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47)화 (47/319)

그들은 울퉁불퉁한 도로를 따라 꽤 오랫동안 걸었다. 

블록이 바뀌고 몇 개의 눈에 띄는 건물들을 지나치자 난장판 같던 주변은 어느덧 사라졌다. 

도시 안쪽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1000년 후의 도시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예주가 살던 현대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 되게 으스스하다, 조롱아. 사람도 없으면 이건 다 빈집이란 거잖아? 멀쩡한 집들 놔두고 사람들은…… 헐, 저건 또 뭐야?”

산만하게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확인하던 그녀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섰다. 

“뭐가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롱이 역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이예주가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하늘색 건물을 가리키며 약간 겁에 질린 목소리를 내었다.

“건물이 멀쩡한 것도 아니네? 여기 사람들은 건물에 왜 저딴 장식을 해 두고 그래? 기분 나쁘게…….”

그녀의 손가락 끝이 하늘색 건물, 정확히 말해서 건물 외벽에 못 박혀 있었다. 

건물 외벽에 입체적인 인물 조각이 있었다. 허공에 두 팔을 뻗은 남자상이었다. 

경악에 가득 찬 채 홉뜬 조각의 눈이 너무 생생해서 기괴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했다. 

길거리 페인팅, 뭐 그런 것의 일종인가 싶어서 조각상을 자세히 훑어보던 와중 조롱이가 반대쪽 건물을 가리키며 여상한 태도로 말했다.

“아, 저거여? 저기도 있어여.”

이예주는 조롱이의 말에 휙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멈춰 선 회색 조각상이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계단을 걸어 내려올 것 같은 포즈였다. 

멀리서 보거나 혹은 밤에 보면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크기가 사람과 비슷했다. 

“저기두여.”

조롱이가 이번엔 그들이 있는 곳보다 더 앞쪽 도로를 가리켰다. 

흰색 가로등 밑단에 붙어 있는 등을 지고 서 있는 여자상이었다. 

역시나 잘못 보면 걸어가는 사람으로 보일 만큼 정교했다. 

“하…… 취향 진짜…… 이건 진짜 독특한 게 아니야. 미래엔 이딴 입체적인 게 유행이란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이예주가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그러게여.”

조롱이가 동조했다.

“인간들은 참 이상해여. 저런 걸 왜 곳곳에 만들어 놓져? 예전에 왔을 때보다 더 늘은 것 같아여. 그땐 저 하늘색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 와 봤어?”

“주인님 따라서 엄청 예전에여. 주인님이 이런 조각상이 나올 때쯤이면 팔족들이 사는 근거지에 거의 다 도착한 거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여. 저기도 있네여. 아마 곳곳에 찾아보면 재밌게 생긴 게 많을 거예여.”

그가 이번에는 가로등보다 더 멀리 있는 소화전을 가리켰다. 

무릎만 한 크기의 소화전 옆에서 빨간 남자 조각상이 소화전 밸브 쪽에 머리를 박은 채 거의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흡사 소화전 밸브 속으로 머리채가 흡수되는 것 같았다. ‘다른 쓸모가 있겠지.’ 하고 좋게 봐줄 수 없는 괴의한 형상이었다. 

이예주의 미간이 한층 더 깊어졌다. 

“힝, 그래도 보고 싶다고 혼자 막 돌아다니면 절대 안 돼여. 알았져? 누가 쥐도 새도 모르게 예주 누나 잡아가면 어떡해여?”

“보러 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 가.”

조롱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부정했다. 

도시가 꽤 컸기에 팔족들이란 인간 무리도 엄청 클 줄 알았는데 근거지가 따로 있다는 조롱이의 말로 보아 꼭 크지만도 않은 듯싶었다. 

곳곳에 솟아 있는 공감할 수 없는 괴상한 조각상들을 바라보며 이예주는 사람들의 흔적에 대한 안도보다도 또 어떤 미친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먼저 느꼈다. 

“이딴 것 만들 시간에 그 히카톤인지 뭔지가 부셔 놓은 곳이나 복구할 것이지, 대체가…….”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금 발걸음을 떼었다. 

도시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괴하기 짝이 없는 조각상은 군데군데 알차게 위치해 있었다. 

하나씩 등장하는 괴상한 인간 조각상들 때문에 이예주는 걷는 내도록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불안한 표정을 여실히 드러낸 채 주인 모를 도심 한가운데로 자꾸만 몸을 밀어 넣으며 말없이 걸었다. 

그녀가 자신과 조롱이를 제외한 다른 인기척을 알아챈 것은 보도블록 위에 대자로 엎어져 있는 조각상을 막 지나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저벅저벅, 타닥. 저벅저벅, 타다닥. 

어느 순간부터 조롱이와 자신의 단조로운 발걸음 소리에 불협화음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있었다. 

