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85)화 (86/319)

신인류라고 오해를 받아? 

이해가 가지 않아 멍하니 있자 나비 아저씨가 이예주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 주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인간들과 가장 상극이지만, 개 일족은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들에게 충성을 다했던 동물들이였로라. 특히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살던 붉은 개 일족은 용암 대폭발을 피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영토에 침입한 인간들을 내쫓지 않고 그들을 도우며 끝내는 벗이 되었로라.”

거기까지 말을 마친 나비 아저씨가 이해했냐는 듯 이예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소름 돋는 ‘로라’만 빼면 이해가 훨씬 더 잘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실행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은 용암에 타 죽을까 무서워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내려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로라.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산 아래 용암도 사라지고, 오히려 신인류라는 새로운 주인들이 마을을 이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간들도 알아 버렸로라. 인간들은 신인류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아 살고 있다고 여겼고 그 사실에 화가 났로라. 그래서 산을 내려가 틈틈이 신인류들을 염탐했고, 우리의 본체가 동물이란 사실 또한 알아냈로라. 인간들은 동물들이 자신들처럼 변해서 자신들과 같이 행동한다는 데에 두려움을 느꼈고, 두려움은 곧 무시무시한 분노로 변했로라. 분노의 불똥은 그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던 붉은 개 일족에게 튀었고, 신인류가 아니었던 붉은 개 일족은 인간들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로라. 붉은 개는 가족들을 모두 잃고 간신히 살아남아 붉은 개 일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신인류가 되었로라. 끝이로라.”

나비 아저씨가 간결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치며 끝을 선고했다. 

꽤 복잡한 사정이었으나 그가 줄여 말한 탓에 간단하고 의미 없는 사건으로 일축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예주는 나비 아저씨의 설명에도 궁금했던 것이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작 신인류가 무섭다는 이유 따위로 일족을, 하나의 종족을 몰살하다니? 아직도 그렇게 잔인한 인간들이 있단 말이야? 

현대에서는 돌아다니는 유기견 한 마리를 죽여도 사람이 아니니, 도의적 문제가 있느니, 온갖 이슈가 되었다. 

물론 비둘기같이 개체 수가 늘어나서 인간의 생활 영역에 질병 전염과 같은 피해를 입히는 동물들은 임의적으로 인간이 그 수를 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유기견 한 마리도 아니고, 또 인간에게 피해를 입혔던 동물도 아닌데. 

나름 반려견이라면 반려견이라고 할 수 있는 개들을 고작 신인류일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건 너무…….

“미친 것 같아…….”

이예주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조롱이가 잘못 들었다는 듯 ‘에?’ 하고 되물었지만 그녀는 다시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예주는 근심이 잔뜩 어린 얼굴로 조롱이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쟤가 날 싫어할 만하네. 그치 조롱아.”

“그쳐. 누나가 주인님 옷만 뒤집어쓰고 있지 않아도 벌써 물어뜯겼을 거예여.” 

“그 정도야?”

“그렇로라.”

조롱이의 대답을 가로챈 나비 아저씨가 고개까지 근엄하게 끄덕이며 단호하게 답했다. 

이예주의 낯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근데 왜 발가벗고 다니고 난리야? 아무리 인간이 만든 옷이 싫어도 그렇지, 무슨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이예주가 커다란 왕가슴을 떠올리며 불쾌함을 잔뜩 담아 말했다. 

그러자 나비 아저씨가 이번에도 냉큼 대답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붉은 개의 혐오감이 높은 것이로라.” 

“나비 아저씨는 인간에게 혐오감 없어요?”

“나? 난 딱히 인간에겐 감정이 없로라. 내가 신인류가 되어 주인님의 명령을 받은 이유도 인간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로라. 내가 신인류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마을 인간들은 나 같은 도둑고양이에게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나 또한 그렇로라.”

“하지만 주인님의 명령은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동쪽 대륙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면밀히 살피라는 거였잖아여. 붉은 개는 그러면 계속 본체로 주인님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다는 거예여?”

조롱이가 그녀와 나비 아저씨의 대화에 불쑥 껴들었다. ‘명령’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이예주는 눈을 크게 뜨며 조롱이와 나비 아저씨를 되돌아보았다. 

