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가느라 연달아 발이 꼬였다.
아무래도 수면 아래쪽은 위보다 물살이 더욱 빠른 것 같았다.
청바지를 힘 있게 잡아끄는 듯한 바닷물을 헤치고 열심히 앞으로 전진했다.
어느새 곰돌이가 달려 있는 십만 원짜리 열쇠가 한 뼘 남짓한 거리에 떠 있었다.
이예주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몰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잠시 한 박자 쉰 후, 손을 뻗으며 나름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몸을 날렸다.
“잡았다, 요놈!”
딱딱한 쇠의 질감이 손바닥을 찔렀다.
완전히 열쇠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너무 급하게 몸을 던진 건지 그녀의 발치에 무언가 턱 하니 걸렸다.
안 그래도 거센 물살 사이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하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으아웁―!”
비명을 채 지르기도 전에 이예주가 그대로 물속으로 엎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는다고 느꼈을 때, 그녀의 머리는 이미 물속에 처박혀 있었다.
“어풉! 어헉! 사…… 꾸룩!”
‘이게 무슨 물난리야! 사람 살려!’ 하고 외치기도 전에 짜고 따가운 물이 코와 입속으로 마구마구 밀려 들어왔다.
그녀가 당황하여 팔다리를 거세게 허우적댔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푸헉!’ 하고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던 그녀의 몸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로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우붑! 웁! 우룩!”
숨이 모자라 입에서 뽀글뽀글 공기 방울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다 밑은 생각보다 더욱 물살이 거셌다.
버둥대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싶으면 금세 몰려오는 파도에 그녀의 몸뚱이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어헉, 어헉! 살려……!”
그다지 깊지도 않았던 바다가 자신을 너무나도 쉽게 집어삼켰다.
개구리가 헤엄치듯 앞뒤로 정신없이 팔다리를 흔들어 대던 이예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수영에 매우 자신이 없었다.
물론 모든 운동에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자신 없는 것을 꼽으라면 수영이었다.
숨이 컥컥 막혔다.
반사적으로 부족한 숨을 들이쉬었지만 콧속으로 공기 대신 비릿한 바닷물이 들어와, 있던 공기도 갉아먹는 바람에 두 눈이 흡사 물귀신처럼 핏발 선 채 부릅 홉떠졌다.
살려 줘! 살려 줘! 이예주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은 꾸룩 꾸룩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뿐이었다.
목이 죄어 왔다. 몸이 무겁고 부릅뜬 눈이 따가웠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분명하건만 무언가 그녀의 몸을 아래로, 더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서서히 잦아드는 자신의 팔다리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녀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자신은 100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와서 이렇게 어이없이 익사하는 운명인 건가?
그것도 깊은 심해도 아닌, 수위가 가슴까지밖에 오지 않는 얕은 바닷가에서!
자신을 죽일 듯 달려오던 그놈을 피해 간신히 도망쳤나 했더니, 자유를 느끼기도 전에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 것이 바로 이 저주받을 능력의 끝이란 말인가!
허흑, 허흑.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댔다.
어찌나 거세게 뛰는지 그 소리가 시끄러운 물살 소리도 누르고 이예주의 귓가에서 징 소리만큼 커다랗게 쿵, 쿵, 쿵 울려 퍼졌다.
눈앞이 하얘지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 축 늘어지던 그때.
그녀의 주변 물살들이 살아 있는 손처럼 미묘하게 움직였다.
미역처럼 흐물거리며 더욱 깊숙이 가라앉던 이예주가 거세게 덮쳐 오는 파도에 꽥 소리도 내지 못하고 휩쓸렸다.
발버둥을 쳐 대도 수면 위로 좀체 뜨지 못하던 그녀의 몸이 놀랍게도 엄청난 속도로 덮쳐 오는 파도를 타고 육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쏴아아―
넘실넘실 춤을 추던 바닷물이 빠르게 육지와 맞붙은 곳으로 달려가 비루한 인간 여자의 몸뚱이를 철퍽, 토해 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숨통을 죄던 물에서 드디어 벗어나 젖은 땅 위에 안면을 거세게 부딪힌 후였다.
“푸헉! …… 크헉! 쿨럭!”
신선한 공기가 콧속을 후비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예주는 내장을 모조리 토해 낼 듯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볼과 맞닿은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들이 입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목에 핏줄을 세운 채 기침을 해 대니 울컥하고 목구멍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병으로 인한 울혈이었으면 차라리 이유도 있고 좋았을 텐데.
이예주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 침 섞인 짭짜름한 바닷물이었다.
물이 잔뜩 들어간 눈, 코, 입이 온통 따가워 죽을 것만 같았다.