이예주는 서서히 발걸음을 늦췄다.

“조롱아. 이상한데? 어디서 자꾸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예주 누나! 이리로……!”

“히익!”

걸음을 늦춘 이예주의 손목을 조롱이가 불쑥 낚아채 잡아당겼다. 그녀가 괴성을 지르며 조롱이 쪽으로 끌려갔다. 

“뭐야? 뭐야?!”

이예주가 화들짝 놀라 퍼뜩 제가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잡으려고 했던 듯 빠싹 메마른 손 하나가 허공에 멈춰 있었다. 

사막에서 보았던 인간들만큼이나 남루하고 비루먹은 행색의 남자아이 하나가 초점 없는 눈으로 서 있었다. 

조롱이의 또래 정도 되었을까. 

커다랗게 치켜뜬 눈으로 소년을 자세히 뜯어보던 이예주는 문득 느껴지는 다른 시선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이 짝 벌어졌다.

“뭐, 뭐야? 이, 이 사람들 뭐…….”

이곳저곳에 포진되어 있는 조각상을 관찰하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한눈에 봐도 대략 스무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지 같은 몰골의 사람들이 어느덧 이예주와 조롱이의 뒤를 잔뜩 뒤따르고 있었다.

“대, 대체…… 이 사람들 언제부터…….”

그녀가 새된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냈다. 조롱이가 그런 그녀를 힐끗 보며 제 품을 뒤적거렸다.

“팔족 땅에 기생하는 인간들이에여. 서쪽 대륙에 오는 존재들한테 구걸해서 얻어먹고 살아여.”

“그럼 조용히 와서 구걸할 것이지, 왜 사람 간 떨어지게 소리 소문 없이……!”

“히잉, 사막에서 떠나기 전에 잘 챙겨 넣었는데 어디 있지…….”

아이와 어른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무리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서울역 노숙자 뺨을 칠 만한 행색이었다. 

게다가 이예주와 조롱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멍한지,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이 많은 인원이 이예주와 조롱이의 뒤를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잘도 밟았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원래 이렇게 눈빛에 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법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들기 마련인데……!

“야, 조롱아. 이 사람들 뭐야? 어떻게 좀 해 봐……!”

“잠깐만여. 여기 어딘가에…….”

그들은 이예주와 조롱이를 둘러싸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애매하게 그들의 앞에 층층이 늘어서 있기만 했다. 

그녀가 동요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제 가슴을 뒤적이던 조롱이가 품에서 무언가를 휙 꺼내 들었다.

“아! 여기!”

드디어 조롱이가 무언가 조치를 취하겠다 싶은 마음에 이예주는 얼른 그 곁에 붙었다. 

아무렴, 남자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조롱이와 자신만 덜렁 이곳에 보낼 리가 없을 테다. 

암,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그렇게 무지막지한 놈은 아니었지 싶다. 

겪어 본 적도 없는 남자의 따뜻한 배려를 쥐어 짜내며 이예주는 애써 조롱이를 믿었다. 

조롱이가 드디어 품에서 꺼낸 주머니의 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줌 크게 집더니 비둘기에게 모이 뿌려 주듯 사람 무리에게로 그것을 촤악 뿌렸다. 

그 모습이 개선장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당당하고 자연스럽기 짝이 없어서 이예주는 후두둑 떨어지는 그것들이 처음에는 금가루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그것을 줍기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 뻔했다. 

조롱이가 뿌린 알갱이들이 바닥을 뒹굴며 더러운 먼지, 흙 등과 뒤섞였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을 보는 건지, 아니면 자신 앞의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의 눈이 갈망으로 번들번들했다. 

이예주는 제 발치 앞에도 떨어져 있는 몇 개의 작은 알갱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조, 수수, 보리, 쌀, 옥수수를 비롯한 여타 곡식 알갱이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도로 위에 꿇어앉아 그것들을 손으로 긁어모았다. 

방금 전 이예주를 잡으려고 했던 조롱이와 비슷한 나이 대의 남자아이 하나가 그 틈에 섞여 저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 하나를 거칠게 밀었다. 

그러곤 박박 바닥을 긁어 곡식 알갱이들을 모았다. 

그 필사적인 몸짓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던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조롱이가 신난 얼굴로 다시 한 번 주머니에서 곡식을 한 줌 꺼내 뿌렸을 때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예주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또다시 떨어지는 곡식 알갱이들을 쫓아 사람들이 비둘기 떼처럼 움직였다. 

“뭐 하긴여? 곡식 뿌리져.”

조롱이가 별 이상한 것을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녀의 정신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왜 곡식을 뿌리냐고, 새 모이 뿌리는 것처럼!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걸 왜 줍고 앉아 있는 건데?”

