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67)화 (68/319)

동쪽 대륙의 광활한 숲 너머에는 인간들이 숨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의 초입이 있었다. 

그 주변에는 페어리니틀과 만드라고라 같은 진귀한 식물들이 많이 자라 있었다. 

신인류들은 그곳을 ‘약초 언덕’이라고 불렀다. 

이전의 신인류들은 다치거나 병이 들면 그곳으로 달려가 약초들을 캐어 달여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도 나무만 보면 들이박는 습성을 고치지 못한 딱따구리가 편두통 때문에 약초 언덕에 올랐다가, 그곳 꼭대기에서 오두막을 짓고 있는 말더듬이 인간을 발견했다. 

신인류들이 모여 살던 마을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인간을 다시 산 위로 쫓아내자는 주장부터 인간을 제거하고 약초 언덕을 되찾자는 소리, 그리고 이참에 아예 산까지 점령하자던 호전적인 목소리까지. 

신인류들은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하지만 먹이 사냥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때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싸움을 나서서 하지 않던 그들은 끝내 약초 언덕을 포기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이후로 신인류들은 그 신비한 약초들을 떠올리며 입맛만 다실 뿐, 약초 언덕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숲 반대편으로 가는 길마저 차단해 놓고 그곳으로의 진입 자체를 금지했다.

그 금기를 황조롱이 가족 또한 열심히 지켰다. 

하지만 그즈음,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기 황조롱이가 이유 모를 신열로 밤낮을 앓는 일이 생겨났다.

첫째를 낳은 후 몇 년 만에 얻은 귀하디귀한 아기였다. 

아직 변성(變性)조차 하지 않은 아기를 위해 부모 황조롱이는 하루 종일 불편한 동물의 형태를 한 채, 번갈아 가며 들쥐를 잘게 찢고 씹어서 아기 황조롱이에게 먹여 주었다.

하지만 아기는 채 두 모금을 넘기지 못하고 모조리 토해 내었다. 

아기의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헐떡댔다. 

안절부절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의 얼굴은 나날이 시름에 잠겨 갔다. 

아름다운 황갈색 깃털을 가진 황조롱이는 죽어 가는 동생과 슬픔에 잠긴 부모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갈색의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아가씨는 ‘펑!’ 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해가 쨍쨍히 내리쬐는 어느 낮에 금기의 숲길을 넘어 약초 언덕이 있는 곳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신인류들의 관리가 사라진 숲 반대편은 무성한 풀들이 자라 정글을 이룬 상태였다. 

어둡고 음침한 숲의 모습에 황조롱이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동생을 떠올리며 애써 무서움을 달랬다.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처럼 가지를 축축 힘없이 늘어뜨린 나무 사이를 요리저리 파고들며 열심히 작은 날개를 파닥이자, 금방 페어리니틀의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동생의 열을 내릴 약초는 페어리니틀이 아니기에 약초 언덕을 더 높이 올라야 했다. 

열심히 날개를 퍼덕이느라 숨이 거칠어질 무렵, 황조롱이의 날카로운 눈에 붉은 열꽃이 포착됐다. 

황조롱이는 화색을 지으며 쏜살같이 내려갔다. 

인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황조롱이는 안심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오므려 조심스럽게 붉은 열꽃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열꽃의 뿌리를 채 뽑기도 전에 철컹하고 거친 쇳소리가 들리더니 왼쪽 발목에서 찢어지는 통증이 엄습했다. 

덫에 걸린 것이다.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황조롱이를 말더듬이가 발견했다. 

“새, 새다!”

다가오는 말더듬이 인간을 바라보는 황조롱이의 황금색 눈동자가 겁에 질렸다. 

인간들은 동물을 산 채로 뜯어 먹는다는 딱따구리의 무시무시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가온 말더듬이는 황조롱이를 산 채로 뜯어 먹지 않았다. 

게다가 발목을 파고든 덫을 풀어 주며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미, 미, 미안해요, 새, 새님. 며, 며칠째 굶어서 토끼라도 잡을 수 있을까 해서…….”

우물쭈물 변명하던 말더듬이는 주변의 ‘열꽃’이라고 불리는 약초와 타박상에 쓰이는 약초를 모두 뽑아서 황조롱이에게 안겼다. 

황금안을 되록되록 굴리고 있는 황조롱이를 향해 말더듬이가 수줍게 웃었다.

“여, 여, 여기 사는 새님들은 모두 똑똑해요. 약초를 다, 다, 아는가 봐요.”

황조롱이는 말더듬이가 안겨 준 약초를 발톱으로 보듬어 움켜쥐고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말더듬이가 날아가는 황조롱이를 향해 외쳤다.

