 편이었다. 

대신 다른 조류들에 비해 후각이 발달되었다. 

때문에 주인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헤맬 때는 시각보단 청각과 후각에 주로 의존하는 편이었다.

황조롱이는 길을 찾을 때 지형의 특징과 특유의 향, 소리를 기억한다. 

그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 마을은 지형을 기억하기에는 너무나도 특이한 건물들과 골목이 많았고, 소란스러워 지형을 외워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회색 토끼 그레이의 냄새라는 정확한 기준을 두고 그 주변 반경 안에서만 움직이면 제아무리 생소한 인간 마을이라도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비슷비슷한 골목이 많아 헤매기는 하겠지만, 어쨌거나 조금 늦어도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확한 기준이라는 것을 사고뭉치 ‘인간 여자’에게 두어서일까.

황조롱이는 설탕 국물 가게에서 받은 컵을 양손에 들고 골목길을 잠깐 헤맸다. 

그러다 인간 여자를 두고 온 골목 입구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 이예주는 모서리를 꺾어야만 보이는 골목 반대편에서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여, 여기가 아닌가?”

황조롱이는 맹세코 그 인간 여자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른 인간들과 시비가 붙었을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중학생들에게 “이 꼬꼬마 새끼, 죽고 싶냐?!” 하고 쌍욕을 시전할 때, 마침 조롱이 뒤의 중앙 거리에서 한 무리의 인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지나갔다. 

그래서 그는 바싹 약이 오른 그녀의 욕지거리 또한 들을 수 없었다.

근처에서 인간 여자의 냄새가 강하게 났기에, 황조롱이는 바로 옆 골목을 제가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탕 국물이 식을까 싶어 걱정이 된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 옆 골목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허겁지겁 걸어갔다.

그러나 막상 옮겨 간 옆 골목에서도 인간 여자의 냄새만 강하게 풍길 뿐, 인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허겁지겁 그 옆 골목으로 갔다. 

그리고 또다시 그 옆 골목, 그 옆 골목, 그 옆 골목을 헤맸다.

결국 블록 반 바퀴를 빙 돌아 처음으로 확인한 골목의 반대편 입구에 도착했을 때쯤, 설탕 국물은 완전히 식어 버린 후였다. 

손에 든 것이 미지근해진 줄도 모르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인간 여자의 냄새를 쫓아 걷던 황조롱이는 마침내 목적지를 찾았다. 

그러나 그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바로 마을 인간 몇 명에게 둘러싸여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예주였다.

한눈에 봐도 불량해 보이는 마을 인간들, 인적 드문 골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인간 여자. 

인간 여자는 겁에 질린 것처럼 손목에 달려 있는 사슬을 잔뜩 끌어안고 있었다.

커다란 황금색 눈으로 상황을 샅샅이 훑은 황조롱이가 눈을 뒤집고 버럭 노성을 지른 것은 당연했다.

“이, 이놈들!”

기껏 흘리지 않으려고 고이고이 들고 왔던 설탕 국물을 담은 종이컵이 뒤로 휙 날아갔다. 

갈색의 찐득찐득한 액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에 촤아악 흩뿌려졌고― 

“우리 예주 누나 괴롭히지 마! 우리 예주 누나 돈 한 푼도 없떠! 우리 누나 빈털터리에 불쌍한 인간이야!”

황조롱이는 어느덧 노랗고 날카롭게 변한 탐스러운 닭발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골목길을 향해 뛰어갔다.

*       *       *

“야, 너희. 너네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이렇게 시비 걸고 다니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 안 배웠어? 응? 그리고 이렇게 나보다 약한 사람 괴롭히고 때리는 거 아니라고 학교에서 안 배웠냐고.”

쩔컥. 이예주가 강철 주먹을 흔들며 아직까지도 코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제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짤그락거리는 사슬 소리에, 빨간 머리를 비롯한 여섯 명의 사내아이들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무리에서 제일 덩치가 비대했던 중딩1을 본의 아니게 한 방에 쓰러뜨리자, 놈들의 낯빛부터 달라졌다. 

게다가 사람을 쓰러뜨린 후 해맑게 손을 쳐들며 웃는 여자란. 

아무리 봐도 미친년, 그 이하로 보기 힘들었다.

잘못 걸린 거야. 걸려도 단단히 미친 사람한테 걸린 것이야. 

다섯 명의 아이들의 머리에 모두 같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쯤, 게르를 한 방에 때려눕힌 여자가 짤깡짤깡 사슬 감긴 팔을 흔들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눈을 내리깔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왜 대답을 안 해? 학교에서 이런 것 안 배웠냐고.”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던 아이들 중 그나마 대장 노릇을 하던 빨간 머리가 용기를 내어 이예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 학교가 뭔데, 아줌마?”

