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멍청한 놈! 황조롱이 같은 새 따위가 어떻게 인간 아가씨가 되겠어!”
형제들은 말더듬이의 바보 같은 말에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
그런데도 말더듬이가 완강하게 고집을 부리자 이번에는 달콤한 말로 말더듬이를 구슬렸다.
“네가 요괴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길만 알려 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하겠다. 그런 다음 우리들은 너를 위대한 족장으로 추대하기로 했단다, 동생아. 너 예전에 유리엘을 좋아했지? 유리엘의 혼기가 꽉 찼다. 네가 족장이 된다면 유리엘의 부모님도 유리엘을 너와 결혼시키겠다고 했다더구나. 저런 요괴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예쁜 유리엘을 설마 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제, 제게는 이미 아, 아내가 이, 있는데요.”
“물론 네 아내는 무사할 테니 걱정 말거라. 유리엘은 첩으로 삼으면 되지 않겠느냐? 위대한 족장은 그리해도 상관없단다, 동생아.”
동생아, 동생아. 너와 같은 인간인 우리들보다 저런 요괴들 따위가 중요하단 말이냐? 동생아, 응?
동생아, 족장이 되려무나. 족장이 된다면 이렇게 후줄근한 집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단다.
요괴들의 마을로 가는 길만 알아내면 네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치겠지. 우리들의 위대한 우두머리가 되어 아름다운 여자를 쟁취하려무나.
형제들은 간악스럽게도 말더듬이의 취약한 외로움을 파고들었다.
그 달콤한 말들을 순진한 말더듬이가 쉽게 물리칠 수 있을 리 없었다.
형제들이 돌아가고 잠시 마을로 떠났던 황조롱이 아가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말더듬이는 황조롱이 아가씨에게 조심스럽게 신인류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숲길을 물어보았다.
황조롱이 아가씨는 처음엔 가르쳐 주지 않으려 들었다.
그러나 말더듬이는 음식을 얻기 위해 가끔 마을로 며칠씩 훌쩍 다녀오는 아내를 위험한 숲길로부터 지키기 위해 마중 나오겠다는 핑계로 황조롱이 아가씨를 설득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그가 형제들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꿈에도 몰랐던 황조롱이 아가씨는 그저 남편의 고운 마음씨에 반해 얼굴을 붉혔다.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며 남편에게 몇 번이나 당부한 황조롱이는 끝내 신인류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다음 날 다시 찾아온 형제들은 여전히 망설이는 말더듬이를 설득했다.
죄 없는 사람들을 헤치려는 게 아니냐는 말더듬이의 말에 형제들이 복장이 터진다는 듯 저희들 가슴을 퍽퍽 내리치더니 이내 애써 웃음 지으며 동생을 타일렀다.
그들이 우리의 것을 모두 빼앗은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 것을 되찾을 뿐이다.
그저 터전을 바꾸는 것뿐이다. 요괴, 아, 아니 동물들이야말로 우리가 살던 산에서 살아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
물론 네 아내는 예외다. 네 요괴 아내는 네가 평생 데리고 살든지 말든지, 우리는 그저 우리가 살 터전만 되찾으면 끝이다.
황조롱이 아가씨에겐 털끝 하나 손대지 않겠다는 형제들의 말에 결국 말더듬이는 동조했다.
산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인간들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굶주림이란 정말 무서웠다. 그것을 면하기 위해 인간들은 수백 년 동안 땅을 일구고 작물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무언가를 심는 족족 땅은 황폐해졌고, 그 주위 식물들은 모조리 시들시들 말라 갔다.
결국 야생에서 나는 나무뿌리나 열매 혹은 버섯 따위를 따먹으며 굶어 죽어 가야 했던 그 비참함.
말더듬이는 가족들과 같이 살았던 이웃 사람들 또한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신인류들이 사는 마을로 직결되는 숲길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 * *
오랫동안 굶주린 인간들은 야수와 다름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들은 길을 알자마자 본능적으로 먹이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것은 신인류 정복 전쟁으로 이어졌다.
생전 처음 겪는 침략에 신인류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대로 스러져 갔다.
몇몇 맹금류와 맹수들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인간들을 해쳤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무기라고는 본래 모습의 이빨과 발톱뿐인 신인류들과는 다르게, 인간들은 신인류들이 듣도 보도 못했던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하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총’이라고 부르는 무기와 화살과 창, 칼 등이 반항하는 신인류들의 여린 살을 가차 없이 쏘고 베어 냈다.
평화로웠던 동쪽 대륙은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인간들은 연승을 거두었고 그들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살기등등해졌다.
신인류들은 숨을 거둘 때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인간들은 마치 사냥하는 기분으로 그들을 마구잡이로 죽여 대고 거리낌 없이 구워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고기는 인간들의 눈을 뒤집히게 만들었다.