람의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것도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그녀는 새삼 이들이 자신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명령을 듣고 움직이고 있다니. 게다가 잠복까지. 이건 마치 첩보 영화 같은 일이잖아. 

그러나 그녀가 의외라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알아채지 못한 듯 나비 아저씨가 순간 얼굴을 굳히며 조롱이의 지적에 대해 설명했다. 

한 번 잠복, 첩보 등에 생각이 박히니 그런 나비 아저씨의 모습이 꼭 상사에게 변명하는 부하 직원 같았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붉은 개는 인간들과 같이 지내기 싫다고 주인님 명도 어긴 채 홀로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입구 쪽만 감시하고 있었로라. 그쪽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붉은 개가 본체로 있어도 상관은 없로라. 그런데 주인님도 딱히 제지하지 않으셔서 계속 그렇게 지내고 있로라.”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인간들은 벌써 한참 전부터 산 아래 인간들과 교류가 끊겼잖아여? 입구로 가는 길도 다 폐쇄되고여. 이상하네여.”

“그, 그것이 말이로라. 실은 가장 높은 산을 누군가가 오가고 있는 것 같은 흔적이 발견되었로라. 그게 꼭 마을 인간들과 관련이…… 아, 아니로라.”

주절주절 설명을 하려던 나비 아저씨는 갑자기 이예주의 눈치를 살며시 보더니 불현듯 말꼬리를 흐리며 하던 말을 멈췄다. 

그들이 하는 말엔 관심도 없고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던 이예주는 오히려 자신의 눈치를 보는 나비 아저씨 때문에 괜히 없던 관심이 생겼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선 얘기할 수 없는 극비 사항이라 이거지? 

왠지 혼자만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쭉거렸다. 

하긴 이 무리에서 인간이라곤 자신 혼자뿐이었다. 이들이 마음먹고 자기 하나 죽이려 들어도 이예주는 끽 소리 한 번 못 내고 살해당할 것이다. 

왠지 붉은 개의 과거를 들었던 것보다 더욱 기분이 찝찝해지는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녀의 침묵에 눈알을 굴리며 불안해하던 황조롱이가 허둥지둥 말을 붙였다.

“어쨌거나 붉은 개는 인간에게서 받은 이름을 싫어하니까 누나도 못 들은 걸로 쳐여. 저보고 조롱이라고 부르는 것도 붉은 개 앞에선 되도록 하지 말구여.”

“조롱이라고 기껏 예쁘게 이름 지어 줬는데. 그럼 뭐라고 불러?”

“그냥 황조롱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여.”

“조롱이? 이례주가 황조롱이에게 준 이름이로라?”

나비 아저씨가 정말 의외라는 듯 커다래진 눈으로 이예주와 조롱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도 조롱이도 나비 아저씨의 말에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외향 그대로 그냥 ‘황조롱이!’ 이러는 건 너무 정 떨어지잖아, 우리 사이에.” 

이번엔 이예주의 말에 조롱이와 나비 아저씨 둘 다 휘둥그레진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별안간 자신에게 쏠린 이목에 그녀가 민망함에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사실 신인류들은 호칭이나 이름 따위에 별로 연연하지 않아여, 누나. 인간들이나 소유 주장을 위해 이름에 집착하는 거져.”

“맞로라, 맞로라.”

황조롱이가 말하자 나비 아저씨가 격하게 동의했다. 

그러나 이예주는 그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이름에 연연하지 않다니. 

그녀는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 떠올렸다. 

이름은 다른 것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이자 가치관을 담아 부르는 대명사가 바로 이름이다. 

낳은 자식, 키우는 애완동물이나 식물, 자주 애용하는 물건. 

하다못해 지나가는 길냥이에게도 이름을 붙여 주는 마당에 왜 인간들이 이름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 

집착이 아니라 원래 있는, 그러니까 생물체의 고유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제가 떠올린 이름에 관한 개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어쨌거나 신인류들 중 몇몇, 아니 혹은 대부분이 인간들에게서 이름을 받는 것은 인간의 소유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름 없이 어떻게 살아가? 그럼 구분이 안 가잖아. 그러면 이름 없는 신인류를 부를 땐 어떻게 부르는데?”

“보통 붉은 개처럼 외형 그대로 붉은 개라고 부르거나 특징을 구분 지어 부르곤 하져. 예를 들면 사막에서 만났던 다섯 번째 재빠른 사막 여우처럼여.”

