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76)화 (77/319)

눈이 따갑도록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 속에서 들려온 대답은 람의 딱딱한 목소리가 아닌, 전에 들어 보았던 기괴한 칠판 긁는 소리였다. 

일순 그녀는 숨을 멈췄다. 

뒤통수를 타고 소름이 쫘악 돋는 기분이었다. 

군인 남자가 뿔각을 불자 괴물이 나타났다.

“기기, 끼기, 기긱.”

머리, 팔, 다리가 수백, 수천 개씩 달려 있는 거대한 괴물이 뿌연 먼지와 함께 그 위용을 드러냈다. 

하다 하다 뿔각으로 괴물을 부르는 집단이라니. 

“꽉 잡으십시오, 구원자님.”

그때 이예주를 옆구리에 꽉 끼운 남자가 그녀를 한 번 더 고쳐 들며 무뚝뚝하게 지껄였다.

“이제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게 무슨…… 놔, 이거 놔! 람! 람!”

“발버둥 치면 위험합니다.”

말은 신사처럼 정중했지만 그녀를 짐짝처럼 다룸에 있어서는 람의 뺨을 칠 정도로 거친 사내였다. 

어느새 뿌옇게 시야를 차단하던 먼지가 옅어졌다. 

이예주는 람이 멀쩡한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 으억!”

쉬익, 쉬익. 칼 같은 바람이 귓가를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린 상태였기에 아까만큼 시야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더 기절초풍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아까 전, 대왕 바퀴벌레가 더듬이로 자신을 집어 던질 때 느꼈던 속도는 애기 장난치는 수준이었다. 

군인 남자는 KTX와 비슷한 속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안면을 강타하는 바람도 어마어마했다. 

바람에 섞여 날려 들어오는 모래 때문에 연신 피부가 따가웠다.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 대는 남자 때문에 이예주의 입에서 연신 정체 모를 괴성이 쏟아져 나왔다.

“으으…… 으허…… 멈춰! 멈춰!”

“조금만 참으십시오, 구원자님.”

“얼굴 시려! 얼굴 시리다고!”

“곧 지원 병력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진…….”

그러나 이예주가 멈추라고 더 소리치지 않아도 남자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그녀를 끼고 달리던 남자의 코앞에 조금 전 그가 부른 괴물이 날아와 모래 구덩이에 처박혔기 때문이다.

천지가 진동하며 또다시 황사 같은 먼지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이예주는 기함을 토할 새도 없이 콜록콜록 거세게 기침을 터뜨렸다. 

“끼, 끼기기긱―.”

한 차례 기관지를 점령하던 먼지의 공격이 사라지자 그녀의 눈에도 3층짜리 히카톤이 보였다. 

수천 개의 사람 머리통이 다닥다닥 달린 괴물의 맨 꼭대기 층이 이예주를 향한 채로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그나마 모래에 파묻히지 않은 반대쪽 대가리들이 역겹게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일제히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손톱으로 칠판을 거칠게 긁어내리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끼기, 기긱. 끼기기긱―!”

괴물은 무언가에 묶여 있는 듯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챈 이예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저깟 쓰레기 뭉치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뒤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박. 이예주는 나직이 속삭였다. 

괴물의 몸을 묶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모래였다. 

모래로 만들어진 밧줄, 그리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대는 남자는 그녀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딱 한 명뿐이었다.

“그것, 내려놓아라.”

그가 말한 ‘그것’이 저를 가리킴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이예주는 기분이 조금 안 좋아졌다. 

그러나 내려놓기는커녕 그녀의 허리를 붙든 군인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예주는 이 상황 파악 못하는 눈치코치 없는 인간을 미치도록 뜯어말리고 싶었다.

“지금 내려놓는다면 고통 없이 소멸시켜 주지.”

“내, 내려놓으라잖아요!”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가 저를 안은 군인 남자를 재촉했다. 