더 많은 고기가 필요했다.
반항하는 신인류들은 모조리 인간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신인류들의 피가 튀고, 살이 그을리고 뭉그러졌다.
단숨에 신인류들의 마을을 차지한 인간들은 신인류들이 피 땀 흘려 일군 논밭의 곡식으로 곡주를 만들어 마시며 전쟁의 승리를 축하했다.
잡힌 신인류 포로들은 광장에서 잔인하게 처형한 후 즉시 요리로 만들어 먹었다.
신인류에겐 매일매일이 지옥이었고, 인간들에겐 매일매일이 축제였다.
성인 신인류들의 씨가 마를 때쯤, 약속대로 이 모든 일의 원인인 말더듬이는 위대한 족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말더듬이는 어디까지나 이름뿐인 족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말더듬이는 처음 받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우대와 환영이 눈물 날 만큼 행복했다.
아무도 그를 말 못하는 병신취급하지 않았다. 처음 마셔 보는 곡주는 너무나도 맛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여자들이 새 족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내가 생각날 틈도 없었다. 그는 매일 술과 여자들에 둘러싸여 좀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말더듬이를 앞세워 권력을 손에 쥔 형제들은 그를 대신하여 포로들을 가둘 감옥을 만들고 신인류들에게서 뺏은 마을을 정비했다.
형제들은 말더듬이의 눈과 귀가 되어 그를 외부와 차단했다.
그렇기에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어린 동생을 품에 안은 황조롱이가 감옥에 갇히는 것 또한 전혀 알지 못했다.
감옥에 갇힌 신인류들은 대체로 반항하지 않은 어린아이들과 연약한 여성들뿐이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갇힌 신인류들은 마치 구담으로 전해져 왔던 전래 동화 속 소와 돼지들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인간들의 먹이로 사육당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신인류들의 발목에 무거운 족쇄가 채워졌다.
어린 신인류들부터 어른 신인류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신인류들은 모두 노예로 부려졌다.
아직 인간으로 변성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 또한 사냥과 먹이 채취 같은 노동에 투입되었다.
그중 가장 고된 일은 바다에 나가 하루 종일 날개를 퍼덕이며 각자에게 할당된 물고기를 잡아 오는 일이었다.
어른 신인류도 힘들어하는 그 일에 어린 황조롱이 또한 날개를 가졌다는 이유로 동원되었다.
황조롱이는 바다 사냥을 하지 않는 맹금류였으나 그런 핑계 따윈 인간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무거운 족쇄 때문에 움직임조차 여의치 않았지만 할당된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인간들로부터 무서운 매가 쏟아졌다.
맞아 죽기 싫으면 미친 듯이 물고기를 잡아 와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끔 변성하지 못한 신인류들은 순차적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어떤 인간 무리에게 끌려가, 피나 깃털 따위가 뽑히거나 이상한 약을 강제로 주입당하기도 했다.
인간들은 그들을 의사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다친 곳을 치료해 주고 약을 내려 주는, 신인류들이 알고 있는 의사님과는 전혀 다른 의미인 듯했다.
어느 날 어린 황조롱이와 같이 하루 종일 물고기를 잡고 돌아와 인간 의사에게 불려 갔다 온 박새 한 마리가 온몸에 붉은 두드러기가 다닥다닥 올라온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다.
그 박새는 아직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없을 만큼 약했는데, 인간 의사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감옥으로 돌아왔을 적엔 빨간 머리에, 등에는 잿빛 깃털이 박힌 벌거벗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박새는 제 몸을 인간의 손톱으로 박박 긁었다.
간지러워, 엄마. 엄마, 변할 수 없어. 원래 모습으로 변할 수 없어.
변하지 못한다고 밤새 괴성을 지르며 울던 빨간 머리의 박새는 숨을 거둔 후에야 그토록 원하던 박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린 황조롱이는 박새의 바로 옆 감옥에 있었기에 그 모습을 똑똑히 볼 수밖에 없었다.
박새에 이어 직박구리와 갈매기가 비슷한 증상으로 죽어 갔다.
죽은 새들의 시체는 인간들이 수거해 그들의 반찬으로 올렸다.
그런 끔찍한 나날들이 반복되던 중 인간 의사로부터 괴상한 소문이 흘러나왔다.
인간 모습으로 변성하기 직전의 신인류를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인간 의사는 변하지 않은 신인류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실험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인류를 강제로 변성시키는 실험에 결국 실패했고, 감옥에는 감시인들이 늘어났다.
인간들은 그 헛소리를 당연하다는 듯 신봉했다.
이 세계의 주인이 동물들에게 내린 축복의 힘은 신인류들에게는 제2의 탄생과도 같았다.
