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웠다.
신인류가 사는 마을을 침략한 인간들보다, 누이를 버린 멍청한 말더듬이 인간보다, 제 변호 한 번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린 답답한 누이가.
인간에게 속아 한순간에 피식자로 전락한 누이가. 윤기 있는 깃털을 모두 잃고, 비참하고 형편없는 꼴을 한 누이가.
언제나 웃는 모습이 아리따웠던 누이가.
누이가…….
철컥.
감옥지기의 손에 감옥 문이 열렸고 어린 황조롱이의 황금색 눈동자에 체념이 서릴 쯤이었다.
불현듯 어린 황조롱이의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던 누이가 ‘펑!’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황갈색 머리를 한 아가씨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은.
“이번에 제2의 탄생을 맞은 것이 네년이냐?”
“예, 저예요. 저예요.”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감옥지기의 동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아름다운 누이의 모습을 본 그들은 이미 제2의 탄생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다.
인간 남자들의 눈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어서 이리 나오지 않고 뭐해!”
“으윽!”
인간들이 누이의 아름다운 황갈색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갔다.
어린 황조롱이가 노란 부리를 짝 벌리고 누이를 불렀다.
누이. 누이. 누이.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란 힘없는 새의 지저귐뿐이었다.
삐익, 삐익. 구슬픈 새소리가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누이를 데려가려던 감옥지기 한 명이 어린 황조롱이만 남은 쇠창살을 거칠게 걷어찼다.
“이게 미쳤나. 안 닥쳐? 너도 잡혀가고 싶냐?!”
“그러지 마요! 그러지 마요…….”
고운 아가씨의 모습을 한 누이가 애처로운 몸짓으로 남자들을 막아섰다.
그러곤 우는 황조롱이를 따뜻한 금안으로 바라보며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올게. 괜찮아, 엘로.”
“빨리 와!”
남자들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가면서도 누이는 계속해서 어린 황조롱이를 돌아보며 달래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올게. 다시 만나자, 엘로. 엘로…….
* * *
그날 밤 어린 황조롱이 대신 잡혀간 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변성할 것처럼 무섭게 치오르던 어린 황조롱이의 고열은 다음 날 거짓말처럼 내렸다.
부모 황조롱이가 강한 신인류였기에 어린 황조롱이 또한 그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린 황조롱이는 끝내 인간의 모습으로 변성하지 않았다.
신인류들은 어린 황조롱이가 저 대신 잡혀간 누이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 제멋대로 판단했다.
어쨌든 축하받아야 할 어린 황조롱이의 제2의 탄생은 변성 없이 무사히 지나갔고, 다시 지옥 같은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변성하지 않은 어린 황조롱이의 생활에 변화란 없었다.
다만 늦은 밤 날개의 근육통으로 끙끙 앓으며 잠든 그를 쓰다듬어 주는 누이의 손이 없어졌을 뿐이다.
그것 하나 없어진 것뿐인데, 어린 황조롱이는 이상하게 세상이 전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없어졌다. 부모도 누이도, 전부.
신인류들은 그 후로도 수십 년 동안 인간들에게 사육당하며 노예처럼 부려졌다.
말더듬이의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의 아들이 태어나 잔치가 열리던 어느 화창한 날.
이 세계의 주인이 돌아왔다.
감옥의 문이 열리고 신인류들의 자유를 구속하던 족쇄가 풀렸다.
다들 해방의 기쁨에 환호하며 감옥을 벗어날 때, 어린 황조롱이는 족쇄가 풀렸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차가운 감옥 바닥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런 어린 황조롱이의 눈앞에 검은색 가죽신이 멈췄다.
어린 황조롱이는 황금색 눈만 도르륵 굴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환한 빛을 등진 새까만 복장의 남자가 오만한 표정을 지은 채 어린 황조롱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성하려는 본능을 억눌렀군.”
“…….”
“신인류라는 것이 저주스러운가.”
온통 검은색인데도 주인이란 남자에게서는 눈이 부실만큼 환한 빛이 쏟아졌다.
눈이 시려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너무나도 환하여, 어린 황조롱이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면.”
“…….”
“인간들에게 잡아먹히기 두려워서 겁쟁이처럼 동물의 모습 안에 숨은 것인가.”