그러나 고글을 쓴 남자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십시오, 구원자님. 제가 목숨 걸고 구원자님만큼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죽고 싶으면 당신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엄한 사람 끌어들이고 그래! 

이예주가 거세게 몸부림치며 군인 남자의 몸에서 떨어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미처 깨닫지 못한 군인 남자는 여전히 환장할 소리만 해 대며 그녀를 강한 힘으로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구원자님. 저놈은 구원자님을 잡아먹어 그 힘을 흡수하려고 드는 겁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구원자님. 저놈의 농간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람이 날 잡아먹다니? 

허. 이예주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으면 정말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나 군인 남자는 대단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였다. 고글에 가려져 보이지 않음에도 이예주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뜨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심한 두통을 느꼈다. 

“저기요. 저기, 누군진 모르겠는데요. 일단 저를 먼저 내려놓고 마저 이야기를…….”

“놓으라고 했을 텐데.”

그새를 못 참고 득달같이 흉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기, 끼기긱. 

그때까지 앞에서 꿈지럭거리며 옴짝달싹 못하던 괴물에게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육중한 괴물의 몸이 가볍게 들썩였다. 

끼긱, 끼긱. 끼기긱. 

모래 밧줄에 꽉 묶인 채 하염없이 들썩이던 괴물의 몸이 별안간에 공중으로 번쩍 들렸다. 괴물이 남자와 이예주가 있는 곳 바로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예주의 입술이 조가비처럼 짜악 벌어졌다. 

“아아아악!”

콰앙―! 

모래로 이루어진 밧줄에 의해 들린 괴물의 몸이, 사방으로 모래를 튀기며 바닥에 처박혔다. 

천만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그 수천 개의 대가리가 달려 있는 끔찍한 괴물의 몸뚱이에 깔려 압사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안은 군인이 때맞춰 몸을 날려 구른 덕이었다.

“억! 윽! 하윽!”

다시 거친 모래에 몸을 처박으며 이예주가 뒹굴었다. 

보다 가벼운 그녀의 몸이 빠르게 튕겨 나간 탓에 군인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몸은 커다란 충격을 받아 괴로웠다. 

이게 무슨 난리일까. 정신없이 모래 바닥을 뒹굴며 이예주가 생각했다. 여기 정말 쓰레기 같다고.

제가 람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무식한 힘으로 당장 이곳을 도륙 내어 버릴 것이다. 가루로 만들어서 지구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지역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으윽, 타깃이 위험하다. 지원 요청 바란다. 반복한다. 타깃이 위험하다. 지원 요청 바란다.”

그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꽤 안정적으로 안착한 군인이 무전기로 지원 요청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 다 들어찬 모래가 버석거리고, 관절이 삐걱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예주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로 수렁 같은 모래를 파헤치고 일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여전히 얼굴을 모래 속에 파묻은 채 그녀가 괴로움으로 끙끙댔다.

“으으…….”

모래라고 우습게 여겼다간 정말 사람 죽어 나가도 모를 것이다.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온몸이 고통으로 비명을 질렀다. 필히 맨살이 드러난 팔 부분은 다 까지고 파였음이 분명할 터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지들 일은 제발 지들끼리 해결할 것이지, 왜 괜한 나를 중간에 끼워서는. 개새끼들. 개새끼들! 

입으로 버석거리는 모래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예주가 쉼 없이 씨근덕대는 와중이었다. 

멀리서 그녀를 지칭하는 듯한 짜증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원자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구하겠습니다. 조금만!”

이예주가 조금만 힘만 있었다면 쏜살같이 달려가 그녀를 납치해서 이 위험 속으로 몰아넣은 저 눈치 없는 놈을 걷어찼을 것이다. 

하나 마음과는 다르게 모래 수렁에서 일어난 이예주는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비척비척 서 있는 정도였다. 

“끼기, 끼기기긱.”

그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모래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거대한 괴물이 밧줄 사이사이로 수많은 팔을 허우적대며 그녀와 군인이 있는 쪽을 향해 군침을 흘려 대었다. 