신인류들은 각 개체마다 인간으로 변성하는 시기가 제각기 달랐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때가 되면 고열에 시달리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고열에 시달린 후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 신인류들은 주인에게 불만을 가지는 대신 자신의 운명에 수긍하고 남은 삶을 일반 동물과 같이 살아갔다.
인간들은 마치 그때만을 기다려 왔던 것처럼 신인류가 고열에 시달리는 증조만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데리고 갔다.
점점 어린 신인류들이 줄어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들은 마치 짐승처럼 신인류들을 억지로 짝짓기 하게 하여 또 다른 신인류가 태어나도록 사육했다.
변성하는 아이들을 족족 잡아먹어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자, 인간들은 성체 신인류가 불편함 때문에 잠시 잠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만 해도 변성이라 외치며 무조건 끌고 갔다.
노동 시간 이후의 변신은 무조건 제2의 탄생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제 신인류들은 더 이상 그 누구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려 하지 않았다.
어린 황조롱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성하기를 고대하는 신인류들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인간으로 변신은커녕 모두들 노동이 끝나면 본래의 모습으로 제 모습을 숨기기 급급했다.
세계의 주인이 내려 주신 힘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다.
동물의 모습을 한 신인류들로 가득 찬 감옥은 축사나 다름없었다.
다음 날 눈 뜨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신인류들은 이 일의 원인인 어린 황조롱이의 누이를 원망했다.
그것은 어린 황조롱이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의 반대도 무릅쓰고 인간을 반려로 맞이한 누이가 미친 듯이 원망스러웠다.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노동만 해도 충분할진대, 감옥에서조차 신인류들의 원성과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자 황조롱이의 누이는 말이 없어졌다.
아름답던 황갈색 깃털은 빛이 바래고 윤기를 잃었다. 심리적 충격 때문인지 깃털이 빠져 드문드문 구멍까지 생겨났다.
어린 황조롱이는 그런 비참한 모습의 누이가 너무너무 미웠다.
어린 황조롱이의 얼굴엔 미소가 없어졌고, 누이 황조롱이는 말이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삐익 삐익 하는 아름다운 황조롱이 아가씨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어느덧 어린 황조롱이 또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성할 시기가 다가왔다.
어린 황조롱이가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감옥 밖의 인간들은 축제 시기였기 때문에 감시인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이런 때일수록 제2의 탄생을 맞는다면 꼼짝없이 인간들에게 뜯어 먹히리라.
끙끙 앓으면서도 어린 황조롱이는 내내 겁에 질려 있었다.
그때, 감옥 문이 열리면서 화려한 옷을 입은 인간 무리가 들어왔다.
“더, 더, 더럽잖아.”
이름뿐인 족장이 된 말더듬이었다.
그간 어찌나 잘 먹어 댔는지 덩치는 두 배로 커져 있었고 얼굴에는 기름이 좔좔 흘러 대었다.
그 돼지 같은 인간 옆에는 금발의 아리따운 인간 여자가 철썩 붙어 있었다.
“내, 내, 오늘 내 사랑스러운 아내 유, 유리엘의 생일을 맞아 치, 친히 제, 제2의 탄생을 맞은 도, 동물을 잡으러 와, 왔다.”
“아이참, 이이는.”
말더듬이가 더듬더듬 말을 하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입을 가리며 즐겁게 웃었다.
“머, 먹고 싶은 것이 있소, 부, 부인?”
“며칠 전부터 황조롱이 새끼 하나가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여자의 하늘하늘한 목소리에 감옥 한구석에 누워 있던 어린 황조롱이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화, 화, 황조롱이? 화, 황조롱이는 안 된다고 했잖아…….”
“당신! 전 아내인지 뭔지 그 요괴 년 때문에 그래요? 그 여잔 이미 죽었다고 그랬잖아요!”
“그, 그래도…….”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말더듬이의 목소리에 여자가 순식간에 얼굴을 표독스럽게 바꾸고 고함을 질렀다.
말더듬이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두터운 목을 쑥 움츠렸다.
“어쨌거나, 난 그 잘난 황금 눈동자 한번 산 채로 잡아먹어 볼 거예요. 그러니 딴소리하지 마요, 당신은!”
그렇게 외친 여자가 “여봐라. 제2의 탄생을 맞은 황조롱이를 족장님께 진상하지 않고 뭐하느냐.” 하고 감옥지기를 재촉하곤 휙 몸을 돌려 감옥을 빠져나갔다.
“가, 같이 가, 유, 유, 리엘!”
말더듬이가 그 뒤를 쫓아 나갔다.
저벅저벅. 감옥지기가 누이와 어린 황조롱이가 갇혀 있는 쇠창살로 걸어왔다.
어린 황조롱이는 끙끙 앓는 와중에도 바짝 얼어붙었다.
부모를 죽게 만든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신인류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 누이에 대한 원망이 열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어린 황조롱이의 뇌리를 잠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