“허억, 허억…… 커흑!”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즙을 짜내는 것처럼 코와 입에서 물이 쭉쭉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제정신으로 자신을 보았다면 정말 눈 뜨고는 못 봐줄 만한 꼴이었다.
그렇게 꺽거리며 마신 바닷물을 도로 쏟아 내는 그녀의 위로 음산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예주의 코앞에 검은색의 가죽신이 우뚝 멈춰 섰다.
“물놀이 좋아하나.”
“으으…….”
불현듯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예주가 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땅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자신은 납죽 엎드려 있고 상대방은 머리맡에 서 있기 때문인가. 고개를 한참이나 높이 쳐들어도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도 더욱더 목이 꺾어져라 고개를 들려고 노력하던 이예주는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은 이유가 태양빛의 역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 거짓말처럼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 시뻘건 미친놈이.
“더 놀 걸 내가 억지로 꺼낸 건가?”
눈물, 콧물로 온통 범벅된 지저분한 인간 여자의 얼굴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남자가 말했다.
억지로 꺼냈다는 그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이예주가 불쑥 팔을 뻗어 남자의 검은색 가죽신을 움켜쥐고 목숨을 구걸했다.
“……허윽, 헉. 살려 주세요.”
인간 여자가 물 섞인 묽은 침을 질질 흘리며 애원을 해 대는 통에 람은 관대하게 자리에 주저앉아 그녀와 눈을 맞춰 주었다.
“왜. 여기까지 기어 오자마자 좋다고 뛰어들던데. 혹시 심해 생물도 좋아하나?”
이예주는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기엔 아직도 뇌에 들어찬 물이 빠지지 않았는지 정신이 몽롱했고 물이 가득 찬 귓구멍 또한 멍멍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은 잔기침을 토해 내며, 혼이 나간 것 같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은 제 발로 들어간 바다 한가운데에 빠져 익사할 뻔하다가, 다시금 육지로 끌어 올려진 상태였다.
정말 죽는다 싶을 때, 물살이 빠르게 자신의 몸을 밀어낸 것 같기도 했는데…….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 제 처지를 떠듬떠듬 떠올리던 이예주의 눈에 그제야 남자의 시뻘건 두 눈동자가 정확히 들어왔다.
태양 빛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제 앞에 주저앉아 있는 거대한 남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밝은 빛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이예주가 멍하니 생각했다.
이 인간에게 어디로 도망갈 거라고 언질을 주고 도망쳤던가…….
아니, 아니다. 분명 ‘문’을 넘을 때 남자에게 잡힐세라 이를 악물고 뛰기 바빴을 뿐, 남자에게 어디로 도망간다고 이야기했을 리가 없다.
그럼 대체 이 남자는 뇌 속에 네비게이션이라도 달고 있는 건가?
항상 자신을 주시했던 엄마도 아닐진대, 어떻게 문을 넘자마자 제 앞에 나타날 수가 있는 거지?
마치 자신이 이곳에 오길 기다렸다는 양…….
“아…….”
이예주가 저도 모르게 굳은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와 같은 딱딱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을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리다니. 너무 간지러운 말이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자신을 기다릴 리가 없을 텐데.
왠지 모르게 자꾸 막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막 긁고 싶고 가슴이 답답한, 그런 말이었다.
“……혹시, 나 기다린 거예요?”
이예주는 얼빠진 표정으로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무표정을 고수하던 남자가 눈에 띠게 감정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망상이 지나쳤구나, 예주야. 이예주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그런 그녀를 알 수 없는 눈길로 마주 보던 남자가 붉은 입술을 설핏 열었다.
“그보다 심해 생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
“대답.”
심해 생물? 이 자식, 아까부터 왜 자꾸 심해 생물 타령이야.
뜬금없는 그의 말에 이예주가 멍한 표정을 지우고 그 위에 어리둥절함을 덧입혔다.
아직도 바닷물에 푹 담겨 있는 하체가 이제는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로 아렸다.
이제 물도 다 토해 냈으면 정신 차리고 일어나서 시뻘건 눈알의 남자에게 무언가 해명을 해야 하는데.
그 생각에 미친 그녀가 내동댕이쳐져 있던 두 팔에 힘을 줘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남자가 있는 쪽으로 몸을 질질 끌고 기어가 물에 잠겨 있는 불쌍한 제 하체를 구제하려던 그때였다.
바닷물에서 거의 다 벗어나, 이제 운동화만 잠겨 있던 이예주의 한쪽 발목을 무언가 차갑고 기다란 것이 스르륵 휘감은 것은.
미역인가. 해초라도 발에 걸린 것인가 싶어 그녀가 물속에서 발을 거칠게 털었다.
그러나 떨어지기는커녕, 청바지 위로 미끄덩하고 척척한 무언가가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더니 이내 종아리까지 꽈악 감겼다.