그녀는 얼이 나간 얼굴로 그 끔찍한 괴물 뒤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시뻘건 안광이 어둠 속에서도 터져 나올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괴물은 분명 못 죽인다고 했는데…….”

이예주가 멍청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대체 어떻게 그 속삭임을 들은 건지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며 귀신처럼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참으로 멋지고 잘생긴 그의 웃음에도 불구하고 이예주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물론 히카톤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

“귀찮은 벌레 새끼들을 잡아 죽일 땐 이처럼 유용하게 쓸 수 있지.”

“끼기, 기기, 기기긱―.”

남자의 말을 끝으로 괴기스러운 소리를 거대 괴물이 다시금 모래 밧줄에 의해 번쩍 허공에 들렸다. 

꼭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들어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시뻘건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피를 철철 흘릴 것처럼 점점 더 짙게 물들었다. 

간단한 물건 옮기듯 허공에 들린 괴물이 이예주의 머리 위를 넘어 어둠이 가라앉은 능선 너머로 휙휙 이동하더니 어느 순간 ‘쾅―!’ 하고 굉음을 내며 바닥에 집어 던져졌다. 

모래 폭풍이 또 다시 일어나면서 어둠에 가려졌던 능선이 환해졌다. 

곧이어 ‘두두두두’ 시끄러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으아악! 내 다리! 내 다리가……!”

“크아아악! 살려 줘! 살려 줘!”

“으윽! 1군 전부 히카톤에게 깔렸다! 1군 구조 요청! 구조 요청!”

두두두, 탕탕탕. 불이 밝혀진 능선 너머의 또 다른 인간 무리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총을 쐈다. 

시끄러운 총성이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사막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모래 밧줄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괴물의 수많은 팔들이 주변을 미친 듯이 쓸어 대며 인간들을 잡으려고 들었다. 

먹잇감들이 코앞에서 괴성을 질러 대니 더욱더 흥분한 것 같았다. 

“기기기, 끼기긱.”

모래 밧줄로 꽁꽁 묶여 처박혀 있음에도 수천 개의 머리와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인간들을 쫓아 각각 따로따로 꿈틀댔다. 

고개를 돌려 또 다른 방향을 바라보니 대왕 바퀴가 아까 전 뿔각 대장과 함께 이예주를 덮친 인간들을 마저 처리하며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 

괴물의 끔찍스러운 소리와 탕, 탕, 탕 하고 고막을 때리는 시끄러운 총성을 연달아 듣던 이예주는 문득 눈 옆을 찌르는 환한 빛 때문에 고개를 돌리다 그만 아연실색했다. 

왼쪽으로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 밝게 빛나는 하나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얄팍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구원자를 구한답시고 자신을 이렇게 버려진 휴지 조각처럼 처참한 신세로 만든 군인은 뭐고. 저기 또 새로 나타나 괴물에 깔린 인간들은 또 뭐고. 

‘문’은 대체 왜 또 열린 거야.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복잡하다 못해 미칠 지경이다. 

이예주는 그냥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람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냥 그뿐이었는데. 이건 대체 무슨……. 

“구원자님! 정신 차리십시오! 곧 헬기가 올 테니 그때까지 버티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생뚱맞은 소리에 이예주는 열린 ‘문’ 옆쪽으로 그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꼴로 파묻혀 있는 뿔각 대장을 바라보았다. 

뿔각 대장은 두 손을 모아 그녀를 향해 애탄 목소리로 소리 치고 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이예주에게로 뛰어올 기세였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넘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속박되기라도 한 듯 모래땅 위에서 허우적대는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자니, 괴물을 묶은 것보다 훨씬 얇고 가는 모래 밧줄이 그의 몸을 땅에 묶어 둔 것이 보였다.

그를 감은 모래 띠가 얇고 주변이 어두워서 자세히 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혼자 쇼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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