아니다. 두려워서 겁쟁이처럼 숨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인간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있어 더 빨리 변성했더라면, 인간들이 침략하기 전부터 힘이 있었더라면, 불쌍한 누이를 지켜 주었을 텐데.
더 빨리 변성해서 힘을 가졌더라면. 힘을, 힘을.
“넌 내 힘을 억누를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 쓰지 않았을 뿐.”
마치 어린 황조롱이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남자가 대꾸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자 슬프지도 않은데 어린 황조롱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황조롱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감옥의 쇠창살이 열려 있었고 그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과 검은 복장의 눈부신 남자뿐이었다.
“모두들 인간에게 빼앗긴 터전을 되찾고 그들에게 당했던 수모와 치욕을 되갚아 주기 위해 복수하러 갔지.”
“…….”
“일어나라.”
주인이 명령했다.
“잡아먹히기 전에 먼저 잡아먹어라. 내가 너희들에게 쥐여 준 힘은 그리 형편없는 것이 아니니.”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검은색 복장의 남자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황조롱이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작은 황조롱이가 아니었다.
갈색 머리에 황금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년이 쇠창살을 빠져나갔다.
바깥은 꼭 몇십 년 전과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열려 있는 무기 창고에서 뛰쳐나와 무차별한 학살을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닌 신인류란 점뿐이었다.
수십 년간 인간 마을의 지리와 계급, 무기 사용법 등을 외운 신인류들은 능히 총과 화살을 쏘고 칼과 창을 휘두르며 제 집을 되찾기 위해 인간과 싸웠다.
뜬금없는 신인류들의 반란에 인간들은 하나같이 바삐 도망치기 바빴다.
“사, 살려 주세요! 제, 제발 살려 주, 크아악!”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질려 있었다.
잔인할 정도로 비죽비죽 웃어 대며 신인류들을 닥치는 대로 처형하던 인간들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을 열네댓 살 먹어 보이는 갈색 머리 소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갔다.
“사, 살려 줘. 얘, 얘야! 살려 줘!”
그때 하얗게 질린 인간이 갈색 머리 소년의 다리를 덥석 부여잡았다.
잠시 인간을 내려다보던 소년이 이내 냉정하게 뿌리쳤다.
인간이 더러운 바닥을 나뒹굴었다.
소년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의 정중앙, 다른 집들보다 유난히 크고 화려한 족장의 거처 앞에 도달한 소년은 허겁지겁 그를 막아서는 인간들을 간단히 뿌리치고 거침없이 족장의 거처로 들어갔다.
“족장님! 신인류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어서, 어서 피하셔야!”
“뭐, 뭐야! 무, 무슨 일이야!”
겁에 질려 두툼한 살집이 둘러진 몸을 움츠리고 있던 말더듬이 족장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푹신한 침대로 넘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건지 그의 침실에는 술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참으로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우두머리였다.
“족장님! 빠, 빨리! 억!”
무거운 족장을 부축해 일으키려던 인간 하나가 불현듯 비명을 지르며 푹 고꾸라졌다.
“왜, 왜 그러느냐!”
말더듬이가 찢어질 듯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부축하던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인간의 가슴을 꿰뚫은 날카로운 네 개의 발톱이 보였다.
심장 부근을 옹골지게도 뚫고 들어와 오므리고 있던 발가락들이 서서히 움직이며 섬뜩한 쇳소리를 내었다.
“이, 이, 이게…….”
스르륵 인간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손 대신 맹금의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을 가지고 있는 갈색 머리 소년이 서 있었다.
신체의 일부만 변형한다는 신인류는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더듬이었다.
말더듬이의 두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허, 헉!”
소년의 팔에 달린 검은 발톱에서 인간의 뜨뜻한 피가 뚝뚝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무감정하게 바라보던 소년이 눈알을 굴려 말더듬이를 바라보았다.
훤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안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너, 너,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아여?”
“흐, 흐, 흐허…….”
“내가 누군지 알면 안 죽일게여.”
말더듬이가 무표정한 갈색 머리 소년의 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아이였으나 마치 거대한 곰 앞에 선 것처럼 말더듬이는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그것은 이 괴기한 모습의 소년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일 터였다.
“너, 너, 넌…….”