더 이상 육지로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노골적인 힘이 느껴졌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발에 감겨 있는 것이 마치 간을 보듯 슬쩍 잡아당기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이예주가 비명 지르듯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헉.”
낑낑거리며 육지로 올라오던 그녀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녀는 참으로 멍청하게도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시뻘건 눈동자는 장난기 하나 없이 진중하게 빛나고 있었고, ‘아, 내 다리를 잡은 것은 해초 따위가 아니로구나.’라는 것을.
그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한쪽 발이 쑤욱 위로 올라갔다. 절대 자의가 아니었다.
“허억! 뭐, 뭐, 뭐예요? 뭐, 뭐가 발을 잡고 있어요! 뭐가 잡고 있다구요!”
이예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색되었다. 그 말에 반응하듯 한쪽 다리를 착 감고 있는 무언가가 강한 힘으로 그녀를 바다로 끌어당겼다.
“꺄아악―!”
지익, 몸이 끌려가자 그녀가 반사적으로 입을 짜악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예주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불현듯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휘어잡아 줄 정도였다.
끌려가던 몸이 멈췄다. 이예주가 사색이 된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꺾었다.
그러나 미처 보기도 전에,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잡고 있는 남자가 무미건조하게 지껄였다.
“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허흑, 헉! 뭐야! 뭐야!”
“조차가 큰 대조기에는 깊은 곳에 사는 것들이 미처 되돌아가지 못할 때가 있지. 너랑 더 놀고 싶어 하는 것 같군.”
“그, 그게 뭔데요? 그게 뭐예요!”
“글쎄. 네 몸보다 세 배쯤 큰 문어인가?”
문어……? 타코야키에 들어가는 문어?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꼬릿꼬릿한 냄새나는 문어 다리의 그 문어……?
그러나 그녀는 문어에 대한 생각을 더 이어 갈 수 없었다.
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리를 휘감고 잡아당기는 그것이 더 힘을 줬기 때문이다.
이예주는 바다 쪽으로 무섭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아악! 놓지 마요! 놓으면 안 돼요! 놓지 마!”
그녀가 찢어지는 고음을 내지르며 남자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다급히 잡았다.
손목과 손목이 서로 잡힌 상태로 그녀가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바닷속에서 제 발목을 잡아당기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해 달달달 떨고 있는 그녀와는 다르게, 남자의 얼굴이 너무나도 무관심했다.
“흠, 문어의 침에는 염산 성분이 들어 있어서 먹이를 서서히 녹여 먹는 걸로 알고 있다. 꽤 아프겠군.”
남 얘기하듯 남자가 중얼거리자 이예주가 악을 썼다.
“아악! 놓지 마요! 어떡해, 끌려가! 어떡해. 잡아당긴다구요!”
그녀가 남자를 잡은 손목을 잡은 힘과는 대비되게 람은 심각할 정도로 느슨하게 그녀를 잡았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태평하기까지 했다.
물론 실제로도 관계가 없는 것은 맞는 말이었지만, 이예주는 금방이라도 남자가 제 손을 놓을까 봐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제발! 흐헝엉! 람!”
이예주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람을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그 부름의 주인공은 시뻘건 눈동자로 그녀를 무심하게 내려다 볼 뿐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의 그녀가 애간장이 닳아 다 없어질 무렵, 람이 선심 한번 써 준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막에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쥐새끼처럼 잘도 줄행랑을 치던데. 문어와 물놀이를 하고 싶어서 동쪽 대륙까지 부득부득 기어 온 게 아니었던가.”
‘동쪽 대륙까지 부득부득’이라는 부분을 남자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강조했다.
무심하기만 해 보였던 람의 시뻘건 눈동자가 어느새 이예주를 태워 죽일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동쪽 대륙은 또 어디야. 이예주는 당연히 제가 어디로 왔는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남자의 말에 심히 억울해졌다.
그러나 그것을 토로하기엔 남자가 지나치게 화가 많이 나 보였다.
그녀는 앞뒤 잴 것 없이 무조건 빌었다.
“잘못했어요!”
“…….”
“제가 다 잘못했어요! 진짜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봐요! 제가 죽을죄를 지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요! 흐엉엉!”
“이번 기회를 통해 네가 비는 잘못은 신뢰할 게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팔족 땅에서 그렇게 엉덩이를 맞고도 넌 별로 반성하는 태도가 없는 것 같군.”
귀신같은 놈. 그건 어떻게 알아챈 거지? 칼처럼 예리한 람의 지적에 이예주가 속으로 질겁했다.
그러는 사이 바닷속에서부터 뻗어 나와 그녀의 다리를 덩굴처럼 감싸 안은 그 차갑고 물컹한 것에 다시 강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