“아, 참. 예주 누나는 대체 아는 게 뭐예여? 왜 줍긴여. 먹을 거니까 줍지. 진짜 숲에서 나랑 주인님 못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여?”

“너랑 네 주인이 여기서 왜 나와!”

“말해 줬잖아여! 주인님이 금지해서 인간들은 생존을 돕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없다고여! 그러니까 인간들한텐 식량만큼 귀한 것도 없어여. 요즘 인간들 사이에서는 곡식 알갱이가 돈으로도 쓰이나 봐여.”

“……뭐?”

“기다려 봐여. 이 거지들은 구걸만 하는 게 아니니까여.”

이예주가 얼빠진 얼굴로 조롱이를 한 번, 그리고 바닥을 기고 있던 사람 무리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때 그 틈에서 정신없이 곡식을 주워 제 앞주머니에 담던 조롱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마저 담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년은 이예주를 바라보면서 제 가슴을 두어 번 툭툭 치고는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란 뜻인가 봐여. 가여, 예주 누나.”

조롱이가 아직까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들을 헤치며 앞서 나갔다. 그 뒤를 어벙벙한 표정의 이예주가 뒤따랐다. 

남자아이는 지금껏 그녀와 조롱이가 걸어오던 중앙 도로에서 옆으로 빠지는 작은 도로로 들어갔다. 

작은 도로를 조금 더 걷다가 어떤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 샛길로, 샛길을 따라 조금 더 걷더니 다시 큰 길로 빠졌다. 

하도 복잡해서 중앙 도로 이외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이예주와 조롱이는 다행이라는 눈빛을 교환하면서 허겁지겁 아이의 뒤를 쫓았다. 

만약 뭣도 모르고 패기 있게 아무 길이나 들어섰다면 틀림없이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커다랗고 복잡한 규모의 도시였다. 

아이는 먼저 휙휙 길을 걷다가도 조롱이와 이예주가 뒤처지면 걸음을 멈추고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그 모습이 꼭 밥값을 하겠다는 몸짓 같아서 그녀는 굉장히 심란해졌다.

“이해가 안 돼…….”

“뭐가여?”

“사람들이 동물도 아니고 곡식 알갱이에 저렇게 환장을 한다고? 난 조롱이 네가 금화라도 뿌리는 줄 알았어. 무슨 비둘기 떼도 아니고. 그것도 동물이 뿌려 주는 건데…….”

물론 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조롱이의 본질이 새라는 것을 아는 이예주가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완전 우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 떼에게 빵가루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는 2017년. 

새가 사람들에게 곡식 알갱이를 뿌리는 3019년.

“이거 완전 주객전도잖아? 뭔가 좀…… 소름 돋는다. 그치, 조롱…….”

“……왜여?”

무의식 적으로 조롱이의 동의를 구하려던 이예주는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황금안을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어차피 저한텐 필요도 없는 곡식, 구걸하는 사람들한테 뿌리는 게 뭐가여?”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어, 그러니까…….”

“아, 누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이 구걸하는 게 소름 돋는 거예여? 아니면 동물이 인간에게 곡식을 뿌려서?”

조롱이가 황금색의 커다란 동공을 도로록 도로록 굴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물들만 구걸하라는 법도 없잖아여. 말 못하면 인간들도 똑같은 동물인데.”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뱉는 조롱이의 목소리가 냉정했다. 

딱 잘라 말하는 태도가 워낙 싸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인간들은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차갑게 말하던 사막에서의 조롱이가 생각났다. 

숲에서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평소엔 안 그러다가도 이예주가 인간임을 자각할 때마다 유난히 날카로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그건 그렇지.”

멍하니 조롱이의 말에 끄덕이며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맞는 말인지라 대꾸할 말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조롱이의 말마따나 자신이 인간이라서 그런 것인가. 사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그녀로선 완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흩뿌려진 곡식 알갱이 위를 허겁지겁 덮치던 사람들의 잔상이 눈가에서 가시지 않았다. 

이지를 잃은 그 눈엔 식량, 먹을 것에 대한 욕심, 오로지 그뿐이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건 그렇다 쳐도. 이 커다란 도시에 먹을 게 하나 없어서 저 많은 사람들이 구걸을 하는 게 말이 돼?”

쉬이 사라지지 않는 의문 탓에 이예주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앞서가던 남자아이가 왼쪽 모퉁이를 돌아 휙 사라졌다. 

걸음을 빨리하여 덩달아 모퉁이를 돌자 1차선 도로가 나왔다. 남자아이는 벌써 길을 건너 반대편 보도블록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이 뒤로 회색 시멘트 벽에 붙어 있는 긴 머리 여인의 조각상이 보였다. 

처음에 보았던 하늘색 벽의 조각상처럼 꼭 회색 시멘트 벽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조각상의 표정이 겁에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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