“야, 야, 약초가 필요하면 어, 언제든 와요! 꼬, 꼬, 꼭이요!”

말더듬이는 황조롱이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오랜 시간 제자리에 멍청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멀리 있는 기척도 기민하게 알아채는 용맹한 황조롱이의 입가에 끝내 미소가 걸쳐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황조롱이가 가져온 열꽃을 달여 먹자마자 어린 동생의 열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황조롱이의 동생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미열을 앓던 마을 안의 몇몇 아기들 또한 쉽게 잔병을 떨쳐 냈다. 

금기 구역인 약초 언덕까지 다녀온 것도 모자라 왼쪽 다리까지 다쳐 온 황조롱이는 크게 노여워하는 부모님과 어른들 앞에서도,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와서 혼이 났다. 

―또, 또 와요, 똑, 똑똑한 새님.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던 말더듬이 인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게 찧은 약초를 다친 발목에 붙이면서 황조롱이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다. 

*       *       *

그 후 황조롱이는 종종 약초를 구하러 약초 언덕을 올랐다. 

황조롱이를 발견할 때마다 말더듬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황조롱이와 말더듬이는 점점 가까워졌다. 

말더듬이는 황조롱이를 말 못하는 미물로만 여긴 건지, 아니면 천성이 바보라서 그런 건지 꽤 말을 많이 붙여 왔다. 

말더듬이는 본디 가장 높은 산에서 인간들과 섞여 살았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밥만 축낸다며 쫓겨났다고 했다. 

산을 내려오자 괴롭히는 못된 인간들은 없어졌지만, 대신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에 시달려야 했다. 

같이 살던 인간들이 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다시 산을 올랐으나, 갈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돌팔매질과 험한 욕설뿐이었다. 

상처받은 말더듬이는 결국 약초 언덕에 완전히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딴곳에 홀로 남겨져 느끼는 고독이란 시간이 지나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쓰게 다가왔다. 

그런 와중에 황조롱이가 자신을 찾아와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듬더듬 거리며 수줍게 고백하는 말더듬이의 표정에선 아련한 외로움과 고통이 느껴졌다. 

혼자라는 외로움 때문인지 말더듬이는 하염없이 황조롱이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황조롱이는 말더듬이가 거의 매일같이 약초 언덕 꼭대기에 주저앉아 자신이 날아올 숲을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제대로 먹지 않는 건지 커다란 덩치의 말더듬이는 날이 갈수록 말라 갔다. 

하루는 몰래 숨어서 지켜본 결과, 몇 개 놓지 않은 덫으로 간신히 잡은 토끼나 다람쥐 따위도 연신 미안해하며 놓아주는 멍청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조롱이는 착하지만 때때로 바보 같을 정도로 순박한 이 인간 남자를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말더듬이가 자신이 약초를 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자신도 그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며칠 내내 어떤 식으로 말더듬이를 도와줄지 고민하던 황조롱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그 답을 찾았다. 

황조롱이를 기다리지 않을 때면 말더듬이는 오두막 옆에서 삽과 호미 따위로 무언가를 심고 기르는 듯했다. 

그러나 매번 싹이 트기도 전에 땅이 황폐해지면서 심어 놓은 작물들이 말라 죽었기 때문에, 말더듬이는 계속해서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 못했다. 

이 세계의 위대한 주인께서 인간들의 생존을 돕는 모든 것들을 금지했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황조롱이는 그가 농사를 짓는 시간마다 숲속에서 몰래 날아와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남자의 오두막 안에 밥상을 차려 놓았다. 

호미로 열심히 땅을 갈고 온 말더듬이는 방 한가운데에 떡하니 차려져 있는 진수성찬에 까무러치게 놀랐다. 

입에 댄 지 까마득한 고기부터 시작해서 귀한 생선 반찬까지. 

대체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싶어 오두막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으나 오두막에는 처마에 앉아 ‘삐익 삐익’ 노래하는 황조롱이 한 마리와 자신밖에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방 안을 바라보던 말더듬이는 그날 결국 차려져 있는 밥상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더듬이를 비웃듯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잠시 오두막을 나갔다 들어오면 방 한가운데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말더듬이는 자신에게 이런 과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누구인지 꼭 찾고 싶었다. 

어느 날, 말더듬이는 농사를 지으러 가기 위해 호미를 들고 나가는 척하며 오두막 뒤에 숨어서 자신의 방을 지켜보았다. 

