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72)화 (73/319)

어린아이 대하듯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남자가 이예주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 남자, 너무 날 잘 다룬단 말이야. 

전혀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깨달으며 그녀가 조금 더 람의 가슴팍 안으로 몸을 사렸다. 

그때였다.

“이봐, 인간. 내가 너보다 깨끗해. 이거 왜 이래! 나도 매일같이 하수구에서 목욕을 한다고!”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대왕 바퀴벌레가 미친 듯이 더듬이를 흔들며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바퀴벌레의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람과 이예주가 앉아 있는 곳 옆에 붙어 있는 비닐 같은 양 날개가 스스스스 진동했다. 

그 징그러운 모습에 그녀가 ‘어억!’ 하며 기겁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나도 인간 모습을 하면 인간 여자들이 줄줄 따라온다고. 어때. 내가 인간으로 변한 모습 보고 탈래, 그럼?”

“아악! 더듬이 떨지 좀 말라고 해요!”

그들이 탄 대왕 바퀴벌레가 말을 할 때마다 자꾸만 가느다란 더듬이를 비벼 대자 이예주가 람의 널찍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먹였다. 

머리 위로 가볍게 한숨을 내쉰 람이 그제야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만하고 가지.”

“치. 알겠수다, 주인. 그럼 갑니다!”

푸르르르. 비닐같이 얇지만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엮여져 있는 날개가 진동하듯 떨렸다. 

이내 대왕 바퀴벌레가 이예주와 람을 태우고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이예주는 그 엄청난 광경을 차마 볼 자신이 없어 람의 품에서 애써 숨을 고르며 ‘냄새 나지 않는다, 냄새 나지 않는다.’ 하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옷 속에서 무언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 들어 계속해서 경련하듯 몸을 꿈질거렸다. 

그사이 대왕 바퀴벌레는 그 크기에 걸맞지 않게 더 높이 날아올라 이제는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상공까지 도달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반팔이 된 후드를 입고 있던 이예주는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렸다.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품에 얼굴을 처박은 인간 여자를 내려다보던 시뻘건 눈동자의 남자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른 후 제 품속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어느 순간부터 답답할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어졌다. 

하지만 높은 상공과 바퀴벌레 등의 끔찍해 마다하지 않는 것들이 겹쳐진 상황이었기에 이예주는 자신이 남자에게 꼭 안겨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제 몸에 타고 있는 남녀의 미묘한 변화를 알 리 없는 바퀴벌레는 도시를 벗어나 사막을 향해 신나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       *       *

이예주가 바퀴벌레를 타는 데에 익숙해진 것은 사막에 진입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물론 바퀴벌레에 익숙해졌다는 것이 아닌, 당연히 람의 무릎 위에 주저앉아 고소공포증을 가까스로 참아 내는 데에 익숙해졌다는 소리였다.

태양과 한층 가까워진 탓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람이 벗어 준 검은 겉옷을 훌떡 뒤집어쓰고 그의 품에 앉아 조롱이가 비행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모습만 봐 와서 그런가, 막상 조롱이가 내리쬐는 태양광 속에서 묵묵히 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절친한 친구가 알고 보니 두 살 많은 복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같은 기분. 

물론 이예주에게 그런 친구, 아니 친구 자체가 있을 리 없지만 말이다. 

새삼 조롱이가 새롭게 보였다. 이리 안정적으로 나는 것을 보니 새는 새였구나. 

조롱이는 비행을 즐기는 것처럼 나는 것에 굉장히 집중했다. 

주요 인물들 중 한 명이 입을 다무니 모처럼 그들 일행은 침묵에 잠길 수 있었다. 

이예주는 고소공포증을 잊기 위해 조롱이를 관찰하는 것으로 나름 열심히 현실 도피를 했다. 

검은색 무늬가 점점이 박힌 갈색 깃털이 조롱이가 인간 모습일 때의 머리털 색과 똑같았다. 

커다란 인간의 모습에서 저렇게 작은 새로 변하려면 대체 어떤 요술을 부려야 할까. 

새로 변할 땐 몸 안에 있는 뼈를 꺼내서 따로 보관해 둔 후에 인간으로 변할 때 다시 몸에 집어넣는 걸까? 

제 스스로 갈비뼈를 꺼내는 조롱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이예주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건 너무 잔인한 상상이었다. 게다가 조롱이는 매번 순식간에 변신하곤 했으니 뼈 보관설은 패스.

아니면 고무고무 열매 같은 걸 먹은 걸까? 변신할 때마다 뼈가 지 맘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거지. 

그렇지만 조롱이는 만화 주인공처럼 ‘고무고무!’ 외치면서 팔을 늘여 펀치를 날렸던 적이 전무했다.

그동안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조롱이의 변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예주는 새가 말을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 딱히 큰 충격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1000년도 가뿐히 넘은 자신인데 세상에 말하고 변신하는 동물 하나쯤 있는 게 뭐가 대수랴. 

물론 말하는 거대 바퀴벌레는 상상 그 이상의 충격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조롱이의 날개 끝은 갈색이 아닌 짙은 고동색이었다. 또 완전한 황금색인 눈동자에 비해 조롱이의 부리와 발은 밝은 노란색이었다. 

발끝에는 생각보다 꽤 날카로운 검은색 발톱들이 달려 있었는데, 노란색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작은 노란색 발을 바라보자니 탐스럽게 익은 바나나가 생각났다. 

아, 바나나 먹고 싶다. 계핏가루 뿌려서 구워 가지고 그 위에 초코 소스 뿌려 먹으면 대박인데. 

