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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앤 매드 (112)화 (113/319)

아오, 이 새 자식은 왜 이렇게 늦어서 이런 꼴을 보게 해! 

혹시라도 괜히 엮여서 큰일이 생길까 무서웠다. 

이예주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꾸물꾸물 몸을 사렸다.

불량배 무리와 거리가 꽤 있어 두꺼운 장포를 걸친 그녀의 몸뚱이가 그저 검은 천이 대충 걸쳐진 짐 덩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안타깝게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남자아이들 사이에 거칠게 내팽개쳐진 남자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들어도 변성기조차 지나지 않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그를 둘러싼 채 조롱했다.

“야, 이 병신 뭐라냐?”

“몰라. 하도 말을 더듬어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어휴. 현대나 미래나 하여간에 철모르는 중딩들이 제일 무섭다, 무서워. 

험악한 남자아이들의 기세에 이예주가 혀를 쯧쯧 찰 때쯤, 어렵사리 다시 일어난 남자가 그들에게 애원했다.

“나, 나를 보, 보내 주어라. 나, 나를 보내 줘.”

“야, 야. 헛소리 작작하고. 오늘까지 가져오라는 거 가져왔어?”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빨간 머리의 남자아이가 일어선 남자의 가슴을 기분 나쁠 만큼 툭툭 치며 물었다. 

태도로 보아 무리의 아이들은 불량 청소년이 확실한 듯했다. 

덩치도 조롱이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끌려온 남자 앞에선 모두 고만고만한 키였다. 

저 남자는 키만 멀대같이 커 가지고, 자기보다 어린애들 앞에서 뭐 하는 거야? 

무력하게 끌려와 아이들 앞에서 움츠러든 남자 때문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빨간 머리가 좀 전보다 더 세게 남자의 어깨를 밀쳤다.

“우리도 검은 안개 좀 빨아 보게 가져오라고 했잖아, 새끼야. 네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한테 검은 안개 판답시고 얼마나 돈을 긁어 갔는지 알아? 그럼 덤으로 우리도 좀 줘야지.”

“으, 으윽! 거, 검은 안개를 보관하는 창고에는 아, 아버지만 들어갈 수 있다.”

“내가 뭐라 했어. 니네 집에 널린 꽃이라도 팔아먹게 뤼미에르라도 훔쳐 오랬지. 이 새끼, 이거 돌았네. 말 더듬는 병신 새끼 불쌍해서 같이 좀 놀아 줬더니, 이제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냐?”

뤼미에르? 

순간 들리는 익숙한 꽃 이름에 빨간 머리에 향해 있던 이예주의 시선이 다시금 남자에게로 옮겨 갔다. 

남자가 저보다 서너 살이나 어려 보이는 빨간 머리에게 황급히 변명했다.

“그, 그건 저, 정말 가지고 오려고 했다. 조, 족장의 성을 걸고 저, 정말로 가지고 오려고 했어! 그, 근데 오다가 조, 좋은 분을 만나 서, 선물로 드리는 바람에…….”

퍽― 그러나 남자는 변명을 모두 마칠 수 없었다. 

입을 다물기도 전에 빨간 머리의 주먹이 훅 날아들어 남자의 얼굴에 정면으로 박혔기 때문이다.

“커헉!”

아, 아니 저런 쌍놈의 새끼들이 다 있나!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폭력에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연히 뭘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롱이 또래의 아이들이 하는 행동치곤 너무나도 잔인해 깜짝 놀랐을 뿐이다.

주먹에 맞은 남자가 코를 부여잡고 비칠거리다가 이예주가 있는 쪽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늘과 양지의 선명한 경계 위로 남자의 몸뚱이가 걸쳐졌다.

“내, 내, 내 코!”

“야, 이 새끼는 어떻게 신음까지 말을 더듬냐.”

“재수 없어. 신인류의 저주나 받은 이딴 놈들이 족장 저택을 차지하고 있다니, 참 팔자도 좋아.”

“흐, 흐흑…….”

불량 청소년들의 킬킬거림 아래, 남자가 흐느꼈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방금 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비웃었던 그의 얼굴이 완전하게 드러났다. 

피가 흐르는 그 낯은 이예주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제드?”

다시 제드의 멱살을 끌어당겨 일으키려던 무리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자신에게 시선이 쏟아지자, 그녀는 당황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이내 짧은 침음을 내뱉었다.

