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66)화 (6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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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꺽…… 찔꺽, 쩌억…… 

시커먼 것들이 야들야들하고 여린 살 속을 힘껏 파고들었다. 

배 속의 내장과 식도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시꺼먼 것들로 꽉꽉 메워져 있어 바람 한 점 파고들 틈이 없었다. 

몸 전체에 수많은 구멍들이 뻥뻥 뚫려 있었다. 

내장과 창자를 바글바글 파고든 것들이 시뻘건 속살 깊숙한 곳에 있는 힘껏 알을 깠다. 

이미 오른쪽 맹장은, 막 태어난 좁쌀만 한 것들이 점령하고 있는 상태였다. 

“으…… 흐…….”

찔쩍, 살과 살이 맞물리는 척척한 소리가 나더니 오른쪽 눈에서 무언가 스스슷 기어 나왔다. 

그것이 눈 밑에 철썩 달라붙어 완전히 떨어져 나갈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시금 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생살을 파헤치고 그 속으로 엄지손가락만 한 것이 맹렬히 파고들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통렬한 고통이 엄습했다.

“흐어, 흐어어……!”

“꼴이 볼만하군.”

온몸에 구멍이 뚫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족장의 위로 비릿한 비웃음이 떨어졌다.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고통 때문에 실핏줄이 모두 터져 시뻘게진 왼쪽 눈동자가 제 꼴을 비웃은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둡고 냄새나는 시궁창에 처박혀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자신을 비웃는 자는 너무나도 환한 빛 아래 우뚝 서 있어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드문드문 보이는 새까만 머리와 복장으로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뿐이었다. 

“흐으…… 으으!”

시궁창에 처박힌 족장의 왼쪽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거세게 부릅떠졌다. 

무어라 외치기 위해 족장이 입을 벌렸으나 벌린 입에서는 말 대신 자꾸만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그 끔찍한 일련의 모습을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보던 람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걱정 말거라. 네가 네 일족들을 처먹고 쌓은 힘과 이 도시를 빼앗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흐어, 흐으…….”

“아니, 빼앗을 이유가 없지. 네 수명이나 마찬가지인 것들이 아닌가. 넌 이 도시가 멸망할 때까지 영원히 지배자로 남을 것이다. 물론 네 동료들도 마찬가지지. 곧 너와 같은 꼴로 이 더러운 곳에 처박힐 테니 외로울 일도 없을 테고.”

“흐, 흐으, 으으……!”

“게다가 내 자비를 더 베풀어 네 일족 모두가 널 알아볼 수 있도록 네 얼굴 겉가죽만큼은 그대로 보존하라 친히 일렀다.”

남자가 자비롭게 웃으며 덧붙였다. 

남자의 얼굴은 역광 덕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유일하게 시뻘건 눈동자만이 형형히 번뜩였다. 

재밌어 죽겠다는 그 눈동자가, 여자들을 채찍질하고 그 피를 빨아 먹으며 희열을 느끼던 자신의 눈동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오른쪽 눈에서 다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찔꺽찔꺽, 누군가 칼로 눈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과 더불어 또 다른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알 속으로 파고들었다. 

족장이 짐승 우는 소리를 내었다.

“아, 미안하군. 오른쪽 눈은 실수다.”

유쾌한 어투로 마지막 말을 뇌까린 검은색 남자가 산뜻하게 뒤로 돌았다.

“……으허, 으흐흡! 으흡! 그으흐!”

가지 마! 가지 마악! 검은 파편, 검은 파편! 

족장이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붙잡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입을 벌릴 때마다 쏟아지는 것은 검은 뭉치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라 치면 날카로운 더듬이로 살갗을 파고들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의 고통을 남겼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궁창 속의 팔족 족장은 시간이 멈춘 도시의 영원한 지배자가 되었다. 

도시의 구석에 처박혀 있는 쓰레기 처리장을 등진 람이 썩은 내가 진동하는 그곳을 빠져나오던 때였다. 

멀리서 한 무리의 여자들이 무언가를 질질 끌며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간밤에 격렬한 격투 대회라도 있었던 듯 여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성한 데 없이 푸르뎅뎅하게 죄 터져 있었다. 

그중 가장 앞장서서 무리를 통솔하던 금발 머리가 람을 발견하곤 우뚝 멈춰 섰다. 