“아줌마라니, 이것들이 콱 그냥! 누나라고 불러!”

“누, 누나! 아악, 잘못했어요!”

이예주가 강철 주먹을 들고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하자 녀석들이 우르르 자기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고 목을 움츠렸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제 나이 때 같은 모습들을 보이는 아이들 때문에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치켜들었던 팔을 내렸다.

“크흠. 그래서 너네 학교 안 다녀? 학교 몰라?”

“으, 으응…….”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하는데?”

“집에서 개인 교사랑 하는데…….”

이예주는 빨간 머리가 소심하게 내놓은 대꾸를 듣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더러운 부르주아 놈들! 

신인류들에게서 박박 긁어 낸 돈이 이런 한심한 놈들의 교육에 쓰이고 있다니! 

정말 슬프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마을 지주들의 자식씩이나 되다니.

눈살을 찌푸린 채 이예주가 말없이 새파란 머리통들을 내려다볼 때쯤이었다. 

빨간 머리가 그녀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우물쭈물 대다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저기, 그, 그런데 누나. 우, 우리 이제 집에 가야 되는데…….”

“뭐? 지금 이 지경이 돼서 어딜 가!”

빨간 머리의 말에 상념에 잠겨 있던 이예주가 번뜩 눈을 부라렸다.

“그건 누나가 한 거잖…….”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너희 자꾸 말을 놓네? 쟤처럼 강철 주먹으로 후려 맞고 싶지? ‘요’ 자 붙여라잉?”

“으응. 아니! 네, 네요!”

빨간 머리의 답을 들은 이예주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네요? 이게 지금 장난하는 줄 아나!

“야! 너희보다 연장자한테 반말하는 거!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치시던? 너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하대하라고 말이야!”

“네…….”

“뭐? 네에?”

빨간 머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대답했다.

네? 네에에?! 

이예주가 눈을 까뒤집자 녀석들이 미친개에게 물릴까 싶어 기겁을 하며 앞다퉈 변명을 내질렀다.

“어, 엄마 아빠가 노예나 신인류들한테는 당연히 반말을 쓰라고 했는데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배웠어요!”

“저, 저도요!”

그녀가 홀로 대답을 않는 빨간 머리를 휙 돌아보자 다른 아이들 보다 키가 반 뼘쯤 더 컸던 녀석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우린 귀족이니 마을 노예들한테 반말을 쓰는 건 당연하다고요!”

남자아이들의 당연하다는 반응에 이예주는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언뜻 억울하기까지 한 얼굴들을 바라보자니 두개골이 뻐근하게 당기는 것 같았다.

이건…… 신분제도가 부활한 셈이니 문화 차이인 것인가? 

아니지, 지금껏 겪어 온 이 세계엔 딱히 신분이랄 게 없었는데. 

식인을 하고 피를 빨아 대는 시간족이라는 미친놈들 집단은 있어도.

엄마, 아빠를 들먹인 것은 그녀 나름 크게 마음먹고 꺼낸 일명 ‘부모 얼굴에 먹칠하기’ 드립이었는데,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이예주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엄마, 아빠한테 그렇게 배웠다고? 무슨 이런 어이없는 가르침이…….

그녀가 제 앞에 주욱 늘어서서 저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중딩들을 매우 착잡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그때였다. 

문득 멀찍이서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엄청난 고함 소리가 그녀의 착잡함을 단숨에 가르며 귓속으로 박혀 들었다.

“이, 이놈들!”

벼락같은 호통에 아이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이예주의 고개 또한 큰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바닥에 어정쩡하게 널브러져 있던 말더듬이 제드를 포함해, 골목 안 모든 이들의 이목이 한 번에 집중된 골목 입구.

이예주는 그 끝에서 아주 익숙한 인간, 아니 신인류가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예주 누나 괴롭히지 마! 우리 예주 누나 돈 한 푼도 없떠! 우리 누나 빈털터리에 불쌍한 인간이야!”

저 망할 새대가리가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 생각을 미처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이어지는 엄청난 광경에 입을 떡 벌린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그것처럼 하얗고 오밀조밀했던 조롱이의 손이 어느덧 노란 닭발로 휘익 변해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하늘 위로 쳐들고 그가 성난 황소처럼 뛰어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괴롭히지 마! 인간들! 우리 누나 괴롭히지 마! 코코코코 사 먹을 돈도 없는 인간이야! 우어어어!”

자신과 제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중딩들을 향해 돌진하는 조롱이의 눈은 황금빛 하나 없이 뒤집어져 있었다. 

이예주는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그사이 엄청난 기세로 달려 온 조롱이가 중딩들을 향해 노란 닭발을 휘둘렀다. 

쫘아악― 

천 자락이 격하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가운데에 서 있던 빨간 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쿵, 뒤로 나자빠졌다.

“으아악!”