혼자서 제드를 일으킬 수 없어서 다 같이 힘을 합쳐 그를 일으키는 어린놈들인데, 뭉쳐 있으니까 왜 이렇게 건달 뺨치게 무서운 걸까.

“뭐야, 저 여자. 언제부터 있던 거야? 야, 말 병신. 너 저 여자 아냐?”

제드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데 제일 앞장서 있던 빨간 머리가 이예주를 눈짓하며 제드에게 물었다. 

퍼렇게 질린 안색을 하고 쩔쩔매던 제드가 빨간 머리의 질문에 고개를 돌리다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예주를 발견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를 바라보는 제드의 눈에 일순 애절함이 스쳐 지나가는가 싶었지만, 그는 금세 눈을 떼고 빨간 머리에게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모, 모른다! 저, 저런 천민 따위를 내, 내가 알 리가.”

“천민? 아, 저 여자 사슬에 묶여 있네.”

제드의 말에 빨간 머리의 옆에 있던 중딩1이 이예주의 사슬을 가리키며 지껄였다.

천민이라니! 내가 천민이라니! 

자신을 향해 당당하게 천민이라 칭한 것에 머리가 띵한 것도 잠시, 이예주는 나이답지 않게 비열함이 잔뜩 담긴 빨간 머리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줌마, 거기 있지 말고 볼일 다 봤으면 그냥 가지? 아줌마 신인류야? 노예 주제에 일은 안 하고…….”

뭐 노예? 저 붉은 개 같은 새끼! 

이예주는 빨간 머리의 말에 울컥 분노가 치솟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재빨리 뒤를 돌았다.

그래, 제드가 모른 척해 줄 때 얼른 가야지. 이런 일에 괜히 휘말리면 안 돼. 

저런 위아래도 모르는 것들 사이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집단 구타를 당했다는 뉴스는 현대에서도 종종 보던 것이다.

일단 빨리 조롱이나 찾아서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그 생각에 이예주는 골목에서 벗어나려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유일한 목격자가 겁에 질려 등을 돌린 것을 확인한 제드의 눈동자에는 짙은 체념과 두려움이 깊게 드리웠다. 

그런 제드를 보며 알 만하다는 듯 빨간 머리와 그의 일행이 잔인하게 웃어 보였다.

제드 또한 좋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빨간 머리의 일행 또한 만만치 않게 값비싼 의복 차림이었다. 

마을 지주들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들은 제드가 검은 안개나 뤼미에르 같은 것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말더듬이 병신인 자신이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는 그저 작은 꼬투리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아버지는 맞고 들어올 때마다 그가 병신처럼 행동하고 다녔기에 맞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을 똑바로 하라고 당신 또한 버벅대며 화를 내곤 했다.

그러나 제드는 알았다. 자신이 말더듬이라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요즘 독단으로 진행하는 검은 안개 사업으로 인해 마을 지주들이 똘똘 뭉쳐 자신이 괴롭힘당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최근 가해지는 폭력의 강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내, 내, 내일은 꼭 뤼, 뤼미에르를 가져올 테니 이, 이만 놓아주어라!”

“이 새끼는 말만 해도 이렇게 재수가 없냐. 내, 내, 내일은? 쳇, 말이나 더듬는 병신 주제에 우리한테 명령조로 말하지 마!”

자신들보다 나이도 많고 지위도 높은 제드가 명령하듯 말하는 것이 기분 나빴는지, 빨간 머리 옆에 서 있던 일행 한 명이 나서서 높게 주먹을 쳐들었다.

또 맞는다! 

제드가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고통에 대비할 때였다.

“저, 저기!”

“…….”

“폭력은 쓰지 말지?”

아악, 대체 왜! 왜! 죽일 놈의 주둥이야. 한순간이라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니?

이예주는 주인이 원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씨불댄 제 주둥이를 정말 곤장으로 매우 치고 싶었다.

방금 전 간신히 벗어났던 불량 청소년들의 눈초리들이 다시 한순간에 저에게로 꽂혔다. 

그들의 눈에 ‘이건 또 뭐야?’ 하는 어이없음이 그득그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예주는 막막함에 어금니 옆 살을 잘근잘근 씹으며 불안에 떨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렇지만 정황상 제드는 자신에게 꽃을 주느라 이 나쁜 놈들에게 꽃 셔틀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저보다 새파랗게 어린놈들에게 얻어맞기 직전인 남자를 두고 무정하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왕따를 당한 자신도 빵 셔틀에 구타는 당해 본 적이 없건만!