조롱이의 말에 반사적으로 사막에서 만났던 귀여운 새끼 여우 포니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고 보니 포니 또한 인간 친구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했다. 친구한테 이름을 받다니. 

이예주는 문득 엄마가 지어 주었던 제 이름을 떠올렸다. 

‘미리 예(豫)’자에 ‘예쁠 주(姝)’. 

이예주가 태어나기 전 미리 만났기 때문에 엄마는 ‘미리 예(豫)’자를 그녀의 이름에 넣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 보통의 인간들이라면 부모가 이름을 지어 준다. 

그것은 딱히 자식이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부모가 이름을 지어 주지는 않아?”

“신인류들도 가족 간의 유대가 깊으면 가족 중 다른 개체가 지어 줄 때도 있로라. 보통 새끼를 적게 낳는 신인류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로라. 하지만 동물들은 대부분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 주지 않는 것이로라.”

“아.”

이예주는 나비 아저씨의 보충 설명에 알아들었다는 듯 무미건조한 소리를 내었다. 

하기사 황조롱이든 붉은 개든 자신들이 필요치 않다는데 호칭이랄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었다. 

처음 만났을 적에 람이 조롱이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던 자신의 행동을 왜 그렇게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인니임~ 마을에 도착하면 당과 사 주실 거죠? 전 주인님이 사 주시는 당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요. 먹지 않고 평생 보관하고 싶을 만큼요오!”

그래, 지금 당장 그까짓 이름 따위가 뭐 중요하다고. 

중요한 것은 저 요망한 개가! 개 주제에 감히 람에게 아직도 수작질을 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홍홍 거리는 콧소리에 이예주의 눈에서 다시금 불이 번쩍 피어올랐다. 

붉은 개가 인간을 좋아하든 증오하든 그것은 제 알 바 아니었다. 어쨌든 저 개의 탈을 뒤집어쓴 여우 계집이 적인 것이 틀림없었기에. 

전쟁은 저 개가 먼저 선포했다. 

이예주는 흉포한 기세로 발걸음에 힘을 주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람! 같이 가요!”

뛰다시피 걸어 사슬의 간극을 좁힌 이예주가 덥석 람의 팔을 잡아 팔짱 끼듯 매달렸다. 

잡자마자 매정하게 털어 내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으나, 다행히 람은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마술처럼 새빨갛게 변한 눈으로 그녀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뭐야.”

귀찮은 것이 달라붙었다는 듯 남자의 한쪽 눈썹이 약간 들려 있었다. 

이예주는 남자의 시뻘건 눈과 들린 눈썹에 가슴이 뜨끔했지만 이내 마음먹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저 길눈이 어두워요. 길 잃어버릴 것 같아요. 진짜요.”

크르르, 람의 반대편 아래쪽에서 짐승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내려다보니 붉은 개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이예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인데도 야리는 것이 어찌나 독살 맞은지 눈빛으로 이예주를 갈가리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 것만 같았다. 

흥. 내가 또 쫄 줄 알고. 

이번에야말로 요망한 것에게 본때를 보여 줄 차례임을 인지한 그녀가 잡았던 람의 팔을 도리어 두 손으로 꽉 껴안으며 똑같이 눈을 부라렸다. 

갑작스레 팔이 압박되자 람이 이예주에게 잡힌 팔을 두어 번 흔들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손은 놓고 말했으면 하는데.”

“길눈이 어두워요. 그리고 이 개가 자꾸 째려봐서 무섭단 말이에요!”

이예주가 붉은 개를 삿대질하며 소리치자 람이 고개를 돌려 이번엔 붉은 개를 내려다보았다. 

눈동자가 짠,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예주는 그의 눈동자 색 변화에 연연할 새가 없었다. 

람이 채 쳐다보기도 전에 곧바로 눈에 힘을 풀고 눈초리를 내리는 붉은 개의 발칙한 행태 때문이다. 

“주인님. 저, 저 그런 적 없어요. 정말요. 전 인간 여자님이 무서워서 바라보지도 않았는걸요.”

“허! 이, 이, 이런 이중인격자가!”

어윽, 내 혈압!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예주가 급히 치솟는 혈압에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러든 말든 요망한 것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연기를 하며 제 머리를 람의 다리에 비비적거리고 교태를 부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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