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안녕, 조롱이
세기말 용암 폭발 이후, 이 세계에서 많은 대륙이 사라졌다.
인간들이 살던 땅들은 부글부글 끓는 용암에 녹아 한순간에 재가 되어 버리고, 용솟음치는 파도에 쓸려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했다.
땅덩어리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덩어리진 채 해안가를 둥둥 떠다니는가 하면, 지하 깊숙한 곳부터 솟구친 용암 때문에 대륙이 융기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파른 산을 형성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뜨거운 용암이 닿지 않는 높은 곳으로 높이높이 도망쳤다.
그들은 오랜 시간 들끓던 용암이 마침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것을 멈추고 굳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체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
들끓는 용암이 멈춘 대륙 위에는 어느 순간부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 소록소록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 부를 수도 동물이라 부를 수도 없는 기이한 괴수들.
어쩔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어쩔 때는 동물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몸을 변성할 수 있는 반인반수.
검은 파편의 힘을 받아 수명도, 힘도, 지능도 이전에 비해 월등해진 생물체들이 대륙에 자리를 잡았다.
검은 파편은 그들을 신인류라 일컬었고, 새로 태어난 신인류들은 검은 파편을 주인으로 섬겼다. 주인이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딱 한가지였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인간처럼, 아니 인간보다 더 발전하며 생존하라.
신인류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무리를 지어 대륙 각지에 터를 잡았다.
인간만큼, 어쩌면 인간보다 더 진화된 그들은 새로운 땅에 쉽게 적응했다.
전쟁에 전쟁을 거듭하며 하나의 종으로 진화해 왔던 초기 인류와는 다르게, 신인류들은 유혈 사태 한 번 없이 순조롭게 진화했다.
그들의 먹이 사슬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까지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체 수는 많지만 약한 것들은 그보다 수가 적은 강자에게 잡아먹혔고, 강한 것들은 더 강한 천적에게 잡아먹혔다.
막 진화한 동물들의 관계는 그렇게 더없이 완벽한 피라미드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산속에서 흙 뿌리를 캐어 먹으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을 때, 신인류들은 농사짓는 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신인류들의 변천과 진화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신인류의 농사 혁명이 일어났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에 익숙해졌고, 배고픔에 굶주려 굳이 무자비한 사냥과 생식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되고 도구를 만들자 육식을 즐기던 몇몇 신인류들이 육식을 포기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물론 그렇지 않은 종도 있었다.
황금빛 갈기의 사자들은 쉽게 인간 모습의 형태에 적응하여 인간처럼 불로 익힌 음식을 먹는 반면, 얼룩 점박이 하이에나들은 신인류임에도 불구하고 야수의 형태를 고집하여 지나가는 물소를 산 채로 잡아먹곤 했다.
신인류는 초기 개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지만, 계약의 힘과 종류에 따라 인간으로 변신할 수 없는 일반 동물을 낳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한 종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진화에서 도태되어 결국 본래의 일반 동물 개체로 퇴화되었다.
그렇게 신인류들은 제각각의 형태를 가지고 인간이 없는 대륙을 마음껏 점령해 갔다.
그중에서도 바다를 앞에 두고 아름다운 숲을 등지고 있는 동쪽 대륙은 조류인 신인류들이 살기엔 더없이 알맞은 유토피아였다.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작은 설치류나 곤충 같은 먹이들이 넘쳐 나는 풍요로운 숲.
비록 인간들이 숨어 사는,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과 밀접해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으나, 인간들은 산에서 내려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날개를 가진 신인류들은 대부분 동쪽 대륙에 터를 잡고 진화했다.
그리고 그것은 황조롱이 가족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