저것들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놈들이다. 한참이 다 뭐야, 1000년이나 늦게 태어난 놈들이다. 

반면에 자신은 성인이고 어른이다, 어른. 

고로 이런 일을 못 본 체하지 않고 나서서 불량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악을 타파해야 하는 거야. 

그러니 난 잘못한 게 아니야. 

초조하게 입술을 씹으면서도 이예주는 주눅 들어 보이지 않게 가슴을 당당히 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물론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도록 미친 듯이 자기 세뇌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 야, 저 여자 뭐라냐?”

“몰라. 폭력은 쓰지 말라는데?”

그러나 그 노력은 제드를 집어 던지다시피 바닥에 철퍼덕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섯 명의 아이들 앞에서 눈 깜짝할 새에 허물어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나하나 따지면 그녀의 목에 간신히 미치는 작은 것들이건만, 그런 놈들이 여섯이나 골목을 막고 일자로 선 걸 보니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것인지.

현대에서도 중학생이 이렇게 무서웠었나. 

언제부터 중학생들이 이렇게 무서웠단 말인가!

“레, 레이디…….”

그 와중에 제드가 눈치코치 없이 감동을 아빠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은 얼굴을 하고선 이예주를 아련하게 불렀다.

“뭐야. 모르는 사이라고 시치미를 딱 떼더니, 둘이 아는 사이였어?”

빨간 머리가 이예주와 제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섰다.

“아줌마, 아까 그냥 조용히 가라는 말 못 들었어? 아줌마가 뭔데 참견이야?”

“아줌마라니, 얘야. 말이 좀 심하네, 하하하.”

“그럼 뭐라고 불러. 노예? 노예 주제에 일은 안 하고 여기서 농땡이 피우고 뭐 하는 거야? 사슬 주인은 어디 있어? 아줌마, 도망친 거 아니야?”

어린놈의 막말에 그녀는 관자놀이 끝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이 사슬은 내가 노예라는 게 아니라! 응?”

이건 너희들을 박멸할 어마어마한 미친놈이 묶어 둔 거야, 이 자식들아! 알어?!

자칫 입을 잘못 열면 그대로 쌍욕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그녀는 서둘러 입을 다물고 셋을 센 후 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후…… 저기 얘들아. 사슬은 됐고, 폭력은 나쁜 거란다. 너희보다 나이도 많은 형한테 그렇게 나쁘게 대하면 못써요.”

그러나 그녀의 친절한 말에 돌아오는 것은 낄낄거리는 노골적인 비웃음뿐이었다. 

이예주는 다시 한 번 후후, 라마즈 호흡법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 후 학생들을 바른 길로 선도하기 위해 맑고 고운 목소리를 내었다.

“너희가 달라고 했던 뤼미에르는 내가 줄 테니까 그 형 그만 괴롭혀.”

“노예 따위가 주는 뤼미에르는 더러워서 싫어.”

“……개새끼야.”

이예주가 울먹이며 속삭였다. 

빨간 머리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 아줌마 지금 뭐라고 했어?”

“개새끼라고 했다!”

“하! 이 노예가 주인을 잃고 미쳤나.”

듣는 노예 기분 상하게 자꾸 노예, 노예 하고 지껄여대는 빨간 머리 때문에 그녀는 결국 울컥 괴성을 질렀다.

“야! 노예 아니라고 했지! 묶인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 꼬꼬마 새끼가 어디다 대고 노예래! 죽고 싶냐?!”

이제 모르겠다. 

욱한 마음에 이예주는 참지 못하고 빨간 머리에게 욕으로 선공을 했다.

빨간 머리와 그의 일행들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검지로 머리를 가리키며 뱅뱅 돌렸다. 

그녀가 또라이임이 분명하다는 뜻이었다.

“저 아줌마 미쳤나 봐. 아줌마,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리지?!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우리 집이 마을에서 족장 다음으로 큰 지주라고, 어!”

“너야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내가 태어났을 때 너네는 정자 세포의 세포의 세포도 안 됐어, 인마! 이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복날에 개 맞듯이 처맞아 봐야 정신 차리지!”

“하, 나 이 아줌마 못 봐주겠네.”