말더듬이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숲속에서 낯익은 황조롱이가 포르르 집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잠시 방 한가운데에 앉자 퍼드덕퍼드덕 날개를 떨던 황조롱이는 ‘펑!’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곳에서 황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리따운 아가씨가 튀어나왔다. 

말더듬이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만큼 휘둥그레 홉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름다운 황조롱이 아가씨가 남자의 방 안에서 서둘러 움직이자, 금세 뚝딱뚝딱 밥상이 차려졌다. 

정성스러운 손짓으로 찬이 식지 않도록 밥상 위에 천을 덮은 황조롱이 아가씨가 뿌듯한 얼굴로 뒤돌아서서 말더듬이의 방을 빠져나갈 때였다. 

말더듬이가 숨어 있던 곳에서 황급히 뛰어나와 황조롱이 아가씨의 손을 부여잡았다.

“아, 아, 아가씨! 가, 가, 가지 마요!”

“어머나!”

황조롱이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 말더듬이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숨이 멎음을 느끼며 말더듬이가 용기를 쥐어짜 그녀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가, 가지 마요! 나, 나랑 살아요, 화, 황조롱이 아가씨! 세, 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 신부로 만들어 줄게요. 나, 나랑 살아요!”

말더듬이의 절박한 외침에 황조롱이 아가씨가 얼굴을 붉혔다. 

밝은 황금색 눈동자를 흔들며 잠시 말이 없던 황조롱이 아가씨가 이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로운 말더듬이에게 예쁜 황조롱이 아내가 생겼다. 

황조롱이 아가씨를 얼싸안은 말더듬이는 산을 내려온 이후 처음으로 느낀 행복에 활짝 웃었다. 

비록 가난하고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아내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각시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말더듬이가 몇 번을 다짐하듯 되뇌었다.

“화, 화, 황조롱이 각시님.”

첫날밤, 황조롱이 아가씨를 각시라고 부른 말더듬이가 쑥스러운 듯 푹 고개를 수그렸다. 

바보 같지만 더없이 순박한 말더듬이의 그 모습이 황조롱이 아가씨를 웃게 만들었다. 

비록 부모를 포함한 마을 신인류 어른들의 무지막지한 반대에 부딪혀 마을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으나, 이 착한 사람을 데리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며 살다 보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황조롱이 아가씨는 생각했다.

*       *       *

불행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급박하게 찾아왔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하여 황조롱이가 마을에서 열심히 곡물과 음식을 얻어 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풍족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산을 올라오지 않는 말더듬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했던 말더듬이의 형제들이 찾아왔다. 

말더듬이의 오두막집에 들어선 형제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매번 바보 같은 짓을 일삼아서 산에서 쫓겨난 말더듬이가 매끼마다 떡 벌어진 찬을 먹는 것도 모자라, 아름다운 아내까지 낀 채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속에선 먹을 것이 모자라 수천 명의 인간들이 굶고 있는데, 다 먹지 못해 밥을 남기는 말더듬이를 보자 형제들은 불뚝 샘이 났다. 

그들은 말더듬이에게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말더듬이는 순박하게 웃으며 황조롱이 아가씨와 그녀가 살던 마을에 대해 털어놓았다. 

황조롱이 아내가 차려 준 밥상을 와구 와구 게걸스럽게 입에 쑤셔 넣은 형제들은 황급히 산으로 돌아가 다른 인간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그때까지 산 아래가 아직 용암으로 들끓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인간들은 당장 내려가자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형제들이 이어서 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동물들의 이야기에 모두들 경악했다. 

말더듬이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마치 인간처럼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대륙에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산속에 숨은 인간들은 분노했다. 

신인류의 논과 밭, 집, 하다못해 농기구 하나까지 모두 다 자신들의 것을 빼앗긴 것만 같았다. 

인간들은 하찮은 동물들로부터 터전을 도로 빼앗아 와야 한다고 한데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약초 언덕에서 신인류들이 사는 마을까지 당도할 숲길은 꽁꽁 숨겨져 있었고 신인류들만이 그 길의 입구를 알았기 때문에, 인간들은 당장 내려가고 싶어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고민 끝에 형제들은 다시 한 번 산을 내려가 말더듬이를 찾았다. 

형제들은 사악한 말로 말더듬이와 그의 아내를 이간질했다.

“네 아내는 사실 요괴다. 너 같은 멍청이를 남편으로 데리고 사는 것을 보아 널 살찌워 잡아먹으려 함이 틀림없어! 그러니 잡아먹히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처음 형제들의 말에 말더듬이는 사색을 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형님들! 내, 내 아내는 요괴가 아니야! 내, 내 아내는 화, 황조롱이 아가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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