입맛을 쩝쩝 다시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더해 가던 이예주는 문득 조롱이의 발목 근처에서 이상한 상처를 발견했다. 

조롱이의 왼쪽 발목 중간이 오른쪽과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흉터라고 보기에는 그 깊이가 꽤 깊어 선천적인 문제일 거란 추측까지 들었다. 

그녀의 왼쪽 손목처럼 하필 왼쪽 발목이었다. 조롱이가 인간 모습일 때도 저런 것이 있었나? 

손목의 상처에 관해선 예민한 그녀였으니 저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아, 발목이니 손이 아니라 발에 있으려나. 

유심히 발목을 쳐다보느라 눈살까지 찌푸리고 있던 이예주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떼었다.

“조롱아.”

“에, 예?”

비행에 온 신경을 몰두하고 있었던 듯 이예주의 부름에 조롱이가 화들짝 놀라 옆을 휙 돌아보았다. 

커다란 황금색 동공에 남자 위에 편히 앉아 있는 인간 여자의 모습이 비쳤다.

“너 발목에 이상한 거 있는데.”

“에?”

“왼쪽 발목 말이야. 흉터야? 아니면 혹시 어디 다쳤어?”

“…….”

어쩐지 조롱이는 그녀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오랜 침묵을 깨고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분위기가 싸해진 것 같았다. 

영문 모를 얼굴로 조롱이의 대답을 기다리던 이예주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뻘건 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순간, 뒤통수에서부터 척추 끝까지 오싹한 느낌이 그녀를 강타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람의 눈동자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혹은 사막 여우를 만났을 때처럼 차가움으로 중무장한 채 싸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아까는 벌벌 떨기 바쁘더니, 이젠 살 만한가 보지.”

“…….”

“넌 가끔 보면 참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군. 인간들은 지능이 모자란 건지 아니면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품에 안은 사람의 머리맡에 내뱉는 말치고는 몸까지 덩달아 굳어 버릴 정도로 너무나도 시린 어투였다. 

사막 여우를 만났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남자는 그녀의 호기심에 대해 굉장히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다. 

아니, 이것은 적대적인 자세를 훨씬 넘어선 행동이었다. 

마치 이예주와 신인류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정확히 선을 긋는 듯한. 이제 좀 친해진 건가, 이제 좀 가까워진 건가 안도하다가도 절대로 마음을 놓지 못하게. 

그녀의 벌어진 입이 스르르 닫혔다. 다른 때 같으면 분에 겨워 ‘나도 네놈 싫다.’ 하고 씩씩대겠건만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그의 시뻘건 눈동자에 숨이 턱 막혔다. 

―주인님은 인간을 증오하시니까여.

팔족들의 도시를 나오기 전 조롱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우린 계약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던 남자 또한 같이 떠올랐다. 

사실 이예주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어렸을 땐 그럭저럭 친구를 잘 사귄 것 같은데, 고2 수학여행 이후에는 모두들 그녀를 피하기 바빴다. 

이곳으로 온 후 처음 겪는 일이 너무나도 많아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것, 관계를 이렇게나 오랫동안 유지한 것, 그리고 그 관계를 끊어 내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그 관계로 인해 이렇게 가슴이 따끔거리는 것까지 모두…… 그녀에겐 모두 처음이었다. 

“……물어보는 것도 안 돼요?”

이예주가 공허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물었다. 

그가 여전히 따갑도록 시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허용할 수 있는 선까지. 그 이상은 넘으려 들지 마.”

“……그 선이 어디까진데요?”

이예주가 우울한 얼굴로 되물었다. 친밀한 관계라 착각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체념에 가까웠다.

“…….”

그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허용할 수 없는 선의 질문인 듯싶었다. 

이예주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허리에 감은 두 팔을 풀고 그의 다리 위에서 주춤주춤 내려왔다. 

그 아주 조그만 움직임에도 시야가 빙글빙글 돌며 헛구역질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잠시 반질반질한 등딱지 위에 손바닥을 대고 몸을 지탱했다가 ‘으허! 으윽!’ 하고 괴성을 지르며 경기 일으킬 듯 놀라 손을 뗐다. 

그러고도 다시 비틀거리며 손을 짚는 원맨쇼를 여러 번 반복했다. 

보다 못한 조롱이가 작작 좀 하라고 말을 꺼낼 때쯤, 허옇게 질린 얼굴의 그녀가 가까스로 균형을 다 잡았다. 

이예주는 최대한 닿는 면적이 적도록 보는 사람조차 아슬아슬하게 몸을 움츠린 채 한숨처럼 작게 속삭였다.

“……모르겠어.”

남자가 무슨 소리냐는 듯 검은 눈썹을 위로 휙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그를 비껴 지나 허공으로 흩어졌다.

“미안한데, 나한텐 너무 어려워요.”

남자는 그녀를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그녀의 요구 사항 또한 어지간해선 모두 들어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정할 땐 한없이 다정했다. 가슴이 설레서 숨 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다 못해 가슴팍을 뚫고 튀어나올 정도로. 

그런데 이렇게 말 한마디에 눈빛부터 변해 버릴 땐 대체 어떤 반응을 취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시린 눈빛을 받아 내는 건, 1000년 전이나 1000년 후나 그녀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예주는 볼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피해 조심스레 몸을 돌려 앉았다. 

코앞에 검은색의 기다란 더듬이 한 쌍이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만 더 이상 헛구역질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진짜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

“…….”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완벽한 침묵 속에 잠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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