아리따운 황조롱이 아가씨는 무릎에 말더듬이의 머리를 눕혀 놓고 가끔 노래하듯 그녀의 가족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에겐 자신과 똑 닮은 황금색 눈을 가진 아주 귀여운 동생이 있다고.
그녀는 동생이 잔병치레가 많아 변성할 시기가 늦어지는 것 같다며 걱정하곤 했었다.
아름다운 황조롱이 아가씨의 뇌리에 언제나 가시처럼 박혀 있던 어린 동생.
“너, 넌, 화, 황조롱이 각시님의 도, 동생…….”
“…….”
“……에, 에, 엘로!”
언젠가 들었던 이름을 용케도 기억해 낸 말더듬이가 황급히 소년에게 말했다.
그러나 소년의 표정 없는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잘 아네여? 내가 누구 동생인지.”
“그, 그, 그치만 너, 넌 저번에 잡아먹었던 걸로……!”
“근데 틀렸어여.”
“컥!”
소년이 아직도 인간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말더듬이의 살집 가득한 목을 콰득 움켜쥐었다.
어느새 그의 다른 쪽 손마저 새의 발톱으로 변해 있었다.
기도가 차단되어 시뻘게진 얼굴로 버둥거리는 말더듬이를 여전히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황금안에 언뜻 형형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엘로가 아니거든여.”
“커, 커, 컥! 사, 살려……!”
“난 아무것도 아니에여.”
누이가 죽은 후로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숨을 쉬기 위해 말더듬이가 필사적으로 입을 벌려 뻐끔거렸다.
갈색 머리 소년이 변해 버린 다른 쪽 발톱을 인간의 입 사이로 콱 구겨 넣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야.”
“커덕! 커럭! 컥!”
날카로운 발톱이 말더듬이의 입속에서 서걱서걱 여린 점막을 헤집더니, 기어이 도망가던 혓바닥을 집어 꿰었다.
말더듬이가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목을 움켜쥔 발톱의 힘이 어찌나 센지 금방이라도 살을 뚫고 목에 박힐 것만 같았다.
“난 그냥 용맹한 황조롱이야.”
다시 한 번 다짐처럼 중얼거리던 황조롱이가 발톱에 꿰었던 말더듬이 인간의 혀를 쭈욱 잡아당겼다.
“커헉! 컥! 어어억! 으으, 으아악!”
바닥에 쓰러진 말더듬이는 눈알을 뒤집고 경련했다.
혀가 뽑힌 그의 입에서 피가 바다를 이룰 만큼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황조롱이는 아주 조금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통쾌한 것도 아니었다. 이건 그저 단죄였다.
이 간악한 인간에 대한 단죄.
철퍽.
온몸을 떨고 있는 말더듬이의 몸 위로 황조롱이가 길쭉하고 질척한 혓바닥을 내던졌다.
“당신이 놀린 간악한 혀 때문에 당신 아들도, 당신 아들의 아들도, 그 아들의 아들도 계속해서 혀가 뽑힐 거예여.”
황조롱이가 짓씹듯 내뱉었다.
“대를 잇고 대를 잇고 또 대를 이어도 당신의 후손들은 혀가 없으니 앞으로 그 간사한 혀를 함부로 놀리지 못하겠져?”
“으르…… 으, 으, 으윽…….”
말더듬이의 입에서 피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황조롱이는 끝내 말더듬이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말더듬이를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름다운 누이를 울게 한 것에 대한.
누이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괜찮아. 괜찮아. 금방 돌아올게, 엘로.
말더듬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문득 누이의 마지막 웃음이 떠올랐다.
어린 황조롱이는 마을을 망쳐 놓은 누이가 참으로 미웠다.
그렇지만 누이 또한 스스로가 미워 죽을 것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산 채로 잡아먹는 남편과 그의 가족들을 보며 죽어 가던 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 누이는 부모를 잃고 고향이 파괴된 그 어떤 시련보다도, 자신이 일족을 등지면서까지 선택했던 남자가 고작 이런 버러지였다는 사실에 가장 슬퍼하지 않았을까.
“끄룩…… 꾸룩, 끄윽…….”
―괜찮아. 괜찮아. 금방 돌아올게, 엘로.
그러나 말더듬이를 크게 혼내 줬음에도 불구하고 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황조롱이의 금안이 짙은 황갈색으로 젖어 들어갔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돌아올게. 다시…… 다시…… 만나자…… 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