남자의 시뻘건 눈이 퍼렇게 부어올라 있는 그녀의 얼굴로 향하자 흠칫하던 여자가 이내 결심한 듯 가까이 다가왔다. 

여자가 꾸벅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곤 마른침을 연신 삼키는 듯하더니 다시금 결의를 다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팔족 여인들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검은 파편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동요 없이 숙여진 금발 머리채를 내려 보던 람은 한마디를 내뱉고는 그대로 여자를 스쳐 지나갔다.

“도와준 적 없으니 착각하지 마라.”

생각보다 차가운 남자의 발언에 허리를 숙인 채 그대로 굳어 버렸던 금발 머리가 서둘러 뒤로 돌아 휘적휘적 걸어가는 검은 뒤통수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 그래도……! 선대들은 시간을 멈췄기에 검은 파편 당신이 우리 땅에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여겼어요!”

“…….”

“세기말 용암 폭발 이후 시간이 멈춘 서쪽 대륙에 일찍이 들어오실 수 있었음에도 1000년간 팔족을 멸족시키지 않은 것은…….”

“…….”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그런 게 아닌가요?”

약간의 희망이 담겨 있는 여자의 외침에 람의 걸음이 뚝 멈췄다. 

그가 천천히 뒤돌아 금발 머리 여자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여자가 눈동자에 간절함을 가득 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람의 미간이 설핏 찌푸려졌다.

“내가 왜 하찮은 네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네? 그, 그럼…….”

“너희 인간들은 이미 새장에 갇힌 새를 사냥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가?”

람이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금발 여자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네 선대들이 시간을 멈춘 탓에 너희 일족은 스스로를 도시 안에 가뒀다.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다리족을 멸족시키고 난 후에 이 땅에 갇힌 네놈들이야 언제든지 없앨 수 있는 일이지. 게다가…….”

“…….”

“너희 일족은 이 도시 안을 점령한 것이 네놈들뿐이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군.”

남자의 단호함에 금발 여자가 날카롭게 숨을 들이켜며 두 눈을 커다랗게 홉떴다. 

도시 안을 점령한 게 팔족뿐만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이 도시에서 1000년을 살아온 자신들인데 대체 또 누가……. 

그때 여자 한 명이 축 늘어진 커다란 남자의 발을 질질 끌며 정적에 감싸인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남자가 끌려간 자리에 주먹만 한 바퀴벌레 떼들이 툭, 투둑 떨어져 시멘트 위로 검은 흔적을 만들었다. 

람이 시뻘건 눈동자로 그것을 흘낏 눈짓했다.

“저들의 수는 처음부터 너희 머릿수의 배를 훨씬 웃돌았지. 간밤에 똑똑히 보았지 않느냐. 이제 저들이 한 번 들고 일어나면 너희 따위는 이 도시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

“그러니 나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기 전에 아직까지 네놈들을 살려 두고 보금자리까지 나눠 준 저들에게 감사인사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군.”

그 말을 끝으로 람은 경악으로 일그러진 여자만을 남겨 둔 채 다시금 휘적휘적 걸어갔다. 

두근두근, 인간 여자의 기척이 느껴진다. 

규칙적으로 느릿하게 뛰던 심장이 점차 빨라지는 것으로 보아 곧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러곤 간밤처럼 빽빽 울며 자신을 찾겠지. 

제 품을 파고들던 어린 인간을 떠올리던 람이 순식간에 풀어진 얼굴로 스리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은 또 어떤 깜찍한 짓을 하고 놀려나. 

너무도 단순해서 알아맞히기 쉽다가도 조그만 틈을 보이면 예측 불허의 사고를 치는 인간 여자 때문에 그는 요즘 심심할 틈이 없다. 

인간 여자에게 가기 위해 그의 걸음걸이가 점차 빨라지던 그때였다.

“……구, 구원자님은! 아니, 예주 양은 괜찮은가요?”

뒤에서 금발 여자가 다시금 소리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죠!”

“…….”

“예주 양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꼭이요! 검은 파편님! 검은 파편님!”

애타는 여자의 목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람은 계속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마음먹었다. 

인간 여자를 품에 안고, 음침하고 재수 없는 이 저주받은 땅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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