빨간 머리의 오른팔인 듯 보였던 중딩1이 목을 뚜둑 뚜둑 풀며 그녀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패기 넘치게 욕설을 지껄여 댄 것이 바로 방금 전인데, 막상 놈들 중 한 명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이예주는 더럭 두려움이 일었다.

그녀는 재빨리 주위를 샅샅이 둘러보며 방어할 수 있거나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이 있나 살폈다. 

그러나 인적 없이 텅 빈 골목에는 무기는커녕 그 흔한 돌멩이 하나 굴러다니지 않았다.

이예주가 필사적으로 이 빌어먹을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는 사이, 어느덧 중딩1이 팔자걸음으로 다가와 그녀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기름진 음식만 먹고 자랐는지 키는 쪼그만 게 덩치만 비대한 중딩1은 몸뚱이로 그녀의 시야를 완전히 막아섰다.

“아줌마, 조용히 꺼지라니까 아오 그냥 확…… 억!”

중딩1이 손을 번쩍 쳐들어 이예주를 때리는 시늉을 하는 순간이었다. 

뻑! 

커다란 소음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중딩1의 미간을 강타한 것은.

‘퍽’도 아니고 ‘뻑’이었다. 중딩1은 그대로 맥없이 뒤로 쿵 넘어갔다.

“뭐, 뭐야!”

빨간 머리가 지극히 당황한 얼굴로 앞을 쳐다보았을 때, 그들에게 시비를 건 노예는 어느새 바닥에 늘어뜨린 사슬을 손에 둘둘 말아 쥔 채 정면을 향해 아무렇게나 주먹을 내뻗은 상태였다.

이예주가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 쓰러져 있는 중딩1을 보며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빨간 머리 일행에게 물었다.

“……뭐야? 뭐야? 얘 왜 이래?”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지지리도 싸움을 못하던 찐따가 싸움의 기술을 터득하여 한순간에 일짱이 되는 스토리의 삼류 영화였던가.

시간이 지난 후, 주인공들이 나이를 먹고 밝혀진 싸움의 기술은 정말 별거 없었다. 

싸움을 하기 바로 직전 주머니에서 반질반질한 돌멩이 하나를 꺼내어 주먹에 꽉 쥐고 있었던 것. 

그리고 무조건 선빵. 

그러면 일짱이고 이짱이고 모두 한 방에 골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이예주의 머릿속에는 그 영화처럼 주먹에 뭘 쥐고 중딩 놈들을 다 때려죽일 것이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그럴 만한 운동신경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주인공만큼의 배짱도, 포부도 없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저 다가오는 중학생들의 집단 구타에서 얼굴만은 보호하고자 대충 사슬을 팔과 손에 둘둘 감아 가드를 올려야겠다는 생각, 오로지 그 하나뿐이었는데. 

그런데…….

‘어어, 어어…….’ 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하는 중딩1. 옆 관자놀이를 타고 핏줄기가 일자로 주르륵 흐르더니, 녀석이 옆으로 고개를 픽 떨구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헐, 이 방법 정말 쓸모 있잖아?”

손목을 자르지 않고는 절대 끊어지지 않은 사슬이니 어쩌니 하더니, 정말로 강철로 이뤄진 사슬임이 분명한가 보다. 

이예주가 감탄 어린 눈으로 제 팔과 손에 감긴 사슬을 보다가 흘끗 쓰러진 중딩1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중딩1은 미동 없이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설마 주, 죽은 건 아니겠지?

그녀는 이제 다른 의미에서 더럭 겁이 났다. 방금 전까지 저보다 한참이나 어린 것들에게 집단으로 맞을까 봐 덜덜 떨던 것치곤 우습기 짝이 없는 걱정이었다.

“저 여자 뭐야? 게르를 한 방에 쓰러뜨렸어!”

남은 다섯 명이 쓰러진 중딩1을 보고 심각하게 동요했다. 

잠시 그런 그들과 중딩1을 어리벙벙한 얼굴로 번갈아 보던 이예주가 불현듯 사슬을 둘둘 감은 오른팔을 번쩍 쳐들고 빨간 머리 일행을 향해 자랑했다.

“나, 강철 주먹 됐다.”

그 해맑은 얼굴에 빨간 머리를 비롯한 마을 지주의 2세들은 어쩐지 잘못 걸린 것 같다는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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