이예주의 강철 주먹을 보았을 때보다 세 배는 더 허옇게 들뜬 얼굴로 빨간 머리가 넘어졌다. 

값비싸 보이는 상의의 가슴팍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그 사이로 녀석의 젖꼭지가 삐쭉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찢긴 옷 사이로 노출된 뽀얀 살결이 불그죽죽하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가 찔끔찔끔 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피눈물을 흘리는 살집 두툼한 빨간 머리의 가슴을 보고 이예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순식간에 닥친 일이라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지, 녀석은 완전히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또 누구냐! 누가 또 예주 누나를 괴롭힌 거야! 너냐!”

노란 닭발로 빨간 머리의 가슴을 죄다 쥐어뜯은 조롱이가 회까닥 뒤집힌 눈알을 다른 녀석들에게로 돌렸다. 

녀석들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기도 전에, 그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으허억―! 바, 발톱!”

그때 한 아이가 조롱이의 양팔에 탐스럽게 달린 새 발들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헉! 소, 손이 발톱으로 변하는 신인류야!”

“으아악! 자, 잡히면 제드처럼 병신으로 변해! 저주를 내리는 신인류 괴물!”

“괴물이야! 으아악!”

좁은 골목 안에서 중딩들의 괴성이 잇달아 메아리쳤다.

저주? 제드처럼 병신으로 변해? 

동쪽 대륙으로 와서 유난히 자주 듣는 저주 소리에 그녀가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쓸 즈음이었다. 

괴물 소리에 뿔이 난 듯 조롱이가 더욱더 빠르고 힘차게 닭발 돌리기를 시전하며 소리쳤다.

“괴물은 무슨! 모두 잡아서 혀를 뽑아 줄 테다!”

휙, 휙! 살벌하게도 휘둘러 대는 팔과 그를 피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중딩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예주의 주위를 술래잡기하듯 빙빙 돌았다.

“그만해! 정신 사나우니까!”

아까부터 슬슬 진통이 오던 머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끈지끈 아파 오자 그녀가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비좁기 짝이 없는 골목에서 조롱이의 발톱을 피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딩들의 머리카락이 무 썰리듯 썽둥썽둥 썰리고 얼굴과 팔, 다리에 불그죽죽한 줄이 좍좍 그어졌다.

엉망진창, 오방 난장판이구나.

“거기 서!”

“으아악! 엄마아―!”

조롱이와 중딩들은 한참 동안 서로를 쫓고 쫓았다. 

그러다 빨간 머리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필두로, 놈들은 발톱에 옷자락이 죄다 찢긴 흉한 몰골을 한 채 줄행랑을 쳤다.

“거기 서라구! 죽여 버릴 테다!”

“그만해! 이 새대가리야!”

조롱이의 폭주는 분노의 대상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비백산 도망을 치고 난 후에야 이예주의 욕설과 함께 잦아들었다.

쉬익, 쉬익. 

거친 숨을 토해 내며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조롱이가 이예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나, 괜찮아여? 어디 다친 데 없어여?”

“다치긴! 오자마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 발부터 감춰! 누가 보면 어쩌려구!”

이미 보여 줄 만큼 다 보여 준 상태이지만, 새삼 남세스러운 조롱이의 모습에 이예주가 기겁을 하고 닭발을 손가락질했다.

조롱이가 머쓱한 얼굴로 양손을 허공에서 한 번 휙 휘저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발톱을 번쩍번쩍 빛내던 노란 닭발이 뿅 하고 사람 손으로 돌아왔다.

“그, 그놈들이 누나를 둘러싸고 괴롭히고 있어서 너, 너무 놀라 가지구여…….”

“누가 누구를 괴롭혀! 그리고 뭐? 코코아 살 돈도 없는 인간이니까 그만해? 이걸 그냥 확!”

이예주가 사슬로 둘둘 말은 괴상한 강철 주먹을 들어 올리자 조롱이가 사색이 된 얼굴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는 너무 경황없이 달려드느라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이 인간이 시비에 휘말렸다고 해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인간이 절대로 아니건만. 절대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롱이는 주인님의 힘까지 써 가며 그녀를 둘러쌌던 어린 인간들을 쫓아낸 것이 너무나도 억울해졌다.

“히익! 그, 그러니까 왜 뜬금없이 인간들이랑 말을 하고 있구 그래여! 그것도 골목 반대편까지 와서!”

“너야말로 코코아를 만들어 가지고 왔냐? 왜 이렇게 늦게 와! 네가 일찍만 왔어도 저런 싸가지 없는 놈들이랑 엮일 일도 없었잖아!”

“그니까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구 했잖아여! 씨잉, 한참 찾았잖아…….”

“내가 가만히 안 있었던 게 아니라 저 중딩 놈들이 개념 없이 굴어서……! 참, 그러고 보니 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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